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215] 얌마! 그건 훈련이었어!
준열이가 지난 2월 15일에 중학교를 졸업 했습니다. 너무나 나약하게 태어나 걱정도 많이 했는데,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처럼 병원에 입원 한 번 하지 않고 지금까지 잘 자라주었습니다.
아빠의 사고로 가정이 깨지고 엄마는 자기를 14개월 되었을 때 놀이방에 맡겨 두고 집을 나간 뒤 지금까지 얼굴 한번 보지 못했지만, 녀석은 모나지 않고 밝게 자라 주었습니다.
투병 생활을 하던 아빠와 살면서 제대로 돌보지 못했는지 양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해 보니 귀에 물이 들어가 만성 중이염이 되었고, 그로 인해 청력을 상실했다고 했습니다. 아마 제가 투병생활 하면서 녀석을 목욕 시키곤 제대로 닦아 주지 않아서 그랬는가. 봅니다. 새로 가정을 꾸리고 새엄마가 녀석에게 생겼습니다. 감사하게도 새엄마를 잘 따라주었습니다. 대화를 할 때 제대로 듣지 못하기에 항상 큰 소리로 말을 해야 했습니다. 얼핏 들으면 혼내는 것 같고 싸우는 것 같았습니다.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양쪽 귀가 보청기를 착용하고도 제대로 들을 수 없기에 본인은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런데 내가 더 답답해 속상해 하곤 했습니다.
아비 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정신력을 키워주는 것뿐이었습니다. 녀석을 강하게 키운다며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왕복 5키로의 거리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걸어서 다니게 했습니다. 시골 산속 길을 걸어 다니느라 무섭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녀석은 모르고 있었을 겁니다. 아빠 엄마가 멀리서 뒤 따라 가며 잘 가고 있는지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중학교 들어가서야 자전거를 사서 통학을 하게 했으니 조금 심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아빠는 왕복 20리 길을 매일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고 말해 주면서, “너는 아빠의 아들이니까 잘해 낼 수 있을 것이다.”며 용기를 주곤 했습니다. 특수학교를 보내라는 주변의 권유도 외면하고 일반학교에 보냈을 땐 속으론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걱정이 되니 자연스럽게 기도를 더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사람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녀석이 건강하게 중학교를 졸업하며 노력상도 받고 장학금도 탔습니다. 머리 한 번 쓰다듬어 주는 것으로 칭찬을 대신했습니다. 그래도 우리 부자지간은 서로 바라보는 눈빛으로도 얼마나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참 감사할 일입니다. 녀석이 졸업하고 3일 후에 제 생일이었습니다. 그날은 마침 멀리 춘천에 있는 장애인 시설에 온 가족이 봉사를 가야하기에 새벽부터 출발을 해야 합니다. 아빠 생일 파티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나 봅니다. 생일 하루 전날 낮에 주일 예배를 마치고 식탁 공동체를 할 때 파티를 해 줍니다. 장학금 받은 것에서 일부를 떼어내 아빠를 위해 커다란 케이크를 사서 촛불을 끄게 합니다. 물론 아내가 의견을 냈기 때문에 가능했겠지요. 녀석 혼자의 생각으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저는 잘 압니다. 그래도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저번에 전주역에 떨어뜨려 놓고 경기도 화성에 있는 집까지 찾아오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멋지게 성공을 했었습니다. 그 후론 녀석이 자신감이 늘었습니다. 팔씨름도 이젠 제가 상대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잘합니다. 피트 병에 물을 가득 채운 후에 그걸 손가락으로 양쪽에 한 병씩 잡고 양팔을 벌려 운동을 합니다. 벌을 서면서 그렇게 하라면 절대 못 할 텐데 역시 하고 싶은 것은 힘들어도 하게 되는 가 봅니다. 어째든 대견합니다.
며칠 전, 정월 대보름 무렵에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산소의 벌초를 할 여력이 되지 않으니 묘지를 이장하여 납골당을 만들거나, 수목장을 하거나, 다른 방법을 통해서도 벌초를 하지 않을 방법으로 일을 하겠다는 어르신들의 의견이 내려와 함께 상의하자는 연락이 왔기 때문입니다. 집안 장손인 제가 예수를 믿는다고 모른 체 해 버리면 예수를 잘못 믿은 것이기 때문에 시간을 내서 내려갔습니다. 녀석에게 조상들의 산소도 가르쳐 주고 가계도에 대해서도 알려 주었습니다. 산소에서 내려오는데 초분(사람이 죽으면 바로 땅에 매장을 하지 않고 땅위에 나무들을 깔고 그 위에 관을 놓고, 관을 이엉으로 덮어서 시신이 모두 썩고 뼈만 남았을 때 땅에 매장을 하는데 보통 3년 정도 기간이 됩니다.)이 보입니다. 녀석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서 설명을 해 주려고 오라는데 올 생각을 안 합니다. 몇 번을 소리쳐 불러도 올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목발을 짚고 차까지 내려와 아내에게 시동을 켜라고 했습니다. 산을 두 개 넘어야 우리 마을로 돌아 올 수 있는 곳입니다. 녀석을 두고 가자고 했습니다. 혼자 오는지 보자고 했습니다. 아내는 “아들 떼어 놓고 오는 거 재미 들렸나 보내”라며 못마땅해 합니다. 그래도 아들을 두고 왔습니다.
고향 집에 돌아왔는데 아무래도 걱정이 됩니다. 다시 차를 돌려 그 곳으로 가 보았습니다. 아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아내는 걱정이 대단합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들의 핸드폰은 꺼져있습니다. 나는 다른 일을 하고 아내가 다시 차를 끌고 아들 찾아 나섭니다. 얼마 있는데 핸드폰으로 문자가 왔습니다. 아들이었습니다. ‘어디요?’내가 답을 합니다. ‘그러는 넌 어디냐?’참 별난 부자지간입니다. 잠시 후 아들이 전화를 했습니다. 마을이 보인다고 합니다. 금방 갈 것 같다고 합니다. 아내에게 전화했습니다. 아들과 통화가 되었다고 했더니 태우러 가는 중이라네요. 아침에 핸드폰 충전시키곤 켜 놓지 않아서 통화가 안됐다고 하네요.
아내와 아들이 마당으로 들어옵니다. 산을 두 개 넘어 집을 찾아온 아들이 대견한 아내, 무사히 집에까지 돌아온 자신이 멋지다 생각한 아들. 아내와 아들은 기분이 좋아 보입니다. 아들이 내 곁으로 오더니 묻습니다.
“아빠~”
“응?”
“아빠 내가 진짜 아들 맞아요?”
“그럼 맞지~”
“무슨 아빠가 아들을 산속에 버리고 와요?”
“얌마! 그건 훈련이었어!”
2008. 2. 24.
-양미동(나눔)―
첫댓글 부자지간에 끈끈한 정을 엿보는 것 같습니다. ^^*
의엿하게 바르게 잘 자라준 준열이가 대견스럽네요.
기도해 주신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