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계정 씨악실 전설 씨악실은 행정구역상 경상남도(慶尙南道) 거창군(居昌郡) 마리면(馬利面) 하고리(下高里)에 속하는데, 1580년 경 장수(長水) 황(黃)씨가 처음 정착하면서 마을이 열리게 되었다. 씨악실은 원래 부락의 소나무 위에 학들이 집을 짓고 살고 있다 하여 소학실(巢鶴室)로 불렸는데, 그 후 소학실이 씨악실로 불리게 되었다. 이 씨악실 마을에 옛날부터 전해오는 흐뭇한 전설 한 편이 있다. 【전설】 『옛날 이곳에 가난한 중년 부부가 늦도록 자식이 없이 살다가 50이 넘어서야 아들을 하나 낳았다. 늦게 낳은 자식이라 노부부는 금이야 옥이야 하고 귀하게 길렀지만, 워낙 찌든 살림이라 풍족하게 입히지도 먹이지도 못하며 길렀다. 그러니, 자연 부모의 마음으로 아이를 잘 먹이고 키우는 것이 소원이었고, 못 먹여 키우는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려 가슴이 아팠다. 아이가 어느 듯 다섯 살이 되었을 때, 하루는 임금이 씨악실 모퉁이에 있는 건계정(建溪亭)에 행차한다는 소문이 나서 아이 어미가 아이를 업고 임금님 행차 구경을 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룬 가운데 아이를 업은 여인도 위풍 있고 호화찬란한 임금님의 행차를 멀리서 구경을 하게 되었는데, 아이가 어미 등을 기어오르면서, “어무이, 어무이 나도 커서 후제 저래 될래.” 라고 했다. 어미가 아이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주위를 살피고는 얼른, “너는 부자가 되어야지.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면 잘 먹고 잘 입을 수 있다.” 라고 했다. 어미가 이렇게 말한 것은 임금이 된다고 하면 당장 죽게 될 것이고, 또 하층신분으로 그렇게 될 수도 없을뿐더러 이때까지 아이를 제대로 못 먹인 부모의 한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온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는 이 말을 들은 후부터 시름시름 앓더니 드디어 죽고 말았다. 아이가 죽자 부부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아이를 뒷산 양지 바른 곳에 묻어 주면서, “후생에 태어날 때는 부잣집에 태어나 잘 먹고 잘 입어라.” 라고 넋두리를 했다 한다. 그리고 비록 어린 나이에 죽었지만 아이가 죽은 대보름날에는 음식을 차려 놓고 아이의 제사를 꼭 지냈다. 한편, 죽은 아이는 저승에 가서 부잣집에 다시 태어났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하게 되고, 마침내 암행어사가 되었다. 그리하여 팔도암행의 길을 나섰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암행어사가 정월 대보름만 되면 꿈을 꾸게 되는데, 꿈 가운데 그는 산골길을 넘어 어느 촌락의 오두막집에 들어가서는 배불리 먹고 나오는 꿈을 꾸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잖게 여겼으나, 계속되는 똑 같은 날, 똑 같은 꿈을 꾸게 되어 이상히 생각하였다. 그래서 각 고을을 돌아다니면서도 꿈에 본 길과 오두막집이 있는가, 없는가를 유심히 살폈다. 어느 때 이 암행어사는 드디어 씨악실에 당도하여 그 마을이 자기의 꿈에 나타나는 마을임을 확인하고는, 동네로 들어가서 정원 대보름날 제사를 드리는 집을 수소문하니 과연 꿈에 본 오두막집이 있었다. 그래서 그 집을 찾아드니 백발이 성성한 영감, 할미가 있는데, 그들로부터 정월 대보름날 제사를 지내게 되는 사연을 듣게 되었다. 그래서 암행어사는 그들이 자신의 전생의 부모임을 확인하고는 자기의 친부모와 같이 정성껏 잘 섬겼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출처 - <거창 명승지의 역사와 전설>(문창사.1997) - ▲건계정 [출처] 건계정 씨악실 전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