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농사 30년 만에 올해같이 역병 피해가 심한 경우는 처음입니다.”
수확이 한창이어야 할 고추밭에 역병과 탄저병이 번져 고추가 누렇게 타죽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충청·호남·강원·경북 등 전국의 고추 주산지에서 예외 없이 발생, 고추 재배농민들을 울리고 있다. 충북 괴산군 괴산읍 제월리 정오태씨(51)는 “4,000평의 고추밭 가운데 60% 이상이 역병 피해를 입어 수확할 게 거의 없다”며 “대학생 자녀들 학자금하려고 얼마나 소중하게 길렀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같은 마을 정원일씨(55)도 “한달 가까이 지속된 장마로 병해충 예방을 제때 할 수 없어 700평 밭에 키우던 고추 중 절반이 역병에 죽었다”며 “말라죽은 고춧대를 뽑아내고 배추를 심었는데 이나마 값 파동이 걱정된다”고 했다. 괴산군은 전체 재배면적 2,100㏊ 중 700㏊가량의 고추가 역병과 탄저병 등 병충해에 걸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웃 음성군도 마찬가지 상황. 전체 재배면적 1,500㏊ 중에서 약 30% 정도인 450㏊가량이 역병에 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음성군 생극면 민경희씨(84)는 “고추가 붉자마자 이렇게 지독한 탄저병에 휩쓸리기는 처음”이라며 “고추값은 크게 올랐지만 절반 이상이 피해를 입어 시장에 내다 팔 고추가 없을 정도”라고 푸념했다.
충남 태안지역에도 고추 역병이 급속히 확산돼 25일 태안군농업기술센터에 따르면 최근 태안지역의 고추 역병 발생률이 18.5%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이맘때의 발병률 8.6%와 비교하면 두배 이상 급증한 수준이다. 태안군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사전에 예방을 철저히 했지만 장마가 워낙 오래 지속됐고, 8월 들어 고온이 이어지면서 역병 발생이 급격히 확산됐다”고 말했다.
전북지역도 정읍·임실·고창 등지의 고추 재배면적 1만1,000여㏊ 가운데 22% 정도가 역병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파악됐다. 역시 예년 발병률 8%에 비하면 세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김양숙씨(51·고창군 흥덕면 용반리)는 “올해 800여평에 고추를 심었는데 7월부터 비가 올 때마다 역병이 확산돼 온 밭이 누렇게 변해 수확을 아예 포기했다”면서 “외상으로 구매한 농약값과 모종값도 갚아야 하는데 걱정이 태산”이라고 한숨지었다. 양만두씨(65·임실군 관촌면 방수리)도 “예년 이맘때는 고추를 수확하고 말리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지만 올해는 그저 옆집에서 고추 건조하는 것만 구경할 뿐”이라며 허탈한 심경을 드러냈다.
괴산·음성=구영일, 태안=이경석,
고창·임실=양승선 기자 young1@nongmin.com
〈어떤 영향있나?〉
올해 극심한 역병 등으로 최근 고추값은 강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시세는 작황이 나빠 형성된 것이어서 농민 소득에는 별 도움이 안된다는 지적이다. 강원 정선농협 전주영 조합장(고추강원협의회장)은 “지역 고추 생산량의 약 30%가 역병피해를 입어 화건 고추는 1근당 지난해보다 갑절 가까이 비싼 6,500~7,000원에 거래된다”며 “국내산 고추값이 높게 형성되는 틈을 타 중국산 건고추가 다진양념 형태로 밀려들 경우 농민 피해가 가중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북 영양군 오상용 입암농협 조합장은 “현재 건고추 가격은 1근당 화건의 경우 5,300원~5,700원 선으로 지난해(4,500원)에 비해 20% 이상 올랐다”고 말했다.
경북지역 산지 고추 수집상들은 강원과 충북 등지의 고추 작황이 나쁘다는 소식에 홍고추도 높은 가격으로 사들이고 있어 올해 고추가격은 5,000원 선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권순종 안동농협 경제상무는 “올해 고추작황이 좋지 않아 초기 가격이 높게 형성된 것으로 분석되지만 현재까지 지난해에 비해 일일 반입물량이 크게 줄어든 것 같지는 않다”며 “고추 반입량이 크게 줄지 않는 한 고추 가격은 하향 안정세를 유지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전했다.
정선=김태억, 안동·영양=한형수 기자
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댓글
검색 옵션 선택상자
댓글내용선택됨
옵션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