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잇의 발명-2】
프라이는 이 아이디어에 흥분했고 다음 날 아침 실버의 연구소에 들러서 남는 접착제를 달라고 부탁했다.
아트 프라이는 합창 연습 때 책갈피로 여러 번 시험 삼아 써 봤지만, 문제는 책갈피를 뗐을 때 책장에 접착제가 조금 묻는다는 점이었다.
몇 번의 시도를 더 한 끝에 프라이는 책장에 잘 붙으면서도 접착제가 묻어나지 않는 책갈피를 만들었다.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었다.
아트 프라이는 이 제품에 대한 설명서를 작성해서 3M의 개발 이사회에 발표했다.
중역들은 처음에는 마음에 들어 했지만 시장 조사 결과 예상 매출액이 눈에 띄게 높지 않아서 이 접착성 책갈피는 창고에 처박히고 말았다.
그 뒤로 또 몇 년이 흘렀고, 어느 날 아트 프라이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의문점이 생겨 맨 앞장에 자기가 만들었던 책갈피를 붙이고는 그 위에 하고 싶은 질문을 적었다.
그것을 본 동료는 책갈피에 자기의 해답을 적고는 그것을 다른 문서에 붙인 채 프라이게 돌려주었다.
아트 프라이는 나중에 이때를 ’머리가 펄떡펄떡 뛰는 유레카의 순간’이라고 기억했다.
드디어 쉽게 떨어지는 접착제의 용도를 발견한 것이다.
바로 붙였다 떼는 메모지였다.
프라이는 옆 부서로 달려가 종이를 찾았는데 마침 카나리아 색, 노란 종이밖에 없었다.
최초의 포스트잇 메모지가 노란색이었던 것은 그 이유였다.
프라이가 만든 샘플 제품은 회사 전체에 퍼져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회사 중역들이 이 붙였다 떼는 메모지를 얻으러 무릎까지 쌓인 눈을 뚫고 찾아올 정도‘였다.
1977년 3M은 이 제품에 ’프레스 앤 필‘이라는 상표를 붙여 네 개 도시에 출시했지만 결과는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하지만 이 제품은 3M 직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무척 좋았고, 다음 해에 개발자들은 아이다호주의 도시 보이시 이곳저곳에 직원을 보내 사람들에게 이 제품이 붙였다 뗐다 하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였고 무료 샘플을 나눠 주었다.
그러자 사용자들의 95%가 이 제품을 다시 사용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것은 썩 괜찮은 반응이었고, 그에 따라 1980년에 3M은 마침내 새롭고 혁신적인 포스트잇 노트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판매한 지 첫 해에 5천만 개가 팔려 나갔다.
그로부터 2년 안에 포스티잇 노트는 사람들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았고 3M은 이 제품만 만드는 생산라인을 따로 만들어야 했다.
포스트잇은 곧 학교와 도서관, 가정, 작업장, 사무실에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 되었고 모양과 크기, 향, 색깔도 다양해졌지만 아직도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은 제일 처음에 나왔던 카나리아 색 포스트잇이다.
오늘날 3M은 아직도 매년 35억 달러에 달하는 포스트잇을 팔고 있으며, 1990년대에 특허가 만료되어 다른 회사들과 경쟁하고 있지만 여전히 높은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
스펜서 F. 실버 박사와 아트 프라이는 ’발명의 영웅‘이 되었으며 둘 다 3M에서 최고의 연구 개발자라는 영예를 누렸다.
또한 이들은 국제 규모의 공학, 발명 관련한 상도 수없이 받았다.
후에 스펜서 실버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내가 만약 이 아이디어를 진지하게 여겼다면 결코 실험을 이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논문과 참고문헌에는 ’이렇게 하지 말라‘, ’할 수 없다‘는 사례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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