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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갇힌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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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아뜨리에,.. 애송시 스크랩 자화상 외 / 서정주
동산 추천 0 조회 94 09.09.21 10:0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자화상 /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덕거리며 나는 왔다.

 

  

 

  <시건설> 7호, 1939. 10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무등(無等)을 보며 / 서정주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山)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靑山)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 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午後)의 때가 오거든,
내외(內外)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현대 공론>, 1954.8 

 

 

 

 

 

 

 

 

 

 

 

춘향(春香)의 말 1 / 서정주 

 

 

 

향단(香丹)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이 다수굿이 흔들리는 수양버들나무와
벼갯모에 뇌이듯한 풀꽃데미로부터,
자잘한 나비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산호(珊瑚)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채색(彩色)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 다오!
서(西)으로 가는 달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 다오.
향단아.

  

 


시집 <서정주 시선>, 1956 

 

 

 

 

 

 

 

 

 

  

 

화사(花蛇) / 서정주  

 

 

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아리냐
꽃대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던 달변(達辯)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날름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 물어 뜯어라, 원통히 물어 뜯어,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 방초(芳草)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바늘에 꼬여 두를까보다.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 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운 입술……
스며라, 배암!

 

 

 
<시인부락> 2호, 1936.12 

 

 

 

 

 

 

  

 

 

 

푸르른 날 / 서정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이 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시집「동천」1968년 

 

 

 

 

 

 

 

 

 

 

 


 신부 / 서정주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

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

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

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내가 타는 기차汽車 서정주 

 

 

열두 살에 병이 나서

군산 서양 사람 병원으로 뢰트겐 사진을 찍으러 갈 때

나는 점잖게

모시베 다듬이 한 두루마기를 바쳐 입고

아버지하고 같이 기차를 탔는데,

내가 본 우리 마을 어떤 소녀보담도 더 토실토실 살이 찌고

훨씬 더 깨끗하게 씻은

전신(全身) 간지럼 먹은 웃음 소리 같은

도시 소녀들의 일단 속에 그만 휩싸여서

오갈이 팍 들어 낯 붉어져 앉아 있었지.

내것보단 훨씬 더 깨끗하게 드러난 그 애들 손톱 속의 반달을

구름 없는 하늘에서처럼 눈박아 엿보고만 있었지.

트락탁탁, 트락탁탁, 트락탁탁, 트락탁......

기차 바퀴 소리의 멜로디 속에

참 그것 신기하게는 어여뻤었지.

그래 나는 지금도 그렇게만 기차를 타러 간다.

나를 오갈 들어 낯 붉으려 하게 하는

내것보다 훨씬 더 깨끗한

낯선 소녀의 손톱 속의 반달을 보기 위해

그걸 제일 목적으로 기차를 탄다.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 / 서정주     

 

 

할머니네 집 뒤안에는 장판지 두 장만큼한 먹오디빛 툇마루가 깔려

있습니다.  이 툇마루는 외할머니의 손때와  그네 딸들의 손때로 날이

날마다 칠해져 온 것이라 하니 내 어머니의 처녀 때의 손때도 꽤나 많

이는  묻어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러나 그것은 하도나 많이 문질러서

인제는 이미 때가 아니라, 한 개의 거울로 번질번질 닦이어져 어린 내

얼굴을 들이비칩니다.                                                           

 

그래, 나는 어머니한테 꾸지람을 되게 들어 어디 갈 곳이 없이 된 날은,

이 외할머니네 때거울 툇마루를 찾아와, 외할머니가 장독대 옆 뽕나무

에서 따다 주는 오디 열매를 약으로 먹어 숨을 바로 합니다.  외할머니

의 얼굴과 내 얼굴이 나란히 비치어 있는 이 툇마루에까지는 어머니도

그네 꾸지람을 가지고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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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사내의 詩 / 서정주



내 나이 80이 넘었으니 
시를 못쓰는 날은 
늙은 내 할망구의 손톱이나 깎아주자  
발톱도 또 이쁘게 깎아주자  

훈장 여편네로 고생살이 하기에  
거칠대로 거칠어진 아내 손발의  
손톱 발톱이나 이뿌게 깎어주자 

내 시에 나오는 초승달같이  
아내 손톱밑에 아직도 떠오르는  
초사흘 달 바래보며 마음 달래서  
마음달래자 마음달래자  

 

 

 

 

 

 

 

 

고향인 전북 고창 선운리 질마재 선산에 오셨을 때, 

 

 

 

 

서지월이의 홍시 / 서정주

 

 

대구의 시인 서지월(徐芝月)이가  

"자셔 보이소" 하며  

저희 집에서 딴 감을 가져왔기에  

보니 거기엔  

山까치가  

그 부리로 쪼아먹은  

흔적이 있는 것도 보여서  

나는 그걸 골라 먹으며  

이런 논아 먹음이  

너무나 좋아  

웃어 자치고 있었다.

 

 

 

 

 

 

 

 

 

 

 

 

 

선덕여왕의 말씀. 1 / 서정주

 

 


짐의 무덤은 푸른 嶺 위의 慾界 第二天.
피 예 있으니, 피 예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구름 엉기고, 비터잡는 데 - 그런 하늘 속.
피 예 있으니, 피 예 있으니
너무들 인색치 말고
있는 사람은 병약자한테 柴糧도 더러 노느고
홀어미 홀아비들도 더러 찾아 위로코,
첨성대 위엔 첨성대 위엔 그중 실한 사내를 놔라.

살(肉體)의 일로써 살의 일로써 미친 사내에게는
살 닿는 것 중 그중 빛나는 황금팔찌를 그 가슴 위에,
그래도 그 어지러운 불이 다 스러지지 않거든
다스리는 노래는 바다 넘어서 하늘 끝까지

하지만 사랑이거든
그것이 참말로 사랑이거든
서라벌 천년의 지혜가 가꾼 국법보다도 국법의 불보다도
늘 항상 더 타고 있거라.

짐의 무덤은 푸른 嶺 위의 欲界 第二天,
피 예 있으니, 피 예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구름 엉기고, 비터잡는 데 - 그런 하늘 속.

내 못 떠난다.

 

 

 

 

 

 

 

 

 

 



우리 데이트는 - 선덕여왕의 말씀. 2
/ 서정주


 

 

햇볕도 아늑하고
영원도 잘 보이는 날
우리 데이트는 인젠 이렇게 해야지

내가 어느 절간에 가 불공을 하면
그대는 그 어디 돌탑에 기대어
한 낮잠 잘 주무시고

그대 좋은 낮잠의 상으로
나는 내 금팔찌나 한짝
그대 자는 가슴위에 벗어서 얹어놓고

그리곤 그대 깨어나거든
시원한 바다나 하나
우리들 사이에 두어야지

우리 데이트는 인제 이렇게 하지
햇볕도 아늑하고
영원도 잘 보이는 날

 

 

 

 

 

 

 

 

서정주 시인은 치매 걸린 아내의 손톱 발톱을 10년 넘게 깎아주며 수발했고,
어디든 손을 잡고 다녔다. 밥도 먼저 푼 봉밥은 아내 앞에 놓아주고 나중에

남은 밥은 자기가 먹었다. 부인 방옥숙(方玉淑) 별세(2000.10) 이후 곡기를

끊고 맥주로 연명하던 시인은 2000년 12월 14일 숙환으로 별세(85세)하셨다

 

 

 

 

내 늙은 아내 / 서정주

 

 

내 늙은 아내는 아침저녁으로

내 담배 재떨이를 부시어다 주는데,

내가

"야 이건 양귀비 얼굴보다 곱네, 양귀비 얼굴엔

분때라도 묻었을 텐데?" 하면,

 

꼭 대여섯살 먹은 계집아이처럼

좋아라고 소리쳐 웃는다.

 

그래 나는 천국이나 극락에 가더라도

그녀와 함께 가볼 생각이다.

 

 

 

 

 

 

 

 

  

 

  내 아내 / 서정주 

 

 

  나 바람 나지 말라고
  아내가 새벽마다 장독대에 떠 놓은
  삼천 사발의 냉숫물

 
  내 남루(襤褸)와 피리 옆에서
  삼천 사발의 냉수 냄새로
  항시 숨쉬는 그 숨결 소리
 
  그녀 먼저 숨을 거둬 떠날 때에는
  그 숨결 달래서 내 피리에 담아
 
  내 먼저 하늘로 올라가는 날이면

  내 숨은 그녀 빈 사발에 담을까

 

 

 

 

 

  

 

 

 

 

 

 

 

선운사 동구 / 서정주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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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옆에서 /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중년 사나이의 연정 해결제 / 서정주 
 



점잖은 中年 사나이가 그 戀情을 풀어보기라면
데이트 상대는 아무래도
눈 맑은 修女나 女僧 같은 이가 좋겠군.
그리하여 그 처음 거는 수작 말씀은

「이 多紅을 어떡하면 粉紅으로 하나요?」
그쯤 하는 것이 가장 좋겠고,

또 그 다음이나 다음다음엔

「이 粉紅 요건 또 어떠하오리까?
쫄쫄쫄쫄 흐르는 시냇물빛으로나
씨원스레 아주 싹 고쳐놓아 주사와요」

어쩌고 저쩌고 그쯤 하면 되갔지? 

 

 

 

 

 

 

 

 

 

 

 

 

 

질마재 신화 / 서정주

 

 

 

  신선(神仙) 재곤(在坤)이 


  땅 위에 살 자격이 있다는 뜻으로 재곤(在坤)이라는 이름을 가진

앉은뱅이 사내가 있었습니다. 성한 두 손으로 멍석도 절고 광주리

도 절었지마는, 그것만으론 제 입 하나도 먹이지를 못해, 질마재

마을 사람들은 할 수 없이 그에게 마을을 앉아 돌며 밥을 빌어먹고

살 권리 하나를 특별히 주었었습니다.
 '재곤이가 만일에 목숨대로 다 살지를 못하게 된다면 우리 마을

인정은 바닥난 것이니, 하늘의 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마을 사람

들의 생각은 두루 이러하여서, 그의 세 끼니의 밥과 추위를 견딜

옷과 불을 늘 뒤대어 돌보아 주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갑술년이라던가 을해년의 새 무궁화 피기 시작

하는 어느 아침 끼니부터는 재곤이의 모양은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일절 보이지 않게 되고, 한 마리 거북이가 기어다니듯 하던, 살았을

때의 그 무겁디 무거운 모습만이 산 채로 마을 사람들의 마음 속

마다 남았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하늘이 줄 천벌을 걱정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가 거듭 바뀌어도 천벌은 이 마을에 내리지 않고,

농사도 딴 마을만큼은 제대로 되어, 신선도(神仙道)에도 약간 알음

이 있다는 좋은 흰수염의 조선달(趙先達) 영감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재곤이는 생긴 게 꼭 거북이같이 안 생겼던가. 거북이도 학이나

마찬가지로 목숨이 천 년은 된다고 하네. 그러니 그 긴 목숨을

여기서 다 견디기는 너무나 답답하여서 날개 돋아난 하늘로 신선

(神仙)살이를 하러 간 거여……."
 그래 "재곤이는 우리들이 미안해서 모가지에 연자 맷돌을 단단히

매어 달고 아마 어디 깊은 바다에 잠겨 나오지 않는거라.

"마을 사람들도 "하여간 죽은 모양을 우리한테 보인 일이 없으니

조선달 영감님 말씀이 마음적으로야 불가불 옳기사 옳다.고 하게는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두루 그들의 마음 속에 살아서만 있는

그 재곤이의 거북이 모양 양쪽 겨드랑에 두 개씩의 날개들을 안 달아

줄 수는 없었습니다.

 
 
 
 
 
 
 
 

 

 

                                                                       복원된 미당 생가

  

 

 

 

우중유제雨中有題 / 서정주

 

                                                                    


신라의 어느 사내 진땀 흘리며

계집과 수풀에서 그 짓 하고 있다가

떠러지는 홍시에 마음이 쏠려

또그르르 그만 그리로 굴러가버리듯

나도 이젠 고로초롬만 살았으면 싶어라.


쏘내기속 청솔 방울

약으로 보고 있다가

어쩌면 고로초롬은 될법도 해라.

 

  

 

 

 

 

 

 

 

 

 

 

 

해일 / 서정주

 

 

 

바닷물이 넘쳐서 개울을 타고 올라와 삼대울타리 틈으로 새어

옥수수밭 속을 지나서 마당에 흥건히 고이는 날이 우리 외할머니

집에는 있었습니다. 이런 날 나는 망둥이 새우 새끼를 찾노라고

이빨 속까지 너무나 기쁜 종달새 새끼 소리가 다 되어 앞발로 낄낄

거리며 ?아다녔습니다만 항시 나만 보면 옛날 이야기만 무진장

하시던 외할머니는, 이때에는 웬일인지 한 마디도 말을 않고 벌써

많이 늙은 얼굴이 엷은 노을빛처럼 볼그레해져  바다쪽만 멍하니

넘어다보고 서 있었습니다.

 

그 때에는 왜 그러시는지 나는 미처 몰랐습니다만, 그 분이 돌아가신

인제는 그 이유를 간신히 알긴 알 것 같습니다. 우리 외할아버지는

배를 타고 먼 바다로 고기잡이 다니시던 어부로, 내가 생겨나기 전

어느 해 겨울의 모진 바람에 어느 바다에선지 휘말려 빠져버리곤

영영 돌아오지 못한 채로 있는 것이라 하니, 아마 외할머니는 그

남편의 바닷물이 자기집 마당에 몰려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렇게

말도 못하고 얼굴만 불거져 있었던 것이겠지요.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 / 서정주

 

 

외할머니네 집 뒤안에는 장판지 두 장만큼한 먹오딧빛 툇마루가

깔려 있습니다. 이 툇마루는 외할머니의 손때와 그네 딸들의

손때로 날이날마닥 칠해져 온 것이라 하니

내 어머니의 처녀 때의 손때도 꽤나 많이는 묻어 있을 것입니다

마는, 그러나 그것은 하도나 많이 문질러서 인제는 이미 때가

아니라, 한 개의 거울로 번질번질 닦이어져 어린 내 얼굴을 들이

비칩니다. 그래, 나는 어머니한테 꾸지람을 되게 들어 따로 어디

갈 곳이 없이 된 날은, 이 외할머니네 때거울 툇마루를 찾아와,

외할머니가 장독대 옆 뽕나무에서 따다 주는 오디 열매를 약으로

먹어 숨을 바로 합니다. 외할머니의 얼굴과 내 얼굴이 나란히

비치어 있는 이 툇마루에까지는 어머니도 그네 꾸지람을 가지고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멕시코에 와서 / 서정주     

 

 

뱀 하고  

호랑이가  

맞붙어 싸우다가  

뱀이  

이겨서  

해가 되시고  

호랑이가 져서  

달이 된 나라  

 

참  

괴짜인 나라  

이런 멕시코에 와서 살자면  

낮에는 칭칭 동여 감으며  

밤에는 호식도 잘 해내야 할텐데 

 

이것  

여는  

뱀도 호랑이도 팔자엔 없어  

지니고 온 피나 왁 왁 토하군  

우선은 병원에 가 드러누워서 

멕시코 사람 피나 꾸어 담으며  

생리가 변할 날만 기다리고 있노라 

 

  

 

 

 

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줄 알아야”- 법정 스님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요즘처럼 청명한 날에는 사는 일이

고맙고 복됨을 느낍니다. 산중에서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비바람이 불면 짜증나고, 화창한 날에는 기분 좋아지는데 가을

날씨 덕에 요즘에는 흥겹게 지냅니다.

빨래 널면서 서정주 시인의 ‘푸르른 날’을 외우기도 합니다.


 

푸르른 날 / 서정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송창식 씨가 이 시를 노래로도 불렀다지요.

시를 읽으면 마음이 흐뭇해집니다.

언어의 결정체인 시에는 우리말의 넋이 깃들어 있습니다.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시를 일상생활에서 읽어보세요.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시를 읽다가 나이를 먹으면 망각하고 맙니다.

시를 읽으면 피가 맑아지고 무뎌진 감성의 녹이 벗겨집니다.
왕유(王維)와 백낙천(白樂天)의 시를 읽으면 사는 일이 고마워집니다.
요즘 세상을 보면 지겹고 짜증나는 뉴스가 많이 들립니다.

미국발 금융가소식, 주가폭락, 쌀직불금 부정수령 등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경제와 돈타령입니다.

경제 살리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잘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가진 것만큼 행복한가? 갖지 못하면 불행한가?


외부적인 요건만으로 행ㆍ불행을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많이 가졌어도 불행할 수 있고, 적게 가졌어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행복과 불행은 외부적 요건보다는 내부적인 요건

에 달려있습니다. 받아들이는 삶의 자세에 달려있습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자신이 왜소해지고 무기력해집니다.

사는 일이 지겹고 힘들어집니다. 그러나 다시 눈을 돌리면

향기로운 부분도 많습니다. 그런 외압에 짓눌리지 말아야

합니다.
옛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장혼(張混)은 ‘평생의 소망’

이라는 글에서  ‘맑은 복’ 여덟 가지를 말했습니다.

그는 인왕산 아래에 집을 짓고 나무, 꽃, 채소를 가꾸고

살았는데, 예전 집을 500냥에 내놓았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장혼의 맑은 복 여덟 가지는 ‘첫째 태평시대에 태어나는 것,

둘째 서울에 사는 것, 셋째 선비축에 끼는 것, 넷째 문자를

대충 이해하는 것, 다섯째 산수의 아름다운 곳을 차지하는 것,

여섯째 꽃과 나무를 심는 것, 일곱째 마음에 맞는 벗이 있는 것,

여덟째 좋은 책을 소장하는 것’ 입니다.


우리는 나에게 주어진 맑은 복을 어떻게 받아쓰고 있는가?

나는 이 글을 읽고 나 자신을 비추어 보았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받쳐주고 있어 나날이 새로워지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에게는 맑은 복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책이 있습니다. 마음의 양식이 나를 받쳐주고 있습니다.

둘째, 차(茶)가 있습니다. 출출할 때 마시는 차는 제 삶의 맑은

여백입니다. 셋째, 음악이 있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건전지로 듣습니다만 음악이 삶에 탄력을 주고

있습니다. 넷째, 채소밭이 있습니다. 채소밭은 제 일손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내 삶을 녹슬지 않게 늘 받쳐

주고 있습니다.

누구나 한적한 삶을 누리고픈 꿈이 있습니다.

밭을 일구면서 살고자 하는 꿈, 이러한 꿈은 우리의 본능입니다.

언제 현실적으로 이어질지 모르지만 일상에 찌들지 않는 꿈을

가집시다. 소동파(蘇東坡)의 ‘적벽부(赤壁賦)’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저 강물의 맑은 바람과 산중의 밝은 달이여 / 귀로 들으니

소리가 되고, 눈으로 보니 빛이 되는구나 / 가지고자 해도

말리는 사람 없고, 쓰고자 해도 다함이 없네 / 이것은 천지

자연의 무진장이구나.”

맑은 바람, 밝은 달을 즐기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남은 생(生)에 평생 둥근 달을 몇 번이나 볼 수 있을 것인가?

비오면 못 볼 수도 있으니 다음 달도 기약할 수 없습니다.
강과 산은 본래 주인이 따로 없습니다. 보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이 강산의 주인입니다. 내면을 돌아보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무수히 많습니다.

외부로 돌리니 발견 못할 뿐입니다.

우리나라는 하루 30명, 1년에 1만2000명이 자살한다고 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 세계 최고 자살률입니다.
목숨처럼 귀하고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목숨을 내팽개치고 있습니다.

이 순간에도 시한부 인생을 살며 산소호흡기로 연명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존엄한 목숨을 내팽개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자기 혼자만을 위하는 일입니다.
사람은 혼자만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시간과 공간이 떠나

있더라도 많은 사람들과 삶의 흐름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이탈하는 것은 명예롭지 못합니다.

결코 고통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고, 또 다른 삶의 시작입니다.

이것은 많은 선각자들이 느낀 부분입니다.

자살은 스스로를 해치는 자해행위로 업(業)이 되며,

이 업은 나중에 윤회의 사슬이 되고 고통으로 이어집니다.

결국 자살은 자해(自害)의 업만 추가될 뿐입니다.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이 업입니다.

말이 씨가 된다고 “죽고 싶다, 죽고 싶다” 하면

결국 죽게 됩니다. 그리고 업의 파장이 됩니다.

업은 파장에 따라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관성(慣性)의

법칙’에 따라 습관이 되고, 나중에는 업력(業力),

업장(業障)으로 이어집니다.

자해행위도 자꾸 하다보면 습관이 됩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자살의 충동을 느끼지만, 막막한 고통이

늘 지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흐린 날이 있으면 맑은 날이

있습니다. 외부적 여건뿐만 아니라 생각도 변합니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절망감도 한 때입니다.

맑은 정신으로 인간세를 널리 살폈더라면 좋았을 것을….

괴로울 때 혼자 있으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궂은 일, 좋은 일도 다 한 때입니다. 모든 것은 고정되지

않고 늘 변합니다. 어려운 일 닥쳤을 때 혼자서 해결하려

하지 마세요. 절이나 교회를 찾아 짐을 부려놓으세요.

절이나 교회는 항상 문이 열려있습니다.

자살 전에 좋은 스승이 있으면 쉽게 자살하지 못합니다.

누구든지 제 명(命)이 있습니다.

몸 바꾸는 것은 자연스런 생명의 현상으로 헌차에서 새

차로 바꾸는 것과 같습니다. 자살하면 그 새 차는 헌차만

못합니다. 왜냐하면 업의 파장 때문입니다.

그 업의 찌꺼기가 다음 생에까지 따라옵니다.

어렸을 때의 소질이나 개인차는 다 전생의 업력입니다.


우리는 살아있다는 사실에 늘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나누기 위해 이렇게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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