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새벽에 전화를 했다. 전화의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내가 혼자 있다가 자해를 하지 못하게, 나머지 하나는 그가 자해를 하지 못하게. 사실 우리는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 나는 907호, 그는 809호. 전화를 하다가 문득 소리가 끊기거나 두려운 소리가 나면 언제든지 뛰어올라오거나 혹은 뛰어내려올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느 한쪽이 먼저 잠들었다. 보통은 그가 먼저 잠들었다. 그는 고3이었고, 나는 고2였으니까. 한 살이라도 어리니까 더 쌩쌩한 거라고 나는 장난 식으로 말했다.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는 늘 어깨가 쳐져 있었다. 쳐져? 처져? 뭐가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축 늘어져 있었다는 뜻이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것은 집 앞 놀이터에서였다. 미끄럼틀 위에 앉아 청포도사탕을 빨아 먹고 있다가 그냥, 그래 진짜 그냥 멈췄다. 공사 중이던 중학교의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은행잎 하나가 내 다리 위에 떨어지기 전까지 모든 것이 일시정지 상태였다. 그는 내 쪽으로 걸어왔다. 뭐지, 저 사람도 나에게 반한 건가? 번호를 따려는 건가? 나 같은 애한테도 드디어 로맨스가? “혹시 그 미끄럼틀 탈 거니?” “네?” “안 탈 거면, 혹시 내가 탈 수 있을까?” 나는 허둥대며 내려왔고 그의 앞에서 멈췄다. 그는 고맙다며 계단을 통해 미끄럼틀 위로 올라가 몇 번이고 내려왔다. 초등학생을 위해 만들어진 그 미끄럼틀이 그에게는 조금 작아보였지만 그런 것쯤은 괜찮은 모양이었다. 그는 한참을 그렇게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를 반복하다가 시소 위에 앉았다. 나는 그런 그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는 내게 중요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이미 그렇게 된 것 같기도 했다. 해가 지고 있었고, 나는 집으로 들어가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그가 같이 탔다. 나는 9층을 눌렀는데 그는 8층을 눌렀다. “8층 살아요?” 정말 뜬금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침묵이 깔렸다. “내일도 놀이터에 나올 거예요?” 그는 그런 건 왜 궁금하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고 나는 사심은 전혀 섞이지 않았다는 듯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는 아마도? 하고 대답했다. 그 때 나는 중3이었다. 그는 고등학생이지만 학원을 다니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다음 날 또 놀이터에 나왔고, 미끄럼틀을 탔다. 나는 그네 위에 앉아 발을 구르며 그런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기묘한 몇 주가 지나고 우리는 통성명을 했다. 나는 그가 이 일대에서는 명문이라고 알려진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걸 알았고, 그는 내가 어느 고등학교를 적을지 고민 중이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나는 남녀공학에 가게 되었다. 나는 배정 통지서를 들고 놀이터에 갔다. 우리의 만남 시간은 정해져 있었다. 저녁 7시. 보충수업까지 마친 그가 집으로 돌아오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내가 미끄럼틀 위에 앉아 있자니 그가 걸어왔다. “고등학교 발표 나왔다며?” “응! 나 공학 간다! 부럽지?” “그게 뭐가 부러워.” “나 CC가 로망이란 말이야. 아 고등학교는 CC가 아니구나.” “멍청이.” “미끄럼틀에서 안 비켜줄 거야.” “밀어버릴 거야.” 이 대화를 그 때 그대로 기억하는 것은 얼굴을 보고 할 수 있었던 마지막 대화였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핸드폰 번호를 건넸다. 나는 뜬금없이 갑자기 번호교환은 왜 하냐고 물었던 것 같다. 그는 당분간은 놀이터에 나오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문자를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화를 했다.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친구들은 그 오빠가 너 좋아하나보다 하고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새빨개진 얼굴을 감추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부끄러워도 얼굴이 빨개지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다만 무슨 소리야 하고 친구들을 내쫓았다.
그리고 어느 날 새벽이었다. 내가 고등학교 입학식을 앞둔 다음 해의 겨울이었다. 그는 문자 한 통을 보냈다. ‘새벽에 전화를 해도 될까?’ 나는 내 방이 있었고, 나 혼자 침대에 누워 있었기 때문에 기꺼이 그래도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전화해서 첫 문장을 매일 새벽을 자신에게 선물할 수 있냐는 질문으로 사용했다. 나는 기꺼이 그래도 된다고 했다. 인정한다. 그는 나의 첫사랑이었다. 그렇게 입학식이 지나고 첫 중간고사가 지났다. 그는 새벽만 되면 우울하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괜찮다고 그를 토닥였다. 그렇게 또 시간이 지나갔다. 그는 여전히 나에게 고백을 하지 않았고 나는 내가 고백을 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할 수 없었다. 그냥 그랬다.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좋은 동생이라는 대답이 습관처럼 돌아왔기 때문에, 나는 장난처럼 그냥 넘겼고 그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2013년 11월 29일. 나는 한창 2학년의 기말고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그는 수능이 끝나 여유롭게 나를 놀리던 어느 날이었다. 29일에서 30일로 넘어가는 그 새벽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 고백할 게 하나 있어.” “뭔데?” “나, 게이야.” 그리고 나는 침묵하다가 내일 다시 전화하자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어, 안녕, 나의 첫사랑. 어떻게 남자를 좋아할 수가 있지? 아니 그래. 남자를 좋아할 수도 있지. 나는 그냥 동생 대했던 거구나. 내 배신감의 초점은 그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했던 행동들이 연인이 되기를 바라고 한 애정 어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 내 감정 소모. 다음 날 나는 공부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점심도 저녁도 먹지 않고 심지어 야자까지 튀고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자다가 12시쯤 일어나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그는 한참을 침묵했던 것 같다. 아마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두려웠을 것이다. “오빠.” “왜?” “오빠가 내 첫사랑이야.” “어...” “어서 미안하다고 해.” “그래, 미안해.” “그러면 됐어. 오늘 기분은 괜찮아?” 어쩌면 나는 그 때 본능적으로 그를 질책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의 성적지향의 문제는-성적지향이라는 단어도 대학에 와서 알게 되었지만-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건 나의 첫사랑이 짝사랑으로 끝난다는 것이었지. 나는 이것이 분하고 원통해서 공부도 안 됐던 것이다. 나중에 그는 이런 나의 말을 듣고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12월, 그의 수시 결과가 떴다. 서울대 최종 불합격. 그는 그 화면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내 옆에서. 그는 재수를 선택했다. 나랑 같이 대학 가서 어쩌냐는 나의 말에 그는 그러게, 하고 힘없이 웃었다. 그는 고려대에는 붙었으니 고려대를 가겠다고 말한 모양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부모님은 모두 서울대 출신이었다. 그리고 그 자부심이 그 아래의 대학은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가 자신을 “불합격”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진지하게 그에게 가출을 권했고,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그는 수능을 한 번 더 봤다. 나와 함께.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그는 미안하다는 한 마디를 책상 위에 남긴 채 집 베란다에서 땅을 향해 날았다. 자기가 무슨 슈퍼맨도 아니고. 나는 그가 입시결과가 나오고도 새벽에 전화를 하지 않는 이유를 몰랐다. 바보 같이. 우연히 엄마의 입에서 그의 이름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래서다. 내가 대학에 온 지 2년이 다 되어 가지만, 나는 여전히 집으로 내려가지 못한다. 그리고 방금 내 핸드폰에서 알림이 울렸다. 작년에도 미처 삭제하지 못한, 그의 생일을 알리는 화면이 뜬다. 나는 차마 X로 손을 밀지 못한다. 안녕, 생일 축하해 내 첫사랑. 우리 다음 생에는 백록담 아래 가라앉은 돌덩이 2개가 되자. 그래서 아무도 사랑하지 말고,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말고, 그렇게 살자. 잘 자. 말 안 해도 알아. 추우니까 이불 꼭 덮고 잘게.
첫댓글 아....
너무 너무 ㅠㅠㅠㅠㅠ 아직 피어나지도 않았는데 ㅠㅠㅠㅠ
아니미친
아 미친
아ㅠㅠㅠ 너무 슬퍼
아 진짜 눈물남..
아 슬프다...
아 눈물 나 어떡해
아미친...
아 미친... 눈물나 ㅠㅠㅠㅠㅠ 너무 슬프다...
나도 재수하는데 더 이입된다 아 속상해
ㅜㅠㅠㅠㅠㅠㅠㅠ마음이 아린다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