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
의지는
시작보다는 지속에 방점이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든 선한 의도를 냅니다.
이것은
성선설을 주장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근원적 인간 본성이
확장 욕구이기에
질적 성장에 관심을 가지고
그런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지요.
반면
인간은 자기 중심성을 지녔기에
타인의 불편에도
자신의 이익을 우선 챙기는
또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상식선에서
우리는 이 둘의 균형을 필요로 하지요.
모든 종교나 영성의 활동은
그 균형에 관한
통제력을 얻으려는 노력입니다.
그 중 선한 의도는
가장 빈도가 높고
구체성을 띤 활동이지요.
그러나
인간 삶은 다의적이고 입체적이기에
선의가
항상 선한 결과를 낳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의도와 결과에 관한 논쟁이
끊이지 않지요.
의도가 좋으면 그만이라거나
결과가 좋으면
모든 것이 허용될 수 있다는
극단적 견해들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영성의 관점에서
하나만을 선택하라면
의도를 선택함이 합당하지요.
결과는
개인 의지 밖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지만 관리하는 것은
무책임한 짓이며
미숙한 차원이지요.
진정한 의지는
디지털화된 장치 앞에서
시작 버튼을 누르는
일회성 행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의지란
시작된 지점부터 이어지는
과정에 대한
일관성을 반드시 요구하지요.
과정에 참여함은
변화되는 상황에 반응하고
이해하고
수용하고
설득하는 교감을 가리킵니다.
교감은
단순한 반응과 들음이 아닌
사건의 다음 단계에
유의미한 작용을
함께 열어가는 것이지요.
상호 작용이 없다면
방관이고
구경일 뿐입니다.
그래서 의지는
반드시 맥락을 만들어내지요.
선의를 정확히 표현하면
선한 출발이 아닌
선한 맥락을 의미합니다.
비록 결과가 좋지 않아도
수용되고
용서되는 것은
선한 맥락을 보았기 때문이지요.
의지에서
살펴야 할 또 다른 점은
의지는
생각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너무 당연한 것이지만
많은 경우 간과되고 있지요.
무엇을 시작할 때
우리는 계획을 짜고
관련된 많은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의도로 여기지요.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일들이 흐지부지 되어버리지요.
애초에
생각이 있었지
의지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많은 생각과 말을 하지만
정작
의지는 드물지요.
물론
모든 생각과 말을
끝까지 실행할 수는 없습니다.
주어진 조건과 역량에 한계가 있기에
흔한 말로
선택과 집중이 있어야지요.
상황에 변화도 발생하고
새로운 안목에
수정도 불가피합니다.
그러나
선택 이후엔
의지가 담겨야 하지요.
의지는
이어지는 맥락의 과정입니다.
삶은 과정이지
생각이 아니지요.
그리고 선한 의지는
선함을 실천하는 과정입니다.
선의의 함정은
생각과 일회성에 있지요.
생각에 갇히면
아무리 선한 생각을 많이 해도
선함이 발휘되지 않습니다.
구체적 삶의 차원과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끝으로
의지를 지속하는 힘은
어디에서 올까요?
선한 의도는
당연히 선함에서 오겠지요.
의지가 지닌 방향성의 문제이며
각자가
그 방향성과 동화되어 있는
정도에 따라
지속의 힘은 달라질 것입니다.
동화의 정도는
그 방향성에 관한 이해의 깊이와
비례하지요.
우리가 발하는 선의가 꽃을 피우기
위해선
모든 행위에 대한 의미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의미를 살핌은
관계성과 전체 그림을 이해함이지요.
영성에서
깨어있음은 이것을 가리킵니다.
달빛 밝으나 의도 모르고
멀리 달리는 이어진 불빛
작은 의지 분명히 놓으니
어둠마저 자리 내어주네.
..260710小野
첫댓글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_()_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