남한산성 로빈슨 크루소 네<1410319>
-어쩌다 들어선 계곡 길에서 만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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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 남한산성등산로입구(성골마을)–일장천계곡-우회능선-이장천계곡-사격장능선-산간농장-성남GC/필드-위례신도시-장지동버스공용주차장
또 하나의 월례등산모임 날인 3월19일. 약속장소 마천방향진입 남한산성등산로 입구로 나갔더니 아무도 안 나와 본의 아니게 홀로 산행을 하게 됐다.(산악회 회장조차 소집은 해놓고 본인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우리 나이 친구들에 흔한 일들이라 정말 큰일이다).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 일장천 쪽으로 가닥을 잡는데, 마침 앞길에 날렵한 여자 한 분도 같은 방향이다. 척 보니 산행에 익숙한 듯 보였는데 과연 발걸음이 가볍기 그지없어 휭하니 거리가 멀어진다.
들머리는 일장천 방향으로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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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여자 분이 일장천을 앞두고 흔히 다니는 길이 아닌 계곡으로 빠진다. 나도 덕분에 새길 좀 알아두겠다는 생각에 실례를 무릅쓰고 뒤를 따랐다, 치한으로 오해받을까봐 100여 미터 이상 거리를 두고 가는데, 그니는 중간의 지름길로 빠져 산정으로 향하고 말았고, 나는 되도록 산자락 길을 다 돌아볼 생각에 산 아래 쪽으로 이어지는 능선허리를 타고 돌았다. 계곡의 나무그늘엔 이미 생강나무가 노란 꽃을 움트이고 있다.
그런데 이쪽 길 참 오랜 만인가 보다. 이전의 일장천과 남한천을 연하는 등산로는 주로 옴폭 파인 능선 안부와 작은 골짝을 통했는데, 생태보존을 위해 휴식을 시키는지 다 폐쇄시키고 능선 등성이로 새 길을 내고 계단과 줄 난간을 조성해 놓았다. 남한천의 이름도 이장천으로 바뀌었다. 세상이 계속 변한다지만, 산 속마저 이리 변해 갈 줄이야! 남한산성을 찾는 산행객들이 그만큼 미어터져 사람들의 발길에 산마저도 이미 붐비는 도심의 공원처럼 되고 만 탓이리라.
능선 등성이로 계단길이 놓였는데 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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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작은 골짝 옛길은 폐쇄돼 버리고 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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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천으로 알아왔더니 이장천이란 새 이름으로 적힌 약수터도 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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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쉼터가 언제부터 늘어섰는지 돌탑들로 가득해 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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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천을 지나 수어장대 밑 암문으로 통하는 능선 길에 오르다, 사격소리 요란한 산의 동남쪽 방향 하산 길로 들어서니 계곡으로 빠진다. (물론 사격장을 향하는 출입 금지된 능선 길로는 아니다). 이 길은 옛날 특전사교육대 시절 교육생들을 인솔해 곤지암과 이천 지역의 훈련장들인 태화산-천덕봉-앵자봉으로 행군하던 남한산성 남문을 넘던 길로 이어질 것이란 기억이 났다. 당시를 추억하며 지금은 어찌 변했는지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여기도 산길은 나있지만 인적은 드물다. 화사하게 피어나는 생강나무 꽃이 계곡의 적막함을 덜게 해줄 뿐이다. 이런 길을 애호하는 산객이라면 마니아들일 것이다. 몇 개의 지맥을 가로질러 계곡으로 떨어지자 정말 거친 농장 하나를 만났다. 배어낸 통나무를 얼기설기 쌓아놓은 것이 밭의 울타리이고 밭 가운데는 바위덩어리가 그대로 놓여있다. 농장이라고 하기엔 농막 수준인데 이 모든 모습들이 정말 그로테스크하다. 처음 만난 농막은 무슨 야전화장실이거나 닭장 또는 토끼장 같은 정도인데, 개울상류에서 호스로 물을 대온 곳에는 세면기와 비누, 물받이 그릇이 있는 걸로 보아, 최근에도 사람의 손길이 닿는 건 분명했다. 한 가지 웃기는 것은 맘만 먹으며 훌쩍 넘을 나무그루터기 울타리임에도 키 낮은 쪽문을 달았고, 게다가 번호판자물쇠를 달아놓았다는 것이다. 물리적인 울타리나 문이고 자물쇠가 아니다. 그건 보통사람들의 양심에 채우는 자물쇠일 것이다.
인적 드문 이 길은 급한 경사를 내려서 계곡으로 015 
산 위쪽의 생강나무 꽃보다 더 활짝 피어난 이곳의 생강나무 꽃 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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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기설기 비탈 밭의 농막과 가로 걸친 통나무 울타리가 참 와일드해 019
계곡물 호스로 이어져 만들어진 노천의 수돗간? 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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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짝의 자물쇠가 과연 외부침입자를 통제할 수 있다고 보진 않았겠지. 웃겨! 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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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이렇게 황량한 산속에다 밭을 만들었을까? 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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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밭 가운데 바위가 버티어 섰고, 임시변통 기막힌 재활용 울타리도 생겼겠지 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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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잔뜩 호기심을 발동시킨 것은, 더 아래 계곡의 끝자락에 자리한 그 밭들에서 농사를 짓는 건지 휴양을 하는 건지 용도를 잘 모를 농막이었다. 농막의 주인이 누구일까 하는 것이 몹시 궁금했다. 단순한 농막이 아닌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농막 주변의 인공물들이 자연 속에 조화시킨 설치미술작품 같았기 때문이다. 원두막도 있고 주방기구와 농기구라도 보관해둘 것 같은 창고 용도의 움막도 있으며, 야외용 식탁으로 보이는 구조도 있다. 더욱 감탄하게 하는 것은 나뭇가지에 다리 없는 벤치를 밧줄로 걸어둔 흔들 그네?, 골프스윙 그물과 티 박스, 돌덩이를 나무 바에 얽어 매달아 놓은 바벨, 훌라후프와 줄넘기, 흐르는 계곡물을 받아 돌게 한 변형된 물레방아 소품, 그리고 곳곳에 쌓아놓은 돌탑들이었다.
이런 현장은 완전히 로빈슨 크루소의 거처를 연상하게 했다. 살림살이들이 조악하지만 왠지 정감이 가득 찬 눈으로 보게 되는 그런 외진 거처였다. 극히 초보적이고 원시적인, 손으로만 만든 것 들 뿐인 것 같은 거칠고 조잡한 살림살이 그대로였다. 그래서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나중에 저작권시비가 걸려오든 말든 내 맘에 그렇게 좋아보였으니 어쩔 수 없다.
책을 읽을 수 있는 흔들그네가 걸려있고, 차 한잔 하며 경관과 물레방아를 감상할 수 있는 원두막이 있고, 골프연습을 할 수 있으며, 운동기구도 갖추어 놓은 걸 보면, 이 농막의 주인이 현재와 과거에 사회적으로 어느 수준에 있는 사람인지 감지가 되기도 한다. 언제 다시 소주 한병 들고 찾아와 이 농장의 주인을 한 번 볼 수 있을까? 우선 사진으로만 담아 갑니다. 즐거운 한 순간을 가지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있는 그대로 돌아보고 촬영해 본 문제의 농막 03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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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탑과 물레방아-소품이지만 찰찰 소리내며 잘도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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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과 골프스윙 티박스와 농구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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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는 평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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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라후프와 줄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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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과 주방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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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먹식 흔들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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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을 살짝 들여다 보니 정갈한 방. 방강로이다-원두막식으로 높이 솟았고-여름에 사방을 걷으면 얼마나 주변경관을 잘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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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며 뒤돌아보니 산막은 가림막으로 가려졌지만 돌탑 하나가 배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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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은 아직 끝나기에는 이른 중턱인데, 극히 낭만적인? 농막을 끝으로, 미군들의 골프장 성남GC의 필드를 만나면서 사라지고, 나의 하산 제대로 된 등산로 그렇게 막힌다.
계곡은 저처럼 골프장을 만나면서 사라지고 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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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수 없이 골프장을 가로질러 카트전동차의 길을 따라 관통해 하산한다, 요즘 경기가 안 좋은 걸 반영하는지 라운딩 하는 골퍼 팀들이 참으로 뜸하다. 앞뒤가 2~3홀 이상 떨어져, 대통령 골프 그 이상의 여유 있는 라운딩 모습이었으니까. 역시 골프장은 조경과 경관이 멋지다.
날라 올 공을 주의하면서 골프장을 따라서 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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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드 연못 가장자리로 지나는데 장끼가 끼륵 거리며 길을 가로막더라 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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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못에 비친 산 그림자의 색조가 너무나 아름다운 녹색이어서 한 컷 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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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움이 노릇노릇 부풀어 오르는 개나리 너머로 필드가 고요해 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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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목더미 야산 그대로였으면 이렇게 시원하고 탁 트인 분수와 초원의 풍경이 이루어졌을까?
야산의 골프장 개발은 이래서 나름의 명분이 서게 되는 것이겠지! 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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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의 생강나무와 구분하기 힘든 노란 꽃의 산수유도 꽃 움을 막 터뜨리는 중인데 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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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박구리 한 쌍이 가지 위에서 찍찍 거린다, 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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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너머로 새로 짓는 남성대 골프연습장과 국가유공유자녀 기숙사가 우뚝 061(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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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GC의 골프연습장과 클럽하우스 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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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례신도시 건설현장의 크레인들이 그린 필드 위로 무슨 설치미술처럼 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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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을 벗어나면, 한창 공사 중인 위례신도시 지구다. 군데군데 공사장에 막혀 먼 길로 에둘러 장지동 버스공영주차장으로 나가서야 집으로 올 수 있었다, 그저 새롭고 고요한 산길을 걸었고 그래서 재미있는 산간 농막을 만나 뜻하지 않은 호기심과 흥미를 느꼈으며, 그러 그렇게 걸으며 세상을 보고, 새삼스레 세상을 다시 보면서 걸을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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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산간농장 농막으로 골프장으로 신도시공사장으로-오늘 산행 참 이상했군 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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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명수의 끝없는 여정.... 부러우이~~~
여정이란 말이 참 어감이 좋네. 이제 우리의 자전거타기도 스포츠의 경지에서 , 느긋하게 산하를 돌아보는 방편으로서 다시 말해 우리의 여정을 한껏 풀어내는 그런 경지로 되는 것 아니겠나요~`
불법 시설물을 지어놓고 꽤 오래 거기서 생활한 것 같은데, 참 용케 적발되지 않고 버텼네. 멋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좀 특이한 사람같다.
그러게 참 특이한 사람 같네. 그래서 더 한 번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네. 나무 막대기에 돌멩이 매다는 모습을 생각만 해도 우스꽝스워러워서 말이지~
물어나보지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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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나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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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기막히네...
물레방아가 어떻게 도나 궁금했는데
근데 물레방사 소재가 원래 미니추어 정원용 물레방아인지, 아니면 무슨 장난감 자동차 바퀴를 대용한 것인지 애매해, 이 사진을 클릭하면 대빵 큰 원본사진이 나오이 한번 분석해보고 답을 주시겠나?
혼자 다니면 무서울 텐데 역시 강심장이야
작년에 지리산 종주 시 혼자 하산하다 보니 으시시 하든 군
일육산악회도 가끔 나오 슈
언제 한 번 같이 가볼까? 술 한 병 사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