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커피가 다 똑같지 뭐. 입에 들어가면 다를 것 없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커피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분명히 다릅니다.
그래서 커피를 마시기 위해 약간의 시간을 소비하는 것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더 맛있는 커피를 맛볼 수 있으니까요.
커피 맛을 아는 사람은 이렇게 커피 만드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남녀간의 데이트도 그렇지 않습니까?
분명히 사랑의 맛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데이트 하는 시간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만약 데이트하는 시간이 아깝다면서 만나자마자 “집에 가자.”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사랑하지 않는구나.’라고 하면서 그만 만나려고 하지 않을까요?
문득 ‘하느님 맛을 아는 사람은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느님을 위해 쓰는 시간을 아까워할까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성당 가는 시간이 또 기도하는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이를 통해 하느님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따지듯이 묻습니다.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단식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남들에게 자신은 열심히 한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과시용일까요?
단식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크기 때문에, 몸으로 드릴 수 있는 최고의 봉헌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직 그 사랑이 부족합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배반하기도 했고, 십자가의 죽음 이후에 다락방에 숨어 벌벌 떨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사랑이 부족한 사람이 단식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냥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일 뿐 아무것도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이 없고서는 단식에 어떤 의미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음을 이야기하십니다.
하느님의 뜻을 끝까지 따를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맛을 알아야만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 자신은 얼마나 그 맛을 느끼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십시오.
혹시 하느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한다면, 하느님 사랑에 더욱 더 집중해야 합니다.
분명히 하느님의 맛을 알게 되고, 하느님 뜻에 맞춰서 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