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남원읍 수망리 203번지와 표선면 가시리 산158번지 경계
시대 ; 대한민국(1952)
유형 ; 방어유적(城)
제주 4·3 기간 동안에 만들어진 군경주둔소는 흔히 32개소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1952년 신문 기사를 근거로 하는 말이다. 그러나 1952년 1월까지 만들어진 32곳 외에도 10여 곳에 더 설치되었다. 그 중 하나가 이곳 가친오름 주둔소이다. 이곳은 지역 주민 중에서 나이드신 분들은 알고 있었으나 한상봉의《제주4·3 시기 군경주둔소》(2019)에 의하여 처음 일반에게 알려졌다.
1967년도 항공사진에도 주둔소가 나타난다. 언덕의 상부 평평한 곳을 골라 자리잡았으며 전체적인 모양은 삼각형인데 성담 높이는 1.7m〜2m이며, 면적은 약 295m²(90여 평)이다. 초소가 3곳에 있고 출입구는 남쪽으로 나 있다. 동쪽 초소는 특이하게 길게 언덕 끝까지 8m 정도 뻗어 나온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북쪽 초소는 허물어져 있으며 삼나무들이 크게 자라고 있어 언젠가는 무너질 것으로 보인다. 서쪽 초소지 아래에는 별도의 방어시설로 추정되는 돌담을 볼 수 있다.
전투경찰이 주둔했는데, 내부에 8m×3m 크기의 집 1채가 있었으며, 전신주를 세워서 전화기도 연결되었었다. 식수원은 주둔소 남쪽 아래 약 200m 지점에 작은 폭포가 있는데 이곳의 물을 길어다 마신 것으로 추정된다.
주변에는 태흥목장에 경비초소(가시리 산 134번지)가 있었고 주변에 화전 마을인 신비지동 마을이 있었으며 따비튼물(가시리 3779번지 옆 냇가 위쪽)이 있다.
웃토산 마을에 거주하는 김경우(1941년생)님의 증언(2017년 8월)에 따르면 태흥리 주민들이 동원되어 쌓았는데 당시 본인도 성담 쌓는 일을 했다고 하며, 봄철이라 경찰이 먹을 고사리 꺾을 사람 데려오라 했는데 늦어지니 연락병으로 심부름을 하던 홍 아무개라는 사람(15세 정도)의 발등을 총으로 쏘아 버렸다고 한다.
현재 외곽 돌담에 약간의 훼손이 있으나 내부 집터도 확인 가능하고 집자리 옆에는 솥덕도 남아 있으며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가친오름주둔소가 현재까지 잘 남아 있는 까닭은 숲 안에 있어서 사람이 접근할 기회가 적었고 목장과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목장담이나 산담으로 사용될 위치가 아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작성 21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