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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이랑 코리아 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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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 원 게 시 판 스크랩 [펌] 언론의 황당무계한 촛불집회 인원수 뻥튀기, 괴벨스가 울고 갈 정도!
순종과 겸손 추천 1 조회 68 16.12.14 10:4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이게 100만?





이것도 서울만 100만 이상?




헉, 이게 232만이라고?



그럼, 객관적으로 한번 비교해 봅시다!



김일성 광장에 모인 10만 군중대회


2014년에 미시건 대학 풋볼 경기장에서 치러진 맨유 vs 레알마드리드 축구경기에 몰린 10만 인파. 정확하게는 109,318명으로 관중석뿐만 아니라 본부빌딩까지 꽉 채웠다고 한다. (*사진 출처 - http://www.sbs.com.au/news/article/2014/08/03/football-taking-us-super-stars-draw-record-crowd)



그것 참 이상하네요. 10만 군중 사진이 100만이나 230만보다 훨씬 더 많게 보이네요?




히틀러 나치의 뉘른베르크 전당대회(1933년)에 참석한 50만 군중




100만의 절반인 50만 군중도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들판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하하하! 뻥도 정도껏 쳐야 믿죠. 네네! 진실은 이렇습니다.



[지난 11월 5일 광화문광장 주변에서 열린 촛불시위]

경찰 "촛불집회 참가인원, 직접 세어보니 약 4만7천600명"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1/07/0200000000AKR20161107107000004.HTML)


경찰은 인원 추산과 관련한 논란이 일 가능성에 대비해 실제 당일 고층건물 옥상에서 사진을 찍어 이를 370개 구획(셀)으로 나눈 뒤 인원을 일일이 세었다. 그 결과 집계된 인원은 4만 7천600여명이었다고 한다.



(출처 :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8/22/2016082200591.html)


참고로 위 사진은 2016년 8월 20일,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개최된 빅뱅 10주년 콘서트 때 찍은 사진인데, 저때 모인 관객의 숫자가 6만 5천 명입니다. 그리고 아래는 언론이 주장하는 232만입니다. 



뭐, 전국 추산이라고 하더라도 타 지역에서 모인 숫자는 1만에도 못 미칩니다. 하지만 언론의 뻥튀기 방식으로 최대 32만이라고 칩시다. 그래도 서울에는 광화문 광장을 중심으로 200만이 모여야 합니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하지 않습니까? 뻥을 쳐도 좀 정도껏 쳐야죠. 기자님들! 진짜로 부끄럽지도 않나요? 양심은 이미 다 팔아먹은 건가요?


232만명이면 현재의 중공군보다 많고 남한과 북한의 병력을 모두 합친 것의 1.4배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위에서 살펴본 상암월드컵경기장의 수용인원이 6만 5천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232만이면 35개의 상암월드컵경기장에 수용되는 인원입니다. 하긴, 1분에 1만 명 이상씩 모인다고 보도하는 언론이고 보면, 광화문 광장과 그 일대에 삼암월드컵경기장 35개를 지을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거짓말로 스스럼없이 할 수 있겠군요. 쩝!

 

각설하고, 경찰 차벽을 비롯한 이런저런 시설물의 면적을 고려하면 전체 면적에서 25% 정도 빠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게다가 실제로 1평에 인원을 3명씩만 집어 넣으도 꼼짝달싹 못할 정도입니다. 그러니 고작 저 면적에 100만 이상 들어가려면 10겹 이상의 목마를 태워도 힘들 것입니다. 결국 12만 정도의 인원으로 간주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입니다. 아무리 많아도 20만은 넘어갈 수 없다고 봐야 합니다.



참고로 아래는 많아 봤자 15만 정도로 추정되는 촛불집회의 인원을 232만으로 뻥튀기한 주류 언론이 3만 내외로 축소 보도한 탄핵반대 애국집회(12월 10일)의 사진과 영상입니다. 촛불집회는 대서특필하다 못해 참가할 것을 적극적으로 독려하면서 태극집회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은폐하거나 마지못해 보도하더라도 터무니없이 축소하여 보잘것없고 찌질한 것처럼 비하합니다. 언론의 이 역겨운 이중잣대를 대체 어쩌면 좋습니까?

 



보수여 죽어라, 죽기 전에… 새롭게 태어나 힘들여 자라길

소설가 이문열 | 2016/12/02 03:00



죽기 좋은 계절이다. 참으로 많은 죽음이 요구되고 하루라도 빨리 그 실현이 앞당겨지기를 요란하게 기다리는 시절이다. 매스컴은 그런 죽음을 예고하고 혹은 초대하는 이야기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악머구리 들끓듯 하고 광화문광장은 벌써 두 번째로 백만을 일컫는 촛불에 휘황하게 밝았다.


아주 예전에 읽어 제목과 지은이조차 기억에 가물가물한 이탈리아 극본 한 편이 떠오른다. 어느 나라인가 여왕의 어지러운 통치 때문에 폭동이 일어나 국가권력은 전복되고 여왕은 잠적하였다. 폭도가 수도 길목을 막고 여왕을 수색하는데 어느 새벽 여왕을 빼닮은 창녀 하나가 재수 없게 걸려든다. 폭도는 그 창녀를 끌고 가 며칠 심문이랍시고 갖은 모욕과 고통을 주며 그녀가 여왕임을 자인케 한 뒤 엉터리 재판에 넘겨 처형장으로 보낸다.


그런데 형장에 이르자 그렇게도 자신이 여왕이 아님을 주장하고 살려주기를 애원하던 그 창녀가 홀연 여왕의 의연함과 위엄으로 군중 사이를 가로지른 뒤 총살대 앞에 선다. 자신을 여왕이라고 믿고 있는 군중을 위해 여왕의 기품과 비장함을 스스로 연출한 것인데, 놀랍게도 군중은 진정한 애도의 눈물과 탄식으로 자신들의 여왕을 보낸다. 보아라, 우리의 여왕이시다. 여왕께서 의연히 죽음과 맞서신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창녀는 세상의 그 어떤 여왕보다 더 품위 있고 고귀한 여왕이 되어 죽는다.


또 16세기 수피즘의 시인 술탄 바후의 노래 가운데는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 모두가 두려워하는 죽음/ 사랑하는 이는 기꺼이 맞네/ 그래야만 참으로 사는 거니까.'


그리고 또 다른 노래에서는 마호메트의 금언을 빌려 한 구절 보탠다. '여보게 바후/ 죽기 전에 죽세/ 그래야 그분께 이를 수 있다네.' 여기서 죽기 전의 죽음이란 정신적 죽음, 참다운 소생을 위한 낡은 정신의 죽음 같은 것을 말하지만 요즘 같은 때는 왠지 되새겨 보게 되는 구절이다.



무엇에 홀린 듯 여성 대통령의 미용이나 섭생까지 깐죽거리며 모욕과 비하를 일삼다가 그것도 특종이랍시고 삼류 도색 잡지도 다루기 낯간지러운 사생활에 대한 억측과 풍문을 무슨 큰 폭로라도 되는 것처럼 뉴스로 쏟아내는 매스컴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도 있을 수 있다. 무슨 교수, 무슨 평론가, 무슨 전문가 해서 풍채 좋고 언변 좋은 양반들이 온종일 종편이 펼쳐준 좌판에 몰려 앉아 대통령 여당 몰매 놓기로 의식 수준의 고하를 겨루거나, 대통령 속곳까지도 슬쩍슬쩍 곁눈질하며 최가네 일족 잡상스러움을 시시덕거리거나, 문고리 몇 인방이니 친박 개박 매화타령 하며 킬킬거리는 모습이 보기 민망스럽다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입 냄새도 안 나는지 저쪽에서 무슨 소리를 해도 입 꼭 다물고 앉은 대통령이나 집권 여당의 논객들은 지난 몇 달 매스컴의 모진 찧고 까불기에 여지없이 부서져 보수의 위기라는 말이 실감 나게 만들었다. 위기란 곧 존립이 위협당한다는 것, 먼저 죽어 거듭나지 않으면 보수의 미래는 없다. 이 쇠퇴하고 허물어진 정신의 허울 벗고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이 땅에서 보수는 다시 발 디디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죽어라, 죽기 전에'는 문고리나 친박 비박뿐만이 아니라 보수 일반의 정신에까지 여전히 유효한 권유가 된다.


이제는 매스컴이 스스럼없이 '국민의 뜻'과 혼용하는 광장의 백만 촛불도 마찬가지다. 지난번에 문재인 후보를 찍은 적극적 반대표만도 1500만표에 가까웠고, 대통령 지지율 4%가 정확한 여론조사였다면 이 나라에 박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은 유권자만도 3000만이 훨씬 넘는다. 아니, 박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친다면 4500만도 넘는다. 하지만 그중에 100만이 나왔다고, 4500만 중에 3%가 한군데 모여 있다고, 추운 겨울밤에 밤새 몰려다녔다고 바로 탄핵이나 하야가 '국민의 뜻'이라고 대치할 수 있는가. 그것도 1500단체가 불러내고, 매스컴이 일주일 내 목표 숫자까지 암시하며 바람을 잡아 불러 모은 숫자가, 초등학생 중학생에 유모차에 탄 아기며 들락날락한 사람까지 모두 헤아려 만든 주최 측 주장 인원수가.


심하게는 그 촛불 시위의 정연한 질서와 일사불란한 통제 상태에서 '아리랑 축전'에서와 같은 거대한 집단 체조의 분위기까지 느껴지더라는 사람도 있었다. 특히 지난 주말 시위 마지막 순간의, 기계로 조작해도 어려울 만큼 정연한 촛불 끄기 장면과 그것을 시간 맞춰 잡은 화면에서는 으스스한 느낌마저 들었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 또한 어찌하랴. 그 촛불이 바로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성난 민심이며 또한 바로 '국민의 뜻'이라는 것은 지난 한 달 야당의 주장과 매스컴의 호들갑으로 이제 누구도 쉽게 부인할 수 없는 논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 큰 뜻을 거역할 수 없어 가까운 날 대통령의 자진 사퇴라도 이루어지면, 그래서 비상한 상황의 권력 변동이 일어나면 보수의 위기는 한층 더 확정적인 사태가 될 것이다. 따라서 이 땅의 보수의 길은 하나밖에 없다.


죽어라, 죽기 전에. 그래서 진정한 보수의 가치와 이상을 담보할 새로운 정신으로 태어나 힘들여 자라가기를. 이 땅이 보수 세력 없이 통일되는 날이 오기 전에 다시 너희 시대를 만들 수 있기를.



http://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16120200283



괴벨스의 나라?…232만 촛불 광풍, 그 실체를 다시 생각한다!

http://www.mediapen.com/news/view/212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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