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경심_그대에게_장지에 채색_68×58cm_2007
예전 대학시절, 성악을 전공하던 내 예쁜 친구 주아......
이 친구의 그 큰 집에 가면, 항상 경상도 출신의 외할머니는 저희를 위해서
맛나 보이는 음식들을 밥상에 차려 주시곤 했습니다. 그 집에서 밥을 먹을 때는 항상
할머니의 불호령과 잔소리에 시달려야 했지요.
"가스나가 밥을 무글때는 항상 곱딴하게 바블 무거야지...어이!
그래야 복이 안달아나는기라....알았나? 홍기 니도 마찬가진기라. 남자도 밥상 앞에서는
쪼매 진중하이.....곱단하고로 밥을 무거야 여자한테 그거이 고마움을 표하는기다....알았제"

정경심_4월_한지에 수묵채색_79×60cm_2007
세월이 지났지만 할머니의 호령 소리는 여전히 제 머리속을 떠돕니다.
밥을 먹는 다는 것은 그만큼 단순하게 하루의 영양을 취한다는 의미를 넘어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의미를 어떻에 부여하는가에 따라, 정말 복을 불러오는 행복한 행위가 되는 것 같습니다.
하긴 밥상 공동체란 말이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지요.
오늘 소개하는 작가 정경심 선생님의 작품은 바로 이러한
따스한 밥상을 소재로 합니다. 그러고 보면 한국사람들의 교제에서, 혹은 일상의 언어에서
이 "밥 한번 먹자"라는 말처럼 쉽게 쓰이는 말도 없지않나 싶습니다.
작가가 캔버스에 수묵채색으로 차려낸 화사한 봄의 빛깔 가득한 밥상을 보고 있자니
절로 식욕이 나는 것 같습니다.(개인적으로 이 그림 너무 사고 싶었습니다)

정경심_금요일 밤_한지에 수묵채색 콩댐_73×77cm_2007
작가의 그림 그리기 과정은 마치 정성껏 음식을 마련하는 어머니의 손길
곰삭임의 시간을 껴안고 있는듯 합니다. 닥나무 속껍질의 색감과 결이 베어나는 수제 한지를
사용하는데, 그 한지의 틈을 아교을 먹여 탄탄하게 만든 후 곱게 찧어 정제한 안료를
섞어 여러번에 거쳐 베푸는 과정을 거치는데요. 이렇게 해야만 자연스러운 결이 살아 있는
은은함이 캔버스에 베어나온다고 합니다.
우리 내 어머니들이 음식을 만드는 일도 이와 비슷했지요
뭔가 반복된 행위 속에서 곰삭여지는 따스하고 달근한 간장 하나에 흰쌀밥만 있어도
삶은 푸근하고, 내 영혼의 긴장은 달아나고 맙니다.

정경심_유치해도 연애!_장지에 채색_94×76cm_2007
개인적으로 요리를 하는 걸 매우 즐깁니다. 빵 만드는 일을 좋아하고 그 냄새를 좋아하지요
하긴 이번 아프리카 여행때도 돌아가면서 식사당번을 했는데, 저는 식재료를 정성껏 씻는 일에서 부터
국의 간을 맞추는 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것들을 한 것 같습니다.
음식은 만드는 일도 행복하지만, 그 재료들을 준비하는 일도 기쁘지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먹일 먹거리를 준비하는 시간, 싱싱한 재료들을 사다가
익히고 조리하고, 졸여내는 짭조름한 냄새로 부엌이 가득할 때 얼마나 행복하던가요.

정경심_담소후에_장지에 채색 콩댐_59×148cm_2007
예전 유학을 할때도 저는 항상 전자밥솥을 쓰지 않았던 이유는
누룽지를 만들어 먹기 위해서였습니다.(꼭 식성이 까다롭다는 말은 아닙니다*^^*-요즘은 안해요)
어찌되었든 구수하게 우려낸 누룽지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그 단아한 시간들이
연하고 부드러운 자세로 잠들어 있는 꽃들의 향연을 떠올리게 합니다.

정경심_든든한 아침을 위하여_한지에 채색_68×59cm_2007
다른건 몰라도 부지런을 떠는 것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어서
항상 든든한 아침을 먹고 바깥에 나갑니다. 새벽 6시면 어김없이 일어나지요
새벽기도에 다녀오신 어머니가 여우잠에 빠져 있는 동안, 저는 밑반찬을 꺼내고, 계란 지단을 부치고
유연한 빛깔의 상큼한 플레인 요구르트를
홍색, 초록색, 황색 파프리카와 연두빛 양상치에 부어 샐러드를 만듭니다.
브로콜리는 꼭 삶아서 반개씩은 먹어야 합니다. 저는 브로콜리 중독환자입니다.
최근엔 연두부에 짭조름한 간장을 약간 부어서 떠먹기도 합니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나가면, 그 날은 참 행복합니다.
답답한 가슴 둔치가 뚤리고, 만나는 사람들이 살가우며, 왠지 이 하루라는 시간의 무늬가
나를 위해 어여쁜 옷의 패턴을 만들어 낼 것 같은 환상에 빠집니다.

정경심_봉천5동 ‘장위동 유성집’_한지에 채색_74×100cm_2007
장위동 유성집.....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맛집으로 소문이 난 체인점이더군요.
한우가 아주 싱싱하다는 소문이 나있더군요.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화가의 그림 속에 베어나오는 한상 차려진 한정식에는 여러가지 화면들이 동시에 떠있습니다.
작가가 데이트 하던 시절의 추억이 녹아 있는 것 같기도 하구요.(제 추측입니다)
사월에 꽃들 무진장 피어나는 것은
한 겨울 폭설에 굶주려 허기진 세상에 따듯한 밥상을 차리는 것이다
한데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져 상처나고 지친 세상에 위로의 수저를 건네 주는 것이다
가족도 없고 돌아갈 집도 없는 노숙자인 저 들과 산에 손을 잡아 주고 옆에 같이 앉아
사월은 어머니처럼 맛있는 사랑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뒤주에서 고운 햇살 같은 쌀을 퍼내 봄비로 씻고 필까 말까
한참 뜸을 들이다 김 모락모락 나는
제주의 유채와 선운사 동백과 광양의 매화를 밥그릇에 담는다
이제 막 버무려 놓은 이천의 산수유꽃과
유달산 개나리와 장복산 벚꽃 같은 맛깔스런 반찬을 올려놓는다 천천히 다 드시고 난 후에
치악산 복사꽃과 영취산 진달래와 소백산 철쭉으로 입가심을 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사월의 밥상을 먹어 세상 모두 배부르다면 얼마나 좋을까
김종제의 <밥상을 차리며> 전문
마음에 들었던 정경심 작가의 <4월> 작품 옆에서 작가와 한컷 사진을 찍습니다.
아이들의 동화에 들어가는 삽화를 멋들어지게 그려낸 분답게 참 곱단하고 단아한 미소가
곱습니다.....좋은 작품 계속 하실 수 있기를 건승해봅니다. 가을 하늘 아래 더욱 행복하시길요.
전수연의 피아노로 듣습니다. <어느 맑은 날>.....
가을하늘이 곱습니다. 이런 날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따스한 밥 한끼 먹어야 겠죠?
첫댓글 그러게나요...밥상...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면서도 따듯한 휴머니티가 있는 곳이 아니겠슴까?...이를 전문적으로 그리는 화가도 있었군요...
영혼을 위한 밥상....그림과 딱 맞는 제목이네요.......영혼을 살찌울 수 있는 밥상이 있다면 먹다가 죽어도 한이 없겠네요..정말 행복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