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0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9,23-30
2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24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25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몹시 놀라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말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27 그때에 베드로가 그 말씀을 받아 예수님께 물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2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자기 옥좌에 앉게 되는 새 세상이 오면, 나를 따른 너희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29 그리고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
30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벨라도 형제님 축일 축하합니다!
1090년 프랑스 디종 근교에서 태어난 베르나르도 성인은 시토회 클레르보 수도원의 아빠스(대수도원장)가 되어, 몸소 모범을 보이며 수도자들을 덕행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또한 그는 교회의 분열을 막고자 유럽 각지를 두루 다니며 평화와 일치를 회복하고자 노력하였고, 신학과 영성 생활에 관한 많은 저서를 남겼습니다.
여름 피서철의 마지막 황금 연휴가 끝나고, 여름 해변은 다시 고요합니다. 멀리 밤바다 고깃배들은 딴 세상처럼 여전히 불야성을 이룹니다.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몹시 놀라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태 19,25-26)
사람은 누구나 죄와 죽음의 한계 속에 살아가는 죄인입니다. 사람은 구원을 필요로 합니다. 구원은 사람이 죄와 죽음에서 해방되어 그 본래의 모습인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거룩하고 존엄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낙원, 곧 하느님 나라에 다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 누구도 스스로의 힘으로 결코 구원될 수 없습니다. 깨달음에 이를 수 없습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사람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사람들을 죄와 죽음에서 해방된 구원에, 깨달음에 이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
무한 경쟁.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자본주의 사회. 지금 이곳 속초 고성 양양에도 살고 먹고 입을 것이 차고 넘칩니다. 살 집들도 넘칩니다. 새로 지은 화려한 고층 아파트들이 텅텅 비어있습니다. 주인은 있지만 사람은 살고있지 않습니다. 술에 취해 화려한 조명에 취해 춤추고 노래하고 돈과 힘과 권력만 있으면 세상에 무서울 것 없이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더 가지려고 더 먹으려고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처럼 악취가 풍깁니다. 그 희생양인 배고프고 헐벗은 사람들은 밥을 찾아 빈집을 찾아 돌아다닙니다. 폭력과 욕설이 난무합니다. 문제는 끝을 모르는 인간의 방종과 탐욕과 아집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번째 문헌 '복음의 기쁨'에서 경고하는 메시지,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 '설국열차', '괴물', '기생충'이 던지는 메시지를 소흘히 해서는 안됩니다.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 가진 자들과 못가진 자들, 그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가진자들의 탐욕을 막지못할 때 결국은 두 집단이 함께 멸망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요즘 친구 스님도 나도 이 화두를 잡고 시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압니다. 재물과 힘과 권력의 맛에 취하고 눈먼 이들이 방종과 탐욕과 아집으로 역모를 꾸미고 아무리 지랄 발광을 해도 진리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이웃을 내몸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고행하며 수행하는 수도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와 정의, 생명과 평화를 위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보여주신 사랑의 길, 하늘 나라의 그 구원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