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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기공(無記空)이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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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염송] 중에서.. (162편) 20240617
제목 : 본래신(本來身)
[마조에게 방거사가 말호대 "본래의 몸을 어둡히지 말고 화상께서 높이 눈을 뜨십시오" 하니, 마조는 얼른 눈을 내려 떴다. 이에 거사가 말호대 "일등 가는, 줄 없는 거문고를 스님 만이 다룰 줄 아시는군요" 하니, 마조는 얼른 눈을 위로 떴다. 이에 거사가 절을 하니, 마조는 방장으로 돌아갔다. 거사는 곧 뒤로 따라가면서 말호대 "아직껏 교묘함을 자랑 하시더니 끝내 졸하게 되셨습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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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원본)
本來身
馬祖因龐居士問 不昧本來身 請師高着眼 師直下覷 士云 一等沒絃琴 惟師彈得妙 師直上覷 士禮拜 師歸方丈 居士隨後云 過來弄巧成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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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번역본)
【一六二】 마조가, 방거사가 묻되 본래인(*本來身)을 암매(暗昧)하지 말고 스님의 높은 착안(著眼)을 청합니다 함으로 인해 스님이 바로 아래를 보았다. 거사가 이르되 일등(一等; 한 모양으로 평등)의 몰현금(*沒絃琴)은 오직 스님이라야 퉁겨 묘함을 얻습니다. 스님이 바로 위(直上)를 쳐다보았다. 거사가 예배했다. 스님이 방장(*方丈)으로 돌아가는데 거사가 뒤따르며 이르되 적래(適來; 조금 전)에 교묘를 희롱하다가 졸렬(拙劣)를 이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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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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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8년 전 초기에 글을 쓸 때만 해도 이런 글에 누가 관심을 가져 줄까 싶어서 집안 형님과 지인 형님 한 분에게 이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었는데요.
그러다가 주의 사람들과도 같이 보게 되었고 그중에 불자 지인들이 카페에 저의 글을 올려주면서 직접 올려보라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요.
생각보다 지금은 엄청 많은 분들이 동참을 해주시고 계시는데요.
이 자리를 빌려서 매우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지인분들은 거의가 불교와는 상관이 없으신 분들이지만 그래도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주시고 따라 해 주셔서 늘 감사드리고 보람을 느끼고 있답니다.🙏🏻
수행이라는 것이 뭐 별거겠습니까?
모두가 참 나를 찾고자 하는 것이고 부처가 되기 전까지는 현명하고 지혜롭게 마음 편하게 세상을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지요.
아무쪼록 늘 건강하시고 무엇보다 이것은 조금도 거짓이 아니니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이 꼭 성불을 이루시길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 이 글은 주로 수행을 처음 하시는 분들을 위주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쉽게 풀어서 설명하느라 글이 좀 길답니다.😅
ㅡ♡
(본문 해설)
오늘 내용도 마조 선사와 방 거사라는 분과의 선문답(禪問答) 내용인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저번 내용에서 방 거사가 마조를 대하는 말투가 꽤 무뢰하고 건방지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었는데요?
그런데 오늘 보니까 방 거사와 마조는 농담(弄談)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분이 가까운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농교성졸(弄巧成拙/농담)란 글자도 그렇고 만나자마자 선문답을 나눈 뒤 다정하게 같이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 등의 전체 분위기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방 거사도 마조가 인정할 만큼 보통은 넘는 사람으로 보이고요.
제 경우는 불교 쪽 공부를 전혀 안 해본 상태에서 선문염송을 보는 경우라 마조나 방 거사나 그 외분들도 여기서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요.
오늘 보니까 이 두 분의 대화 내용이 수준급 이상입니다.^^ 👍🏻
저는 개인적으로 그동안 선문염송을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스님이 있었다면 영가 스님을 꼽고 있는데요.^^
특히 월병과 지팡이를 손에 들고 육조 혜능 주의를 세바퀴 도는 모습은 저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답니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오늘 마조 선사의 선답도 저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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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와 육조의 참고 자료》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m.cafe.daum.net/119sh/XASd/107?searchView=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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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친분이 있어 보이는 이유는 만나자마자 마조에게
"본성을 어지럽히지 말고 정신 차리고 잘 관찰하라"
라고 하면서 요즘 말로 하면 깝죽거리니까 마조는 이런 무뢰한 선문을 받아주고 있고 더군다나 마조가 방으로 들어가니까 바로 방 거사도 뒤따라 같이 들어가는 모습이 서로 친한 사이가 아니면 어려운 모습이지요? ^^
그리고 방 거사가 마조보다 연배(年輩)로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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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위에 있는 본문 내용 중에서 지은이들이 잘못 해석한 부분이 있어서 먼저 짚고 넘어가 보겠습니다.
맨 위에 있는 본문 내용은 제가 가지고 있는 선문염송 책 내용이고 한문 아래에 있는 (또 다른 번역본)은 다른 분이 해석하신 자료를 찾아서 같이 비교해 보시라고 올려드리고 있는데요.
오늘은 두 군데 다 잘못 해석하신 부분이 하나씩 있었답니다?^^
가끔은 있는 일인데요.
대부분은 한문은 많이들 알고 계시지만 문법이나 중국 현지에서 쓰는 뜻을 모르고 실수하는 경우인데요.
이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요.
위에 것은 한문 문법을 모르시다 보니까 반대로 해석하신 것으로 보이고요?
아래 것은 본성 자리를 모르시다 보니까 잘못 해석하신 것으로 보여집니다?
위에 내용 중 잘못 해석하신 부분은
[마조는 방장으로 돌아갔다. 거사는 곧 뒤로 따라가면서 말호대 "아직껏 교묘함을 자랑하시더니 끝내 졸하게 되셨습니다" 하였다.]
라고 해석하신 부분이 반대로 해석하신 거랍니다.
왜냐하면 위에 한문 내용은 방 거사가 마조에게 한 말이 아니라 마조가 방으로 들어가니까 방 거사도 뛰따라 들어가면서 혼자 말로 자신에게
"내가 잔재주를 피우다가 일을 망쳤습니다."
라는 내용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서로 친한 관계이다 보니 방 거사가 선문으로 시비 아닌 시비를 거니까 마조가 보기 좋게 맞받아주자 방 거사가 마조의 뒤를 따르면서 혼자 말로 구시렁거리면서..
쉽게 말하면
"괜히 내가 깝죽거리다가 망신만 당했습니다 ^.^~"
하면서 혼자 구시렁거리면서 마조를 뒤따라가는 장면이랍니다.
왜냐하면 한문 원본을 보면?
[居士隨後云 過來弄巧成拙]
라고 쓰여 있었는데요.
여기에는 "방 거사가 뒤를 따라갔다(居士隨後云)"라는 글자만 있지 방 거사가 [말했다(說)]라는 글자는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방 거사가 마조에게 하는 말이 되려면 반드시 앞에
"방 거사가 말하되(說)~어쩌고저쩌고" 하면서 (說) 자가 들어가든지?
또는
앞에 있는 (請師高着眼)라는 내용처럼 내용 앞에 반드시
"청(請)~ 어쩌고저쩌고" 하는 식으로 청(請) 자가 있어야 하는데?
한문 원문에는 전혀 이런 내용이 없는 것으로 보아 방 거사가 혼자 말로 마조의 뒤를 따라가면서 하는 말이 된답니다.
중국어는 우리 입소리와는 달리 뜻글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특히 [주어]와 [목적어]가 빠져 있으면 누가 어떤 목적으로 말을 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답니다.
그래서
[거사는 곧 뒤로 따라가면서 말호대 "아직껏 교묘함을 자랑하시더니 끝내 졸하게 되셨습니다" 하였다.]
라는 해석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왜냐하면 [되셨습니다]라는 해석 자체가 마조에게 한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해석도 지은이가 반대로 해석하신 거랍니다.
본문 내용은 방 거사가 마조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방 거사 자신에게 구시렁거리면서 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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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래에 있는 (또 다른 번역본) 내용 안에는 중국 안에서 쓰는 뜻을 알지 못해서 실수하신 건데요.
본문 내용 해석 중에
일등(一等)을 [한 모양으로 평등]이라고 해석하시면 안 된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해석하면 앞뒤 말이 맞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뒤에 나오는 몰현금(沒絃琴)이라는 뜻은 본성을 비유한 내용이라 그렇습니다.
몰현금(沒絃琴)라는 뜻은 [줄이 없는 거문고]라는 뜻인데요.
중국 사람들에게 몰현금(沒絃琴)이라는 의미는 즐겁고 우아함을 뜻하는 비유로 다른 사람들과 성질이 다른 감정을 표현하는 데 쓰는 은유법이랍니다.
본성 자리도 늘 즐겁고 우아하고 일반 사람들과는 성질이 전혀 다른 마음이기 때문에 몰현금(沒絃琴)을 비유로 본성 자리를 표현한 것이랍니다.
《중국 자료》
몰현금(沒絃琴)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搜索智能精选】https://mr.baidu.com/r/1kjZtwJhK12?f=cp&u=b55dcb2d6cf3a0db
[문학에서 끈 없는 하프는 즐거움, 우아함을 추구하거나 이질적인(성질이 다른) 감정을 표현하는 데 대한 은유로 자주 사용됩니다.]
따라서 (一等)이라는 해석을 (한 모양으로 평등)이라고 해석을 하면 앞뒤 내용이 어긋난답니다.
왜냐하면 지금 내용은 방 거사가 마조의 선답을 칭찬하는 내용인데 여기에다가?
"마조 당신은 평등한 본성(마음)을 얻었습니다"
하면 말이 이상하잖아요?
그래서 여기서는 (一等)의 해석을?
"최고의~"
"으뜸가는~"
"제일가는~"
등으로 해석을 하셔야 한답니다.
이렇게 말이지요.
"마조 당신은 최고의 본성(마음)을 얻었습니다"
또는
"마조 당신은 으뜸가는 본성(마음)을 얻었습니다"
또는
"마조 당신은 제일가는 본성(마음)을 얻었습니다"
라고 해석을 하셔야 앞뒤 내용이 맞는답니다.
항상 말씀드립니다만 선문염송은 물론 옛 어른들이 남기신 글들은 대부분 중국 당나라 때 지은 글들이기 때문에
그 당시에 이 글자는 어떤 뜻으로 쓰였는지? 등을 [중국어 사전]이나 [고어사전] 자료를 잘 찾아보고 해석을 하셔야 한답니다.
당나라 때 글들은 자료를 찾아보아도 없는 자료들이 많이 있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자료들 만이라도 찾아서 해석을 하셔야 한답니다.
없는 자료들은 아무리 중국 내 대학자라 하더라도 모를 수 박에 없는 것이고요.
당 나라 때 살아보질 않았는데 자료가 남아 있지 않으면 어떻게 그 시대 글자들을 알 수가 있겠어요?
그래도 남아있는 자료들 만이라도 찾아서 해석을 하셔야 한답니다.
지금처럼 우리들 한문식으로 막 해석을 하시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불교는 모양도 형체도 없는 마음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하셔야 한답니다.
♡
그러면 전체 내용을 같이 살펴보겠습니다.^^
하루는 방가사가 마조에게 묻되 (이 부분도 [묻되]가 아니라 [말하되]로 해야 함^^)
[본래의 몸을 어둡히지 말고 화상께서 높이 눈을 뜨십시오]
이 말은 요즘 말로 하면
[본성을 어지럽히지 말고 정신 차리고 본성을 잘 관찰하라]
는 말이랍니다.
그리고 본성을 정신 차리고 보라는 말은 깨달은 사람에게나 할 수 있는 말이고요.
이 내용 자체가 벌써 마조를 인정하는 문구랍니다.
지금식으로 예로 들면 국가대표 운동선수 친구에게 "야, 자만하지 말고 몸 관리 잘 해라" 하는 것과 같은 거랍니다.
마찬가지로 방 거사도 지금 마조에게 '본성 자리를 정신 차리고 잘 챙기라'는 뜻으로 한 말이랍니다.
그리고 이 부분이 방 거사가 마조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부분이고요.
왜냐하면 자기보다 나이 많은 그것도 당시의 대선사 앞에서 이런 식으로 얘기했다간 돌아갈 때 대문 밖에서 제자들에게 쌍코피 터지기 십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당나라 때 승려들은 자기들끼리 죽고 죽이는 일들도 흔했거든요.
달마대사도 그중에 하나이고요.
육조 혜능은 가까스로 도망쳐서 목숨은 건졌고요.
중국 사람들은 지금도 사람을 너무 쉽게 죽인답니다.
우리 같으면 별것도 아닌데 모욕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면 얼굴이 빨개 가지고 눈동자는 창백해져서 앞도 아니고 뒤에서 그러는 경우인데요.
중국에서는 말조심해야지 우리처럼 막 그렇게 욕을 하고 그러면 큰일 난답니다.^^
중국에서 가장 흔히 하는 심한 욕이 뭔지 혹시 아시나요?
你傻吗? (너 바보냐?)
你有病吗?(너 병 있냐?)
이 정도의 욕을 하는 동내에서 만약에
"니 애미~" 어쩌고저쩌고하면서 욕을 한다든지?
아니면
"개~" 어쩌고저쩌고하면서 욕을 하면 떼거지로 몰려와서 거시기 한답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많이 죽는 것이고요.
우리는 그래도 판사가 판결하는 법정 내 장면들은 잘 안 보여 주잖아요.
그러나 중국은 사건사고가 얼마나 많은지 24시간 법정 장면을 TV로 방영하는 채널이 따로 있을 정도랍니다.
국민들이 보고 이런 짓들을 하지 마라 이거지요.
그런 동내에서 그것도 규율이 가장 심했던 당나라 때 방 거사가 마조에게 서로 친하지도 않는데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간 제자들이 가만히 두지 않았을 거라는 것인데요.
아무튼 그랬더니 마조가?
[얼른 눈을 내려 떴다.]
는 것인데요?^^
이 행동은 본성을 관찰(보는) 하는 행위랍니다.
방 거사가 "본성을 어지럽히지 말고 정신 차리고 잘 관찰하라"라고 하니까 정신 차리고 본성을 보는 자세를 취했던 것입니다.
이 내용은 본성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내용인데요.
본성을 관찰할 때(볼 때)에는 눈을 치켜뜨는 것보다 아래로 살짝 내려보는 것이 본성 자리가 훨씬 잘 잡힌답니다. (진실)
그랬더니 방 거사의 대답이?
[일등 가는 줄 없는 거문고를 스님 만이 다룰 줄 아시는군요.]
했다는 것인데요 이 말은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마조 당신만이 제일가는 줄 없는 거문고 즉 본성 자리를 잘 다룰 줄 아시는군요.]
라는 말이랍니다.
그랬더니 마조가 [얼른 눈을 위로 떴다.]는 것입니다?
이 내용이 마조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는 내용인데요.^^
이 행위는 지혜의 눈으로 세상을 관찰하는 행위랍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방 거사가 지금 자기 보고 [본성 자리를 잘 다룰 줄 아시는군요.] 하니까 눈을 들어 세상을 보면서 본성의 지혜를 다루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모양이랍니다.
(그리고 지금 이 내용은 견성(見性) 즉 본성을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하기가 힘든 내용이고요.)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전혀 딴사람이 된 것 같다?"라는 소리와 함게 "갑자기 엄청 똑똑해진 것 같다?"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데요.^^
이것은 머리가 똑똑해진 것이 아니라 지혜의 눈이 트인 것이랍니다.
지혜의 눈이 트이면 많은 것들을 보고 마음으로 알게 된답니다.
아무리 주리반다가 같은 바보라 하더라도..
육조 혜능과 같은 까막눈이라 하더라도..
깨닫고 지혜의 눈이 트이면 엄청 똑똑해지는 것처럼 보인답니다.
사실은 머리가 똑똑해진 것이 아니라 마음의 지혜가 트인 것이랍니다. (진실)
그냥 보면 많은 것을 알 수 있으니까요.
괜히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까 봐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사람들도 그냥 보면 많은 것들을 척하고 보인답니다.
물론 성문사과(聲聞四果)에 따라 차등은 있지만 그렇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눈을 아래로 내려 뜨는 행위는 본성을 관찰하는 행위이고 눈을 위로 뜨는 행위는 세상의 것들을 지혜의 눈으로 관찰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방 거사가 [큰 절을 하니 마조는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는 것인데요.
이 내용으로 보아 방 거사도 보통은 넘는 깨달은 사람으로 저는 보고 있는데요.^^
왜냐하면 이런 행동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은 자신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방 거사도 같이 곧바로 마조 뒤를 따라가면서 말하길..
농교성졸(弄巧成拙) 즉 [지나치게 기교를 부리다가 도리어 서툴게 되었다]라고 자신을 낮추면서 하는 말이랍니다.
혼자 말로 마조 뒤를 따르면 구시렁거리면서 말이지요.
지금 식으로 쉽게 말하면?
"아.. 괜히 말을 붙였다가 본전도 못 건졌네..^^"
하면서 너스레를 떠는 모습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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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 설명)
우리가 여기서 배워야 할 것은 알아차림을 할 때에는 눈의 위치를 지긋이 바닥에 떨구는 것입니다.
특히 초보자분들은 조용한 곳을 골라서 혼자 이렇게 알아차림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여섯 가지의 감각 기능 중에서 특히 눈과 귀를 통해 오온(몸의 기능)이 시끄러워지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눈과 귀를 통해 오온이 시끄럽잖아요?
오온(몸의 기능들)이 시끄러우면 마음도 자동으로 시끄러워지는 것처럼 보이고요.
마음이 시끄러워지면 수행이고 뭐고 죽도 밥도 안 되고요.^^
그래서 초보자분들은 이 고비를 잘 넘기셔야 한답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잘 안되지만 하다 보면 아주 잘 되니까요.
이렇게 알아차림이 확립(숙달) 되면 시장통같이 시끄럽고 번잡한 곳에서도 알아차림이 잘 된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꼭 마음을 알아차리고 비우고 버리는데 도전해 보십시오.
제 경우는 이렇게 해서 빨리 됐답니다.
지금도 많은 수행자들이 알아차림에만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답니다.
가장 빠른 방법은 마음을 직접 상대로 비우고 버리는 방법이랍니다.
그러나 이것이 쉽게 안되다 보니까 방편으로 여러 가지 알아차림이 나온 것이고요.
나는 전혀 수행을 해본 적이 없다 하시는 분들은?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으로 해보십시오.
저도 이것으로 했답니다.
시간이 날 때에는 혼자 좌선을 하고 눈을 지긋이 바닥에 떨구고 마음보기를 하셔도 되고 (걷거나 움직이면서 해도 됨)
간화선으로 하시는 분들은 마찬가지로 눈을 지긋이 바닥에 떨구고 화두를 보셔도 되고
위파사나로 하시는 분들은 각자가 하시는 대상에 현재 이 순간을 알아차리셔도 되고
이것저것 다 귀찮은 분들은 "하늘 천 따지..~" 나 "일~이~삼~사.."를 하셔도 된답니다.^^
왜냐하면 알아차림을 하는 이유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 위함이니까요.
오늘 본문 내용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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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법에 대한 내용, 질문이 있는 경우 질문 내용
이 란은 우리들의 란인데요.
질문이나 세상살이 이야기 등을 자유롭게 나누는 란이랍니다.
그리고 내용 끝에 (진실)이라는 표시는 제가 체험한 내용들과 마음에 느끼고 있는 것들에 대한 [동의] 표시랍니다.
ㅡ♡
오늘 내용도 지난번에 질문답을 나누었던 법우님과의 상담 내용인데요.
내용이 좋아서 추가로 올려봅니다.^^
이분은 정말 열심히 하시는 분이랍니다.👍🏻
질문 내용만 들어보아도 금방 알 수 있거든요.^^
그리고 믿고 따라 해 주어서 감사드리고 있답니다.
저도 이분만큼은 꼭 이 자리를 맛보게 하고 싶은 마음으로 답장을 보내드리고 있는데요.
지금처럼만 하면 꼭 터질 것 같습니다.👍🏻
♡
(질문)
(1)
안녕하세요? 선배님.
역경계(자꾸 피하고 싶고 화나게 만드는 경우) 관련 경전 내용에 대해 선배님의 고견을 청합니다.
<사례 1>
어느 날 아침 왕사성으로 탁발하러 가신 부처님이 골목길에서 데바닷타와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슬그머니 다른 골목으로 돌아서 가시려고 했습니다. 이에 아난 존자가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이 골목에서 떠나시려고 하십니까?”
“데바닷타가 이 골목에 있구나. 그래서 피하려는 것이다.”
아난 존자는 참으로 의아해서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데바닷타가 두렵습니까?”
“나는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저 나쁜 사람과 만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데바닷타더러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를 다른 곳으로 가게 하고픈 마음은 내게 없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다가 자기가 가서 살고 싶은 곳에 가서 살면 그뿐이다.”
아난 존자가 다시 여쭈었습니다.
“그렇다면 데바닷타가 여래보다 더 뛰어난 인물입니까?”
“저 어리석고 미혹한 사람과는 할 수 있다면 만나지 않는 것이 좋다.”
세존께서 이렇게 답하신 뒤에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어리석은 사람과는 만나지 말고 / 어리석은 사람과는 함께 일하지도 말라. / 또한 그런 이와 뭔가를 따지지도 말며 / 일의 옳고 그름으로 다투지도 말라.”
- (『증일아함경』 제13권)
<사례 2>
우데나 왕의 두 번째 왕비인 마간디야는 예전에 부처님으로부터 자신의 미모가 무시당하자 복수를 꿈꾸게 됩니다. 그리하여 왕비가 된 이후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향해 욕설을 퍼붓도록 성 안 사람들을 부추겼습니다. 부처님과 스님들이 아침 일찍 탁발하러 성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들(특히 외도들)이 “강도, 못된 놈, 바보, 낙타, 황소, 얼간이, 지옥에 갈 자, 짐승 같은 자, 구제받지 못할 자,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 받을 자”라며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스님들은 탁발은커녕 비난과 욕설에 쫓기듯 승원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이에 아난 존자가 부처님께 청했습니다.
“이 도시 사람들이 저희에게 욕설과 비방을 퍼붓고 있으니 다른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자 세존께서 답하셨습니다.
“만약 다른 곳으로 갔다가 그곳에서도 욕설과 비방을 퍼붓는다면 어디로 가야 하지?”
“그러면 또 다른 곳으로 가야겠지요.”
“그곳에서도 또 욕설과 비방을 퍼붓는다면?”
“그때는 또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가야겠지요.”
부처님은 이에 답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어려움이 일어나면 어려움이 가라앉을 때까지 그곳에서 기다려야 한다. 어려움이 가라앉은 다음에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 전쟁터에 나간 코끼리가 쏟아지는 화살을 참고 견디듯이, 여래는 사악한 자들이 내뱉는 말을 참고 견딘다.”
이렇게 하여 설하신 게송이 바로 『법구경』에 실려 있으니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쟁터에 나간 코끼리가 / 쏟아지는 화살을 참고 견디듯 / 나는 욕설을 참고 견디리라. / (중략)
/ 날아오는 비난의 화살을 잘 참는 사람이 / 자신을 가장 잘 길들인 사람이다. / 노새나 준마나 힘센 코끼리도 길들이면 훌륭하지만 / 자신을 길들인 사람이 가장 훌륭하다.”
- (『법구경』, 제320~322게송, 무념 응진 역 『법구경이야기』제3권 참고)
(질문 1) 상기 각 사례별 부처님의 그 때 실제 마음 상태는 무엇이었을 것이라고 봅니까?
(질문 2) 상기 사례에서 수행자로서 배울 교훈은 무엇입니까?
감사합니다. 더워지기 시작하는 요즈음 건강하셔요.
(2)
그리고 저는 요즈음 일상에서 '현재 이순간을 알아차리고 있는 또 다른 나에게로 의식을 향하려고 노력'하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온이 일어남을 알아차리면 바로 의식의 화염 방사기로 그걸 녹여버리고 와이퍼질로 정리해 버립니다. 그게 효과가 좋습니다. 그래서 전에보다 수월하게 처리되어서 편합니다.
감사합니다.
♡
(답변)
(1)
하하 하하 그러셨군요?😁
저도 그렇게 하고 있답니다.
저도 잘 되고 있는 편이고요.(최고)
앞 전에 질문 주신 답변인데요.
시간 나실 때 천천히 읽어 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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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늘도 답변이 많이 늦었네요.^^
제가 본래 이런 글을 쓰던 사람이 아니다 보니까 답장을 빨리해 주고 나면 꼭 "이 내용은 이렇게 표현을 해서 보내줬다면 상대가 더 이해하기 좋았을 건데.." 하는 아쉬움이 남 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시간을 두고 답장을 보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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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번 답변을 드려보겠습니다.
보내 주신 내용은 저도 지금 부처님처럼 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하다 보면 부처님처럼 별의별 일들이 다 있는데요.
특히 제 경우는 출가자가 아닌 재가자다 보니까.
간혹 별의별 사람들이 다 집적거리고 있지요?^^
물론 대부분은 호응을 해 주시고 있지만 간혹 그런 사람들이 있답니다.
지금 보내 주신 내용들도 그런 종류의 일환이고요.
그러나 이것은 법을 전하자면 어찌할 수 없답니다.
이러한 것이 두렵고 마음이 쓰인다면 아예 이런 일을 하지 말아지요?
제 경우도 죽이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여럿 있었는데요.^^
왜냐하면 그분들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불교계에서 크게 이름난 자신들이 섬기고 있는 스승을 향해 천도재나 명패 봉안이나 친견비 등을 받으면 그런 선지식인은 있을 수 없다느니 들여우(가짜)니 하면서 제가 떠들어 대고 있으니 그분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역정을 내는 것이지요?
저라도 깨닫기 전이라면 그랬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얘기들이 모두 그분들에게는 밥줄이 끊기는 얘기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육두문자를 쓰시는 건데요.^^
이럴때에는 제 경우도 살살달래거나 그래도 안되면 피하거나 돌아간답니다.
그러는 이유는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기도 하고,
그런 패기와 열정이 다음 생에는 크게 작용을 하기 때문에 그것을 꺾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있고,
무엇보다 자칫 심하게 몰아붙이면 불 종자를 끊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그러면 같은 수행자로서 이보다 더 큰 죄가 없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부처님처럼 피하거나 돌아가는 것이 상책이라 할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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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제 경우도 부처님처럼 외도에 빠져있는 큰 어른들을 만날 때에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랍니다.
특히 천도재나 친견비 등의 외도를 걷고 있는 어른들에게는 심하게 몰아붙이는 경우이지요.
요즘은 사주나 관상 등에 빠져 있는 어른들도 많이 있고요.
이런 분들을 일부로 찾아가는 경우는 없지만 이런 분들에게 주의에서 소개를 하며 인가를 받으라고 하면 제 경우는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만난답니다.
왜냐하면 이런 분들은 이렇게 이름 있는 어른들은 부처님 법에 크게 악영향을 끼치고 있고 불 종자를 끊는 일들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법우님도 생각을 해보십시오?
선지식이라 하는 사람들이 천도재나 명패 봉안만 하면 극락왕생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누가 수행을 하려 할까요?
이것이 불 종자를 끊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초기에는 이런 제 입을 막기 위해서 가깝게 지내던 도반들조차도 아주 유명한 어른들을 저에게 소개해 주어서 인가를 받아보라는 법우들도 여럿 있었는데요?
이럴 때에는 단 한 번도 피하거나 돌아가지를 않았답니다.
그리고 그런 어른들 앞에서는 아주 당돌하고 당당하게 법담이든 선문답이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든 나눈답니다.
간혹 선문답 등으로 저를 찍어 눌으려 하면 오히려 제가 찍어 누르는 편이였고요.
제 쪽에서는 그분들이 저를 인가해 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가 그분에게 인가를 줄 수가 없었답니다.
왜냐하면 불법은 마음 법인데 그런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선지식인 흉내를 낼 수 있겠느냐 이거지요?
불교인이라면 누구나 다 알만한 어느 어른은 만나기 전에 저의 사주와 관상을 물어 오셨던 분도 있었는데요?^^
종무소 직원은 친견비도 30만 원 이상을 요구했었고요.
이런 경우에 제 경우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코끼리처럼 몰아붙인답니다.
그것도 여러 제자들과 대중들 앞에서 말이지요?
이 이상은 더 말씀드리지는 않겠지만 본성을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자비심만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진짜로 깨닫고 증득을 했다면 불법 앞에서는 설령 부처님 앞이라도 당당할 수 있어야 한답니다.
그러려면 불법에 어긋나는 짓들은 출가자라면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고요.
그러면 부처님 아니라 그 누구 앞에서라도 당당할 수가 있는 것이고요.
그러나 아직 이 법을 아직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하심(下心)을 해야 한답니다.
출가자라면 더욱더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고요.
불법을 전할 때에는 항상 여래의 방에서 여래의 옷을 입고 여래의 자리에 앉아서 법을 전해야 한답니다.
법우님도 남들에게 이 법을 알려 줄 때에는 그렇게 하셔야 하고요.
지금 어른들처럼 건방지게 앉아서 대중들에게 삼배를 청하거나, 자신에게 하심을 하라고 하거나, 천도재를 지내주면 극락 왕생할 수 있다고 시장통에 약장수처럼 사기나 치고 있는 어른들이라면 이런 어른들이 그 누구 앞에선 들 떳떳할 수가 있을까요?
보내주신 내용도 그런 내용이랍니다.
부처님도 외도들 앞에서는 아주 당당하고 매몰차게 불법을 전하셨지만 보내 주신 자료처럼 아직 불법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중생들에게는 이 법을 전하지 않았는데요.
더군다나 자신을 헷고지 하거나 비난하는 중생들 같은 경우는 맞서지 않고 지금처럼 피하거나 돌아가셨답니다.
그 이유는 자칫 잘못 몰아붙였다가는 영원히 불 종자를 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불법은 마음 법이기 때문에 상대의 마음에 불법은 거짓이라는 마음이 뿌리내리게 되면 자칫 불 종자를 끊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만약 부처라는 사람이 그런 결과를 낳게 된다면 그 사람은 부처라 할 수 없겠지요.
저도 그래서 엄청 주의를 하면서 이 법을 전하고 있는 것이고요.
그래서 부처님도 지금 데바닷타(제바달다)나 마간디야를 위해서 피하고 돌아가는 거랍니다.
왜냐하면 데바닷타(제바달다)나 마간디야에게 계속해서 악한 마음을 심어주지 않기 위해서 피해 다니고 돌아가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겠어요?
상대는 지금 나에게 화가 나 있는데 그 앞에 내가 나타나면 상대의 마음에는 또 더 화가 일어날 것이 뻔한데요?
그런 마음으로 부처님을 보면 과거에 원한들 때문에 (?팔 ?팔) 할 것이 뻔한데요?
상대의 마음에 그런 화가 일어나면 상대에게 또 더 큰 업식과 과보를 안겨주는 격인데 부처 된 입장에서는 그럴 수가 없지요.
왜냐하면 과거에 나로 인해 상대의 마음이 그렇게 된 것이니까요.
먼저 아셔야 할 것은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하거나 겪고 있는지를 잘 알게 된답니다.
왜냐하면 이 법은 마음 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음을 깨달았다는 것은 지난 과거 생의 마음이든 현생의 마음이든 잘 알게 되었다는 뜻인데 그것을 모른다면 마음을 깨달았다 할 수 없겠지요.
그래서 "마음을 깨달았다" 하는 거랍니다.
마음을 깨닫게 되면 마음에 관계되는 것들은 거의 대부분 잘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과거 생이나 현생에 관한 것들도 그중에 하나이고요.
그리고 또 마음 법에는 인연법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뉘게 된답니다.
예를 들면 내가 상대에게 또는 상대가 나에게 지금 내용처럼 원한의 마음, 증오의 마음, 복수의 마음, 혐오의 마음 등의 나쁜 마음도 뿌리내리게 되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 다음 생으로도 이어지는 것이지요.
반대로 내가 상대에게 또는 상대가 나에게 사랑의 마음, 존경의 마음, 자비의 마음 등의 좋은 마음 등을 서로에게 심어주었다면 이것이 씨앗이 되어 다음 생이든 현생에서든 반드시 영향을 준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재벌이나 성공한 사람들의 과거 생을 보면 그만한 인복을 쌓았다는 증거가 된답니다.
어느 성공이던 성공은 나만 잘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마음 법은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서로에게 인연법에 따라 좋은 인연이든 나쁜 인연이든 서로 끌고 끌리는 작용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살다 보면 사람이든 물건이든 동물이든 괜히 마음이 끌리는 경우가 많잖아요?
이런 것과 비슷하답니다.
이런 경우에 깨닫게 되면 지금 부처님처럼 피해야 하는지 돌아가야 하는지 맞서야 하는지 등을 알 수가 있지만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마음이 끌리는 대로 저팔계처럼 막 끌려들어 가서 더 큰 업식과 더 큰 과보를 짓게 될 수박에 없답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끌리는 대로 다 끌려다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마음 법을 모르니까요?
마치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나도 모르게 담배에 손이 가듯이 말이지요.
이렇게 인연법이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계속 매 생마다 인연을 맺을 때마다 따따불로 업식과 과보만 늘어나는 것이랍니다.
그럴 수 박에요? 예를 들면 전생에 과보가 열 개 있었다면 현생에도 과보가 있었을 것이고 다음 생에도 과보가 있을 것을 것이 뻔한데 매 생이 이어질 때마다 과보만 늘어날 수 박에 더 있겠어요?
그래서 깨달은 사람들은 지금 부처님처럼 피하거나 피하지 못하면 돌아서간답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인연법에 얽히지 않으려고요.
저도 그중에 하나이고요.
부처님처럼 깨닫게 되면 계속 인연법에 얽히게 되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괴로움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게 된답니다.
그러나 아직 깨닫지 못한 상대의 마음은 좋은 경우든 나쁜 경우든 물 위에 떠있는 기름처럼 나에게 집착하고 엉켜 붙겠지만
인연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계속해서 법 인연 외에는 인연들을 내친답니다.
오죽하면 데바닷타(제바달다)와 부처님의 경우처럼 과거 생에 법으로 이어진 인연까지도 이 정도일까요?
아무리 불법으로 맺어진 사이라 하더라도 상대의 마음에 악한 마음을 심어 주게 되면 법으로 또 만날 수밖에 없답니다.
제 경우는 차라리 아예 버리는 쪽으로 택하고 있는데요.
왜냐하면 만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버리게 되면 가장 깔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도 아니다 싶으면 버리고, 물건도 아니다 싶으면 버리고, 수행에 방해되는 모든 것들은 버리고 있답니다.
반대로 불법과 연관이 있는 분들은 인연을 끊지 않고 법 인연으로 이어 나가고 있고요.
왜냐하면 저도 이분들에게 보고 배워야 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버리는 것에는 가족도 포함이 된답니다.
왜냐면 가족도 현생에서나 가족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과거 생이든 현생이든 보내 주신 내용처럼 내가 상대에게 어떤 마음을 심어주느냐?에 따라서 상대가 나에게 또는 내가 상대에게 은인이 되기도 하고 원수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보내주신 내용처럼 부처님과 데바닷타(제바달다)와 마간디야와의 인연도 그중에 하나인 것이고요.
그리고 부처가 되는 과정은 좋은 인연조차도 버려야 하는 것이고요.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그 어떠한 것도 버리셔야 한답니다.
나중에 최종 단계에 들어서는 사랑하는 가족들까지도 말이지요.
일반 사람들 입장에서는 비정하고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수행자들이 부처가 되는 과정이랍니다.
그래서 버리기가 힘들면 제일 좋은 방법은 떨어져서 사는 것이 가장 좋답니다.
혼자 살면서 수행을 이어 나가면 더 좋은 것이고요.
왜냐하면 그렇게 안 하면 계속해서 인연법으로 얽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눈앞에 보이는데 어떻게 안 얽힐 수가 있을까요?
그래서 부처님도 가족들을 버리신 거고요.
이렇게 안 하면 아무리 부처님이라 해도 보내 주신 내용처럼 그런 악연으로 얽힐 수 박에 없답니다.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끊어 내지 않으면 내려놓고 버리지 않으면 절대로 부처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맨 끝에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답니다.
세상이냐? 부처냐? 이것이 수행자들이 수행 마지막에 선택해야 하는 길이랍니다.
그래서 싯타르타도 부처를 선택한 것이고요.
왜냐하면 일반 사람들은 아직 모르겠지만 인연 법이라는 것이 깨닫고 보면 정말이지 엄청나게 질기고 무서운 것이라서 이번에 못 끓어내면 또 인연법으로 얽혀서 스스로 헤어 나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지금 과거에 인연들을 피하면서 끊어내고 있는 것이고요.
아무리 부처라 해도 어쩔 수가 없답니다.
보내주신 두 내용이 모두 인연법(과보)으로 얽혀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더군다나 마간디야와의 인연(과보)은 부처가 되고 나서의 일이기도 하고요.
부처님도 "아차!" 하셨을 겁니다.^^
왜냐하면 시집도 안 간 처자에게 그것도 처자의 아버지 앞에서 이유야 어떻든?
"똥과 오줌과 피와 고름으로 가득 찬 여자를 내가 어찌 받아들인다고 생각하느냐?"
라고 했으니 당연히 구업(口業)이 과보(果報)로 이어져 상대의 마음에 악한 마음을 심어 주었으니 당연히 깨달은 부처님 입장에서는 피할 수 박에요.
저라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아니면 바로 정중하게 사과를 해서 마간디야의 마음을 풀어 주었던지요.
그래서 깨닫게 되면 제일 먼저 하게 되는 것이 참회(懺悔)랍니다.
과거 생이나 현생에서 내가 했던 많은 것들이 너무나 부끄럽고 죄스러워서 스스로 눈물을 흘리면서 참회를 하게 된답니다.
저도 그중에 하나이고요.
그리고 그 후로는 스스로 자숙(自肅) 하게 되고 겸손해지게 되고 말 수도 많이 줄어들게 된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들만 보더라도 상대가 진짜로 깨달았는지 아닌지도 알 수가 있는 기준점이 된답니다.
그런데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천도재나 명패 봉안이나 더군다나 중생들이 마음이 힘들어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친견비라 해서 삼십에서 오십만 원씩 받는다고요?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파는 격인데요?
이런 이야기는 여기서는 더 이상 하지 않겠지만 법우님도 이러한 점들을 각별히 유의하시고 수행을 이어 나가셨으면 한답니다.
그래서 과거에 자기가 저지른 결과를 그대로 되돌려 받는 것을 불교에서는 과보(果報)라 하는 것이고요.
한번 이런 길에 잘못 발을 들이면 수만 억겁을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답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너의 과거 생을 알고 싶으면 현재 너의 생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신 것이고요.
이 말은 너의 다음 생을 알고 싶으면 현재 너의 생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랍니다.
그래서 지금 어른들도 다음 생에 해탈은 고사하고 지금처럼 그런 일에 매달려 있을 공산이 크답니다.
그것이 습이 되어서 무당으로 빠지게 되는 것이고요.
한번 무당 길로 빠지게 되면 대대로 대물림되기 때문에 영원히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게 된답니다.
지금 어른들은 이러한 이치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고요.
그래서 법우님이 보내주신 내용들은 과보에 대한 내용이랍니다.
그래서 아무리 부처라 해도 오늘 내용처럼 과보는 피해 갈 수가 없다는 뜻이고요.
왜냐하면 부처님이 해탈을 한 것이지 데바닷타나 마간디야가 해탈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피할 수 있으면 피하라 하는 것이고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면 인욕(忍辱)을 하라고 했던 거랍니다.
왜냐하면 네가 저지른 과보는 피해 갈 수 없으니 감수하라는 의미이지요.
그래서 지금 어른들도 지금 하고 있는 그런 일들을 피해야 하고 인욕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요.
잠시 목이 마르다고 해서 소금물을 마셔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법우님이나 저의 삶도 그중에 하나인 것이고요.
그래서 저도 엄청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이 길을 가고 있답니다.
이것은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전쟁터에 나간 코끼리가 / 쏟아지는 화살을 참고 견디듯 / 나는 욕설을 참고 견디리라.]
하셨던 것이고요.
감사합니다.😃🙏🏻
늘 건강관리 잘하시면서 지금처럼 열심히 하셔서 꼭 성불을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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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데바닷타(제바달다)와의 얽힌 이야기>
https://namu.wiki/w/%EB%8D%B0%EB%B0%94%EB%8B%B7%ED%83%80
<마간디야와의 얽힌 이야기>
https://m.blog.naver.com/sumisan80/223394360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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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행자 내용 (유마경)
앞에 내용이 너무 길어서 유마경은 오늘 하루 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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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선문답(禪問答)
중국 글은 뜻글자랍니다.
선문답에서는 본성(마음)을 뜻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키포인트랍니다.
모든 선문답은 그동안 공부한 내용들을 알아보는 것이랍니다.
깨닫고 증득한 것과는 크게 상관은 없답니다.
왜냐하면 우주보다 크고 넓은 불성(마음)의 세계를 몇 글자의 글과 말로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깨닫고 증득한 기준점은 글이나 언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성의 마음에서 오는 언행(言行)이 그 기준점이랍니다.
아무리 선문답을 잘 풀고 경전에 막힘이 없다 하더라도 불성의 마음이 드러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선문답 같은 곳에 너무 집착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선문답을 통해 자신의 마음과 비교를 해보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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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선문(禪問)입니다.
[아난의 게송에 말하였다. 본래는 있는 법을 전하는데 전한 뒤엔 없는 법이라 하네. 각각 스스로가 깨달으라. 깨달으면 법 없음도 없느니라.]
ㅡ
(선답)
만약 아난이 저에게
"자네는 깨달음이 무엇이라 보는가?"
하고 묻는다면 저는
"법 없음도 없느니라."
대신 저는 바로 휘파람을
"휙~!"
하고 크게 불겠습니다.
왜냐하면 소리에는 형체도 모양도 잡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
다음 주 선문(禪問)입니다.
[우바국다존자의 게송에 말하였다. 마음은 본래부터의 마음이다. 본래의 마음은 법이 있는 것 아니니라. 법이 있고 본래의 마음이 있다. 마음도 아니요, 본래의 법도 아니니라.]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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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용도 아주 의미가 깊은 선문(禪門)이 나왔는데요. ^^
"만약에 여러분들에게도 같은 게송을 한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답변을 할 것입니까?"
가 이번 주 선문(禪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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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다음 주 선문염송
[선문염송] 중에서.. (162편) 20240708
제목 : 피부(皮膚)
[마대사가 약산에게 묻되 "그대가 여기에 있은지 퍽 오래 되었다. 본분의 일은 어찌됐는가?" 약산이 대답호대 "피부는 다 떨어지고 오직 하나의 진실만이 남았 습니다" "그대의 소견에 의하건대 가위 마음의 본체에 계합하여 팔다리에 퍼진다 하겠다. 어째서 세 가닥의 '대테로써 아랫배를 조르고 아무데나 가서 주지살이를 하지 않는고?" 약산이 대답호대 "제가 무엇이기에 감히 주지가 되겠다 하겠습 니까?" 마조가 말호대 "그렇지 않다. 오래 수행했는데 주지하지 않는 이가 없고, 오래 주지했는데 수행하지 않은 이가 없다. 이익을 주려 해도 이롭게 할 수 없고 하려 해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빨리 나룻배가 되는 것이 좋으니라" 하니, 약산 이 이 말에 따라 한 산문의 주인이 되었다.]
주) 1. 대테...... 대를 쪼개서 다듬어 자리도 짜고, 통도 메우는 데 쓰는 것이니, 중국에서 어떤 의도는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이 너무 많아서 배가 터질 지경이라 하여, 배에다 세 까닭의 대퇴를 메고 다녔다. 여기서는 한 사람의 도인으로서 자격을 갖추고 출발하는 것만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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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용도 아주 재미난 내용이 나왔습니다. ^^
오늘도 자신의 마음자리를 비추어보시고 답을 주시면 되겠습니다.
혹시 개인별로 답을 주시거나 질문이 있으시면 아래의 메일 주소로 보내주셔도 된답니다.
그리고 지난 글들이 필요하신 분들도 문자를 주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 ^^~
e-mail : 119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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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법문 동영상
오늘의 법문 동영상은 우연히 저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 남방쪽 스님이 있어서 올려보겠습니다.^^
이 글은 불자가 아닌 분들이 많이 보고 계셔서 보충 설명을 드리자면
여기서 말하는 [사띠]란 [알아차림]을 뜻한답니다.
이분의 말씀은 [알아차림] 한 번에 바뀌고 [알아차림] 한 번에 마음에 쟁기질을 하듯이 갈아 엎어지고 한다는 것인데요.
마음을 비우고 버리려면 먼저 굳어 있는 내 마음부터 갈아엎어야 한답니다.
마치 딱딱하게 굳어있는 땅 위에 잡초를 뽑아내려면 밭을 갈아엎듯이 갈아엎으면 잡초가 잘 뽑히듯이..
또는
땅 위에 물을 듬뿍 주어서 땅이 부드러워지면 잡초를 뽑아내기 편하듯이..
[알아차림]이 그런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남방 불교의 문제점도 알아차림만 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알아차림만 해도 마음이 평온하고 고요해지니까요.
(간화선도 화두만 보고 있음)
그러나 이것은 무기공(無記空)이랍니다.
지금 어른들처럼 뻑하면 뒤에서 할 건 다하고 욕심은 욕심대로 다 부리고 있고요.
아무런 의미 없이 마음만 공하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것을 임시로 만들어 놓은 성(城)이라 표현하셨는데요.
이 내용은 화성유품(化城喩品)에 자세히 나와 있답니다.
땅만 갈아엎고 부드러워졌지 마음에 박혀 있는 잡초는 아직 뽑아내지를 않았기 때문에 근본적인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버리는 오직 이 한길 박에 없다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답니다.
이것이 마음의 것들을 소멸(消滅) 시킨다 해서 멸성제(滅聖諦)라 하는 것이랍니다.
조만간에 스리랑카 본토 큰스님이 오신다고 해서 만남이 있을 예정인데요.
그쪽 분들은 집제와 멸제를 어떤 식으로 하고 있는지 물어볼 예정에 있답니다.
물어보고 여러분들과도 같이 공유해 보겠습니다.^^
오늘 동영상 내용에는 알아차림에 대한 설명이 잘되어 있으니 같이 반복하면서 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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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알아차림 한 번에 마음이 바뀝니다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com/shorts/SiVpjiliFkI?si=W1TM5Rlcfkx2lY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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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음악과 함게 수행을.. 》
앞에 내용이 길어서 오늘 하루 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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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용에서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꼭 문자를 주십시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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