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의 뿌리들에서 한 가지가 자랄 것이라.
이새는 다윗의 아비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가문에서 장차나타날 한 가지를 말씀하시는 것으로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의 영이 그의 위에 머물리니 지혜와 명철의 영이요, 계획과 능력의 영이며, 지식과 주를 두려워하는 영이라.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 속에서 올라오시니, 보라, 하늘들이 그에게 열리고,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같이 내려와 그의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라.
마태복음 3장 16절
지혜와 명철과 계획과 능력과 지식의 의미는 하나님의 권능을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성령은 권능으로 그의 능력은 우리를 구원하시는데에 그 완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가장 큰 지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입니다. 이것은 그냥 추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에 가장 현명하게 선택할 수 있는 기준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계획과 사람의 두려움등으로 결정을 내릴때 반영하는 것은 일종의 도박과도 같은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 눈에 그럴듯해보여도 그 결과가 생각대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함은 그분의 방식에 어긋나지 않음으로 사람이 참조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예수께서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신 것은 형식적인 것이 아니며, 사람의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을 하나님과 연결한 것이며, 우리도 침례로 하나님과 믿음이라는 관계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성령과 함께 존재할 때 그가 온전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령은 한 번 받으면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여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Quench not the Spirit.
한글/KJV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
quench
발음미국/영국 [kwenʧ]
뜻① 끄다 ② 갈증을 풀다 ③ 잃게 하다
한 번 받은 성령이 영원히 지속된다면 굳이 소멸하지 말라고 말씀으로 우리에게 전해질 이유가 없습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가운데 그를 속히 명철케 하리니 그는 자기 눈으로 보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고 귀로 듣는 대로 책망하지도 아니하나,
가난한 자들 위하여 정직으로 책망하리라. 또 그는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고 자기 입술의 호흡으로 악한 자를 죽일 것이라.
가난한 자는 그냥 약하고 가난한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가난하고 약하지만 악한 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자의 의미는 하나님을 간구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전도를 시도해 보아도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은 복음에 대해서 전혀 필요함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복음을 필요해하지 않습니다. 반면 자신의 삶에 커다란 위기나 자신이 아무것도 할수 없고, 또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사람은 복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구하기 시작합니다.
믿음이 없는 자들이 복음을 가볍게 보는 것은 하나님앞에서 배부른 것입니다. 그들은 곧 그분의 막대기를 만나는 은혜가 있게 될 것입니다. 막대기가 모든 사람에게 은혜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복음은 참 귀한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교회와 교회를 다니는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복음이 흔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극소수이며, 많은 사람들이 그 과정중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일대 일의 관계를 갖고 있다면 많은 은혜를 받고 결실의 시작에 이른 귀한 사람입니다.
초림의 사람의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책망을 하지 않으십니다. 초림의 그분은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의 기회를 주시기 위하여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를 정직하게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만 책망을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들을 만한 귀가 있는 가난한 사람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은 책망이 그들을 살리지 못하므로 그들에게는 책망이 필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책망을 듣는 다면 속으로 어떤 이유에서 온 것인지 점검하는 것은 지혜입니다.
그전의 하나님의 막대기는 이민족들이었으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이 말씀과 호흡이 막대기로 악한 세상을 치십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전해짐으로 그들이 악한 죄의 조건을 채운 것이 됩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나를 거절하고 내 말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말한 그 말이 그를 마지막 날에 심판하리라.
요한복음 12장 48절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받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죄의 용서함을 받고 구원을 이르지만 어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죄의 확정을 받고 버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명령이고 구속이므로, 말씀앞에는 순종과 대적으로 나뉘게 되어 애매한 것이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앞에서 공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의가 그의 허리띠가 되며, 신실함이 그의 옆구리의 띠가 될 것이니라.
허리띠는 힘의 원천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힘은 의에서 나옵니다. 심판이 의롭기 때문에 아무도 변명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게 될 것입니다. 신실함이란 공의의 하나님의 모습이며, 사람의 불의함과는 전혀 다르고 아무도 억울하지 않기에 신실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또한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울 것이요,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하며 어린아이가 그들을 이끌리라.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들이 함께 누울 것이요,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으리라.
또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으리라.
위의 맹수들과 독사와 천적 관계에 있던 동물들이 어울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땅에 설계하신 것을 재정립하심을 의미합니다. 모든 생물이 피조물이며, 그 피조물들의 관계를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일들이 소멸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도 그의 이해관계로 인하여 사람을 억압하거나 당하는 일들이 이제는 더이상 필요없어짐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나의 모든 거룩한 산에서 해치거나 파괴시키지 않으리니 이는 마치 물들이 바다를 덮음같이 세상이 주의 지식으로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사야 11장 1절 ~ 9절
주께서 설정해놓으신 먹고 먹히는 관계는 청산하였지만 아직 다른 것은 그대로 유지하심을 의미합니다. 땅의 생물들이 약육강식의 굴레로 살아왔지만 그것을 멈추시었습니다. 그러나 물들이 바다를 덮은 기본적인 질서는 그대로 유지 하심을 의미하며, 주의 지식도 변경없이 그대로 충만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