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땅의 주인은 누구인가
1953년 오스트레일리아 동부 빅토리아주의 배커스마시. 아이린 봅스와 그녀의 남편 티치 봅스는 중고차 판매점을 하고 있다. 티치는 포드 자동차 대리점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아버지 댄 봅스의 방해로 좌절을 겪는다. 그러자 아이린은 제너럴 모터스 홀든(GMH)과 접촉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그들은 홀든 자동차 대리점 운영권을 얻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레덱스 트라이얼’이라는 자동차 경주에 참가하기로 결심한다.
랠리 준비 과정에서 아이린은 이웃 남자 윌리 박후버를 만나고, 그가 교사이자 퀴즈 쇼 챔피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퀴즈쇼에서 계속 도전자들을 받아왔는데, PD의 협잡에 속아 타이틀도 잃고, 설상가상으로 학교에서마저 쫓겨난다. 봅스 부부는 이런 윌리에게 레덱스 경주에서 지도를 읽고 길을 안내하는 내비게이터 역할을 맡아 달라고 제안하고, 윌리는 수락한다. 봅스 부부와 윌리는 시드니에서 출발하여 다윈을 거쳐 브룸까지,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긴 여정을 함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경주가 시작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을 방해하려고 음모를 꾸미며 쫓아온 티치의 아버지 댄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세상에 둘밖에 없는 듯 살아온 티치와 아이린 사이에도 균열이 생긴다. 티치는 아이린과 윌리 사이의 불륜까지 의심하고, 거듭된 오해와 갈등 끝에 봅스 부부와 헤어진다. 윌리는 오스트레일리아 선주민인 애버리진 아이들을 가르칠 교사를 찾던 남자에게 납치되다시피 끌려가 퀌비 다운스라는 외딴 농장에서 다시 교사로 일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애버리진의 잊힌 역사의 비밀과 백인들의 폭력으로 얼룩진 세계, 그리고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원주민 공동체와 교류하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간다. 한편 봅스 부부는 랠리에서 우승하지만, 아이린은 명성을 얻은 뒤 허영에 빠진 남편의 달라진 모습에 실망하고 그를 떠나 아이들과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집으로부터 멀리』는 1950년대 척박한 오스트레일리아를 배경으로, 한 여자의 자아 찾기와 한 남자의 뿌리 찾기, 그리고 잔인한 인종 차별의 근원을 탐구한 소설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역사에 숨겨진 폭력과 야만의 페이지를 강렬하면서도 무겁지 않게 담아내며 ‘이 땅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현대 오스트레일리아 사회의 근간을 뒤흔든 문제들, 원주민에 대한 백인의 착취와 억압의 역사를 조명한다.
■ 오스트레일리아의 광활하고 험준한 자연에 숨겨진 학살과 차별의 역사
『집으로부터 멀리』에서 봅스 부부와 윌리 박후버가 참가하는 레덱스 랠리는 수백 명의 자동차 광들이 수천 킬로미터의 거리를 수십 일간 일주하는 20세기 오스트레일리아 최고의 자동차 경주다. 소설 속에서는 시드니에서 타운즈빌까지 2,080킬로미터, 타운즈빌에서 다윈까지 2,560킬로미터, 다윈에서 브룸까지 1,920킬로미터, 그리고 퍼스에서 시드니까지 4,000킬로미터가 이어진다. 험준한 산길, 오지의 도로를 통과하고 탁 트인 해안 도로와 광막한 평원을 끝없이 달린다. 그 길 위에서 시드니, 브리즈번, 퍼스 등 익히 알려진 지명을 비롯하여 차터스타워스, 마운트아이자, 브룸, 캐서린, 퀌비 다운스, 오보스트 등, 호주 대륙의 광활함을 머릿속에 새겨주는 낯선 공간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한다. 보다 인상적인 것은 참가자들이 줄곧 맞닥뜨려야 하는 험난한 땅에 대한 묘사이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 깊은 개천, 뜨거운 사막, 갑작스러운 폭우 등 극한의 자연은 랠리 참가자들에게 끊임없는 도전을 안긴다. 그리고 이 땅의 험준함과 가혹함은 그곳에서 원주민의 입을 막고 저질러진 학살과 차별의 잔인한 만행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집으로부터 멀리』의 주인공 윌리 박후버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도둑맞은 아이들(Stolen Children)’이라고 불리는, 원주민 차별 정책의 피해자다. 이것은 백인과 원주민 사이 혼혈로 태어난 아이들을 부모로부터 강제로 빼앗아 백인 가정에 입양시키거나 고아원 등의 시설에서 원주민 문화와 단절시킨 채 양육했던 정책이었다. 백인 남자가 원주민 여자를 강간하여 태어나는 혼혈아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이들이 백인 문화에 치명적 위협이 될 것을 두려워하여 결혼하지 않은 모든 연령의 원주민 여성의 법적 후견인을 ‘최고 원주민 보호관’이라는 관리도 지정하는 법률까지 도입했다. 원주민 공동체를 파괴하고 그들의 문화와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한 조처였다. 『집으로부터 멀리』는 출생의 비밀과 정체성 혼란, 진실을 알게 된 후 분노와 슬픔을 딛고 자신의 뿌리를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지만 끝내 주변의 몰이해와 차별로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윌리의 상처와 고통을 응시하며 뿌리 깊은 인종 차별의 역사를 고발한다.
■ 집으로부터 멀리 떠나 마침내 ‘집으로’ 돌아가는
『집으로부터 멀리』는 심리 소설의 걸작으로도 평가되며, 등장인물들의 내면 묘사와 개성적인 화법은 매우 탁월하다. 피터 케리의 섬세한 문체와 독창적인 서사 구조가 만들어내는 윌리 박후버와 아이린 봅스의 시선은 오스트레일리아의 광활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한 몰입감을 더욱 높인다. 『집으로부터 멀리』에서 피터 케리는 고독, 상실감, 죄책감 등 인간의 본원적 감정을 복합적으로 탐구하기 위해 비선형적인 서사 구조로 읽는 이에게 긴장감을 유발하고, 여러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윌리 박후버와 함께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요 화자는 아이린 봅스다. 1950년대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억압받는 여성의 모습을 구현하는 아이린은 오스트레일리아의 복잡한 역사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남편 티치는 아이린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신의 꿈을 좇는 데 급급하며, 시아버지 댄은 아이린에게 며느리로서의 역할만을 강요한다. 아이린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굽히지 않으며, 레덱스 테스트에 참가하여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한다. 아이린은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 점차 수동적인 여성에서 능동적인 여성으로, 그리고 백인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난 다문화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한다. 특히 백인 정착민들이 자행한 원주민 학살의 진실을 마주하며 혼란과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데, 그녀의 변화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과거를 직시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실려 있다. 백인, 원주민, 아시아인 등 다양한 인종의 문화가 공존하는 오스트레일리아 사회의 다채로운 양상을 드러내는 『집으로부터 멀리』는 문화적 다양성과 포용의 중요성을 일깨우는데, 아이린은 백인과 원주민, 남성과 여성 사이의 화해와 공존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윌리 박후버의 아들인 닐과의 만남, 퀜비 다운스에서의 경험, 그리고 레덱스 테스트를 통해 소통과 이해를 배우는 아이린은 오스트레일리아 사회의 변화와 성장, 그리고 화해와 공존이라는 주제를 대변하는 것이다. 윌리 박후버와 아이린 봅스가 겪는 시련과 위기, 정체성 혼란과 극복 과정은 오스트레일리아 사회의 복잡한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며, 그들이 집으로부터 멀리 떠나 마침내 자신이 뿌리 내일 집에 도달하는 길 위에서 만나는 다양한 인물들의 삶과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오스트레일리아라는 나라의 독특한 자연과 풍습, 역사와 문화에 대해 비로소 눈을 뜨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되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