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_사이시옷은 그게 아니었다 ●지은이_황지형 ●펴낸곳_시와에세이 ●펴낸날_2022. 11. 30
●전체페이지_168쪽 ●ISBN 979-11-91914-33-7 03810/신국판변형(127×206)
●문의_044-863-7652/010-5355-7565 ●값_ 12,000원
참된 자아를 찾아 떠나는 언어 여행!
황지형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사이시옷은 그게 아니었다』가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황지형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나는 누구인가?’ 혹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존재하는가?’ 등 자신의 존재 자체를 의문시하여 언어 속 물음으로 시작해 언어로 ‘나’를 표현할 수 있는가, 라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시인이 가진 숙명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만큼 시인은 언어에 존재를 저당 잡힌, 혹은 하이데거의 말처럼 언어의 노예가 되어버리고 만다. 말을 뱉지만 뱉은 말에는 시인의 맘속을 전달해주지 못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시인은 말 배우는 연습을 하고 싶어 한다.
전기철 시인은 이 시집의 해설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말을 찾을 수 없는 화자는 확정할 수 없는 존재감에 누군가에게 말을 걸지만 입속으로만 중얼거릴 뿐 전달되지 못한다고 한다. 이는 그 ‘누군가’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데에서 온다.
사람들은 누구나 양머리를 할 수 있지 그러니까 자기 몫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말할 때조차도 아버지의 말을 재빨리 해득하지 못하는 순한 양이 된 지 오래여서 눈곱만큼도 나쁜 세상에 산다고 생각하지 않는 똑똑이지만
그는 사람인 동시에 양들을 향해 ‘결혼할 때 되었군’ ‘이봐 학교는 졸업했다지’ ‘용역회사 다닌다고’ 같은 말들로 무릎을 꿇게 만들기 일쑤다 그러면 불가마 속에서 내가 어쩌다 저런 양들을 만났을까 중얼거리곤 한다 ‘어쩌다 사람들을 만나면 낮고 굵은 목소리로 음메에에에 기죽은 수건이라도 준비해야지요’
―「양들은 수건의 매듭에서 빳빳해지지」 부분
화자는 아버지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순한 양’이다. 그래서 화자는 자신이 사람인 건지 양인 건지 분간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타인은 나에게 현실적인 질문을 쏟는다. 그래서 화자는 ‘음메에에에’ 양 울음소리를 낸다. 이는 타자와 나 사이에 놓인 불통의 관계 때문이다. 하지만 존재란 타자와 내가 함께 확정해줄 때 비로소 자리를 잡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화자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기원을 믿는다. 다시 말하면 “그러니까 자기 몫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말”하는 걸 믿기 때문이다. 그 말, 자기 몫을 갖고 태어난다는 말, 이 말이 곧 시인이 찾아 나서는 존재의 기원을 찾아갈 수 있는 매개이다. 이 말에 얽히어 시인은 말로서 존재 실험을 하는 것이다.
나무에 걸린 모자 바람에 흔들릴 때
막대기 자를 톱을 가져온다
바람은 킥보드를 타고 오는 버릇이 있거든
껍질을 찢은 침묵 속에
겨울 저편 맥 빠지는 손목시계
풀칠할 언덕배기는 가지고 있나요? 껍질을 바른 딱딱한 얼굴, 바람의 고문은 막대기에 묶은 호흡으로 오는군요 설탕 냄새를 묶은 군락지의 손실이에요 태워버린 에너지는 오븐에서 땀으로 증발해버려요 물 한 잔 분의 여자도 나무껍질에 묶인 채 느릿느릿 나무의 뿌리에 묶인 여자의 머리가 톱 높이에 있어요 껍질을 깎는 진흙 색 손으로 코를 풀고, 꽃을 두 손으로 비벼 단검으로 썼어요 여자의 허리뼈에서 숯불이 흘러내려요 화살은 못마땅하다는 듯 눈알을 돌려요 못마땅하기만 한 것인지 화산 속에서 단언할 수 없지요 혀끝에 꿈틀대는 갈증처럼
―「나무! 모자를 씌워놓지요」 부분
위 시에서 소재가 무수히 바뀌면서 말들이 이어져 나온다. 모자에서 톱으로, 다시 킥보드, 손목시계로, 그리고 언덕배기는 얼굴로 미끄러지고, 얼굴은 다시 바람의 호흡으로, 또 설탕 냄새를 묶은 군락지, 땀, 한 잔 분의 여자, 머리가 톱 높이에 있는 여자, 숯불, 화살, 눈알, 화산, 사과, 개불알꽃, 양탄자, 절망적인 열매로 나아간다. 나무를 명확하게 가리키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오직 혀끝에 꿈틀대는 갈증의 말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결국 나는 나무를 말할 수 없는 ‘불능’이 된다. 나무를 말하려고 하지만 어떤 말도 나무를 확정하지 못한다.
닭똥집에 땡초의 무늬가 납작하게 달라붙지 않게 부착해놔요,(「포스트잇 달래기」)
양면이 얼마나 얇은지 졸음에 몸 맡긴 채 날아보세요 뒤적거리지 말고 앗, (중략) 날개 대신 종이로 바꾼 걸 방관하는 건 죄목이 됩니까(「쉼표 찍고 새, 더 멀리 날아간다」)
부엉이 바라본다//책상 위 버티는 건 아무래도 자가당착이라 가가호소, 무서워(「부엉이」)
망막한 공간속에서 죄 짖는 방법이 어떠하든 머릿속 짜여 진 숫자를 외친다(「멀리 아주 멀리」)
말소리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는 수심으로 깊어진다(「독립문자들」)
구름을 힘껏 팽창하는 구름을 따라/다시 구름에 짓눌린 구름이 가라앉듯이(「클립」)
위의 인용들을 보면 오(탈)자, 첨자, 비문(非文), 말놀이, 무의미한 기호 등이 무작위적으로 쓰이고 있다. 이러한 경우는 위에 인용한 시들 외에도 많은 시에서 이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화자가 아무 계산 없이 무의식의 언어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자신의 말이 수신자, 즉 독자에게 도달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혹은 독자나 청자의 오독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오독을 없애기 위해 오히려 말을 흩트려버린 결과이다.
시인은 ‘얼굴의 기원’이라고 했으나 그것은 존재의 기원이라고 바꿔도 좋을 듯하다. 얼굴은 입이며 코, 혹은 눈일 뿐만 아니라 ‘존재’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입속을 맴도는 말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그 말들이 가리키는 곳을 찾아 헤매는 운명을 짐 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여기에서 ‘괄호에 묶은 나라’는 자신의 의지를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아무리 말해도 결핍은 그대로 있고, 타자, 혹은 독자는 말이 넘친다고 한다.
결국 황지형 시인은 자신에게조차도 도달하지 못하는 말들을 입속에서 얼버무리지만 최우선의 수신자, 혹은 독자인 자신조차도 그걸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저만치 먼 곳에 새로운 세상이 있을 것이라는 자기 위안을 갖는 것으로 만족한다. 말더듬이처럼 말 속을 헤매지만 그 말들 속에 빛이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 위안을 갖는다. 그만큼 자신의 순수서정을 찾기 위해서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언어 속을 누비고 있는가를 이 시집은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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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제1부
양들은 수건의 매듭에서 빳빳해지지·11
포스트잇 달래기·13
쉼표 찍고 새, 더 멀리 날아간다·15
흡인력·17
연기를 내뿜는 가방·20
여름이 말하는 사이시옷은 그게 아니었다·22
부엉이·25
아니 나도 석화 말 돼·28
설탕나무·32
게슴츠레한 허스키를 읽고 있다·35
패스 인 패스·37
별나라 일주일 달나라·39
수박씨·41
빈 그물로 오는 강·43
제2부
일상적인 여름날·47
멀리 아주 멀리·49
Bird Call·51
생소한 독립문자들·54
밤꽃이 피었네·57
클립·61
나무! 모자를 씌워놓지요·63
순간·66
테니스 공으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생각은 지겨워·69
밀랍 안경의 인터뷰·71
퐁당퐁당 구름은·73
제비꽃·75
반구대암각화·77
호두과자·79
제3부
토마토의 신진대사·85
아슬아슬한 육체 훈련·86
오르락내리락 눈물이 났다·88
종이나라 처방전·91
외식발포·94
광장·96
웃음 인용부호·98
시화를 떼다·100
얼굴이 피네·102
피아노를 옮기는 에이아이·104
그럴 수도 있는 접시·107
가오리·110
수박·113
여름 맛이 난다고 말했다·115
제4부
꿈·119
낯선 사람이 도착했다·122
사랑, 1·125
손을 타다·128
커피를 마시는 동안·130
귤의 금생첨화·132
금붕어·134
JE 2······A의 변명·136
충치를 뺀 함정처럼 활짝 핀다·138
홍당무·140
맛난 돌·142
티크앤이지·144
해설│전기철·147
시인의 말·167
■ 시집 속의 시 한 편
주름은 가까운 골짜기를 만들어 내 위에 쑥뜸을 놓으며 사회복지사는 굽은 허리를 펴준다고 했다 뜸을 놓는 가방에서 사랑이 시작되었으니 연기에 주름이 생길 수밖에
연기를 피워대던 등허리에 올라탈게 평생 동안 피워대던 흔적이 참혹했던 언니 골짜기에 비가 왔고 잃어버린 항아리 속에 쑥을 끼워 넣었다
전화의 흔적이 몹시 있었고 더 절실하게 배 위를 지나갔다
배가 멈춘 곳, 배꼽에서 연기가 고였다 연기가 타오를수록 노를 저어 산으로 올라가려고 했고, 구름을 다 날려 보낼 때까지 가까운 골짜기를 없애려고 했다
엄마야, 자식들이 다 컸으니 가방을 열어주렴
언니를 연결하여 단숨에 자식들은 커져갔다 내장을 빼낸 고기처럼, 소금에 절여졌던 것처럼 해안선의 골짜기를 지우려는 얼굴은 바다에서 가져왔다
햇볕을 쬐며 엄마는 돌아온다 엄마와 언니의 연기가 비슷한 것에 주의하는 저녁 줄을 지어 달리는 엄마도 엄마를 데리고 온다는데
뜸을 떠주는 사회복지사의 입은 실개천으로 흐르고 있었다 내일은 뜸 뜬 자리에 쑥이 자라고, 경로당에서 다정히 연기의 수업을 함께 받을 수도
―「연기를 내뿜는 가방」 전문
■ 시인의 말
울기 직전에
옆을 돌아다 보았다
아무도 없을 땐
눈을 감아보자
내가 함께 있어 줄게
2022년 늦가을
황지형
■ 표4(약평)
황지형 시인의 연쇄적인 말은 어쩌면 라캉의 환유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라캉은 환유적인 말을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말이라고 한다. 그런 말은 주체의 의도를 정확하게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새로운 말을 불러들여 연쇄된다. 그래서 라캉은 시니피앙이란 말을 쓴다. 시니피앙은 의미가 담기지 않는 기호로서 무의식의 말이다. 무의식의 말이므로 분명한 뜻이 없다. 그래서 그의 시 속 말은 끊임없이 다른 말, 다른 소재로 자리바꿈을 하면서 이어진다. 하지만 어떤 말도 확정적으로 존재를 드러내지 못한다. 그 말들에는 올바른 뜻이 유예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시인, 혹은 화자는 자신의 존재, 혹은 존재의 기원을 찾아 언어 속을 헤맨다. 그러나 그의 말은 입속에서 얼버무림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달리 보면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언어 속에서 자신을 찾으려고 애를 쓰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그 말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그 말속에서 타자를 만나야 한다. 타자는 시에서는 독자이다. 황지형 시인은 참된 독자를 만나야 한다. 그 참된 독자는 일차적으로 자신이다. 그만큼 자신의 순수서정을 찾기 위해서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언어 속을 헤매고 있는가를 이 시집은 보여주고 있다._전기철(시인·문학평론가)
■ 황지형
울산에서 태어나 2009년 『시에』로 등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