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날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자기부인의 십자가를 의지합니다.
주님의 보혈을 의지합니다.
오염된 영혼을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4.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15.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18.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시니라
19.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21.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본문 주해)
14~16절 : 나병환자도, 이방인 백부장도, 여인(베드로의 장모)도 유대 사회에서는 소외계층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들의 소원을 들어주셨고, 베드로의 장모는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그 열병을 고쳐주신다.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이 율법을 지킨다는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자로 보이는 것이다.
저물었을 때에야(16절) 사람들이 귀신들린 자, 병든 자를 많이 데려온다. 이유는 그날이 안식일(금요일 저녁~토요일 저녁)이었기에 사람들을 이동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날이 저물어 안식일로 정해진 시간이 끝나자 사람들이 예수께로 몰려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귀신 들린 자와 병자들을 말씀으로 고쳐주셨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켜서 안식이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나아와야 안식이 주어지는 것이다.
17절 : 마태는 이 장면을 성령의 감동으로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하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증언 한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사53:4)
그런데 이 말씀은, 예수님이 우리의 질고를 담당하셨으므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이 땅에서 질고를 겪지 않는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예수님의 치유를 받은 자들-심지어 죽었다가 살아난 나사로도-도 결국 다 죽는다. 이 땅에서 생물학적인 죽음을 다 당하는 것이다.
그러니 귀신 들린 자가 온전해지고 병자가 고쳐지는 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심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단지 병을 고쳐주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죄 사함을 위한 과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죄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다.
예수님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심도 십자가를 보이시기 위함이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든 표적과 기사의 결론은 바로 십자가이다.
18절 : 오병이어의 기적 후에도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떠나 산으로 가셨고, 제자들을 무리들과 분리시키셨다. (요6:15~17)
예수님께서는 많은 무리들이 모여드는 것을 보시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셔서 천국백성을 만들어 내시겠다는 뜻이 없으셨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먹고 배불러 따라오거나, 병 고침을 위하여 오거나, 자신의 소원성취를 위하여 오는 자들을 피하시는 것이다.
19~20절 :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님을 따르고자 한다.
율법선생인 서기관이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것은, 그가 예수님의 특별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신다.
‘인자’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하신다.
그런데 이 말씀은 예수님이 가난하니 노숙자처럼 산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네(서기관)가 원하는 것들을 주기 위한 인자가 아니다’ 라는 것이다. 즉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이 세상의 거처에 마음을 두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라는 말씀이다.
21~22절 : 제자 중의 한 사람이 아버지를 먼저 장사한 후에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한다.
유대인 전통에 의하면 아버지를 장례 치르는 것이 가장 큰 아버지 공경이라고 한다.
22절 앞의 ‘죽은 자들’은 살아 있지만 영적으로 죽은 자이며, 두 번째 나오는 ‘죽은 자’는 장례를 치를 대상이다. 따라서 이는 영적으로 죽어 있는 자들이 육적으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는 말씀이다.
‘제자’란, 죽은 자였다가 생명을 얻은 자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로 하여금 생명 없는 자들, 곧 죽은 자들이 하는 일-세상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에 매인 일-이 아닌, 생명 있는 자가 하는 일로 부름받은 자임을 알게 하신다.
(나의 묵상)
예수께서 나병환자를 고쳐주시고, 백부장의 하인의 병을 고쳐주시고, 오늘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신다.
오늘 베드로의 장모는 특별히 요청한 것도 아닌데 그곳에 가셔서 열병을 고쳐주신 것이다.
서목사님 주해에 영적 열병에 대한 내용이 있다.
『영적인 열병은 생명이 부재한 채 열심을 내는 것을 뜻한다. 이는 자기 열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 외적 부흥을 위해 열심을 내는 것, 말씀 중심의 인격적 신앙 대신 감정 중심의 열광적 신앙 등이다. 그 배후에는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만족시키도록 부추기는 사탄이 역사한다. 이 같은 종교적 열심은 생명이 접촉함으로써, 곧 생명의 실재를 앎으로써 비로소 제거된다.』
나야말로 영적 열병에 걸렸던 자임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위의 내용이 다 내게 해당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자기 열심에 도취 된 자로서, 말씀보다 감정에 열광하고 이를 뜨거운 믿음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열병에 끌려 마다가스카르까지 갔다.
‘자비량 선교사!’
얼마나 그럴듯한 명칭인가? 그러니 또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찬을 하니 어깨가 우쭐해지고 마음에 흡족했던 것이다.
이것이 병에 걸린 상태란 것을 몰랐으니 당연히 고침 받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베드로의 장모에게 하신 것처럼 주님께서 찾아와 내게 손을 대셨다.
생명의 접촉이 일어나니 열병이 떠나갔다.
생각해 보면 그 지독한 열병은 주님 아니시면 나을 수가 없는 병이다.
주님께서 십자가로 낫게 하신 병이다.
주님께서 나의 연약함을 담당하심의 궁극적인 목적이 죄사함과 영생이니 이 모든 일이 십자가를 보이시기 위함이란 것을 알게 하신다.
그러니 이제,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는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신 것은 ‘네(서기관)가 원하는 것들을 주기 위한 인자가 아니다’ 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즉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이 세상의 거처에 마음을 두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라는 말씀이다.
나는 세상에 마음을 두면서 주님으로부터 무엇을 좀 얻어낼까 했던 자이다.
그러나 주님은 다른 서기관과 달리 주님을 따르겠다고 나선 이 사람을 칭찬하지 않으시고, 계산을 잘 해보라고 하신 것이다.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28...33)
나는 계산을 다 끝냈다.
세상의 그 어디, 그 무엇보다 주님께 내 거처를 두는 것이 가장 완전하고 안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거처 삼고 의지하려 했던 것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의 거처가 없다고 하셨지만 그것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확실한 거처가 주님께 있기 때문이다.
창세전부터 아들이 계셨던 곳, 바로 아버지 품속이다.
나는 몸으로 이 세상을 살고 있지만, 십자가에 연합됨으로 나의 거처는 아버지 품속이 되어 날마다 평안을 누리는 것이다.
또한 이 세상에서 죽은 자들-아들의 생명이 없는 자들-이 중요시 여기는 세상 일들이 아니라, 생명이 있는 자로서 하나님의 일에 올인하는 자가 된다.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요6:29)
오늘도 주님의 한 말씀 한 말씀에 눈을 반짝이게 되고, 고개가 끄덕여지니 이런 은혜가 없다.
(묵상 기도)
주님,
저의 열병을 고쳐주시니
온전한 정신으로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한 서기관에게 하신 말씀을 들으며,
의지하여 거처 삼았던 모든 소유를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한 제자에게 하신 말씀을 들으며
세상 것에 묶이는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십자가로 이끄시는 생명의 말씀을 기뻐하며
오직 동행해 주시는 성령님을 의지합니다.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