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의 위기탈출 넘버원, '재산 헌납'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어, '헌납'은 '위기탈출 넘버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중요한 정치적 고비 때마다 '헌납' 카드를 활용해왔다.
1993년 공직자 재산공개 당시의 민주자유당 이명박 의원은, 서울 서초동 일대의 대지 377평, 연건평 1,756평의 빌딩을 정확한 번지수도 밝히지 않은 채 기준시가로 5억 5,700만원이라고 신고했다가, 엄청난 역풍을 맞았다.
<동아일보> 1993년 3월 23일자 3면 기사 <「민자 재산공개」 정가반응>에 따르면, 민주자유당에 "지금 당장 10억원을 내놓을테니 그땅을 사겠다"는 비아냥 전화가 빗발쳤고, 민주자유당의 동료의원들까지 "부끄러워 말을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또다시 불거진 것이 2007 대통령 선거에서도 불거졌던 '도곡동 땅 은닉 의혹'이었다. 이런 위기 속에서, 이명박 의원은 477평의 서초동 일대의 땅을 당시 공시지가의 절반 가격으로 대한변호사협회에 팔아치운다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여기서 이명박 의원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기부'를 실천한다. 공직자 재산 공개 때는 밝히지도 않았던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사랑리 산 53-1 일대의 땅을 고려대 교우장학회에 '기부'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서울시장 선거 당시에도 민주당 김민석 후보 측이 '재산'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자 '월급 헌납'을 공약해 위기를 넘어선다. 그러다가, 대통령 선거에서 BBK 주가조작 의혹과 다양한 불법비리 의혹이 불거지자 "집을 제외한 전재산의 사회 환원(헌납)"을 공약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유권자들은 이명박 대통령과 관련된 파문이 불거질 때마다, 여전히 "질질 끌지 말고 빨리 환원하라"는 비아냥을 남긴다. 그 비아냥에 대한 응수 차원에서였을까? 이명박 대통령도 취임 이후에도 민감한 시기 때마다 유독 '환원'을 거론하면서 '방법'을 제시한다. 문제는, 그 '방법'이다.
'재단 설립'으로 '환원'하겠다고?
대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TV연설에서 다시 '재산 환원'을 거론하면서, '방법'에 대한 다양한 추측이 제기됐다. 처음에는, "대통령 퇴임 이후 소외 계층을 돕는 재단을 만드는 등의 방안"이 거론되면서, 이명박 후보 본인도 "절망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하고 가난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하는 데 쓰였으면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 이후 일부 측근들이 거론한 방안은 '재산 헌납을 위한 별도의 위원회 구성'이 거론되기 시작한다. 현재, 언론이 거론한 방안은 결국 '재산헌납위원회의 구성'이다.
'재산헌납위원회'를 설립해 이 위원회가 이명박 대통령의 헌납 재산을 관리하면서, 복지 등의 관련 분야 전문가들을 기용해 운영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당초엔 '장학재단 설립'으로 거론되던 '헌납 재산 활용 폭'도 '공익재단 설립'으로 넓어진 상태다.
재미있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이자 최측근이라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스스로가 위원장을 맡을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사실. 재원의 조달은 헌납 재산에서 발생하는 '이자'를 활용하겠다는 것도 특이사항이다.
여기서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냄새가 나는 부분을 2가지를 거론할 수 있다. '최시중'이라는 이름이 거론됐다. 최측근이 재산헌납위원회의 수장을 맡을수도 있다는 것, 그다지 좋은 그림이 아니다. 그리고 '헌납 재산'에서 발생하는 '이자'를 활용하겠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공익재단'을 만들어 '이자'를 발생시켜 '좋은 일'에 쓰겠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여기서 짚어봐야 할 부분은, 공익재단은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 등에 나서도 사실상 '면세'를 적용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벌 총수 일가같은 경우에는 공익재단을 만들어 상속세 없이 부를 그대로 대물림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한국인은 '재단'과 관련해 특히나 좋지 않은 기억을 다양하게 갖고 있다. 당장, 이명박 대통령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2005년 10월까지 이사장으로 재직했던 정수장학회, 그 동생 박근령씨가 이사장으로 재직했다가 직위를 박탈당한 육영재단 등을 돌아보자.
정수장학회는 MBC의 주식 30%와 부산일보 주식 100%를 소유하고 있다. 지난해 6월에, 정수장학회의 전신 부일장학회의 설립자인 고 김지태씨의 차남 김영우씨가 한나라당 당사를 방문해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검증요청서를 제출한 바 있다. 그를 통해 '장학회'와 같은 공익재단의 성격을 알아볼 수 있다. 상근 이사장의 연 급여는 2억 5천만원이었다는 지적이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다.
육영재단의 경우에는, 서울고법 특별6부(부장판사 조병현)로부터 '미승인 임대사업을 벌였다'는 지적이나 '증빙 서류 없이 과다하게 여비를 지출한 점'이 있다는 지적과 함께 "박근령씨의 이사장 승인 취소를 서울 성동교육청의 '재량권 일탈'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던 사례에서 '공익재단'의 일면을 알아갈 수 있다.
삼성그룹의 경우에는, 고 이병철 선대 회장의 그룹 내 지분을 이건희 회장에게로 넘기는 수단이 바로 '공익재단'이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그뿐일까? 전두환 전 대통령 본인의 재산으로 설립한 것은 아니라지만, '일해재단'의 기억은 또 어떡하나. 그 문제의 일해재단의 후신 세종연구소는, 2006년 4월에 수도권정비계획법을 어겨가면서까지 골프장과 골프연습장을 지어 1인당 3천만원에서 3천 5백만원에 해당한다는 9홀짜리 회원권을 분양시킨 적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좋지 않은 기억과 실제로 악용의 소지가 너무나도 많은 '공익재단'으로 '재산 헌납'을 시도하려는 모습을 좋게 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이명박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재산헌납위원회'라는 무리수를 두려 하는 것일까?
차라리 1천만원씩, 3천개 사회복지시설에 직접 기부하라
'재산 헌납'을 '좋은 일'에 활용시키려면, 이명박 대통령이 헌납을 약속한 부동산을 즉각 처분해 현금화한 뒤에 1천만원씩, 3천개 이상의 사회복지시설에 직접 기부하는 것은 어떨까? 얼마나 많은가. 고아원과 양로원도 있으며, 장애인 복지시설 등 무궁무진하다. 무려 3천개의 사회복지시설에 1천만원씩 기증한다는 것, 얼마나 멋진 일일까?
그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누리꾼의 지적대로 '개방 행사 포토제닉의 댓가'로 이명박 대통령이 헌납할 재산으로 숭례문을 재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런 방법이 있는데, 왜 다시금 누리꾼의 비판과 조롱에 노출될 '공익재단'일까? 그러지 말길 바란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한국인은 공익재단에 대한 안좋은 기억이 너무 많다.
게다가, 하필이면 위원장으로 거론된 인사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라는 것도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부분에서 다시 정수장학회나 육영재단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마음만 먹으면 직계가족이 이사장직을 맡다가 자녀에게 그 직책을 물려줄 수도 있다.
'헌납'을 할 요량이라면, 직접적으로 화끈하게 하는 것이 좋다.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어리석지는 않다.
그런 의미에서, 내 제안은 어떤가. 1천만원씩, 3천개의 사회복지시설의 통장에 직접 꽂아주는 것이다. 물론, 요즘 들어 일부 사회복지시설의 비리와 부정이 자주 발견되는만큼, 그 기부금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해서도 투명하게 국민이 알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모범을 보일 기회라고 할 수 있겠다.
'대통령의 아름다운 재산 헌납'을 보고 싶은 마음에서 제안하는 것이니, 신중하게 판단해주면 정말 좋을 것 같다. |
출처: 창천항로(蒼天航路) 원문보기 글쓴이: 박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