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1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0,1-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2 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
3 그가 또 아홉 시쯤에 나가 보니 다른 이들이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서 있었다.
4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정당한 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자,
5 그들이 갔다. 그는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6 그리고 오후 다섯 시쯤에도 나가 보니 또 다른 이들이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7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8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이들에게까지 품삯을 내주시오.’
9 그리하여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10 그래서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11 그것을 받아 들고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12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
13 그러자 그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14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15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16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비오 형제님 축일 축하합니다!
1835년 이탈리아 베네토 지방 리에세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성 비오 교황은 1858년 사제품을 받고 20년 가까이 본당 사목자로 활동하다가 만토바의 주교와 베네치아의 총대주교를 거쳐 1903년 교황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재정립하고자 노력하였으며, 특히 광대한 교회법을 현대화하여 새 법전을 편찬하고, 참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해치며 교회를 위협하는 오류에 맞서 싸웠습니다.
착한 이웃들. 어려운 시기에 우리 밥집을 푸짐하게 채워주고 아름답게 꾸며주는 착한 후원자들과 봉사자들. 참 슬기롭고 아름답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좋은 이웃들 덕분에 바쁘지만 즐겁고 행복합니다.
8월 생일잔치로 신나는 날입니다.
착한 이웃들. 더운 날씨에 힘든 봉사지만 즐겁게 일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참 슬기롭고 아름답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속초의료원 의사들과 속초 보건소 간호사들 고마운 분들이 우리 밥집 식구들 건강을 위해 봉사하러 오는 날입니다. 9시반부터 뇌졸증 예방교육 동영상을 보고, 10시부터 식당에서 무료진료소도 운영합니다.
"하늘 나라"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궁극적인 목적지입니다. 죄와 죽음에서 해방된 구원, 온갖 집착과 苦海에서 벗어난 자유, 깨달음입니다.
포도밭은 五慾(재물욕(財物慾)·명예욕(名譽慾)·식욕(食慾)·수면욕(睡眠慾)·색욕(色慾))
七情(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 즉 기쁨,노여움,슬픔,즐거움,사랑,미움,욕심. 인간의 일곱가지 감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상입니다. 고통의 바다이면서 풍요롭고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초월하는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보여줍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방식에 젖어있는 사람들은 포도밭 임자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새벽에 먼저 온 사람들이나 저녁에 나중에 온 사람들이나 똑같이 약속한 한 데나리온을 주는 포도밭 임자를 도데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의 사랑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욥기에서 어느날 갑자기 의로운 욥이 고난의 상황에 빠진 것을 인과응보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밥집에서는 배고픈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아무 댓가없이 공짜로 아낌없이 다 내어줍니다. 함께 기도하고 봉사하며 지내기를 원하는 우리 생태복지마을 식구들에게도 공짜로 숙식을 제공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이 보여주는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늘 나라' 때문입니다.
관상수도원의 수도자들. 한사람 한사람 알고보면 세속에서 다 보통 이상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사람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청빈 정결(독신) 순명 서원을 하고 온전히 자신을 봉헌하며 그 어려운 공동체생활을 기꺼이 살아가고 있을까요? 그들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방식을 초월하는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오늘 복음말씀의 '하늘 나라'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가진 것을 다 팔아 보물이 숨겨진 밭을 산 것입니다.
벌써 11년동안 어떻게 아무 댓가없이 매일 새벽부터 온 힘과 정성을 다해 밥집에서 배고픈 가난한 식구들을 위해 150인분 가마솥밥을 하고 다양한 요리들을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로 실현되는 '하늘 나라' 때문입니다.
반면에, 요즘 똑똑하고 잘 난 사람들도 참 많습니다. 깜짝깜짝 놀랄 정도입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절대자처럼 군림합니다. 그 교만이 바벨탑을 쌓던 오만한 사람들을 능가합니다. 자비심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습니다. 폭력적입니다. 포악한 독재자 히틀러 같은 연극성 장애자들입니다.
이들은 결코 하느님의 자비를 깨닫지 못합니다.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알지 못합니다.
또한 안타깝게도 쓸데없는 일에 분노하며 불평불만 속에 사는 어리석은 사람들도 여전히 많습니다. 오늘 복음말씀의 비유에서 다른 일꾼들과 비교하면서 '투덜거리는' 어리석은 일꾼들처럼. 그들은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자신의 영광과 권세와 부귀영화를 위해 하느님을 이용하고 사람들을 이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