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영의 근대문학] 폴란드 사람이 본 조선 기생
2014.11.0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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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수많은 서양인이 ‘동양탐사’ 열풍 속에서 조선을 방문했다. 폴란드 국적의 소설가 바츌라르 셰로쉐프스키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러일전쟁을 앞둔 러시아는 1902년 일본 북부의 생활상을 연구하기 위해 러시아 왕실지리학회 소속 탐험대를 결성했고, 셰로쉐프스키는 그 탐험대에 합류하여 동양 탐사 길에 올랐다. 그는 러시아 페테르부르크를 출발하여 중국과 일본을 거쳐 1903년 가을 조선에 도착한 뒤 두 달간 조선을 탐사한 뒤, 중국, 인도, 이집트를 거쳐 폴란드로 돌아갔다. 셰로쉐프스키는 이 두 달의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조선에 관한 한 편의 기행문과 조선 기생을 주인공으로 한 한 편의 장편소설을 발표하였다. 그 소설이 '기생 월선이'(1906)이다.
혼탁한 구한말의 조선 역사와 오백 년 조선 문화를 이해하기에는 두 달이라는 여행 기간이 너무 짧았던 것일까, '기생 월선이'에 등장하는 조선의 풍경과 역사는 너무나 이국적이다. 조선의 궁궐, 가옥, 의복, 식기 등을 ‘황금색’으로 묘사하고 있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1899년에야 개통되는 전차가 “1894년 한양의 거리를 질주한다”고 표현한 정도의 실수는 애교로 지나친다고 해도, 개화파 수장 김옥균을 개화를 반대하는 수구파 최고 권력자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넌센스일 수밖에 없다.

이 서양인이 착각한 것은 조선의 사소한 풍경과 역사만이 아니었다. 그는 조선의 기생을 멀리는 인도와 이집트까지 포함한 광대한 동양 탐사 여정 속에서 만난 숱한 유녀(遊女), 가깝게는 일본의 유녀와 동일시하고 있었다. 캐스터네츠를 울리며 기모노를 입고 일본 춤을 추고, 일본 노래를 부르는 월선이는 일본의 ‘유녀’이지, 조선 전통 ‘기생’은 아니기 때문이다. 조선에서는 흔치 않던 대나무를 굳이 등장시켜 ‘대나무는 스스로 자신의 잎을 떨군다’는 부제를 단 것에서 알 수 있듯 셰로쉐프스키의 소설가적 감각은 일본에 경도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본에 대한 그의 감각 역시 정확한 것이 아니었다. 손님들 앞에서 겹겹의 기모노를 하나씩 벗는 에로틱한 모습만 기억할 뿐 일본의 게이샤, 즉 예기(藝妓)에 스며 있는 일본 전통문화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938년 파리 출간 불어 초판본 →)
이와 같은 조선 혹은 일본 문화에 대한 몰이해는 탐사의 대상인 동양 전체에 대한 몰이해와도 연결되는 것이었다. 물론 셰로쉐프스키가 우월한 서양인의 입장에서만 동양, 조선, 일본을 대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러시아 식민지인 폴란드 독립운동을 하다가 시베리아 유배까지 당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러시아 식민지 폴란드 출신이었기에 약자에 대한 감정과 기억을 소유하고 있었을 것이다. 식민지인으로서 느끼는 약자에 대한 연민, 그리고 서양인으로서 지니게 되는 동양인에 대한 우월감! 셰로쉐프스키는 이 상반된 감정 속에서 어느 쪽에 더 강하게 쏠렸던 것일까. 그가 '기생 월선이'에서 조선 기생의 이미지를 ‘예기’(藝妓)가 아닌 ‘남성의 성적 노리개’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그 답은 이미 나왔는지도 모른다. 동양인에 대한 서양인 셰로쉐프스키의 우월감. 아마도 이것이 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혜영 대구대 기초교육원 강사
출처 / 매일신문[정혜영의 근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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