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운의 아버지는 6‧25 때 용공분자로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어머니는 가출했고 법운은 출가했다. 스
승인 지암은 6년 동안 정진한 법운에게 ‘병 속의 새’라는 화두를 던져준다. 병도 깨뜨리지 말고 새도
다치지 않게 꺼내라는 득도의 숙제였다. 법운은 벽에 화두를 써 붙여 놓은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정
진에 들어간다. 법운은 식음을 전폐한 채 시간과 싸우지만, 애당초 무사히 꺼낼 새도 병도 없었다. 법
운은 부처가 되어 가장 먼저 어머니를 제도하고, 다음에는 사상범으로 처형되어 구만리장천을 떠도
는 아버지의 외로운 혼령을 제도할 것이라고 작심하고 있었다. 그 다음에는 사바세계의 일체중생을
제도할 당찬 결심을 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 법운은 그 모든 게 마카 다 공염불임을 깨달
았다. 법운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화두를 떼서 바랑에 넣어 짊어지고 방랑길로 접어든다.
방랑하던 법운은 파계승 지산을 만난다. 은죽사에서 정진하던 지산은 처음 만난 한 여인에게 꽂혀
‘無’라는 화두를 팽개치고 여자를 쫓다가 자신도 모르게 알콜 중독자가 되어 파계한 선배 불자다. 함
께 방랑길에 오른 지산은 끊임없이 법운을 파계의 길로 유혹한다.
“수많은 중생들이 배가 고파서, 병이 들어서, 옥에 갇혀서, 권력과 금력을 가진 자들에게 억눌려서 신
음하고 있네. 그런데도 모든 불상은 이천오백 년 동안 미소만 짓고 있으니 부처가 아닐세. 번뇌에 싸
여 고통스러워하는 인간들이 참부처지.”
두 땡초는 한 곳에서 딱 1박만 하며 계속 세상을 떠돈다.
한동안 떠돌아다니던 두 땡초는 오대산의 한 암자를 붙박이 거처로 정했다. 눈이 많이 내린 어느 겨
울날, 지산은 암자 아래 마을에서 만취하여 돌아오다가 넘어져 눈 속에서 동사한다. 법운은 지산이
동사한 게 아니라 자살한 것으로 단정한다. 법운은 암자 마당에 장작을 쌓아놓고 혼자서 지산의 다비
의식을 거행한다. 불길은 맹렬하게 타올라 순식간에 암자마저 삼켜버린다. 암자는 그대로 한 송이의
만개한 꽃, 눈부시게 아름다운 정토 - 만다라로 변한다. 바로 그 순간, 법운은 불길 속에서 황홀하게
날아오르는 ‘병 속의 새’를 보게 된다.
이후부터는 쓸 데 없는 사족이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병 속의 새’를 봤으면 거기서 깨우친 도에 대
해 설명하고 소설을 끝냈어야 한다. 법운은 다시 지암을 만나고, 어머니를 만나고, 지산을 파계로 이
끌었던 여인을 만난다. 법운은 지산의 유일한 소지품이었던 목각불을 그 여인에게 전해준다. 세속의
연을 끊지 못한 쓸 데 없는 짓들이다. 잠시 지산의 뒤를 따라 자살을 생각하던 법운은 피안보다는 불
쌍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게 먼저라고 깨닫고 서울역을 향한다. 사창가에 들러 창녀에게 욕정을 푼 법
운은 다음날 아침 인파 속으로 스며든다.
「만다라」는 10년 동안 중 흉내를 냈던 김성동의 자전적 소설이다. 불경과 참선과 고행을 통해 도달
하고자 했던 절대자유 - 성불의 세계는 인간이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일 뿐이다. 수많은 수도자
들이 그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계율도 만들고 경전도 만들고 화두도 만들어봤지만, 결국은 아무도,
아무것도 이룩한 게 없다. 일찍이 석가모니는 일체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어리석은 중들은 각자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사리도 만들고 절도 세우고 불상과 불탑도 조성하여 중
생들을 유혹한다. 궁극의 목적은 성불이 아니라 어리석은 불자들을 상대로 누리는 권세와 눈먼 재물
과 더러운 육욕 해소이기 때문이다.
이 글의 초안을 잡고 있는 2018년 7월 14일 현재, 조계종 노승 설조(87세)는 설정 총무원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25일째 단식투쟁 중이다. 설정 패거리들은 단식을 먼저 중단하면 개혁을 고려해보겠다는
입장이고, 설조 패거리들은 무조건 설정이 물러나야 단식을 중단하겠다는 입장이다. 결말에 대해서
는 1%도 관심이 없다. 단식으로 굶어죽는 것도 제 욕심일 터이며, 개혁이니 뭐니 하는 명분도 엄청난
시주 예산을 서로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한 이전투구에 불과하니까. 그 와중에 어느 기자가 중들이 룸
살롱에서 시주 돈을 펑펑 써재낀 신용카드 내역을 공개했다. 중들은 매일 300~500만 원어치의 양주
를 마신 뒤 여급들을 하나씩 끼고 인근 호텔로 가서 2차를 즐겼다. 그들은 1년 내내 그 짓을 했다. 젊
은 날 출가할 때는 득도라는 순수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지만, 세월이 흘러 그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선배 중들이 하는 대로 권세와 물욕과 환락의 유혹에 몸을 내맡기게 되는 것이다.
기자가 작가 김성동과 함께 문학기행의 대상지로 찾아간 곳은 작가가 출가했던 도봉산 천축사와 서
울역이다. 계곡이 말라붙은 평일의 도봉산 길은 한적했다.
“중이 출가한 절은 속세로 치면 모교에 해당하는데, 천축사에는 상굿도 내 선배 승려들이 계시다네.
지효 노사를 모실 때는 그 분의 등을 떠밀어드리며 이 길을 오르곤 했었지.”
지난날을 회상하는 김성동의 목소리에는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배어 있었다. 그는 화두의 의미와
정진 방법에 대해서도 길게 설명했지만 속인인 기자에게는 아득하기만 했다. 천축사에서는 아는 중
들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끝에 「만나라」의 창작동기도 자세히 들려주었다.
저녁 무렵 김성동과 함께 서울역에 도착했다. 소설 속에서 법운이 머리와 가슴으로 화두를 깨는 대신
사창가를 찾아가 아랫도리로 화두를 풀었던 서울역 맞은편 양동 일대는 그때나 1980년대 중반인 지
금이나 변한 게 없다. 김성동은 1975년 「만나라」의 모태가 되는 「목탁조」로 『주간종교』에 당
선되었지만, 불교계를 악의적으로 비방했다는 이유로 입산 9년 만에 거추장스러운 승적을 박탈당했
다. 더 있어 봤자 결국은 빈손으로 떠났을 허망한 세계였다. 이후 김성동은 소설가로는 성공했지만,
상굿도 모든 현실을 비판적인 시각으로만 해석하는 병든 심성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문학기행」 제1권 소개 끝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태풍의 영향권에서 아직은 벗어나지 못했지만 피해가 크지않아 다행한 일 입니다. 이토록 IT산업과 더불어 인공지능까지 의 첨단적 시대로 만들어 가지만 자연의 섭리는 어쩔수 없는 것, 바로 순리 입니다. 오후 부터는 괜찮아 진다니까 꽃찾아 나서는 가을의 행보로 즐거운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