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평창동 이어령 교수의 서재를 찾았다. 겨울 햇살이 환하게 비치는 서재에는 벽면을 빼곡하게 채운 책들과 곧 세상에 나올 책이 되기 위해 쌓여 있는 수많은 노트와 자료들이 팔딱팔딱 생명의 소리를 내고 있었다. ‘청년’의 생명력이 느껴지는 서재다.
한국 최고의 지성이자 석학인 이어령 교수는 올해 한국 나이로 여든 일곱이다. 새해를 맞아 나이의 숫자가 달라지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일이지만, 처음 받아들인 숫자는 새삼스럽고 각별하다.
암 투병 중인 그는 생의 그 어떤 순간보다 농밀하고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항암치료 대신 받아들임을 선택했고, 평생 해오던 글쓰기에 더욱 몰입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컨디션이 허락하는 한 강연도 다닌다. 인터뷰 하루 전에도 강연이 있었다. 규모가 큰 강연이라 조금 피곤하다며 자리에 앉았지만,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니 금세 두 눈이 반짝거리고 목소리가 올라갔다. 팔딱팔딱 생명력을 뿜어내는 서재와 꼭 닮은 주인장이다.
투병 소식이 공개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에 눈물을 훔쳤다는 분들도 많다. 내가 안 우는데 왜 남이 울어.(웃음) 재미있다고 말하면 어폐가 있지만, ‘나 캔서(cancer·암)야’라고 말하면 우는 사람이 있고 태연하게 대하는 사람이 있다. 우는 사람이 나를 더 애정하고 같이 아파하는 사람이라고 획일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전혀 안 그럴 것 같은 사람이 눈물을 흘리고, 또 거꾸로 나를 생각해서 일부러 밝게 대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순간순간을 마주하면 내 자신도 어떤 감정에 말려든다. 평소엔 초연하다가도 고통스럽기도 하다.
덕분에 우리 사회에 ‘죽음’이라는 화두가 던져졌다. 인간의 삶의 과정을 보면 누구나 한 번은 죽는다. 전쟁 때는 모든 사람이, 지금의 나처럼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처럼 산다. 전쟁의 일상은 사람이 죽는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때와 중학교 때 전쟁을 두 번 경험했다. 사실 우리 세대는 죽음과 관념적으로 익숙하다. 젊은이들이 봤을 때는 가난한 시절에 살아서 먹고사는 것만 걱정한 세대로 보이겠지만, 정반대다. 그렇게 가난했음에도 죽음과 맞닿은 삶을 살아 형이상학적인 사고를 했다. 죽음이란 뭐냐, 삶이란 무엇이냐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했단 말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을 하셨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이다. 먹고사는 문제, 정치 경제 문제가 본질적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은 영원히 살 사람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죽음이 뭔지 아는 사람은 절대로 독재를 못 한다. 어떤 권력자도 하늘이 두려운 걸 알면 못된 짓을 못 한다. 하늘이 곧 죽음이다. 요즘 무한 악을 저지르는 시대다.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는다.
쓰지 않으면 육신의 삶이 멈춘 것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는 것을 빼면, 암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과 후의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대부터 평생 글쓰기에 매달렸던 그는 지금도 똑같이 글을 쓴다. 암 판정을 받자마자 든 생각은 더 치열하게 글을 쓰겠다는 것이었다.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느니 못 쓴 글을 쓰겠노라 마음먹었다. 죽음을 조금 더 가깝게 인지하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작업에 밀도와 속도가 붙었다.
글쓰기는 굉장한 체력이 소모되는 일이다. 괜찮나. 사람들이 나에게 해주는 말 중 가장 허망하다고 느끼는 말이 “이제 좀 쉬세요. 그만큼 쓰셨으면 됐어요. 몸도 편찮으신데 무리하지 마세요”다. 나는 쓰는 게 쉬는 거다. 이게 사는 거다. 남이 볼 때는 글 쓰는 행위가 싫은 걸 억지로 하는 일종의 노동으로 보이나 본데, 나에게 글쓰기는 삶 자체다. 목숨을 건 행위다. 글쓰기를 멈춘다는 것은 내가 죽는다는 말이다.
지금은 어떤 글을 쓰고 있나. 살았다는 증거로 아무 글이나 쓸 수 없다. 내가 캔서를 받아들였다고 죽음과 관련된 글이나 병상일기를 쓴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글도 아니다. 병원에 가는 시간보다 글 쓰는 시간에 집중해야겠다고 조바심을 내는 것은, 그만큼 절박함이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다. 나는 평생 글을 써온 사람이다. 지금까지 써온 것과 전혀 다른 것을 남기고 있다. 70대에 한 일간지에 ‘한국인 이야기 시즌1’을 연재했다. 생명자본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걸 완성하려고 한다. 탄생에 관한 주제다.
내용을 조금만 공개한다면. 내 기억의 극한까지 가보고 있다. 스톱된 장소 너머에 가서 쓰는 게 지금 내가 쓰는 이야기다. 가령 태내에 있었을 때다. 나는 모르지만 자료를 통해서 태생기, 태동기를 만난다. 어떻게 10개월이 되면 발을 차고 나갈 생각을 할까, 어떤 힘이 있을까 생각한다. 책에도 썼지만, 인생은 이별이 먼저다. 10개월 동안 따뜻한 공간에 살고 있다가 세상으로 나온다. 남들은 태어난다고 하지만, 탯줄을 끊고 헤어지는 거다. 그러니 우리 인생은 본디 헤어짐이 먼저였다. 어머니를 떠나야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 어머니와 한몸에서 타자가 되었고, 분열이 되었다. 우리 인생은 만남이 먼저가 아니고 헤어짐이 먼저다.
운명이라는 말로 들린다. 글 쓰는 사람들은 ‘전생에 죄 지은 사람이나 하는 일’이라는 말을 한다. 힘든 일이다. 일이란 게 뭐든 시작과 끝이 있는데, 생각하는 건 24시간 아닌가. 나는 꿈에서마저도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다. 꿈속에서도 글을 쓴다. 쓰다 만 글을 머릿속에서 이렇게 쓰고, 저렇게 쓴다. 글쓰기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선택하고 내가 노력한 것도 아니다. 운명처럼 글을 쓴다. 그러니 내게 “그만하면 됐다. 편안하게 여행이나 다니시라”는 말은 정말 모르는 소리다. 그게 있기 때문에 사는 건데? 그게 없으면 육신이 있어도 죽음이다. 나에겐 하루를 더 사는 게 의미가 없는 일이다.
일과가 어떻게 되나. 요즘도 새벽까지 글을 쓰나? 노인의 특징이란 게, 잠을 못 잔다. 새벽 3시에 꼭 깬다. 서재로 올라와서 책을 꺼내 읽는다. 눈에 띄는 책을 쓱 꺼내서 펼쳐보면, 눈에 딱 띄는 구절이 있다. 그럴 때는 입에서 ‘악’ 소리가 난다. 내가 그 늦은 시간에 일어나서 그 책을 꺼내지 않았더라면, 죽을 때까지 이 사실을 모를 뻔한 것 아닌가. 잠을 잤더라면 영원히 몰랐을 어떤 지식이 내 생각의 큰 변화를 준다. 내가 살아서 책을 읽어, 그 페이지를 읽었기 때문에 과거·현재·미래의 무수한 생각의 한 길이 열린다. 쿨쿨 잤더라면 적어도 이 책과 만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설인가. 우리는 끝없이 혼자 사는 것 같지만, 그 시간을 공유한다. 시간을 공유하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은 여기 있지 않을 것이고, 상대 스토리가 달라졌을 것이다. 같은 장소,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면 참 소중한 것이다. 누구와의 만남이라는 것이 단순히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아니라, 수천 수만 명의 스토리를 바꿔주는 일이다. 그 속에 내가 있다.
# 인생은 물음표와 느낌표를 오가는 여정
‘삶은 무엇이냐’는 질문, ‘사는 게 무엇이냐’가 맞다
그는 인생은 물음표와 느낌표를 오가는 여정이라는 말을 자주 해왔다. 물음표는 이성적인 것을, 느낌표는 감성적인 것을 말한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추와 같이,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의 대화와 같이 이쪽과 저쪽을 오가며 균형을 찾아가는 것은 그가 생각하는 방식이기도, 글을 쓰는 방식이기도 하다.
요즘 주로 하는 생각들이 궁금하다. 습관적으로 하는 일이 있다. 책을 읽거나 사람을 만나면, 언제 태어났나부터 본다. 확인해보면 재미있다. 30년 전후를 산 예수님은 말할 것도 없고, 제일 나이가 많은 괴테도 여든 셋이더라. 옛날 사람이라 나이가 많은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모두 나보다 어리다. 내가 한국 나이로 여든 일곱인데, 살아 있기 때문에 이 나이에 글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 소중하다. 인류 역사적으로도 소중한 것 아니겠나.(웃음)
과거를 떠올리기도 하나? 특별히 생각하려고 해서 생각하는 건 아니고, 옛날에 쓴 글이나 사진을 보면 생각난다. 지금은 앞을 내다보는 시간보다 뒤를 돌이키는 시간이 더 길다. 망각하지 않기 위해서 애쓴다. 망각은 진리의 반대말이다. 망각하지 않기 위해 내 마음을 일깨우는 것은 진리를 찾는 행위다. 프루스트가 여름방학에 몇 천 페이지 글을 쓰듯이, 나도 밀도 있는 시간을 가진다. 최근에 떠올린 달래마늘 향기가 그런 것이다. 유년시절, 봄이 막 와서 세상이 녹기 시작할 때 누이를 따라 달래마늘을 캐러 갔었다. 호미로 흙을 슥 캐던 때의 향이 되살아난다. 잊은 건 진실이 아니지만, 기억하면 진리가 된다.
인생을 두고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의 여정이라는 표현을 했다. 재미없는 한자로 표현하면 ‘자문자답(自問自答)’이다. 스스로 물어보고 해답은 자기가 찾는다. 물음은 지적인 것이고 느낌은 감성적인 것이다. 둘 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글쓰기다. 물음표와 느낌표는 내가 생각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나는 천재적인 사람도 아니고 머리가 좋은 사람도 아니다. 둔한 사람이다. 다만 궁금한 걸 묻는다. 가령 진화론자들이 네 발로 기던 원숭이가 두 발로 서서, 손이 자유로워 문명 문화를 만들었다고 이야기하면 나는 묻는다. “원숭이들은 수상생활을 해서 손만 있으면 되는데?” 갈릴레오가 혼자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러면 나는 묻는다. “혼자 말했다는데, 누가 들었나?” 질문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다.
마지막으로, 인간이 가진 수많은 물음표 중 하나를 질문으로 던져보겠다. 삶은 무엇이고 존재는 무엇인가. 그거 알면 글을 써? 산으로 들어가지.(웃음) 수많은 종교에서 하는 말이 물음의 방식을 바꾸라는 것이다. ‘삶이 무엇이냐’고 명사로 묻지 말고, ‘사는 게 뭐냐’고 물으면 쉽다. 산다는 말은 살림살이, 살림을 말한다. 남을 살리는 거다. 불을 살리고, 빛을 살린다. 자기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을 살리는 거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사랑으로 살린 거다. 부모도 나를 살렸다. 그러니까 사람이라는 것은 본디 사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만 살아 있나? 이 세상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있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어느새 내 삶이 풍요롭다. 벌레들, 날아가는 새들, 작은 나뭇잎들에도 생명이 있다. 나는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글을 썼다. ‘삶이 뭐냐’고 말하면 추상적이지만, 나뭇잎 하나 흔들리는 것을 떠올려보라. 살아 있을 때, 움직일 때 세상이 움직이고 내가 움직이고 살아가는 거다.
삶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에 언급된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라는 문구는 그가 젊은 시절 쓴 시 제목이기도 하다. 실존주의 관념에 빠져 살던, 삶과 죽음에 자신을 투신하던 젊은 시절 적어내려간 작품이다. 서재의 바깥 공간인 자택 마당에는 그 시의 한 구절을 조형물로 만들어 설치해뒀다. 내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가를 들었다 / 대지를 향해서 나뭇잎은 떨어진다 / 어둡고 거친 흙 속으로 향하는 나뭇잎들을 본다 / 거부하지 말라 /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 대지는 더 무거워진다 / 피가 뜨거울 때 잘 있어 잘 가라 / 인사말을 하고 떠나야 한다’
그는 인류 죽음의 대명사인 암을 처음 접했을 때도, 이 작품을 쓰던 20대 청년이던 그때와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삶의 마지막 정화 작용, 죽음 세상이 이토록 혼탁해지고 조화롭지 못한 것은 어쩌면 인간이 죽음을 제대로 이해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언젠가 한 번은 죽음이 다가온다는 것은 누구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사람들은 자신은 죽지 않는 듯 먼 남의 일로만 생각한다. 인간은 죽음이라는 과정을 통해 모든 것을 자기 것인 양 움켜쥐고 놓지 못하는 마음을 비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세상에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기에 떠날 때도 반드시 빈손이 되어 간다. 그것은 조물주가 우리에게 주신 가장 공편한 진리이다. 따라서 죽음은 삶의 마지막 정화 작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출처 : 향기와 빛viit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P.262중 영육의 분리 앞에서 빛viit의 소리 들려오건만 비 온 후 산사에서 해가 질 무렵이면 바람결에 흔들려 오는 빛의 소리가 있다. 우주의 힘 초광력超光力을 온 세상 방방곡곡에 일러 주라고,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영혼들의 소리가 가랑잎 비비는 틈새에서 애절하게 들려 온다. 살아 생전 깨치지 못해 세상 삶이 다 인양, 바락바락 살다가 어느덧 닥쳐온 죽음, 영육(영혼과 육신)의 분리 앞에서 빛viit의 소리, 그분의 소리가 아득히 들려 오건만, 앞을 가리고 선 검은 무리들…, 그 빛viit의 소리를 뒤로 하고 검은 무리에 섞여서 떨어져 내린다. 살아 생전에 빛viit의 소리, 우주의 마음을 조금만 깨쳤어도 찬란한 빛viit의 세상에 들 수 있었을 것이다. 후회 한들 어찌하리. 1백 년 채 못 되는 세상, 영원인양 살지만 영원한 세상은 죽은 후에나 있는 것을……, 자식에게 만큼은 일깨워 달라고 가랑잎 틈새에서 애절히 소리한다. 출처: 빛viit의 책 1권 ‘빛viit으로 오는 우주의 힘 초광력超光力’ P. 261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최지원 인턴기자]
이어령(85)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가 암투병 사실을 처음 고백했다. 암투병 중에도 의연함을 잃지 않는 이어령 교수의 모습에 감동 받았다는 누리꾼들의 응원이 이어지고 있다.
이어령 교수는 7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내가 병을 가진 걸 정식으로, 제대로 이야기 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라며 암 투병 중인 사실을 고백했다.
이어령 교수는 “의사가 내게 ‘암입니다’라고 했을 때 철렁하는 느낌이 있었다.
이어 그는 방사선 치료, 항암 치료를 받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석 달 혹은 여섯 달마다 병원에 가서 건강 체크만 하고 있을 뿐이라고. 이어령 교수는 “의사가 ‘당신 암이야’ 이랬을 때 나는 받아들였다. 육체도 나의 일부니까. 그래서 암과 싸우는 대신 병을 관찰하며 친구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령 교수는 먼저 세상을 뜬 딸 고(故) 이민아 목사에 대한 이야기도 털어놨다. 고 이민아 목사는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던 지난 2012년 3월 별세했다. 당시 나이 53세 였다.
이어령 교수는 “암이라는 말을 듣고 우리 딸도 당황하지 않았다. 수슬 없이 암을 받아들였다”면서 “애초에 삶과 죽음이 함께 있다고 생각한 사람에게는 (암이) 뉴스가 아니다. 그냥 알고 있는 거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령 교수는 “딸은 책을 두 권 쓰고 마지막 순간까지 강연했다. 딸에게는 죽음보다 더 높고 큰 비전이 있었다. 그런 비전이 암을, 죽음을 뛰어넘게 했다. 나에게도 과연 죽음이 두렵지 않을 만큼의 비전이 있을까 싶다”면서 “인간이 죽기 직전에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유언이다. 유언은 머리와 가슴에 묻어두었던 생각이다. 내게 남은 시간 동안 유언 같은 책을 완성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령 교수는 ‘이 시대의 지성’이라 불리는 한국의 대표적인 석학이다.
jwthe1104@mkinternet.com
사진 | KBS1 방송화면 캡처
첫댓글 빛을 알았기에 진정한 나를 보려 지나간 세월도 돌아보았습니다.죽음도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시간 한없이 엄숙한 마음이 듭니다.아직 다 알 수 없지만 아주 조금씩조금씩이라도 깨닫고 성장하길
소원합니다.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무한 공경과 감사올립니다.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 . . .
선
공적 참 나
맘에 고향 VIIT
죽음이 앞에 왔을때.....
소중한 글에 정신이 번쩍 드내요
학회장님
늘 일깨워주시고 빛의 세계를 알려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매순간 최선을 다해 노력합니다
행복합니다
당신과♡빛viit과함께이기에.........
대한민국 최고의지성으로석학자이신이화여대 명에교수이신 이어령 석자교수님의 "일상과 암투병과 죽음에대한논단글과 귀한 빛글" 을 함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세상과 내가 움직인다는 이어령 교수님의 글과 빛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마지막 정화 작용인 죽음에 대해 "참나"를 생각하게 되고 그림자가 지워지는 날이 죽음임을 깨우칩니다.
세상에 공짜가 없듯이 빛viit명상을 통해 조금씩 터득하게 되며 께우침을 주시는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글을 썼다.' 는 말씀이 마음에 울림을 줍니다.
이어령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학회장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영육이 분리되는 죽음, 빛터에 와서 생생하게 배우고 자신을 관조하게 됩니다.
참 나를 볼 수 있는 시간을 주셔서 언제나 감사합니다.
빛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영원한 마음의 고향을 알게 해주셔서 우주마음과 빛과 현존하시는 학회장님께 감사하며 새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어령 교수님의 여성조선에서 하신 담화를 모두 잘 보았습니다. 풍요회에서 학회장님의 귀한 말씀도 들었습니다. 많은 감명을 받고 많은 생각을 합니다.
죽음은 삶의 마지막 죙화작용임을 깨닫고 한치의 오차도 없으신 빛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빛과 함께 하며 빛명상을 합니다.
''그림자가 지워지는 날이 죽는 날 !!!!!''
''지성에서 영성으로''
이어령 장관님의 인터뷰 글 속에 학회장님께서 하신 말씀들이 많이 느껴집니다.
빛을 알고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살아갈 수 있음이 감사합니다 .
빛을 아는 축복을 누리고 있음에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깊은 공경과 감사를 올립니다 .
귀한 글 올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삶의 마지막 정화 작용, 죽음 " 감사드립니다.
빛과 함께 할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지 다시한번 깨닫게 됩니다~
우주마음님 학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살아있는 지성인 이어령교수님의 삶에 대한 통찰에 담긴 의미 잘 세기게해주시는 글 감사합니다.
살아생전 복된 삶이 후손의 복이된다는 값진 말씀 세기며 노력하며 실천하겠습니다.학회장님 감사합니다.공경합니다.
귀한문장 차분하게 살펴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운영진님 빛과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아침에 삶과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삶은 살림이라고 하시는 이어령 전 장관님과
<사람이 죽으면 남는 것은 업적이고, 그 업적은 선이든 악이든 유전한다. 그래서 ‘닮았다’라는 것이다.>
라는 학회장님의 말씀에 마음의 느낌가득 담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어링 전 장관의 삶의 의미와 병마의 고통을 크게 받아들이는 근원을 생각합니다
빛을알고 느끼고 빛안에서의삶을 감사드립니다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공경과 감사의 마음올립니다
87세의 나이에도 활발하게 활동하시며
여러인터뷰와 끊임없는 생각을 하시는 이어령교수님 본인의 일이 운명이고
살아있는 그 자체이시라고 하시니
어쩌면 가장 농밀한 시간이고 귀한시간인 요즘 그분의 마지막책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합니다.빛과함께 마지막여생을
가장귀한시간으로 보내고계시니 참 행복한 분이십니다.
사후의 영원한 빛!
늘 기억하겠습니다.
여유로운 아침에 깊은 글을. 대하니 감사합니다
이어령장관님의 소식도 감사하고 삶의 마지막 정화 작용 죽음... 감사합니다 오늘의 선물 감사합니다
빛과 함께 더욱 행복하세요
올려 주신 글 찬찬히 읽으며 빛안에서의 삶을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어령 교수님의 담화를 여성조선을 통해 잘 읽었습니다. 풍요회때 학회장님께 말씀도 듣고 다시 읽으니 감동입니다. 살아서 빛과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삶의 마지막 정화작용 죽음의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봅니다.
빛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삶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삶의 마지막 정화작용. 죽음.. 소중하고 귀한 빛의글 되새겨봅니다. 감사합니다.
삶의 의미와 빛명상을 하는 이유 마음에 잘 새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삶의 대한
참의미을 느낄 수 있는 귀한말씀
감사드립니다
" 삶의 마지막 정화 작용,죽음 " 귀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 정화작용 이라는
글이 마음에 새겨집니다 귀한글 감사합니다.
삶과 죽음에 대해 일깨우는 글 감사드립니다. 나의 마음, 영혼을 돌아보게 됩니다.
늘 진심으로 잘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빛과 함께하는 이유가 살아서도 복되게 살고, 죽음 앞에서 한점 두려움없이 죽어서 내 마음이 빛의 세상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학회장님의 귀한 말씀 마음에 잘 새깁니다. 감사합니다.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김시합니다.
감사합니다^^
빛안에서 살아서 복되게 살고 사후의 영원한 행복.;.*빛
빛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의 마음 가득 담습니다~*
죽음이란 단어를 통해 다시한번 산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이어령 교수님의 인생은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의 여정 이라는 표현에 생각이 머뭅니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삶 속에 저 자신의 삶은 어떨까는 생각이 듭니다.
생의 마감이 왔을 때 행복하게 받아 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귀한 글 올려 주셔서감사합니다.
학회장님의 소중한 말씀, 다시한번 마음에 새깁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육체를 벗어버린 진정한 나를 한 번쯤 생각해 보길 간곡히 바란다... 학회장님의 가르침 따라 살아갈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학회장님 늘 일깨워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삶과 죽음의미 빛과 함께 영원히 사는 행복의 빛 귀한 글 감사합니다
육체를 벗어난 참나를 생각하며, 빛명상과 함께 살아가는 자체에 진심으로 감사를 느낍니다!!
바른 마음과 선행으로 의미있게 살아야한다는 말씀 감사합니다
삶의 마지막 정화작용 죽음에 대한 좋은 글 감사합니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 방향에 대해 알려주시는 글 마음 속 깊이 담아봅니다.
죽음을 아는 사람은 하늘이 무서워 나쁜 짓 못한다는 이어령 전 장관의 말씀이 마음에 남습니다. 늘 빛과 함께 살아갈 방향을 알려주시는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깊은 공경과 감사의 마음 올립니다.
빛을 알고, 빛과 함께 할 수 있음이 얼마나 큰 복이고 감사한 일인지, 뼈 속 깊이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감사합니다!
빛명상을 통해서 진정한삶을 알수있고 행할려고 노력할수있어 감사드립나다. 깨우침을주시는 빛의글 감사합니다.
삶의 마지막 정화작용 죽음...빛과 함께 해야 하는 이유를 가슴깊이 느낍니다.
마음을 일깨우는 귀한 글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빛과 함께 하는 삶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에게 한번은 죽음과 마주한다는사실
두렵고 무서운일 그러나 빛을 만나 정화을 통해 편안하게 받아들일수 있는 마음
그리고 하루하루 잘 살아야겠다고 하는마음 감사합ㄴ디다
누구나 한번은 빈손으로 왔던 그 곳으로 되돌아간다는 사실을 늘 새기며 한번뿐인 삶을 더욱 의미있게 행복하게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살아 빛과 함께 행복하고 빛으로 갈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삶의 마지막 정화작용 죽음이란 사실을 받아들이고 준비할 수 있는 빛명상 글 감사합니다.
빛안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