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經, 기록과 보관
고대 중국 문학을 말할 때는 반드시 詩經과 書經을 말한다. 시경은 많이 다루었으로 오늘은 書經을 살펴보자. 서경은 왕실에서 다루는 공식 문서이다. 史官은 왕실 문서의 작성, 작성된 문서의 보관 등의 일을 하는 관리이다. 사관은 왕실에서 치루는 의식이나 제사를 대비하여 그 절차를 기록해서 보관도 한다. 왕실 사관들은 공문서를 이와 같이 작성하면서 점차 하나의 양식으로 만들어갔다.
왕은 백성을 통치해야 하는 일아, 가장 중요하고, 큰 과업이다. 관에서 작성하는 문서는 요점만 기록하는 단순한 문체로 작성해야 오류가 적으므로, 문장은 무미건조하지만, 정확해야 했다. 춘추-전국 시대에는 주나라 때의 왕실 문서가 많이 보관되어 있었다. 전하는 말로는 공자가 이 문서들 중에서(노 나라 문서 중에서) 100편을 뽑아 정리한 것이 春秋이다,
史官이 기록한 왕실 문서는 당시의 여러 종교-관습적인 관행에 비추어서 합당한 사실을 기록하였다. 왕과 하늘과의 관계, 왕과 백성과의 관계를 합당하도록 정리하여 세웠다. 대표적인 사례로 왕은 천명을 부여하는 상제의 뜻을 받들어서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 따라서 왕도 지켜야 할 행동 규범이 있다.
왕은 또 백성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관리를 뽑아야 하고, 좋은 관리를 정하는 기준에 따라야 한다. 그 기준에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五典), 사람과 신의 관계(五禮)가 있다. 이러한 규범을 지키지 못하였을 때는 벌을 주는 오형(五刑)이 있다.
지금, 주나라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공자가 노 나라의 자료 중에서 100편을 뽑은 것을 春秋라고 한다. 공자도 춘추를 만든 것은 자기에게 배우러 오는 사람에게 교과서를 사용하기 위해서 만들었다.
**《서경(書經)》은 중국 유교의 5경(五經) 가운데 하나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이다. 중국의 고대 국가들의 정사(政事)에 관한 문서를 공자가 편찬하였다고 전한다. 특히, 주나라의 정치철학을 상세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말한 제일의 자료이다.
전국시대에는 공문서라는 의미로 《서(書)》라고 했다. 이후, 유학을 숭상하고 통치 이념으로 삼았던 한나라 시대에서, 당시의 유학자들은 존중하고 숭상해야 할 고대의 기록이라는 뜻에서 《상서(尙書)》라고 하였다. 혹은 상(尙)은 상(上)을 뜻한다고 보아 "상고지서(上古之書, 상고시대의 공문서)"의 의미로 해석하기도 하였다. 송나라 시대에는 유교의 주요 경전인 5경(五經)에 속한다는 뜻에서 《서경(書經)》이라고 불렀다.
《서경》의 판본은 크게 나누어 《금문상서(今文尙書)》와 《고문상서(古文尙書)》가 있다. 신나라(新, 8년 ~ 23년) 왕망(王莽) 때 유흠(劉歆, ? ~ 23년)이 새로운 판본인 《고문상서》를 들고 나옴에 따라, 기존의 판본인 《금문상서》를 지지하는 금문가(今文家)와 새로운 판본인 《고문상서》를 지지하는 고문가(古文家) 사이에 금고문 논쟁(今古文論爭)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현존하는 판본은 《위고문상서》와 《칭화대본 죽간상서》가 있다.
첫댓글 서경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