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내 몸에서 올라오는 아직 식지 않고 김이 서린 여자 냄새를 맡아."
그 냄새는, 언젠가 내가 뒹굴던 너른 침대의 바닥을 뚫고 배어 나오던 나무 냄새도 아니다. 더웠던 여름날 등줄기에 엉기던 땀 냄새도 아니다. 발바닥까지 보디로션을 바른 위에 향수를 덧뿌리고 외출하던 날 나던 푸른 바다 비린내도 아니다. 열심히 화장한 얼굴 모공에 든 파우더 향내도, 귀밑 그늘에서 풍기던 샤넬 NO.5의 잔향도 아니다. 욕망의 냄새라기보다는 긴급한 순간에 놓치기 싫은 밧줄처럼 뭔가 힘이 엄청나게 들어가 있는, 꽉 움켜쥐고 절대로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그냥 처절한 냄새다. 어쩌면 훨씬 더 젊은 날에는 한 번도 맡아본 적 없었던 농익은, 익어 터진 석류 알맹이를 베낀 알알이 검붉어진 여자의 살 냄새인지도 모른다. 그 설명하기 어려운 헝클어진 냄새…. 어디서부터 묻어 나오는 걸까.
그 존재의 어느 장소, 오래된 우물이 풍기는 이끼 내음처럼 잘 들여다보이지 않는 깊이에 살고 있다. 우물 바닥까지 눈길이 닿지 않는 물웅덩이 안에서 세련되어진 욕망이 캄캄한 어둠 밑에 들어있다. 너덜너덜해진 세월의 현실감이 수면 아래까지 느껴지는 허기이다. 물속 깊이 내동댕이쳐진 햇빛이 표면을 할퀴며 절제하는 고열이다. 단순하게 사랑에 관한 근질근질한 몸부림이거나 남자에 관한 과민성 약물 반응 같은 것이 아니라, 햇볕을 향한 입구가 억지로 닫혀 가는 몸뚱이와, 떠밀려 언덕을 걸어 내려가는 인생에 관한, 그런 서늘함이다. 피가 뭉친 혈관 속처럼 끈적끈적하다. 최대의 에너지로 어떤 것들을 움직이게 하고, 느끼게 하고, 멈추지 않게 할 수 있었던 맑은 핏줄에 흐르던 힘이 이제는 없다. 불꽃을 튀며 일하던 젊은 세포들이 떠들썩 인사하며 돌아가고 있다.
"나는 때로, 내 몸을 밟고 걸어가는 뒤꿈치가 거칠어진 맨발 소리를 들어."
몸의 어느 가까운 장소 어디쯤에 여러 갈래의 길이 있고, 길의 통로를 흐르던 뜨거운 것들이 있었어. 모퉁이 어느 곳에서 멈춰진, 펄떡이며 살아 있던 소리였어. 분명 오래 나를 귀찮게 할 거라고 생각했던 손님이었는데 발길이 끊겨버렸어.
갈 길 없어진 장소와 기다릴 일 없는 날짜와 손이 닿지 않는 것들은 날마다 늘어, 미뤄놓은 핑계처럼 감당할 것이 많다. 도로명 새 주소를 들고 있는 것 같다. 해가 잘 들던 몸 구석구석은 빨래가 쉬 마르던 양지 같았는데, 건물 뒤편 잡초처럼 불규칙하게 올라오는 흰 머리카락마저 해가 비껴가는 까닭이다. 관절의 마디들이 스위치를 끄고 셔터를 내린다. 비 내린 여름날 소스라치게 진하던 초록, 코끝에 찡하게 날아오던 짙은 풀내를 잊고 뭉근하게 익어 가을이다. 수분이 말라 가던 아침과 이마가 붉어지던 한낮과 노을이 번지던 저녁, 낙엽의 절박함을 생각했다. 떨어지는 순간까지 자신을 실컷 물들이며 내 충동처럼 자신을 버티고 매달려 있다. 몸에서 호르몬이 말라 가는 냄새, 신경들이 제 역할을 끝내고 하품하는 소리, 남아 배회하는 표정, 태양이 우울할 때 구름을 만드는 소리가 들린다. 바람이 가슴을 드나든다. 몸이 녹슨 자리에 마음이 끼어들 수 있는데 비켜주지 않는다. 소나기가 한바탕 지나가면 가을이 더 깊어질 것이다. 쌉싸름하던 풀냄새가 내 세포의 각질까지 다 먹어 치우던 여름날 저녁의 황홀함이 그립다. 내 방 한 칸에 온통 뿌옇게 차오르던 더위, 알아듣지 못할 언어마저 저녁처럼 지고 있다.
젊음은 여름처럼 짧았다. 어느 해였나 엄마가 아끼시던 수 놓인 면 양산을 잃어버리고, 여름 내내 아까워하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양산은 여자를 많이 닮았다. 장마가 끝난 여름 한낮의 양산 표면은 불볕더위를 고스란히 품는다. 갑자기 닥친 소나기에도 우산 대신 말없이 젖는다. 그래도 툭툭 털고 잘 마른다. 양산의 본질이다. 가슴에 벌겋게 사그라지는 태양을 지녔다. 양산 치마폭을 한 겹 한 겹 접는다. 내 달궈진 젊음도 접는다. 여자도 한나절 뒤로 지고 있다. 저녁 하늘처럼 햇빛 묻은 노을이다.
몇 해 전부터 밤이면 몸에 열이 올라 잠을 잘 수 없다는 친구가 있다. 두 번이나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본 그 친구는, 내가 나갔다가 들어온 적 없는 계절을 잠시 다녀왔다.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 나라의 긴 여름을 들러 왔다. 그 폭염을 어떻게 다 버텼을까. 천둥과 소나기를 넘치게 받아 내고도 소리 낼 수 없었던 그녀의 시간들은 양산 치마폭이 더 넓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지난 여름날은 혹독했을지도 모른다. 살갗이 벗겨지던 불볕의 기억처럼 이제 돌아왔지만 깨기 힘들었던 새벽의 고단함이 남았을까. 느슨해진 가을이 되었지만, 그녀가 들고 있던 양산은 아직도 몸이 뜨거운 모양이다.
저녁이다. 양산을 집어넣는다. 커튼 드리우듯 천천히 어둠이 내린다. 나도 저녁 앞에 도착했다.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가면 뜨거웠던 그 어떤 것도 어차피 식는다. 식어서 먹기 좋은 음식이 있고, 낡아서 귀한 것들도 있다. 되돌릴 수 없는 여자라는 끓는 음식도 식고, 무늬가 곱고 예쁘던 새 양산도 낡는다. 폐경, 그 식어 가는 일은 자연이며, 햇빛 아래선 여자라는 양산 하나가 저절로 낡아가는 일이다. 어디에 두고 왔을까. 젊음이라는 완경, 그 빨간색 양산 하나.
(김희정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