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공관복음에 모두 기록되어 있는 회당장 야이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야이로는 바리새인으로 회당장입니다. 회당은 기원전 6세기 바빌론 포로기 동안 성전 없이도 신앙 생활을 유지하려는 유대인들의 필요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비공식적인 모임 장소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회당은 유대인 공동체의 중요한 예배와 학습의 중심지로 발전했습니다. 회당은 유대 공동체의 영적, 교육적, 사회적, 법률적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며, 유대인의 신앙 생활과 공동체 유지를 위한 중요한 장소입니다. 이민자들의 교회와 같은 역할을 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눅 8:50)
두려움은 우리의 신앙 생활에 큰 장애물입니다. 두려움이 찾아오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두려움은 믿음의 반대말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두려움이 클수록 믿음이 약해지고, 믿음이 클수록 두려움이 줄어듭니다. 믿음은 두려움을 이기는 힘을 줍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도우실 것이라는 확신을 통해 두려움을 극복하게 합니다.
성경에서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이 자주 등장합니다. 1948년 루마니아의 공산정권하에서 투옥된 리차드 범브란트 목사님은 모진 고문이 두려워 기도하고 성경 읽는 일에 전념했는데 성경에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365회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365일 날마다 “두려워 말라”는 말씀을 붙잡고 힘을 낸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려움 대신 믿음을 가지라고 권면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입니다(딤후 1:7).
두려움이 사람을 지배하면, 심리적, 신체적, 사회적, 영적인 여러 가지 부정적인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개인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며, 일상적인 기능 수행을 방해하고, 삶의 질을 크게 저하시킬 수 있습니다. 두려움은 바이러스 같아서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온몸을 마비시킬 수 있습니다. 생명체는 위협을 받을 때 본능적으로 '투쟁-도피-경직(fight-flight-freeze)' 중에 하나를 선택합니다. 고양이와 쥐가 맞닥뜨릴 때, 쥐는 덤비거나 도망치거나 아니면 극도의 두려움 때문에 마비됩니다.
1. 두려움이 밀려올 때
살다 보면 우리는 수많은 두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건강, 재정, 관계, 미래에 대한 걱정 등 크고 작은 두려움들이 우리의 마음을 짓누릅니다. 야이로의 딸의 이야기는 마가복음 5장 21-43절, 마태복음 9장 18-26절, 그리고 누가복음 8장 40-56절에 나옵니다. 12살된 딸아이가 죽을 병에 걸려 회당장 야이로는 예수님을 찾아가 고쳐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집으로 오는 도중에 12년 동안 혈루병에 걸린 여인을 치료하느라 조금 지체했습니다. 이때 종이 와서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자 야이로는 절망하며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인간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7가지 두려움이 있습니다. 1. 가난에 대한 두려움, 2. 비판에 대한 두려움, 3. 질병에 대한 두려움, 4. 실연에 대한 두려움, 5. 자유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 6. 노화에 대한 두려움, 7.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여러분은 어떤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의 두려움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더 악화시킵니다. 질병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인간의 무의식은 의식의 생각을 실현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긍정의 생각을 갖은 사람에게는 긍정의 힘으로 나타나고, 부정의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는 부정의 힘으로 나타납니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할게 없겠다는 말이 있습니다. 걱정이 걱정을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걱정 자체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며 오히려 마음의 평안을 빼앗는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6장 34절에서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고 하셨습니다. 내일의 걱정을 오늘 가불해서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1929년 월스트리트 대폭락 사태 당시 대중의 반응을 보면 두려움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 당시 대중의 반응은 경제적 위기를 악화시켰고, 결국 대공황을 불러왔습니다. 이때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취임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단 한 가지는 두려움 그 자체이다.” 두려움은 미래의 걱정을 오늘 가불해서는 쓰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두려움이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믿음을 어떻게 방해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2. 믿음은 두려움을 이기는 열쇠
세상적으로 존경받고 잘나가던 회당장인 야이로는 딸이 병에 들지 않았다면 예수님을 찾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가운데도 고난과 실패가 예수를 믿게 되는 동기가 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야이로는 예수님에게 엎드려 딸을 고쳐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두려움이 오히려 믿음을 가로막는 장애물임을 지적하시며, 믿음으로 두려움을 이기라고 명하십니다. 두려움이 우리를 휘어잡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믿기만 하라"는 것은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마가복음 4장 40절에 풍랑 속에서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의 부족함을 책망하십니다. 이는 두려움과 믿음이 상반된 감정임을 보여줍니다. 두려움과 믿음은 어둠과 빛과 같습니다. 빛이 오면 어둠은 자동적으로 물러납니다. 그렇게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해가 뜨면 모든 어둠은 물러갑니다. 부정의 마음을 쫓아내기 위해서는 긍정의 마음을 가지면 됩니다. 악을 이기기 위해서는 악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검은 개와 흰 개가 있습니다. 둘 중에 어느 개가 이기겠습니까? 주인이 밥을 더 많이 주는 개가 이깁니다.
3. 믿음의 결과는 구원
야이로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랐고, 예수님은 소녀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을 외치자 다시 살아났습니다. 믿음은 단지 내면의 감정이나 결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만드는 통로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결단을 통해 역사하시고, 우리에게 구원과 회복을 가져다 주십니다.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믿고 나아갈 때, 기적적인 변화와 구원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야이로의 이야기를 통해 두려움과 믿음의 중요한 관계를 배웠습니다. 두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면서도, 그 속에서 믿음을 선택해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이 믿음으로 오늘도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기적과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