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 국어에 능통했던 신숙주
보통 4-5개의 국어에 능통한 사람을 보고도 천재라고 극찬을 한다.
그런데 한사람이 7개국어를 할 수 있다면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바로 조선조에 영의정을 지낸 범옹 신숙주가 주인공이다.
그는 뛰어난 언어학자였으며 한국최초의 일본관련책 해동제국기를 저술하는등 어문학에 많은 족적을 남겼다.
그는 특히 설총의 이두문자는 물론 중국어, 몽고어, 여진어, 일본어, 등에 능통했으며 인도어, 아라비아어, 까지도 터득했다고 한다.
명문가답게, 일제하 독립투쟁의 주역들인 단재 신채호, 신규식 선생 등이 그의 후손들이다.
조선왕조 역대 왕들의 기록
1] 32년간 세자로 있었던 임금은 순종 - 조선 마지막 왕인 순종 임금은 2세때에 세자로 책봉되어 32년간을 세자신분으로 지냈다.
2] 죽어서 왕이 된 인물은 - 죽은 후에 왕으로 추존된 인물이 다섯명인데
* 덕종은 세조[수양대군]의 아들로서 세조1년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즉위전에 죽었다. 인수대비의 남편이며 월산대군과 성종, 명숙공주 등 3명을 낳았다.
* 원종은 선조의 5남 정원군이고, 4남을 두었는데, 아들 진성대군이 반정을 일으켜 인조가 되어 1627년에 진종왕으로 추존되었다.
* 진종은 영조의 맏아들 효장세자인데 10살에 요절한 사도세자의 이복형이다. 6세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즉위전에 10살에 죽었다. 영조는 혜경궁과 사도세자의 아들을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시킨 후에 정조를 왕세손으로 책봉하였다. 정조가 즉위하니 효장세자는 진종으로 추존된다.
* 장조는 유명한 사도세자로서 영조의 둘째아들이며 정조의 아버지. 부인은 홍봉한의 딸인 혜경궁 홍씨. 당파싸움의 희생양이 되어 죽었으나 아들 정조가 즉위하고 1899년 장조로 추존됨.
* 익종은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로 4세에 세자로 책봉되고 19세때[순조27년]대리청정으로 참정하였으나 4년만에 죽고, 다행히 세자빈 풍양조씨의 아들이 있어 왕세손에 책봉되고 8살에 즉위하니 제24대 헌종이다. 어머니 풍양조씨는 조대비가 되어 수렴청정을 하게 되니 외조부 조만영은 안동김씨와 권력다툼을 한다.
헌종의 아버지 효명세자는 익종으로 추존된다.
3] 가장 많은 아들을 둔 왕은? - 4대 세종대왕이 18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이 9대 성종 16명, 2대 정종이 15명 순이다.
딸은 태종[이방원]이 17명이며, 성종이 12명, 중종과 선조가 11명 이었다.
4] 왕비를 가장많이 배출한 가문은?
*청주韓氏가 6명으로 1위 : [태조비:신의왕후],[덕종비:소혜왕후],[예종비:장순왕후],[성종비:공혜왕후] [예종비:안순왕후], [인조비:인열왕후]로 가장많고
* 파평尹氏가 4명(세조비:정희왕우, 중종비 : 장경왕후, 문정왕후, 순종비"순명효황후)'
여흥閔氏가 4명(태종비:원경왕후, 숙종비:인현왕후, 고종비:명성황후, 순종비:순명효황후),
청송沈씨가 3명(세종비:소헌왕후, 명종비:인순왕후, 경종비:단의왕후)와 안동金씨가 3명(순조비:순원왕후, 헌종비:효헌왕후, 철종비:철인왕후)이다.
5] 왕비중 가장 자식을 많이 낳은 왕비는? - 세종대왕비 소헌왕후 심씨는 8남2녀를 낳았다. 성종의 제9비 숙의홍씨도 7남3녀로 공동1위이다.
6] 가장 짧은기간 재위한 임금은? - 장경왕후 윤씨의 아들 12대 인종이며 재임기간 9개월이었다. 문정왕후 독살설의 주인공이다.
7] 가장 오랫동안 재위한 임금은? - 21대 영조로서 51년 7개월로서 반세기동안 왕좌를 지켰다. 83세에 승하하여 이조왕중 최장수 기록이다.
8] 가장 단명한 임금은 : [단종애사의 주인공 6대 단종으로서 17세에 사약을받고 죽음]
9] 가장 많은 비빈을 거느린 왕은? - 3대 태종과 9대 성종으로서 12명의 부인을 두었으며, 세종대왕은 6명이었다
아홉번 과거시험에 모두 장원급제한 한국사의 천재 이율곡
한국의 역사상 현인의 경지에 근접한 인물을 꼽으라면 관점의 차이는 있겠지만 율곡 이이 선생을 꼽는데 누구도 주저하지는 않을것이다. 율곡 선생은 9번 과거시험에 9번 장원급제 한 인물이다.
우리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며 또한 임진왜란을 미리 예견하고 10만 양병설을 주장했으며 정치, 경제, 국방 등 모든 분야에 식견이 탁월한 정치가요,사상가이며 교육자였으며, 철학자였다.
그의 가문은 또 유명한 신사임당을 어머니로 둔 뿌리깊은 천재가문의 집안이었으며 한국판 제갈공명, 한국정신사의 큰 산맥, 성리학의 대가, 등 여러 가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그러나 그는 타고난 건강이 좋지 않아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마감했다.
각종 최장기 기록들
1] 가장 오랫동안 벼슬에 있었던 인물은 ? - 조선말엽의 정원용 으로서 20세에 급제하여 마지막 영의정을 지낼 때까지 72년간을 관직에 있었으며 청백리 이다.
2] 호조판서를 최장기간 지냈던 인물은? - 영의정 정태화의 후손인 정홍순으로 무려 11년간을 호조판서로 재임한 유일무이한 재정통이었다.
3] 벼슬의 꽃인 홍문관 대제학을 최장기간 역임한 인물은? - 당세종26년 식년문과급제하여 성종때 촤참찬을 하기까지 당대의 대문장가 서거정[달성서씨은
홍문관 대제학을 23년간을 재임했다.
4] 가장 여러대의 임금을 보좌한 사람은? - 태종,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까지 7대의 임금을 보좌한 김세민[경주김씨]으로 70년동안 봉직했다.
5] 조선시대 역사 인물중 가장 장수한 인물은? - 여중추부사 권황[안동]과 죽림칠현의 한사람인 홍유손으로 모두 99세까지 살았다.
6] 가장 귀양살이를 오래한 사람은 누구일까? - 다산 정약용으로 28세때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나 종교문제로 19년간 강진에 유배됨.
7] 예조판서에 최장기간 봉직한 사람은? - 범옹 신숙주로 무려 15년간 예조판서에 재임하는 기록을 남겼다. 모든 외교문서는 신숙주의 손을 거쳤고, 뛰어난
어문학자로서 7개국어에 능통했다.
8]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영의정에 가장 오래 재임한 인물은? - 유명한 재상 황희정승으로 지속적으로 18년간을 재임하고, 조선 제일의 청백리 관료였다.
조선왕조 최다수의 기록들
1] 영의정을 가장 여러번 지낸 인물은? - 최석정[전주최씨]으로 서 56세에 영의정이 된후 8번을 지낸 소론의 영수이었다.
2] 이조판서를 가장 많이 역임한 사람은? - 42세에 이조판서가 된 박종덕[반남박씨]으로서 무려 18번이나 이조판서에 올랐다. 관료들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관직으로서 임금의 절대적인 신임이 있어야 하는만큼 그는 공평한 인사에 최선을 다한 인물이다.
3] 당시 수도의 총책임자인 한성판윤[서울시장]을 최다 역임한 인물은? - 이가우[연안이씨]로서 34세에 급제한후 10번을 한성판윤에 올랐다.
4] 판서[장관]직을 골고루 가장 많이 지낸 인물은? - 박종래로서 이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 등 5조판서를 돌아가며 총 15회 지냈다.
5] 사법기관의 장이었던 사헌부 수장을 최다 지냈던 인물은? - 13년간 해마다 대사헌에 임명된 권상하[안동권씨]이며 송시열의 수제자이다.
6] 책을 가장 많이 저술한 인물은 누구일까? - 지봉유설의 저자 이수광(李邈光)의 아들인 이민구[전주이씨] 이다. 24세에 장원급제하였고 문장이 뛰어나고
저술을 좋아해서 무려 4000여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7] 선비의 표상이자 관리들의 자존심인 호를 가장 많이 쓴 인물은? - 유명한 추사체의 창시자 김정희는 약 200개의 호를 지어썼다. 완당,추사,노과,등등...
8] 임금에게 벼슬을 그만두겠다고하는 사직상소를 가장 많이 올린 사람은? - 영의정 정태화는 1673년 병으로 사직하기까지 20여 년 동안 5차례나 영의정을
지내면서 효종·현종을 보필하였다. 37번이나 사직상소[사직서]를 올린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조선왕조 최연소 기록들
1] 조선시대 통털어 최연소로 과거에 합격한 사람은? - 15세의 이건창으로 1866년[고종3] 강화도 별시문과에 합격했다.[김종서는 16세에 합격]
2] 최연소 장원급제자는 ? - 17세의 박호[밀양박씨]는 1584년[선조17] 친시문과에 장원급제했다 [임진왜란때 전사]
3] 무과출신 급제자중 최연소 인물은? - 태종의 넷째 정선공주의 아들이며 권람의 사위인 17세의 남이[의령남씨]장군이다. 1457년[세조3] 무과에 장원급제
하고 27세에 병조판서가 되었으나 예종의 장인 한명회의 사주와 [유자광의 모함으로 역모로 몰려 주살됨]
4] 최연소로 세자에 책봉된 인물은? - 영조의 서자 사도세자는 2세에 세자책봉 되었으나 그만 뒤주속에 갖혀 28세에 죽었다. 사도세자는 10세에 혜경궁 홍씨와결혼하여 최연소 결혼기록도 가지고 있다. 사도세자는 원자 정조가 있고, 서자로 영빈임씨에게서 은언군, 은신군을 두었고, 경빈박씨에게서 은전군을 낳았다.
첫 아들이 은언군이고 둘째가 정조였다. 할아버지 영조는 정치적인 이유로 은언군,은전군을 사사하고 은신군은 재주에서 병으로 죽었다.
5] 최연소로 영의정이 된 인물은? - 세종대왕의 냇째아들 임영대군의 이들인 이준으로서 28세때 영의정에 특서됨. 세종은 임영대군을 총애하여 죽을 때 임영대군 사저에 나가서 운명함
6] 병조판서를 최연소로 역임한 인물은? - 권람의 사위인 남이가 27세에 병조판서가 됨.
7] 홍문관의 수장인 대제학을 최연소로 역임한 인물은? - 만인의 존경의 대상이었던 벼슬의꽃 홍문관 대제학에 한음 이덕형이 31세에 올랐다
조선왕조 최초의 기록들
1] 성리학 중심의 사회에서 과감하게 탈피하여 최초로 기독교 신자가 된 사람은? - 평북 의주 출신인 이성하로서 고종11년에 영국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고 한국최초의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2] 조선 최초의 천주교 세례교인은 누구인가? - 정약용의 매부인 이승훈이 북경에서 그라몽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3] 조선조 최초로 정승이 된 사람은? - 조선개국 일등공신 배극렴이다. 그는 이성계보다 10살이 많았는데 개국후 최초 좌정승[문하 좌시중]이 되었다.
4] 조선왕조 도읍지 한성의 최초 한성판윤[서울시장]이 된 사람은? - 성석린이 1395년에 초대 한성판윤부사로 임명되는 기록의 보유자가 됐다.
5] 과거급제를 하지 않고 영의정까지 오른 인물은? - 황희정승의 아들 황수신이다. 그는 조상의 음덕으로 벼슬길에 오른 대표적인 인물이다.
6] 조선시대 최초로 일본에 대하여 상세하게 저술된 책은? - 신숙주가 일본방문을 한후 저술한 [해동제국기]이다. 일본내막을 상세하게 적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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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쉰다는 숙주나물의 이름이 신숙주에서 따온 것이라던데요...그런 훌륭한 분의 이름이 간혹 먹는 나물이름이 되다니...총기 있을때 읽어야 누가 언제 뭘했고등 암기가 될텐데...통 읽을 때만 이름등이나 인식이 될까 원...눈은 가물거리지요 정신은 사납지요...진기한 역사 기록들 잘 읽었습니다...그래도 각 단목 사이마다 예쁜 분재다 그림등을 넣어 주니 한결 보기가 좋습니다..
눈이 가물거리고, 정신이 사납고,조금 열심히 볼려고 하면 또다시 눈이 가물거리니 글을 올리기가 힘이 듭니다...그래도 이렇게 열심히 댓들을 써 주시는 회원이 있으니 신명이 납니다...감사합니다.................풍산
읽는데도 그러니 쓰는 사람은 오죽 하겠습니까..그래도 아침에 카페를 열어보고 소식이 있스면 좋습니다...3.29일 중구청에서 주관하는 남산길 걷기 대회에 참가 합니다..3.29(일) 08:30분 국립공원광장에서 출발 3호선 동국대역 2번 출구에세 집합장소까지 셔틀버스 운영 자세한 내용은 www.lovemybody.co.kr 참고,선물 + 경품
조선의 진기록 잘 공부했습니다. 이조에 의한 고려사의 왜곡이 있었을지라도 고려시대의 진기록이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