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95년 10월 18일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동 아차산 약수터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과 2001년 9월 4일 광진구 화양동에서 발생한 방화살인 사건이다. 두 사건 모두 미제 사건으로 묻혔으나 2009년 9월 범인 이대영이 속옷 절도 혐의로 검거되었다가 경찰이 이대영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수색하던 중 2001년에 살해되었던 피해자의 신분증이 발견되며 살인혐의에 대해 추궁, 범행의 전모가 드러났다.
2. 1차 사건
1995년 10월 18일 오후 6시경, 당시 23세였던 이대영은 광진구 중곡동 아차산 7부능선에 있던 긴고랑천 약수터로 등산을 나갔다가 약수로 세수를 하던 중 피해자 김 씨(58)가 "약수터에서 먹는 물로 세수를 하면 어쩌냐"고 나무라자 옆에 있던 돌로 피해자의 머리를 내리쳐 살해하고 20m 떨어진 골짜기로 시신을 옮긴 뒤 옷을 모두 벗기고 소지품을 훔쳐 강도·강간사건으로 위장한 뒤 달아났다.[1] 피해자의 시신이 발견됨에 따라 당시 서울 동부경찰서는 수사본부를 꾸리는 등 사건해결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결국 용의자를 찾지 못해 미제사건으로 분류되었고 수사팀은 해체되었다.
3. 2차 사건
2001년 9월 4일 이대영은 평소 자신이 스토킹하던 여성 정 씨(30)의 집에 침입해 그녀를 성추행한 후 목을 졸라 살해하고 라이터로 이불과 옷가지에 불을 붙인 뒤 현금과 핸드백, 속옷,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달아났다. 이 사건 역시 뚜렷한 용의자를 찾지 못해 미제 사건으로 분류되었다.
4. 검거
이대영은 2009년 9월 26일 광진구의 한 주택가에서 점퍼 차림으로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경찰의 검문에 걸렸다. 이름과 인적사항을 묻는데 횡설수설하자 경찰은 이를 수상하게 여겨 이대영을 절도범 정도로 보고 계속 추궁하는데 이대영이 자신의 차가 근처에 있다고 하자 자동차로 이동했다. 이대영의 자동차 트렁크에서 여성 속옷 20여 점과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발견되자 경찰은 이대영을 성도착증에 걸린 속옷 절도범으로 보고 경찰서로 입건했다. 그런데 경찰서에서 이대영의 하드디스크를 확인하던 중 23명의 신분증을 발견하게 되는데 거기에서 2차 사건 피해자 정모 씨의 신분증이 확인되며 이대영을 추궁한 끝에 범행을 자백받았고 이후 1차 사건도 자백하여 살인죄로 긴급체포되었다.
5. 범인 이대영
1973년 9월 29일 재혼 부부의 6남매 중 하나로 태어난 이대영은 가난한 단칸방에서 어려운 삶을 살았다고 한다. 이대영은 초등학교 3학년 때 한 남자에게 아차산 약수터에서 성추행을 당했고 사춘기 때부터 포르노에 빠져들었으며 소아성애, 스너프 필름 등 성도착적인 포르노 CD를 모으는 데 탐닉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사망하며 그는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일용직을 전전하다가 1995년 2월 군대를 제대한 뒤 평소에는 인쇄소에서 일하고 쉬는 날에는 여성들의 속옷을 훔치거나 바바리맨 행각을 벌였다.
1998년 강도, 2002년 여성 속옷 절도, 2006년 성기 노출죄로 체포되어 전과가 있기는 했으나 살인까지 저지른 범죄자라고는 상상을 못할 만큼 그는 태연하게 일상생활을 영위해 왔는데, 이웃 주민들은 그를 평범한 이웃 정도로 알았다고 하며, 2004년부터 사실혼 관계에 있던 여자친구 조 씨는 그가 검거되자 그런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며 큰 충격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경찰은 이대영을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사이코패스로 분석했다.
6. 결말
2009년 12월 서울동부지방법원은 이대영에게 징역 22년 6개월을 선고했다. "범행 동기와 수법, 죄질이 나쁘지만 피해자의 주민등록증이 발견되자 순순히 범행을 시인하고 반성하는 점, 불우했던 가정환경과 초등학교 때 성추행을 당한 경험 등이 범행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 점을 참작했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이후 형이 확정되었다.
7.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