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로암
감로암(甘露庵)은 종로구 충신동 15번지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 3교구 신흥사의 말사이다.
가람의 창건은 1912년에 강남 봉은사 주지로 있던 나청호 선사가 을축년 대홍수 이후에 숭인동 포교당으로 창건하였다고 한다.
당시 청호스님은 가람의 신축은 물론 산신탱과 독성탱의 화주로 참여하며, 강남에는 봉은사를 강북에는 감로암을 관리하였다고 하며, 당시 봉은사 불사에 참여한 근세의 명필 성당 김돈희와 청남 오재봉 역시 청호스님의 인연으로 감로암 창건에 참여하여 현재 보타전 편액과 글씨를 남겼다고 한다.
하지만 사찰에 전해지는『한양성내 동부 보타산 감로회 법당 상량문(漢陽城內 東部 駱陀山 甘露會 法堂上樑汶)』의 감로암은 일찍부터 관음영험도량으로 알려져, 1927년, 정묘(丁卯)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져 확실한 창건연대는 추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보타전에는 청호스님의 창건을 뒷받침해주는 탱화가 전해지고 있어, 1912년에 청호스님에 의해 창건된 숭인포교당을, 1927년에 다시 중창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후 감로암의 연혁은 구전으로 전해지는데, 중광 , 양모, 혜련비구니 등 여러 대덕스님을 거쳐, 금강산 건봉사의 말사로 등재되었으며, 이후 조계사의 말사로 편입되었다가 다시 현재 신흥사의 말사가 되었다고 한다.
특히 감로암은 여러 대덕스님이 주석하였는데, 그 중 춘성스님과 중광스님이 유명하다.
금강사 건봉사의 춘성스님은 설법으로 알려진 유명한 스님으로 감로암에 기거하며 중생들을 위해 알기쉬운 설법을 하였으며, 세상의 더러움을 걸래로 훔친다는 걸래 중광스님은 감로암에 기거하며 창작활동을 펼쳤다고 한다.
그는 동양의 피카소 ㆍ전위 예술가로 이름을 날려 한때 그가 기거하던 감로암 역시 전위예술의 산실로 이름을 날리기도 하였다.
이외 특이한 것은 법당 지하에 우물이 있다는 사실인데, 전에는 이 우물이 아주 맑고 좋아서 실제로 절이름에 보이는 감로와 같은 맑은 물이 샘솟았지만, 현재 주위 주택가가 형성되고 암반이 약해짐에 물이 현재 나오기는 하지만 음용수로는 쓰지 못하고 있다
감로암 입구
도심속에 자리한 감로암
감로암 입구문
감로암 보타전
보타전은 정면 5칸, 측면 5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1927년에 지어진 옛 건물을, 2004년에 운정스님이 보수한 것이다.
평면은 요사와 맞붙은 ㄱ자형 건물로, 중앙 3칸은 법당으로 좌우 1칸은 요사채로 사용되고 있다.
전반적으로 절 주변에 빼곡이 들어찬 현대의 고층건물들이 둘러싸여 있어 상대적으로 왜소한 느낌을 주나, 도심 속 아담한 포교당으로서 친근감을 더해 준다.
건물은 낮은 콘크리트 기단 위에 마름모꼴 초석을 두고 그 위로 사각기둥을 세워 서까래를 받친 모습으로 흔히 일반 주택에서 볼 수 있는 민도리집 양식을 띄고 있다.
출입구 또한 특이하게 측면으로 출입하는데, 내부 전면 2칸은 누마루식의 법당이, 그 내부는 불상과 불화를 모신 불전이 자리하고 있는 이중구조를 가진 불전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법당 어칸에는 보타전 이라는 편액이 있어 눈길을 끄는데, 성당 김돈희의 글씨로 나청호스님이 감로암을 창건할 때 판각한 것으로 보인다.
감로암 법당내 산신탱과 독성탱
감로암 법당내 지장전
법당내 목조관음보살좌상
감로암 법당내 칠성탱
감로암 법당내 신중탱
감로암 법당앞 정원
감로암 찾아가는 길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동대문에서 대학로 방향으로 들어서거나 / 광화문에서 현대빌딩을 지나 동대문 방향으로 직진하면 된다.
동대문에서 올 경우 이화여대동대문병원 주차장 쪽으로 들어와, 율곡로를 따라 난 41번 시내도로를 따라 대학로 방향으로 가면된다. 이 길을 따라 500m정도 들어서면 우측에 감로암 이정표가 보인다.
첫댓글 서울에 있는 암자임에도 설악산 신흥사의 말사인 절이 있군요.
가까운곳에 좋은 사찰이 있네요....잘 보았습니다
서울입성하여 첫거주지가 충신동 고지대였는데... 근래 알고보니 거주지 바로 아래가 감로암이고 중광스님 머문 방사에 들러 흔적을 찾았으나 도배를 새로이 하여 흔적은 남아있지않아 아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