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명높은(?) 금호분기점을 수월하게 지나자, ‘칠곡휴게소’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잠깬지 한시간 여가 지났지만 아직도 어질어질한 기운이 가시질 않는다.
가방에서 칫솔과 수건을 꺼내 화장실로 갔다. 수도꼭지를 한껏 열어놓고 머리를 세면기에 쑤셔박고 있으니, 지나는 이들마다 흘끔거린다.
찬물을 끼얹었더니 한결 나아진 듯도 했지만, 어젯밤 부르짖은 ‘삼십대 마지막 건배’에 대한 후유증은 간단치 않았다.
광식을 떠밀어 보내고, 우정과 흥에 겨워 시내를 방황하는데, 아뿔사 이게 뭐람, 날이 밝는 거다.
성서에 있는 우정의 집을 찾아든게 여섯시 조금 못미친 시각. 우리는 라면 두개를 끓여 나누어먹고는 곯아 떨어졌다. 날이 훤한데 잠을 청하기란 우스운 일이었지만, 생체리듬을 맞춰가려면 하는 수 없었다.
헤어지는 건 늘 아쉽다. 어젯밤 광식과 더불어 할 만큼 했는데도(뭘??) 보내기가 섭섭했고, 우정을 사무실 앞에 내려주고 혼자 가는 길이 쉬 내키지 않았다. 그래도 어제밤은 벗이 둘이나 있어 더할 것 없이 좋았는데, 지금부터는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
달아오른 고속도로에서 나오는 열기는 눈이 시릴 정도였다. 다행이 회복은 빨라 몸이 ‘내 것’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평일의 고속도로는 과속의 충동을 느낄 만큼 한가롭다. 아주 가끔 선글라스를 낀 폭주족들이 길을 흐려놓는 수가 있지만, 그다지 바쁠 것도 힘들 것도 없으니 마음은 평온, 그 자체다.
제 기분대로 가다가 뭣하면 휴게소에 들러 우동으로 배를 채우고, 뉘가 버리고간 신문 쪼가리라도 줏어보다가, 흘끔 곁눈질로 처자들 잘 빠진 각선미도 감상하고, 그도 아니면 담쟁이로 덮혀있는 원두막 아래 벌렁 누워 한잠을 청한들 누가 탓할 리 없다.
혼자 운전대를 잡고 있자니 유일한 벗이 라디오다. 내 차 레코더는 맛이 간지 오래고, 그나마 라디오도 지역따라 달라지는 주파수에 맞아주면 듣고, 그렇잖으면 내 뜻과 상관없이 교육방송의 어린이 영어나 평화방송의 찬송가를 들어야 하는 지경이지만. 그러니 어쩌랴. 여건이 따라주지 않는걸.
추풍령을 넘어서자 운좋게도 KBS 주파수가 잡히더니, 왁자지껄 송대관이와 태진아가 나와 철지난 허무개그를 해댄다.
‘나, 원..... 별 싱거운........넘들’
경부선에서 호남선으로 옮겨타는 비룡분기점을 지나자 도로는 더 한산하다. 호남고속도로는 난생 처음이다. 시야에는 아른아른 쭉 뻗은 도로만 펼쳐진다. 앞뒤 4킬로미터 쯤 구간에 내차만 있다. 그림처럼 지나가는 창밖 풍경은 온통 초록의 물결이다.
깜빡깜빡 졸음이 온다. 벌곡휴게소.
차를 멈추고 게눈감추듯 우동 한그릇을 해치우고 나니 시계가 네시를 향해 바쁘게 가고 있다. 오늘 중으로 변산을 가서 요소요소 눈찜을 해놔야 내일이 수월할 것 같아 오래 쉬지 못하고 길을 서둘렀다. 논산, 익산, 전주, 김제를 차례로 거쳐 태인나들목을 나왔다.
“워따, 멀리서 오셨소 잉~” 톨게이트에서 처음 맛본 까칠까칠한 사투리는 따로 설명이 없더라도 전라도땅 깊숙한 곳임을 알게 했다. 예상대로라면 여기서 부안까지가 30분, 다시 변산까지가 40분일 터이다.
바짝 긴장한 채 눈돌릴 여유를 찾지 못했던 고속도로에 비하면 국도나 지방도는 매우 맛있는(?) 길이다. 이쪽 논엔 모내기가 끝났고, 저쪽 논에는 누렇게 변한 보리가 지겨운 듯 쭈빗쭈빗 몸을 비틀고 있는 모양이며, 꼬부랑 할미가 작은 보따리를 이고 힘겹게 발을 떼는 것까지 사람사는 냄새가 확 난다.
변산반도는 행정구역상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일대를 말한다. 목포, 진도, 해남을 중심으로 무수히 흩어져 있는 서남해의 섬들이 영광, 고창을 지나면서는 완연히 뜸해진다. 그러다가 내륙쪽으로 쑤욱 곰소만이 끼어들면서, 만의 위쪽 줄포, 영전부터 시작해 육지가 돌출되는데, 여기서부터가 변산반도다.
반도의 위쪽을 보자면 멀리 계화도 간척지가 있고, 곧바로 아래 대항리에서부터 세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그 새만금 방조제가 시작된다.
(새만금에 대해서는 3편에서 집중 분석합니다)
다시 아래로 변산, 고사포, 격포해수욕장이 이어지며 기막힌 풍광을 만들어주고, 격포를 중심으로 적벽강, 채석강 등 기암의 해안과 크고작은 유무인도들이 고만고만하게 돌아서 있다.
이것들이 바다변산, 외변산 이라면 내륙쪽으로 들어가면 산의 변산, 내변산이 유명세를 뽐낸다. 내노라 할 정도로 아름다운 절, 내소사가 있는 능가산의 주봉 의상봉과 쌍선봉, 낙조대, 망포대의 절경에다 직소폭포, 분옥담 선녀탕은 금강의 그것보다 덜하지 않다.
부안읍에서는 길이 두갈래로 갈라진다. 산쪽을 먼저보고 해안쪽으로 나가는 길과 그 반대의 방법이 있다. 만일 남쪽 목포쪽에서 올라왔다면 아마 줄포에서부터 해안을 따라 한바퀴 휘 돌고 부안으로 나가는게 적당하다.
부안으로 들어서는 초입에는 국립공원이란 이름에 걸맞게 엄청난 관광안내도를 입간판 형식으로 세워놓았고, 형식적이나마 나무집을 지어 ‘관광안내소’라고 내걸었다.
길은 차분하고 조용했으며, 길섶에는 아기 채송화들이 차츰 여름을 향해 제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한참을 갈등하다가 ‘변산면’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 차를 움직였다. 이미 다섯시를 넘겼으니, 산중으로 찾아들어갔다간 길을 헤멜 염려도 있고 하여 트인 쪽이 낫겠다 싶기도 했고, 더욱 나를 끌어당긴 건 서해의 그 기막힌 일몰이 있었음이다. 아마 두어시간 후에는 화려한 태양의 잔치가 내 눈 안에 들 것임에 틀림없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각 중천에서 흘러내린 홍조띤 태양은 서쪽으로 급히 기울고 있었다.
부안읍에서 40여분. 내륙쪽을 내달리던 길이 해안선과 맞닿는 첫 지점은 아름답게도 ‘바람아래’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뿌우연 안개에 휩싸여 거리를 측정키 어렵지만 먼곳 아득하게 펼쳐진 바다는 기가 막혔다.
여기서부터는 줄곧 해안을 끼고 달린다. 성큼 입간판 하나가 드러났는데 ‘새만금 전시관’이다. 그리고 작은 글씨로 ‘새만금방조제 처음 시작되는 곳’이라 썼다. 가슴이 셀렌다. 세상사 아귀다툼이라지만 작금의 혼란은 도무지 모를 일이다. 같은 땅에서 나고 자라 같은 땅에서 사는 이들이 이리 생각이 다를까. 누구 편을 들고 싶은 맘도, 그럴 일도 없지만 눈앞에 벌어져 있는 이 현실을 알지 못하고서야 개운치 않을 것이다.
6시 10분. 전시관 문은 닫혀 있었다. 이건 내일 프로그램으로 미루고 전시관 모퉁이를 돌아들어 바다가 잘 보이는 둔덕에 올랐다.
아무 것도 없다. 적막의 바다. 뻘은 없었다. 눈으로 안개를 비집고, 안경을 썼다 벗었다, 궁리를 냈지만 바다는 고요 속에 누운 채 손님을 반기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한뼘 쯤 남은 해걸음이 안타까워 격포를 향해 차를 몰았다. 중간쯤 변산해수욕장이 있지만, 채석강, 적벽강이 함께 있는 격포 근처가 노을을 보기에는 나을 성 싶었다.
사구(砂丘) 너머 송림에다 차를 대고 한달음에 둔덕을 뛰어 넘었다. 오!! 일몰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를 어찌할거나. 짙은 해무에 가려 해는 형태만 간신히 보여주고 있을 뿐 기대한 바, 그 불길의 번짐같은 일몰의 장관은 정체를 살필 수 없었다.
2년 전 겨울. 대천해수욕장 어느 회집에 앉아 수십가지 해물의 성찬을 앞에 놓고 기대도 하지 않은 노을을 보았을 때 감격이 벅차올라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그리고는 다짐했었다. 내 언젠가 다른 계절에 이 서해의 일몰을 다시 보리라.
이제 그 다짐을 가지고 다시 왔으나, 대자연은 선물을 두 번 주지 않는다. 아쉽기 짝이 없다. 다시 온다면 짧은 겨울해가 만드는 노을을 다시 보고 싶다.
‘세상에서 노을이 가장 아름다운 집’
등 뒤 사방을 틔워놓은 횢집 기둥에 씌어진 글귀가 나를 더욱 애타게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