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도성으로] 정병경.
ㅡ도성박물관ㅡ
여름 막바지라도 낮의 해는 길다. 오전엔 남산도성길 산책을 마치고 4호선 지하철 동대문역에 내렸다. 옛 이대병원 자리는 아름답게 단장된 공원이다. 도성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가볍게 밟는다. 야생화와 가을 꽃들이 바람에 휘어진다.
구름을 양산 삼아 언덕길을 걷는다.
한양도성박물관이 눈에 잡힌다. 평일이어서 도성길은 한산하다. 박물관 안에 들어섰다.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운영과 한양도성 자료가 풍부하다. 600여 년을 이어온 한양의 변화한 모습을 한 눈에 본다. 후대가 선대의 역사를 음미한다는 건 영광이다.
ㅡ자취ㅡ
각자성석刻字城石처럼 방문 기념으로 자신의 이름을 돌에 새긴 것처럼 컴퓨터로 재생할 수 있다. 가족의 이름을 새겨 프린트했다.
시 한 수 적는다.
"성인은 떠났어도
자취가 어깨 너머
어제는 가르치고
오늘도 회초리다
아무리
익힌다 해도
선인만큼 따를까."
다시 창신동 언덕길을 밟는다. 도성길 혜화문 방면으로 발길을 돌린다. 어짊을 상징하는 흥인지문(동대문)이 측면으로 내려다 보인다.
동대문 의류타운 건물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운동장 건너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어 어린 시절 발걸음 잦던 동대문이다. 전차 교차지점의 지역이기도 하다. 감회로워 한참 내려다 본다.
혜화문으로 이어지는 낙산도성길은 동네를 끼고 걷는 언덕길이다. 담장같은 느낌으로 걷는다.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배롱나무꽃이 더 붉게 보인다. 도성길 작은 카페(개뿔)엔 산책하다 쉬는 사람들이 공간을 메운다. 예쁘게 꾸민 주택가 찻집이다.
왼편 멀리엔 북악산이 눈에 들어온다. 암문에서 외부도성길을 걸었다. 장수마을 지나 동네를 끼고 나머지 도성길을 걷는다. 삼선동 3구역 팻말이 보인다. 오후 4시에 접어든다. 찻길을 건너 혜화문(북동쪽)에 도착했다. 마지막 코스의 한양도성길을 마감한다. 369성곽마을 '마실카페'도 여전히 만원이다.
ㅡ만찬ㅡ
남산 터줏대감을 만나기 위해 충무로역으로 향한다. 함께 묵화 수업을 한 나의 멘토 추산 가족과 충무로 '화로백서집'에서 돼지갈비로 만찬이다. 코로나로 인해 2년 가까이 함께 자리를 못했다. 오랜만의 해후상봉이다. 이야기가 길었다. 남산은 잠두봉蠶頭峰이라고 귀띔한다. 누에 머리를 닮았다는 의미다. 낙산은 낙타 등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도성의 평균 높이가 5~8m이다. 도성 길이 전체 32.3km 중 18.6km를 네 번으로 나누어 마무리한다. 돈의문(서대문)과 소의문(남서쪽)은 멸실되고 없다. 사라진 한양도성의 13.7km가 도로와 건물들이 들어서서 복원은 미지수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도성이 모두 복구되어 다시 볼 날을 손꼽는다. 오늘 새벽 산행과 남산ㆍ낙산구간까지 3만8천 걸음이다. 보약 한 첩 효과다.
2021.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