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안비슬(奴顔婢膝)
사내종의 얼굴과 계집종의 무릎이란 뜻으로,
사내종이 고개를 숙이고 계집종이 무릎을 끓듯이
남과 교제할 때 지나치게 굽실굽실하며
비굴한 태도로 일관함을 이르는 말이다.
奴 : 종 노
顔 : 낯 안
婢 : 계집종 비
膝 : 무릎 슬
출전 : 포박자(抱朴子) 외편(外篇) 교제(交際)
노비가 주인을 대하는 것처럼 남자종이 고개를 숙이고
아첨하는 얼굴과 여자종이 무릎을 꿇는 듯한 태도로
남의 비위를 맞추려고 알랑거리며
비굴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말한다.
중국 동진(東晉)의 학자이자 도사인 갈홍(葛洪)이 지은
'포박자(抱朴子)' 외편(外篇) 교제(交際)에
나오는 다음 구절에서 유래하였다.
"노비와 같이 비굴한 얼굴 표정과 무릎 꿇는 듯한 태도로
남을 대하는 사람은 세상을 잘 아는 사람이다
(以奴顔婢膝者, 爲曉解當世)."
종은 예전에 남의 집에 딸려 천한 일을 하던 사람이다.
노예(奴隸)가 남의 소유물이 되어 물건처럼
매매도 가능했던데 비해 하인(下人)처럼
종은 고용에 의한 것이 다르다.
어려운 생활로 죽지 못해 종이 됐더라도 세습제도가 생겨
대대로 부림 받았으니 큰 차이 없게 됐지만 말이다.
몇십년 전에는 대학을 두고 '상아탑(象牙塔)'이니,
'지성(知性)의 광장(廣場)'이니 하는 고상한 말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대학이 많아져 사회로부터 별 인기가 없다.
대학의 숫자가 많아져 그렇게 되기도 했겠지만,
대학을 구성하는 교수나 학생들의
책임이 크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당당한 선비의 자세가 없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대학의 발전과 그 권위는 재정과 무관할 수가 없다.
재정적으로 아쉬움이 없으면 무한한 발전을 할 수 있지만.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대한민국 교육부에서 1년 동안 지급하는 연구비 총액이
삼성에서 설립한 연구소 연구비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 형편이다.
사립대학의 경우, 설립자가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사명감을 갖고서 자신이 설립한 대학에
대대적인 지원을 하면 다행이지만,
설립한 대학을 통해서 이익을 취하려고 한다면
그런 대학은 재정상황이 뻔하다.
국립대학의 경우, 교육부의 관리들이 늘 예산이나
연구비를 가지고 대학을 길들이고 있다.
이러이러한 정책을 시행하려고 하는데,
"잘 따라오면 예산지원에 우선권을 주겠다",
"잘 따르지 않으면 예산상의 불이익을 주겠다"고
협박 비슷한 명령을 시달하고 있다.
그러니 마치 손에 닭모이를 들고
닭을 부르는 모양과 비슷하다.
현재 어느 국립대학을 막론하고
흡족할 정도의 예산을 얻는 학교가 없다.
그러니 각 대학의 총장들은 발전기금을 거두기 위하여,
연고 있는 기업가나 출향인사(出鄕人士) 등에게
기부금을 얻기 위하여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가들도 기업을 경영하여
돈 벌기가 어려운데 쉽게 돈을 내놓을 리가 없다.
그러면 대학총장들은 기업가에게 매달리게 마련이다.
매달리다 보면, 온갖 비굴한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학교발전을 위해서, 그러니 대학의
권위나 학문의 권위는 찾아보기 어렵다.
전에 서울대학교 총장 한 분이 취임 직후부터
우리 나라에서 제일 큰
그룹의 회장을 만나려고 노력했으나,
총장임기가 끝날 때까지
그 회장이 만나 주지 않았다고 한다.
만나면 나올 이야기가 뻔하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총장이 기업인에게 이런 대접을 받는데,
여타 대학 총장이 받는 대접은 어떠한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최근 고려대학교가 삼성그룹의 총수로부터
거액의 기부금을 받게 되었고.
그 답례로 명예철학박사학위를 수여하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의 소요가 있었는데,
고려대학교 총장이나 학교 보직자, 교수,
심지어 학생들까지도 삼성그룹 총수의 심기를
건드린 것에 대해서 지나칠 정도로
사과하는 비굴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기부금 앞에 너무나 맥을 못추는 것 같다.
학문의 귄위, 대학의 권위를
상실하고는 학문이 발전할 수 없다.
옛날 추상같이 엄한 주인 앞에서 쩔쩔매는
노비의 얼굴빛과 걸음걸이가
연상되는 것은 어째서일까?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