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에 선 어미 호박꽃 / 김영수
한여름 뒷마당 텃밭은 평화로웠다. 그 평화로움 속에는 보이지 않게 변하는 것들이 있었다. 깻잎을 솎아내고 있을 때, 큰 이파리에 가려 안 보이던 연둣빛 호박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내 엄지손가락보다 조금 굵을까. 며칠 못 본 사이에 호박꽃을 밀어내고 꼭지를 차지한, 갓 태어난 호박일 터였다. 새 생명의 출현이 반가워 작은 탄성을 지르려는 순간, 누렇게 시든 호박꽃에 눈길이 잡혔다. 호박이라는 결실을 얻으려고 모든 기운을 소진하여 지친 듯, 꽃은 제자리마저 내주고 호박 끄트머리에 겨우 매달려 있었다. 제 임무를 다한 꽃은 몸을 오그려 닫아걸었고 관능의 유열을 나누던 여름 볕은 홀로 뜨거웠다.
일주일 전만 해도 햇빛은 활짝 열어젖힌 호박 꽃잎을 베고 늘어지게 누워 있었고 그 주위를 벌과 나비가 들락거렸었다. 하지만 뒤늦게 찾아온 벌들이 앵앵거리며 꽃잎 주위를 기웃거려도 한번 닫힌 호박꽃은 다시 열릴 줄 몰랐다. 커다란 꽃잎을 열어 곤충을 불러들이고 자기들만의 언어로 은밀한 시간을 나누던 한때의 기억을 잊기야 했으랴마는. 혈기 넘치는 열정이었든, 지나가 버린 아릿한 아름다움이었든 그 모든 기억이 그리움 되어 남았으리.
호박꽃이 궁금하여 며칠 만에 다시 나가 본 텃밭에는 그게 애초에 호박꽃이었는지조차 못 알아볼 정도로 시들어 초췌해진 것이 호박 끝에서 간당거렸다. 그 살과 피를 먹고 어느새 한 뼘 넘게 자란 호박은 피부가 야들야들했고 뼛속까지 다부진 청춘을 뽐내고 있었다. 제가 낳아서 그렇게 보이겠지만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을 정도로 번듯하게 성장한 호박을 보며, 어미는 속없이 흐뭇했으리라.
어미로서 할 일 다하고 말라비틀어진 호박꽃에서 나는 내 어머니를 보았다. 딸 넷을 모두 출가시키고 손주 몇을 보았을 무렵이었다. 대화의 앞뒤 맥락은 알지 못해도 누군가와의 통화에서, 이젠 쭉정이가 다 된 것 같다는 엄마의 자조 어린 목소리를 들었다. 남의 집 열 아들 부럽지 않게 딸들을 키우는 게 목표라고 하던 장손 집 맏며느리, 아들 없는 엄마의 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엄마는 그때까지만 해도 나이에 비해 곱고 젊다는 말을 들었다. 엄마가 호박 끝에 달린 마른 꽃처럼 된 것은 내 아들, 그러니까 엄마의 첫 손자를 키우면서부터였을 것이다. 맏딸이 직장 다니며 육아 문제로 애면글면하는 게 안타깝던 엄마는 내 아이를 다섯 살까지 돌봐주셨다. 나는 나대로 직장과 가정사이에서 허덕이느라, 노년에 손자를 맡아 키우는 엄마 삶까지 보살필 여력이 없었다. 곱게 윤기 흐르던 엄마는 어느 사이에 쪼글거리는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그때야 나는 비로소 쭉정이라는 표현을 이해했다. 그렇게 호박을 키워낸 어미 꽃이었다. 나는 못 볼 것을 목격한 듯 맥없이 주저앉아 있었다.
별 후회도 아쉬움도 없는 삶이었다고 했지. 그만하면 잘산 것 같다고도 했다. 지극히 평범한 생을 산 호박꽃이었다. 열두 폭 치마를 떠올리게 하던 탐스러운 꽃이었는데, 호박이 미끈하게 자라는 사이에 꽃은 볼품없이 쪼그라들고 말았다. 세월의 힘이란 그토록 가차 없는 거였다. 어린 것에게 짐스러운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늙은 호박꽃은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했으리라. 빛이 마르며 시들어 가는 시간은 길고도 지루했다. 이루는 데는 한 생이 걸려도 무너지는 데는 며칠이면 충분했다. 빛나던 시간의 기억을 붙들고 검은 잠 속에 빠져드는 일만이, 이제는 진정 흙에 묻힐 시간만이 남은 것인지.
행여라도 자식들 불편할 세라, 없는 듯 존재하는 내 어머니라는 꽃. 늠름한 호박 끝에 매달려 연명하는 꽃은 언젠가부터 자신의 내일을 잃어가고 있었다. 몰랐던 게 아니다. 생명 가진 모든 것은 이울고 이울다가 소멸한다는 준엄한 자연의 질서를. 하지만 떠날 수도, 마냥 붙잡고 있을 수도 없는 삶 속의 죽음은 생각보다 냉혹했다. 기운도 달리고 의욕도 떨어진다고 푸념하면서도, 백 살이 다 되도록 살고 있어 그러니 어쩌겠냐는 체념으로 엄마의 하루는 마무리되었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죽음을 문득 기억하다가도, 슬그머니 찾아오는 새 아침이 반갑다고 했다. 엄마가 발 딛고 살던 밭에 아직은 해와 바람과 비가 번갈아 찾아오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에서였을까.
뒷마당에 비가 내린다. 여린 호박은 연둣빛에서 견실한 초록으로 풍미를 더해갈 것이다. 그 호박을 세상에 내놓은 어미 호박꽃으로 시선을 돌린다. 한창때 황금빛은 간데없이 사라지고 꽃은 이미 갈색 검불로 변했는데도 자식이 뭔지, 미끈한 호박 끝에 간당간당 매달려 흔들린다. 대부분의 꽃은 열매를 맺기 위해 제 한 몸을 보시한다. 꽃이 아름다운 데는 그런 숭고한 이유가 있는지 모른다. 바람 한 번 스치면 떨어질 위태로운 검불 하나가, 내리는 비를 핑계 삼아 내 마음을 온종일 적셔놓는다.
아니다. 내가 잘못 보았나 보다. 마른 풀 같은 저것은, 호박 끝에 매달린 게 아니라 다 자란 호박이 차마 놓지 못해 붙들고 있는 것이리라. 꽃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모습이지만, 이 세상 누구보다 자기 호박을 사랑하는 어미 꽃이다. 꽃으로서 수명을 다하고 검불이 되어서도 여전히 어미로 존재하는, 저, 꽃. 어쩌자고 비는 세상 끝에 서 있는 어미마저 적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