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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딤돌, 걸림돌 인생
사무엘상 11:14-12:5
1. 코이 물고기 이야기
지난 주간(7월 14일)에 우리나라 최고 입법기관인 국회에서 오랜만에 기립박수가 터져 나와서 온 나라에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시각장애 피아니스터 겸 국회의원 인 김예지 국회의원이 국회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마지막 결론을 설명하면서 코이 물고기를 예화를 들었습니다, “코이는 환경에 따라 성장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코이의 법칙으로도 알려져 있다. 작은 어항 속에서는 10㎝를 넘지 않지만 수족관에서는 30㎝까지 자라고, 그리고 넓은 강물에서는 1m가 넘게 자라나는 그런 고기”라면서 코이를 물고기를 설명하면서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기회와 가능성, 성장을 가로막는 다양한 어항과 수족관이 있다” “이러한 어항과 수족관을 깨고 국민이 기회의 균등 속에서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강물이 되어주시기를 기대한다.” “어항과 수족관을 깨고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강물이 돼주시길 기대합니다.”라고 감동적이 연설을 함으로 많은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 연설을 보면서 이분이야말로 우리나라에서 국회에서나 문화 예술분야에서 디딤돌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사람들 뒤에는 그들을 위해서 희생했던 위대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에게는 한나라는 기도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성 어거스틴에게는 이교도에 빠진 아들을 위해 30년 동안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기도했던 어머니 모니카가 있었습니다. 19세기 최고의 부흥사인 무디에게는 빚쟁이가 몰려드는 가난 속에서도 신앙으로 아들을 키운 호오튼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배후에서 누군가를 위해 디딤돌이 되어주었던 이름 없는 사람들 때문에 위대한 사람이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나는 위대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 기도와 내 희생을 통해서 누군가를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내가 디딤돌이 되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여러분은 가정에서 디딤돌입니까? 걸림돌입니까? 내가 있음으로 우리 가정이 행복하다면, 내가 우리 가정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면 우리는 디딤돌입니다. 내가 있음으로 가정에 불화가 생기고, 내가 있음으로 가정이라는 자리가 불편하다면 우리는 가정에 걸림돌입니다. 그건 사회생활에서도 그렇습니다. 내가 있음으로 기쁘고 행복하다면, 내가 그곳에 유익된 사람이라면 나는 디딤돌입니다. 그러나 내가 있음으로, 상처받는 사람이 생겨나고 불화가 있다면 나는 그곳에 걸림돌입니다. 같은 돌일지라도 그 돌이 놓여진 장소에 따라서 디딤돌이 될 수도 있고,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슴드리의 커다란 돌이 아이들이 건너기 힘든 냇가에 있어서 냇가를 건너는 발판이 되어준다면, 그 돌은 분명 디딤돌입니다. 그러나 같은 크기의 돌이 자동차가 많이 왕래하는 길 한 가운데 있다면 그건 디딤돌이 아니라 걸림돌이 될 뿐입니다. 돌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2. 디딤돌 같은 사무엘 선지자
오늘 우리가 구약에서 읽은 구약의 말씀에 나오는 사무엘은 그 시대의 디딤돌이 되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역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선지자입니다. 사무엘 선지자 시대의 시대상을 사사기 마지막 절에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이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그는 역사상 암울했던 때에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사람들조차도 뚜렷한 기준 없이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행하던 그런 시대였습니다. 아무도 당시의 사회를 바르게 이끌어주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제사가 무너지고,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 있었습니다. 영적으로 암울한 시대였습니다. 바로 그런 시대에 사무엘이 등장합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이전까지는 사사를 중심으로 살아가던 사회였습니다. 이스라엘 주변 나라들은 모두 왕정체계를 갖추고서 튼튼한 군사력으로 이스라엘을 위협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우리에게도 왕을 달라"고 졸라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왕을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게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그들의 왕이 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 위에서 사람을 다스리는 왕이 주어지면 그 왕을 통해서 나라의 힘은 강해질지 모르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길일뿐만 아니라, 왕을 통해서 백성들은 더 큰 시련과 고통을 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을 잘 아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을 주시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해서 하나님께 왕을 세워달라고 졸라댔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왕을 주시기로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그 왕정시대를 열어갈 주역으로 사무엘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사무엘은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역할을 마친 후에는 조용히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려 하고 있습니다. 그는 한 시대의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 시대에 디딤돌들이 되어야 합니다. 디딤돌이 되려면 몇 가지를 분명하게 기억해야 합니다.
3. 디딤돌은 자신을 다른 사람의 발판으로 내놓아야 합니다.
내 유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시대의 사람 사는 방법입니다. 나는 전혀 손해보려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손해보라고 요구합니다. 손해보며 사는 사람은 세상을 잘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받는 게 오늘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디딤돌로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그의 희생물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당신을 위해서 우리의 생명을 바칠 것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이 먼저 우리를 위해서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사랑하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당신이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당신이 먼저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주님을 가리켜서 모퉁이 돌이요(엡 2:20),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다(마 21:4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퉁이 돌' 또는 '모퉁이의 머릿돌'이란 말은 건물의 기초석이 되셨다는 말씀입니다. 건물의 가장 아래에서 모든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돌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라고 하는 영적 건물의 모퉁이 돌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장 낮은 곳에서 자신을 희생하시며 교회를 이 땅에 세우셨습니다. 모퉁이 돌이 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버리셨습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 자신을 놓음으로서 모든 성도가 그 모퉁이 돌을 딛고 신앙의 집을 건축해 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예수님은 모든 신앙인과 인류의 디딤돌이 되신 분이셨습니다. 디딤돌 인생을 사는 사람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그곳에서 제물이 된다 하더라도 그곳에 쓰임 받는 사람입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필요로 할 때에 언제든지 자신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었던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된 사울은 왕이 된 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됩니다. 처음 왕이 될 때에는 굉장히 겸손했고, 믿음도 좋았는데, 왕이 되면서 교만해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을 버리시고 새로운 왕을 세울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을 베들레헴에 사는 이새의 집으로 보내십니다. 이새의 아들 가운데서 사울을 대신할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무엘은 새로운 왕에게 부을 기름병을 챙겨가지고 이새의 집으로 갔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우는 것으로 자기의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모든 일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늙은 사무엘에게 새로운 일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새의 집으로 갔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이새의 집으로 가는 그 발걸음을 결코 가벼운 발걸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운 사울에 대한 실망감 때문만이 아니라, 생명의 위험을 안고 가야 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자신이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긴 했지만, 사울이 여전히 왕좌에 앉아 있었습니다. 만일 사울 왕이 이 소식을 안다면 사무엘을 가만 두지 않을 것입니다. 사무엘이 다른 왕을 세우기 위해서 이새의 집을 찾아갔고, 이새의 아들 가운데서 누군가를 새로운 왕으로 기름을 부었다는 소식이 사울에게 알려지면 사울이 사무엘을 죽이려 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이새의 집으로 가라고 말씀하실 때에 사무엘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니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삼상 16:2)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러 왔노라고 말하라.’고 그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 말씀을 듣고 사무엘 선지자가 이새의 집으로 갑니다. 옛날 사극에 보면 왕이 있는데 다른 사람을 왕으로 세우려 하다가는 대역죄인으로 큰 벌을 받습니다. 자신의 목숨만이 아니라 가족들까지도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왕으로 세우려 하는 것은 역모를 꾸미는 짓으로 가장 무서운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베들레헴 이새의 집을 향해 가는 사무엘의 모습을 왕좌에 앉아 있는 사울의 입장에서 보면 대역죄로 처단할 수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무엘은 나라를 살리는 길이 그 길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는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그 길 가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무엘을 이스라엘 역사의 디딤돌이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디딤돌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4. 디딤돌 같은 사명자
디딤돌 인생을 사는 사람은 자신에게 어떤 고난이나 어려움이 닥친다 하더라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끝까지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가야할 길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복음 증거 하는 일을 사명으로 알았던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그 복음 증거 하는 일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내놓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가면서 그는 숱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죽을 고비도 참 많이 겪어야 했습니다. 반대하는 무리들과 싸워야 했고, 비방하는 사람들의 온갖 비방과 조롱소리도 들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로지 자신의 사명을 위해서 묵묵히 달려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도 바울을 디딤돌로 하여 복음의 역사가 세계를 향해 뻗어가도록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우리의 사명의 길을 갈 때에 때로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난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가라 하시는 길이라면 기꺼이 그 길을 갈 수 있습니까? 아무도 나를 지지해 않아도 주님께서 가라 하신다면 묵묵히 그 길을 갈 수 있습니까? 내가 가야할 사명의 길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주님께서 내게 주신 길이기에 십자가라도 지고 갈 수 있습니까?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에는 디딤돌이 필요 없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굳이 내가 디딤돌이 되지 않아도 됩니다. 아무도 가려하지 않는 길에서,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일을 위해서 주님께서 가라고 말씀하실 때 그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는 사람이 디딤돌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디딤돌의 인생을 사는 사람은 깨끗한 마음과 순수한 신앙의 소유자여야 합니다. 깨끗하지 못한 사람은 당장 보기에는 디딤돌 같아 보일지라도 후에는 그 깨끗하지 못함 때문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맙니다. 본문 3절에서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이렇게 묻습니다. “내가 뉘 소를 취하였느냐? 뉘 나귀를 취하였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뉘 손에서 취하였느냐?” 그러자 백성들이 일제히 소리칩니다.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였고, 뉘 손에서 아무 것도 취한 것이 없나이다.” 모든 백성들이 당시 이스라엘의 사사요 선지자로 사역했던 사무엘을 향하여 그의 생애가 얼마나 깨끗했는가를 증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백성들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5절 말씀에 의하면, 사무엘이 왕으로 기름을 부었던 사울도 사무엘의 깨끗함을 증거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도 사무엘의 일생이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깨끗하다는 것을 증거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왕이 되기 전에 사무엘의 역할은 사사였습니다. 그는 선지자이며 동시에 사사였습니다. 사사(士師, Judges)는 백성의 지도자요 재판관이었습니다. 나라가 이방 민족으로부터 압제를 당했을 때에는 군사를 이끌고 나가서 전쟁을 통해 민족을 구원하는 일을 했고, 나라가 안정되었을 때에는 백성들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재판관의 역할도 담당했습니다. 재판관의 역할은 자칫 잘못하면 큰 비리에 휘말릴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사무엘이 말한 것처럼, 재판을 핑계삼아 백성들로부터 뇌물을 받을 수도 있고, 심지어 정치적인 지도자요 재판관이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백성들을 압제하여 백성들에게서 소나 나귀와 같은 재산을 탈취하여 부정축재를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그런 모든 불의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지켰고, 깨끗하게 직임을 감당했다고 자부했습니다. 백성들도 그것을 다 인정해 주었습니다. 만일 사무엘이 자신의 직임을 깨끗하게 감당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백성들이 사무엘이 세운 지도자인 사울을 왕으로 인정할 수 있었겠습니까? 왕은 사사보다도 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자리입니다. 사무엘이 만일 백성들을 압제하고 뇌물을 받아 불의한 재판을 일삼았다면, 그런 사무엘이 세운 왕은 사무엘보다 더 백성들을 괴롭고 힘들게 할 게 뻔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달라고 졸라대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무엘이 세운 왕을 인정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그런 모든 것에서 깨끗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았고, 이스라엘의 새 역사의 지평을 여는 디딤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불의한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 거짓되고 부패한 일들을 얼마나 많이 자행했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먼 다른 나라 말고 우리나라만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대통령의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 그리고 대통령의 권력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이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오자마자 비리들이 속속 들어 났습니다. 부끄러우니까 일일이 다 열거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 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늘 비리에 휩싸이게 됩니까? 권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권력이 없고 힘이 없는 곳에는 비리도 생겨나지 않습니다. 우리 같이 권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기업에서 몇억, 몇십억, 몇백억씩 갖다 주겠습니까? 권력은 그만큼 비리에 노출되어 있고, 비리에 얽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런 비리에서 깨끗할 때에 권력은 참된 힘을 얻을 수 있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데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 정치에도 사무엘과 같은 깨끗한 정치인이 많아져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더 좋아집니다. 정치인들만 탓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아야 합니다.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권력이 없다고, 그래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처럼 큰 비리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우리가 그들을 향해서 손가락질을 할 수 있습니까? 권력이 없는 우리의 삶에서 깨끗하지 않으면 우리나 그들이나 다를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은 권력이 있기 때문에 조금 더 큰 비리에 휘말리는 것이고, 권력이 없는 우리는 작은 것에 휘말리게 되는 것뿐입니다. 다른 사람을 향하여 손가락질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우리의 작은 삶에서 깨끗해야 합니다. 정직해야 합니다. 신앙인다운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5. 환경만 바꾸면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시각장애인 김예지 국회의원이 말한 것 처럼 장소가 바꾸고 환경만 바꾸어도 디딤돌의 역할을 할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도 바꿔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방해만 되었던 걸림돌 인생도 성령 안에서 새롭게 거듭나고 하나님의 말씀의 정으로 쪼개지면 디딤돌 인생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걸림돌 인생을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성령 안에서 거듭나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히니까,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디딤돌 인생을 살아간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지금 내가 속해 있는 곳에 디딤돌이 되고 있습니까?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까? 내가 거기에 있음으로 해서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이 유익을 얻고 도움을 받는다면 우리는 디딤돌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길목에서 우리 주님이 우리를 위해 디딤돌이 되어주셨던 것처럼, 주님을 믿는 우리 역시 우리의 삶에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또 이웃을 위해서 디딤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모든 교우님들이 디딤돌들이 되셔서, 내가 있는 그 자리가 축복의 자리요, 행복의 자리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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