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을 날이 가까웠을 무렵, 나에게는 흔히들 말하는 사춘기가 찾아왔고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이 시시콜콜하면서도 정확한 답이 없어서많은 종교인들과 철학자들의 골머리를 앓게 했던 질문도 사춘기때 했던 생각에 포함되었다. 결국 나도 과거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냥 이럴 것이다'라고 생각한 다음 포기해버렸지만...
그러나 지금.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
'죽음'뒤에 남는 것은 오직 어둠 뿐이다. 그리고 어둠속에서 표류하는 나의 의식. 이것만이 죽음 너머의 모습이다.
"짹짹짹"
푸드드덕.
...정정한다. 죽음 너머에는 새도 한 마리 있는 것 같다. 근데 이건 너무 캄캄하다. 답답하고 짜증스럽다.
새라도 보이면 덜 답답할텐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차츰 '등'에 무언가가 닿아있음을 느꼈다......라는 것은 내게 아직 '몸'이라는게 있다는 뜻?
나는 천천히 눈을 뜨려고 시도했다. 설마 죽었다고 눈 뜨는 방법이 달라지지는 않았겠지?
눈을 뜨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하늘이었다. 맑고 푸른 하늘. 하얀 구름도 몇 개 떠다니고. 사후 세계도 하늘은 똑같구나. 그만 일어나야지. 누워있다가 일어나는 동안 내 시선은 자연스레 내 옷으로 향했다.
뭐야. 아직도 교복? 그렇다면 옷에도 영혼이 있다는 건가?
나는 앉아있는 자세에서 잠시 옷에 영혼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해 생각하다가 스스로를 향해 피식 웃어주었다.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어떤가. 벗고있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
응? 그런데 옷에 피가 한 방울도 안 묻어있네? 영혼 상태가 되면 핏자국은 안 따라오는건가?
상관없어. 신 마음이겠지,뭐.
여느 때와 같은 아침. 나는 한 씨 남매와 등교중이었다. 등교길 중간에 초등학교가 하나 있고,오늘도 초등학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학교로 향하고 있다. 아이들 중 한 아이가 혼자 횡단 보도 앞에 서 있다. 무리지어 오는 아이들은 아직 횡단 보도까지 오지 못했다. 이윽고 파란 불이 켜지고,혼자인 아이는 횡단 보도를 건너려 했다. 횡단 보도가 파란불이면 도로는 당연히 빨간불이다. 빨간불을 보면 차는 멈추는게 의무고. 그런데 저기오는 저 트럭. 멈추려 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더 빨라진다. 내가 현민이보다 반응이 조금 늦었다. 아침부터 아파왔던 어깨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정말 나는 듯 달려가는 현민이의 등을 한 걸음 차이로 뒤따라간다. 아이와 가까워지는 속도만큼 아이의 모습도 순식간에 커졌다. 그 빌어먹을 녀석은 자신에게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몰랐던게 분명하다. 저 미친듯 달려오는 트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우리가 왜 그를 향해 뛰는지.
도대체 왜 거런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거야!
제발! 뒤로 한 발자국이라도 물러나!
하지만 그 자식은 우리가 코 앞까지 다가가는동안 멍한 표정을 한 채 못이라도 박힌 듯 서 있을 뿐이었다.
물론 우리가 그 애의 코 앞까지 다가가는 동안 트럭도 우리 코 앞까지 와 있었다.
현민이는 아이를 안고 구를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달리던 기세 그대로 다리를 들어 아이를 차버렸다. 이제 나는 뭐하나. 같이 달려왔지만 구하려던 아이는 이미 구해졌다.(워낙 세게 차여서 입에서 피를 쏟아도 산 건 산거다.)그리고 우리는 죽게 생겼다.
나도 현민이가 그랬던 것처럼 바로 앞의 현민이를 차 버리면...그러면 나만 죽는다.
그러면...뒤에서 덮치는 수 밖에 없잖아.(어감이 좀 이상하지만 오해는 사양이다.)
나는 몸을 날려서 현민이의 등을 덮쳤다.
운이 좋다면 둘다 살 수 있겠지.
차에 치이는 느낌? 별로 권하고 싶지 않은 느낌이다. 어쨌든 나와 현민이는 운이 좋지 못했나보다. 스스로의 죽음을 깨끗하게 인정하니 머리가 조금은 가벼워진다.
어디 보자...사후 세계는 어떤 모습이지?
나는 머리를 천천히 돌려가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뭐야. 숲이잖아. 나는 많은 나무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내가 앉아있는 곳은 숲에서도 나무가 자라지 않은 작은 공터였다.
이제 뭘하지? 신이 '네 이놈. 살아서 이러이러한 죄를 저질렀으니 이제 그 대가를 받아라!'하기를 기다려야 하나?
살아있을때의 나라면 스스로에게 '참 시덥잖은 개그군' 하며 자책할 발상이었지만 솔직히 나는 아무것도 할 수없다.
처음보는 곳에서 죽은 상태로 혼자있는 것은 상당히 껄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현민이는 어디있지?
"후우..."
숨이 거칠어진다. 숲을 한 시간 정도 해맸더니 지쳐가는게 느껴지는군. 나는 현민이가 나랑 같은 곳으로 왔다는 가설을 세우고 처음 일어났던 공터를 중심으로 현민이를 찾아 해매고 있다.
꼬르르륵...
윽. 설마 내 배에서 나는 소리는 아니겠지?
꼬...르륵
이봐,배. 꼭 그렇게 말대꾸를 해야겠어?
젠장,배고프다. 하늘에는 약간의 붉은 색이 보이려고 한다. 곧 해가 지겠지. 해가 지면 밤이 될테고 그럼 나는 이 숲에서 자야 한다는 소리가 되는건가? 불이라도 피워야겠군.
널린게 나무라서 불 피우기 적당한 나뭇가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자. 이제 초등학교 때 보이 스카우트 단원이었던 경험을 살려서...
넓적한 나뭇가지를 바닥에 깔고 공기가 잘 통하게 반쯤 쪼갠다. 위에 불이 잘 붙도록 마른 풀이나 낙엽을 올려 놓는다. 붙잡고 문지르기 좋은 막대 모양의 나뭇가지를단단히 틀어쥔다. 그리고?
그리고는 무슨 그리고인가. 그저 불이 붙을 때까지 죽어라고 밀어대는거지.
30분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모닥불을 만들 수 있었다.
"에효. 따뜻하긴 한데 배가 더 고파졌네"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서 이마에 늘어붙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지? 배는 고픈데 먹을 것이 없다. 단순하지만 심각한 문제다. 옛날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을 때 나무 껍질을 벗겨 먹었다고 들었지만 내 소화기관은 옛날 사람들 만큼 튼튼하지 않을게 분명하다.
동물 사냥이라는 고전적이고 매력적인 방법도 있지만 실현 불가능 라다는 것은 나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나는 그렇게 숲에서 내가 구할 수 있는 메뉴를 생각해내려고 애쓰면서 나무조각을 모닥불로 던져 넣었다.
내가 해결책을 찾은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나뭇가지를 스무개 정도 던져 넣었을 때 쯤 우연히 앞 쪽에 있는 나무 밑동으로 시선이 갔다. 거기에는 익숙한 무언가가 수북하게 자라있었다.
버섯이다!
나무 아래 자란 버섯 집단을 본 나는 버섯에 무슨 원한이라도 서린 듯 바로 버섯 사냥꾼이 되었다.
눈에 보이는 버섯을 모두 따온 나는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버섯을 꽂고 모닥불에 굽기 시작햇다. 아까 나뭇가지를 많이 던져 넣어서 모닥불은 활활 타올랐고,버섯은 그만큼 빨리 익었다.
자,어느정도 익었으니까 먹어 볼까?
음음. 맛이 괜찮군. 향도 좋고. 쫄깃쫄깃 한게 먹을만 하네? 쌈장이 있었으면 찍어먹는 건데,아쉽다. 쩝
-열심히 먹는 중-
"후아...이제 배가 좀 부르네"
배가 부르니까 목이 말라온다. ...이런! 물은 어디서 구하지?
부스럭.
"...!" 뒤에 무언가가 있다. 혹시 저승 안내인인가? 만약 그렇다면 <저승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하는 직업성 멘트로 시작해서 저승에 대한 지루한 설명을 해주겠지?
"크르르르...!!"
어라? 이봐요. 그게 아니잖...젠장.
나는 고개를 돌려 항의하려던 모습 그대로 굳어 버렸다. 한 무리의 늑대가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배가 몹시 고픈 듯 하얀 이빨들을 가지런히 드러낸 채로)
어쩌지? 어쩌지?
내가 한심스럽게 고민하는 동안에도 빌어먹을 늑대 새끼들은 착실하게 다가왔다.
"크르르...크아앙!"
가장 앞에 있던 늑대가 뛰어 올랐다. 탐욕스럽게 벌어진 입 안에 빨간 혀가 보인다.
씨육!
"캥!"
활공 중이던 늑대의 허리가 급격히 휘었다. 늑대는 보는 내가 아프게 느껴질 만큼 호되게 바닥을 굴렀다. 늑대의 옆구리에는 화살이 한 대 박혀있었다.
이제 겨우 본론으로 들어갔네요...이제부터 본격적인 판타지입니다. 많이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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