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30일(금)
* 시작 기도
주님...
말세에는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설 것을 딤후 3장에서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 모든 일은 바로 제가 행하는 일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마지막 때에 영적으로 죽어 있는 나야 말로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이 세상 쾌락을 더 사랑하여 내가 하나님 되려는 자기주장의지에 꽉 막혀 있는 자입니다.
이런 나를 이 시간 주님 앞에서 고발하오니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나님처럼 되려는 나의 義와 여기로 이끌려는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사오니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자 되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십자가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신부의 자리에 설 수 있게 나를 장악하여 주소서.
십자가를 통과하여 아버지 품으로 나아가는 오늘이 되기 원합니다.
이 하루도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마 8:14-22
제목 :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14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누운 것을 보시고
15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18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시니라.
19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21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 나의 묵상
한국의 날씨가 너무 추워 감기몸살이 걸렸다.
이로 인하여 몇 번이나 말씀 앞에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였다.
그러나 내가 먹어야 할 양식은 육신의 밥보다 영의 양식임을 알기에 몸이 곤할지라도 다시 말씀 앞에 앉는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백부장의 하인의 중풍병을 고쳐주셨다.
그리고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 그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시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예수님께 수종 들었다.
그 후에도 많은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말씀으로 고쳐주셨다.
한편 많은 무리가 당신을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신다.
이 때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나와서 선생님이 어디로 가시든지 내가 따르겠노라고 한다.
예수님께서 그 서기관에게 이르시기를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거처가 있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대답하신다.
또한 다른 한 제자가 예수님께 말씀드리기를 자기로 하여금 먼저 가서 자기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해 달라고 한다.
예수님 왈, 죽은 자들로 그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명하신다.
여기서 한 서기관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말한 것은 다름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으로 온갖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주시는 것을 보고 거기에 그 마음이 빼앗겼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그런 서기관에게 일갈하신다.
들짐승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둥지가 있건만 네가 따르고자 하는 나는 머리 둘 곳조차 없다고 말이다.
그래도 네가 나를 따를 수 있겠느냐는 질문인 것이다.
서기관의 눈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군중이 보였고 또한 수많은 군중으로부터 추앙을 받는 모습이 너무 멋지게 보였던 것이다.
이는 오늘날로 말하면 일명 목회성공과 같은 의미이다.
이 서기관은 예수님을 이용하여 무언가를 얻어내고자 하는 극히 세상적인 정욕을 따라 가고자 한 것이다.
주님께서 거하시는 거처는 여우의 굴도 하늘의 새들이 거하는 둥지도 아니며 오직 하늘 아버지의 품속이다.
그곳이 바로 아들이신 주님의 온전한 처소이다.
나는 어떤가?
예수님을 이용하여 나의 목회를 성공하고자 얼마나 애를 썼던가?
그런 목회 성공이 사람들의 인정과 추앙을 받게 하고 진정한 하나님의 뜻인 영생을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을 온전히 빼앗겼던 자임을 고백한다.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끊임없이 주님을 배반하며 주의 이름에 먹칠을 했던 나는 죽어야 마땅한 자이다.
그런데 정작 죽어야 할 때는 세상의 모욕과 수치가 부끄러워 이를 밀어내곤 하지 않았는가?
내가 전한 복음의 내용은 온전하지만, 나의 모습은 세상으로부터의 수치와 모욕을 감당할 수 없어 어떻게든 그것을 막으려는데 온갖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이런 나야말로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만 빼려고 하는 자가 아니던가?
예수님께서는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자기 의를 드러내고자 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책망하셨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행하되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경고하신다.
왜냐하면 그들은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지만 정작 본인들은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권위를 높이고자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이나 사람들에게 선생이라 칭함 받는 것을 좋아하는 자들이다.
이것이 누구랄 것도 없이 바로 나의 모습이었다.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은 먼저 가서 아버지를 장사한 후에 선생님을 따를 수 있게 해 달라고 하였다.
이는 주님을 따르기보다 세상의 정을 먼저 생각하고 아버지를 장사한 후에 주님을 따르겠다는 것을 막으신 것이다.
어찌 보면 이런 주님은 인정사정도 없는 차가운 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주님의 뜻은 오직 우리의 영원한 삶이 이 세상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하시는 것이다.
나의 연약함을 주님께 있는 모습 그대로 내려놓는다.
그리고 주님의 행하심을 그대로 받기 원한다.
내가 막으려고 애를 쓴다한 들 막아지는 것이 아니다.
또한 주께서 행하고자 하시면 그것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나의 인간적인 연약함을 주님께서 긍휼히 봐주시기를 원할 뿐이다.
주여, 긍휼을 베푸소서.
내일이 아들 결혼식이다.
그런데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
내가 있는 베트남 하이퐁도 제법 쌀쌀한 편이다.
하지만 한국의 겨울날씨에 견줄 수 있겠는가?
내가 긴장을 한 탓인지 계속 코가 막히고 콧물이 줄줄 흐른다.
오늘은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야겠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의 연약함을 주님께 내어 드립니다.
약할 때 강함 되시는 주님을 의지하오니 죽기에만 합당한 죄인을 불쌍히 여기사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예수님을 한 선생이 아니라 나의 모든 것을 책임지시는 주님으로 인정하며 세상의 화려함을 좇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주의 자녀가 되게 하소서.
어린 아기가 엄마 품에 안겨 있을 때 가장 평안하고 안전하듯 저 또한 우리 주님과 함께 아버지 품에 안기길 원합니다.
주의 복음이 지식이나 말로만 그치지 않게 하시고 오직 행함으로 나타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