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샘 김동환 칼럼 25.3
대한민국 랜드마크가 없다
짧은 역사의 나라나 긴 역사를 지닌 나라의 도시들은 그들 나름대로 역사와 문화가 물씬 풍기는 고유한 상징물이 있다. 그들만의 매력과 역사성을 들여다볼 수 있어 초행의 나그네에게도 강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이 랜드마크이다.
가까운 일본 도쿄만 가도 1958년 완공한 파리의 에펠탑의 축소판인 높이 333미터의 도쿄 타워가 있다. 90년대 이후 도쿄는 레인보우브리지, 자유의 여신상, 자유의 불꽃 상 등과 애니 패턴의 건축 구조를 한 후지 텔레비전이 있다.
중국 북경에는 명나라와 청나라 시절의 황궁으로 1420년에 완공하여 6백 년 역사를 간직한 자금성이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대변하고 있다.
불교국가인 태국 방콕은 도자기와 유리 조각으로 장식한 ‘새벽의 사원’이라는 왓 아룬이 한 국가의 종교관을 파악하게 한다.
말레이시아 반도 끝에 있는 작은 섬으로 16세기에는 포르투갈에, 17세기에는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았던 어민과 해적들이 판치던 작은 섬 싱가포르는 1959년에야 독립한 나라이다. 70여 년의 짧은 역사를 지닌 싱가포르에도 2010년에 완공한 초현대적 리조트 복합 시설인 ‘마리나 베이 샌즈’가 현대문명의 이미지를 함축시켜놓고 있다.
홍콩의 시가지와 항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빅토리아 피크’, 베트남 하노이에는 전설이 살아 숨 쉬는 ‘호안끼엠 호수’, 미국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 영국 런던의 ‘버킹엄 궁전’ 등이 대표성과 상징성, 역사성과 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서울에는 랜드마크가 없다.
굳이 랜드마크로 부각하고 싶다면 5천 년, 수만 년 동안 한강을 내려다보면서 사람들을 지켜만 보고 있는 북한산 형제봉이 그나마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북한산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국립공원으로 2024년에는 700만 명이 산길을 밟아 22개 국립공원 중 방문객 수가 17.2%이나 된다. 그다음이 오대산 월정사(165만 명)이다.
북한산을 사람들은 변함없이 사랑하지만, 인간이 건축한 구조물에 대해서는 정감있게 바라다 볼 수 있는 상징물, 랜드마크가 없다. 한국의 대표기업 삼성 본사 건물이나, 건설의 대부 현대건설 사옥, 서울시의 본산인 서울시청도 랜드마크로 조명되지 않는다.
랜드마크와 더불어 상징성을 지니는 것이 캐릭터이다.
지난 20여 년간 공공 캐릭터들이 지자체별로 경쟁하듯이 개발되었다. 전국 242개 지자체 중 214개의 지자체가 캐릭터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 많은 캐릭터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별반 없다.
한국의 대표적인 공공용 캐릭터로는 경찰청의 ’포돌이와 포순이‘ 질병관리청의 ’건이와 강이‘등이 친숙해졌을 뿐이다. 서울의 아리수(상수도)를 상징하는 캐릭터도 있지만 지자체별로 물방울을 주제로 한 비슷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어 차별성을 찾을 수 없다.
공공 브랜드로의 인식이 깊이 스며들지 않는 것은 기관장이 교체되면 캐릭터가 변경되거나 사용이 중지되고, 차별성과 독창성이 없어 상징성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랜드마크까지 기대하지는 못하지만, 지자체별로 다양한 건축구조물이나 지역의 문화를 빙자한 상징물들이 있지만 대부분 지역주민에게조차 외면당하기 일쑤다.
요즘에는 케이블카 조성에 대해 전국적인 바람이 일고 있으나 어느 지역은 왜 케이블카를 굳이 설치해야 했는지 의구심이 든다.
얼마 전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고향인 신안군의 유네스코 생물권보존지역이면서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순수한 섬' 병풍도의 노두길이 호된 비판을 받고 있다. 순례자들이 지나는 선착장과 병풍도가 한눈에 보이는 맨드라미 공원길에 작은 예배당 12개가 설치되어 있는 그곳에 열두 제자 천사조각상 318점이 군비 21억 원을 투입해 건립했다.
중국산 짝퉁에 전과 6범의 조각가의 농간으로 건립된 천사조각상이 지역주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일률적이고 작품성에서도 변별력이 없어 관광객들에게도 실망과 조롱거리만 던져주고 있다.
이 같은 일들은 전국적으로 흔하게 자행되고 있고 사회적 합치보다는 정치적으로 임기 내에 개관하고 잔칫상을 펼쳐 자신의 치적으로 눈을 돌리게 한 허접스러운 결과물이라는 것이 공통점이다.
반면, 강원도 강릉시 경포호 주변에 있는 개인이 70여 년간 수집 소장한 ‘손성묵 영화, 라디오, TV, 뮤직박스’박물관은 폐관될 위기에 처해있다. 소중한 과학물 소장전시관으로 세계 최대의 약 50만 점이 소장된 박물관에 대해 강릉시는 박물관 위치가 시유지라고 추방 명령을 내렸다.
이곳은 코로나 이전에는 하루에도 수천 명씩 방문했던 인기 있는 과학박물관으로 과학박물관 중에는 우리나라의 최고 최대의 민영 박물관이다. 어린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모두에게 감동을 선사해주는 곳이다.
과학의 산교육장이며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부터 빛의 세계로 인도한 ’전구‘ 20세기 영화 산업의 시작을 알린 영사기 등을 더듬어 가는 곳이다. 인간이 탄생시킨 물건들의 발자취와 미래의 꿈을 동시에 더듬어줄 수 있는 국내에서 가장 돋보이는 과학관이다.
수도권에 이 같은 과학박물관이 조성되었다면 어린이들에게는 미래의 과학자를 탄생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 수준과 대비하여 국민의 행복도는 매우 낮은 나라이다.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이라고 하지만 UN 세계행복보고서 순위는 143개국 중 52위에 그치고 있다. 2024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국민 삶의 만족도는 OECD 38개국 중 35위로 최하위다.
UN 통계국 산하 웰빙 측정 전문가 그룹은 ‘포용적이고 지속이 가능한 웰빙프레임을 개발 중이다. 세계는 1990년대 이후 OECD 회원국들의 정책적 관심은 정치와 경제성장이 아니라 사회발전과 환경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
웰빙과 삶의 질, 행복 중심 정책의 중요성이 확대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단기적인 전략, 단기적인 투자에 매몰되지 말고 좀 더 장기적으로 미래세대에게도 국민적 유산인 국립공원처럼 소중하게 사랑받을 수 있는 시설물을 조성해야 한다.
한강 둔치를 거닐다 보면 그저 바라다보이는 것은 그저 하얀색의 빌딩 숲이다. 그것도 조형미 없는 그저 담뱃갑 같은 그런 건물들이다.
국민은 이 같은 공간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삶의 기쁨을 찾을 수 없다.
도심의 골목길을 걸으면 짜증이 나지만 산과 강변의 올레길만 걸어도 행복지수가 높아지는 것을 정치인들이나 통치자들은 다시금 되돌아봐야 한다.
(환경경영신문 http://ionestop.kr 김동환 환경국제전략연구소장, 환경경영학박사, 시인,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