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 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는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우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우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1979년 쓰여져 1980년에 발간 된 시집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에 수록된 시. 이 시집은 당시 유신체제와 뒤이은 신군부의 검열에서 인생을 "늪"으로 부정적으로 비유했다는 이유로 판매 금지 되었다. 훗날 1995년 복간된, 이 시를 표제작으로 하는 시집에 재수록되었다.
참고로 김광규 시인은 1941년생으로 1960년 4.19 당시 대학교 1학년, 시가 발표 된 1979년 당시 39세였다.
김광규 시인의 시는 1960년대의 난해하면서 현실과 유리된 관념시의 형태에서 벗어나 시적 세계와 현실 세계와의 단절을 메꾸면서 동시에 시의 언어에 살아 움직이는 현실적 생동감을 불어 넣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평이하고 구체적인 체험이 많이 담긴 탄력 있는 시들이 양산되는데, 이로 인해 시세계와 현실과의 간격은 물론이고 시와 독자 사이의 거리도 많이 좁혀지게 된다.
김광규의 많은 작품들이 그렇듯이 이 시 역시 시간의 흐름에 닳고 타락하는 소시민들의 '늪' 같은 생활을 제재로 삼고 있다. 즉, 가장 순수한 눈으로 세계와 자아에 대해 갖고 있던 진실한 모습들이 지금 보면 사라졌거나 타락한 꼴로 바뀌어져 있음으로 해서 그들 중년의 소시민들은 이제 허망한 회오만을 가득 느끼게 될 뿐이라는 것이 이 시의 주된 골격이다.
이 시는 18년 전 학창 시절의 순수했던 열정을 모두 잃어 버린 중년기 지식인의 타락하고 무기력해진 소시민적 삶을 그려내고 있다. 일상적 삶에서 얻은 구체적 체험을 바탕으로 학창시절과 현재를 대조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젊음의 열정과 순수의 이상을 잃어 버리고 속화(俗化)된 자신을 발견해 가는 비감(悲感)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시를 4 · 19 세대가 겪는 에피소드나 시대 현실이라는 제한된 의미로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순수와 젊음, 이상과 열정을 상실해 가면서 무기력해진 현대인들에게 소시민적 의식 구조를 일깨우고 보편적인 상실감을 제기해 주는 작품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Luna Llena - Los Tres Diamantes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블루벨즈
첫댓글 김광규시인의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