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18. 나무날. 날씨: 날이 더우니 발효가 빠르다.
[일하는 명상]
아침나절 잠깐 텃밭에 갔습니다. 과목 공부와 텃밭농사 같은 전체 공부 빼놓고는 늘 서류더미 속에서 일하다 보니 일부러 시간을 조직해서 가지 않으면 컴퓨터 앞에서 떠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교육활동을 뒷받침할 행정일과 바깥공모사업 서류 일, 연대와 회의들로 처리해야 할 게 많으니 이렇게라도 땀을 흘리고, 틈나는 대로 모둠 공부를 돕는 데 몸을 쓰면 기분이 한결 좋습니다. 텃밭에서 일하는 명상인 셈이기도 합니다.
비가 안 와서 물도 주고 풀도 매고, 토마토 순치기도 하면서 텃밭을 둘러봅니다. 아이들 없이 슬쩍 다녀가거나 아주 풀을 잡으러 간 적이 많기는 하지만 텃밭 선물이 쏟아지는 밭 풍경은 언제 봐도 감격스럽고 고마울 뿐입니다. 날마다 호박, 오이, 고추, 가지, 상추를 따고, 내일은 감자를 캡니다. 순치기를 꾸준히 한 덕분에 토마토는 튼실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호박과 감자는 급식재료로 쓰니 당분간 안사도 됩니다. 작지만 자립할 수 있는 게 늘어가니 참 좋습니다. 도시에서 자립이란 건 쉽지 않은 일이고, 그저 조금이라도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과정에서 땀 흘려 일하고 생산하는 기쁨, 함께 협력해서 일하는 보람으로 삶을 가꾸는 게 교육이라 믿습니다.
학교로 들어오는 길에 숲속놀이터 옆에서 키우고 있는 포도나무 풀을 맸습니다. 애지중지하는 포도나무에 드디어 포도송이가 점점 커져갑니다. 이상하게도 한두 어린이가 포도가 자라는 걸 알아차리고 선생에게 와서 자꾸 묻습니다. 포도 우리가 먹을거냐고 말이죠. 그럼요. 우리 아이들이 포도를 따서 먹고, 포도송이를 그림으로 그리고, 시를 쓸 날이 다가옵니다. 그때까지 포도송이를 잘 키우고 지켜야 하니 포도 키우는 방법을 다시 찾아봅니다.
점심 때는 앵두 액종을 만들었습니다. 앵두같은 입술을 본 적이 있긴 한데 이렇게 색이 고울까요. 발효빵을 만들기 위한 채비가 얼추 끝나갑니다. 액종도 잘 되어가고 있고, 밀을 잘 말리고 있으니 곧 밀가루로 빻으면 발효빵 수업을 할 겁니다. 어린이 농부들이 맛있는 빵을 만드는 거니 농부요리사쯤 되겠지요. 날마다 귀한 추억이 쌓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