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그대로 있으니 / 이성경
깊이 물들어가면서 더더욱 을씨년스러워진 날씨
날이 어두운 줄만 알았더니
베란다 향 들어오라고 열어두었던 문틈으로 찬 기운
들이며 비가 오고 있었다.
가을비에 낙엽이 창문으로 날아와 붙어 빗물과 함께
또로록 흘러내리며 창가를 붉게 물들인다.
한참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동안
해가 사라진 듯 어둑어둑해져 있어 시계를 보나
날이 어두운 것은 시간이 흐른 탓이 아니었다.
그치지 않고 내리는 빗물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햇살 탓이었다.
가을비 스치니 나뭇가지에 매달렸던 나뭇잎이 떨어져
마지막 잎새를 물고 서 있는 나무가 있다.
앙상한 가지는 쓸쓸함보다 연민을 가져다주어
가을은 마음의 병을 앓게 한다.
애잔함에 마음 쓰린 나날을 보내는 어떤 이가 있다면
가을은 낭만의 계절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을 둘러싸는 온갖 상념들이 사라지고 희망만이
남아있다는 판도라의 상자도 가을만큼은
스산함으로 채워진다고 해도 절망은 없을 것이다.
비가 온 대지를 적시고 가을의 모습으로 물들이는 날에도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존재하고 있으니
홀로 있어도 기쁨만이 감돈다.
첫댓글 모든 것이 그대로 있으니
좋은시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