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을 다녀오며
年初에 마음을 추수릴 겸 시골에 볼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충남 청양 칠갑산 대치면 장곡리 청국장을 먹으러 찾아갔다. 연전에 한번 들린 일이 있건 만은 기억이 흐릿해져 주변을 헤매다가 도로변 고목나무 마을 청국장 동네를 간신히 찾았다. 식성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나는 유독 청국장을 좋아한다. 청국장은 삶은 콩을 메꾸리에 담고 지푸라기를 가운데 쑤셔 박아 놓고서 안방 아랫목에 담요를 덮고 5-6일 정도 푹 잠재우고 주걱으로 퍼 올리면 실이 줄줄 흐르는 청국장이 된다. 이것을 도고통에 쏟아 넣고 고춧가루 마늘 등을 첨가해서 도곳대로 거칠게 찧어서 그 양이 많으면 판재기에 담고 적으면 투가리에 담아서 부뚜막에 놓고 때가 되면 신 김치나 무우를 썰어서 쌀 씻은 뜨물에 마늘 파 두부 청양고추 애호박 멸치 등을 같이 넣어서 끓이면 그 구수한 냄새가 산을 넘고 들판을 지난다. 그 옛날 정월달이면 저녁나절에 청국장을 먹고 마실을 이웃 사랑방으로 가서 육백치고 막과자 사 먹고 동치미 고구마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런 정서가 생생하게 묻어나는 청국장 마을이 진한 추억의 감정을 부추킨다.
코로나로 인적이 뜸한 시골이지만 연초에 다행히 날씨는 영상이라 아쉬운 대로 댕기기가 수월했다. 청국장이란 냄새가 안 나면 정통이 아니다. 어려서 시골에 살던 시절 오두막 안방 코너에 있는 홧대에 옷을 걸고 입고하는 시골집 안방에는 고구마퉁가리와 화로와 실겅이 집집마다 중요 유형문화재다. 실겅에는 필요한 물건을 얹어놓을 긴 나무대기 두 개를 30cm 띄워서 나란히 비름벽에 가깝게 내질러 설치한 것인데 나무사이 판대기가 깔려 있으면 시렁이라고도 한다. 청국장 냄새는 홧대에 걸어 논 옷에서도 사나흘은 냄새가 나야 제격이다. 이것이 시골향수다. 시대마다 시절마다 사람 사는 모습은 거기가 거기다. 사람의 삶의 주기에는 많은 변화가 찾아오지만 삶의 태생만큼은 변화를 싫어한다. 즉 늙으면 환경의 변화를 두려워한다. 살던 대로 살아야 안정감이 있다. 시골정서에서 6-70년을 보낸 삶이라면 아무리 좋은 강남 수십억짜리 아파트도 불편하다. 자신의 손때 묻은 초가와 남새밭이 정겹고 이웃사람들이 정답다. 지금 우리는 이것을 상실하고 산다. 일찍이 공자는 이것을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라고 부정 했다. 변해야 된다고 또 변혁해야 된다고 가르쳤다. 그런 사상을 갖기 위해서는 배워야 된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배워야 된다는 것이다. 이는 자기통제를 위해서다. 배움은 자기를 이기기 위함이다. 날콩을 먹으면 배탈이 나고 청국장을 먹으면 소화가 잘 된다. 자기 성미대로 살지 말고 마음과 생각을 푹 익혀서 여러 독 기운을 빼버리고 살다보면 순탄한 인생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마음이 정갈해야 새로운 삶도 시작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청국장으로 점심을 먹고 나니 오후2시경이다. 갈 데도 없고 부리나케 집에 갈 이유도 없는 터에 온 김에 주변 경관이라도 구경 좀 하고 싶어 장곡사를 찾았다. 처가가 눈앞인데 장모님을 찾아뵙지 못하는 이유는 장모님께서 다니시는 시골 주간보호센터에서 서울이나 먼데 있는 가족들에게 찾아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해서 장모님을 찾아뵙지 못했다. 지금은 눈 쌓인 날 낙상하셔서 타박상으로 아들집에 기거하지만 안부전화만 할 뿐이다. 시절이 이러하니 목전에 어른을 뵙지 못하고 장곡사로 떠났다. 장곡사는 공주 마곡사의 말사지만 이곳에는 국보도 있고 보물도 2점이나 있는 절이다. 찾아가는 길옆에는 문 닫은 음식점이 즐비하다. 코로나로 빼앗긴 손님들을 찾기에는 역부족이고 황량한 언덕과 쓸쓸한 산마루에는 싸늘한 바람만 스쳐갈 뿐 절망만이 이 거리를 맴돈다. 누가 이 순박한 시골의 삶을 어렵게 했는가. 손님은 코로나로 빼앗기고 희망은 정치가 앗아갔다. 벌거벗은 나무들이 장곡사주변에서 절을 지키고 들판은 무채색으로 변한지 오래된 듯하다. 가을에 아름다운 채색으로 현란한 춤을 구가했던 지난해 가을을 보낸 뒤로는 인적이 끊겨 버렸다. 장곡사입구를 들어서니 일주문이 통과를 거부하고 옆길로 돌아가라고 안내한다. 절 입구에 내리니 이곳에는 대웅전이 2채가 있다. 이곳 안내판에는 통일신라시대 절이라고 1300년의 유구한 역사를 강조했는데 아래 대웅전보다 윗 대웅전자체건물이 보물 162호란다.
국보와 보물들의 이름은 길어서 생략하고 불상에 대해서 내가 느낀 점을 말하자면 신라시대 불상은 지금같이 아름다운 미남불상이 아니라 입이 약간 옆으로 삐뚤어진 시골 할아버지 인상이었다. 얼굴이 대칭이 아니라 비대칭 불상이었다. 지금의 부처는 모두 성형수술을 받아 미남부처가 수두룩하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얼굴이 비대칭이다. 그래서 신라시대 불상도 비대칭으로 모셨다. 이러니 보는 이로 하여금 멀리 느껴지지 않고 살갑게 느껴진다. 아래 대웅전에서 3배아닌 4배를 하고 50M가파른 돌계단을 올라 윗 보물 대웅전에서 4배를 하고 주변을 둘러보고 내려오는데 양 허벅지가 떨린다. 운동량이 많아서다. 안내판에 여러 질병을 낫게 해주는 효험이 있다고 적혔다. 경험담도 적혔다. 이 절은 병자들이 많이 찾는 절이란다. 아래위 대웅전 참배가 허벅지를 떨리게 하니 게으른 병자들 밥맛 좋게 한다는 말은 사실 같다. 1300년 전 이절에 부처를 모시고 정진했던 승려들은 자신의 인생은 기회에 의해서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의해서 점점 나아지는 것이다. 라는 것을 깨달은 분들이다.
공자도 변화를 강조했고 부처도 변화를 강조하며 몇 가지 교훈을 불법으로 설파했다.
우리들 같은 잡초들에게 1300년 전 이곳에 앉게 되신 국보 58호 철조약사여래좌상이 4배하는 나에게 신선한 훈화(訓話)의 비를 뿌려준다. 나 같은 70대 무지렁이들에게 들어보란다.
말씀하시되 : 인연은 대화이고 존경은 사랑이며 믿음은 행복이라며 모든 이들을 사랑하되 믿지는 말라고 하시고 모든 것들은 현실이고 모든 사람은 진실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차분히 생각하며 살아가라고 타이르신다. 또한 인생은 메아리와 같아서 모든 선악은 다시 뿌린 대로 되돌아온다고 하신다. 살면서 받은 상처에 집중하면 계속 고통을 받을 것이고 교훈과 성인의 훈화에 집중하면 삶이 나아질 거라고도 말씀을 주셨다. 서두르는 인생은 실패하기 쉬우니 조급하게 굴지마라. 고 하시고 모든 것들은 시간이 되면 이뤄진다고 하신다. 그리고 말하기 전에 그 말이 진실인가. 필요한가. 부드러운가. 를 생각하라고 하신다. 또한 특별한 기회를 바라지마라고 하시며 지금의 삶이 특별한 기회라는 것이다. 인생은 두 번 살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살면서 손익과 불행과 절망과 실수에 따른 아픔이 올 때에는 먼저 사과가 큰 용기가 되고 포기하는 것이 가장 강한 것이고 잊어버리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어떤 독약이든 긍정적인 사람은 죽일 수 없고 어떤 약도 부정적인 사람은 구할 수 없으니 삶을 부정적인 생각으로 살지 마라. 고 하신다. 강조하시기를 사람은 변하며 살아야 한다고 하신다. 변화라는 관점은 발전이라는 관점이다.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고 강조하신다. 그리고 삶이 실패하는 이유는 불평과 자신의 문제를 남에게 전가하는 것과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이라고 일깨워주신다.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존경 없으면 사랑은 잃고 주의가 없으면 사랑은 지루하고 정직함이 없으면 사랑은 불행하고 믿음이 없으면 사랑은 변하기 쉽다고 하시며 사랑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란다. 앞으로 너를 울게 했던 과거는 잊어버리고 너를 웃게 한 현재를 집중하라고 하시며 고통을 잊되 결코 얻은 교훈은 부디 잊지 말라고 하시며 부정적인 상황 속에 긍정적인 자세가 중요하다고 일러 주시고 잘 가라 하시며 다시 부처의 자세로 돌아가셨다. 나는 돌아가는 입구에서 합장 배례하고 장곡사를 떠났다.
청국장도 먹고 부처님의 설법도 들었으니 칠갑산 명물 천장호 출렁다리를 관람 했다. 출렁다리는 청양군 정산면 천정리에 에 소재한다. 도립공원이라 주변 환경도 출중하다. 저녁나절이라 기온이 내려 날씨가 서늘해진다. 이곳도 코로나로 가게는 모두 문을 닫고 무채색 산세만이 천장호 호수위에서 춤을 춘다. 이곳에도 우리일행처럼 정신 나간 인간들이 두어 팀이 보인다. 산 중턱에 호수가 있다니 명물이다. 칠갑산 노래비도 있고 최익현 이력도 적었다.
내가 자칭 한학자라
한시 한 수가 입가에 맴돈다.
居之平安爲福 살아감이 평안하면 행복이 되는 것이다.
萬事分定要知足 만사가 이미 정해졌으니 족함을 알아야만 한다.
粗衣布履山水間 거친 옷을 입고 삼베 신을 신고 산중에 살지만
放浪形骸無拘束 방랑객의 몸으로 구속됨이 없구나.
好展卷愛種竹 책을 펴고 대나무심기를 좋아하니
花木數株喜淸目 꽃과 나무 몇 그루가 눈을 맑게 하여 기쁘구나.
滌煩襟遠塵俗 번뇌를 씻어버리고 썩은 속세를 멀리하니
靜裏蒲團功更熟 고요한 청포 숲에 공부 더욱 열심히 된다.
渴烹茶饑煮粥 목마르면 차 다리고 배고프면 죽 끓이고
雅淡交游論心腹 청아한 담론을 나누고 속 깊은 대화를 즐기니
中則正 滿則覆 중용을 지키면 바르고 가득차면 엎어진다.
推己及人人心服 남에게서 나를 버리면 인심도 감복한다네.
不妄動不問卜 망령되이 행동하지 말고 요행도 묻지 말자
衣食隨緣何碌碌 옷과 밥이 인연을 따르는데 어찌 보잘 것 없다 하겠나.
遇飮酒歌一曲 술 마실 자리를 만나면 노래도 한곡 부르고
歡會無多歌再續 환희가 많지는 않아도 노래는 다시 계속할 수 있네.
常警省念無欲 항상 경계하여 살피고 생각에 욕심을 없애자
世事茫茫如轉軸 세상사는 망망하여 수레바퀴 도는 것과 같다네.
人生七十古來稀 사람의 칠 십 나이 예로부터 드물지만
百歲光陰眞迅速 백년의 시간이라도 정말로 빠르다네.
對靑山依綠水 청산을 대하고 녹수에 의지하니
造物同遊何所辱 조물주와 같이 노니는데 욕될 것이 무엇인가
及時勉勵樂餘年 때가 되면 힘써서 남은 인생을 즐기세.
一日淸閑一日福 하루가 맑고 한가하면 그 하루는 복된 날이라네.
이 시를 읊조리며 일산으로 돌아왔을 때는 저녁 10시가 넘었다네.
2021년 1월 9일
율 천
첫댓글 잘 읽고 마음에 담아갑니다
먼데서 찾아와준 친구같은 단어
그동안 잊고살은 정감있는 이름
아무리 부르려도 형체없는 물건
부뚜막 맥질하고
윗방구석 고구마퉁가리
홍두께올리고 모시옷 안솔기
손톱으로 훌던시절
아~~~
옛날이여
그때는 나도 녹의 홍상이였는데
홧대,고구마퉁가리,실겅 참으로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정감있는 이름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좋은글에 한참을 머물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