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6일(금)
* 시작 기도
(창 39: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주님...
요셉은 항상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하므로 형통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정결함으로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오히려 누명을 써 감옥에 갇혔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시련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과정임을 압니다.
그가 감옥에 들어간 것도 후일에 바로를 만나기 위함입니다.
무엇보다 감옥 안에서도 간수장의 은혜를 입어 제반 사무를 맡아 처리하였습니다.
이처럼 감옥 안에서조차 여호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으로 그의 범사가 형통하였습니다.
내가 만약 요셉이었다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함에도 나의 뜻과는 반대로 일어나는 일들로 온갖 근심과 걱정에 패배의식이 나를 짓눌렀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조차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형통한 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요셉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봅니다.
우리 주님을 통하여 나와 같은 죄인 중에 괴수를 흑암의 권세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그 은혜가 오늘도 온전히 내게 임합니다.
하여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어 주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나의 의로 행하려는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마 10:34-42
제목 :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그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나의 묵상
본문은 제자들이 세상과 겪게 되는 갈등이 필연적임을 강조한다.
그로 인하여 당하는 박해는 피할 수 없다.
이는 주님께서 화평을 주러 오신 것이 아니라 검을 주기 위하여 오셨다고 하신데서 근거한다.
나아가 제자들에게는 절대적인 헌신의 삶이 요청된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그 가족을 더 사랑하는 자는 제자로서 부적합함을 밝히신다.
또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자 역시 제자로서 부적함을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새로운 세상에서 그 생명을 잃을 것이나 이 세상에서 주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새로운 세상에서 얻을 것임을 지적하신다.
또한 예수님께서 보낸 복음 전도 사역자들을 영접하는 것은 곧 예수님 자신을 영접하는 것이며 나아가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고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다.
누구든지 냉수 한 그릇이라도 제자들에게 공궤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서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본문 34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복음을 가지고 오셨는데 그것이 바로 검(劍)이라고 하신다.
왜 검을 가지고 오셨는가?
이는 곧 찢어 발겨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본주의, 세속주의적인 사고방식을 찢어발기기 위해서 바로 복음이 검이 되는 것이다.
이 말씀을 더욱 확실히 보여주는 말씀이 바로 히브리서 4장의 말씀이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왜 우리의 인생이 자주 그렇게 갈기갈기 찢어지는가?
이는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기 때문이다.
복음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의 인생을 자꾸 갈기갈기 찢어발기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새 부대 곧 새 옷을 입으라고 말이다.
헌 부대는 우리 주님께서 찢어버리실 테니까 새 부대에다 예수를 담으라는 것이다.
새 부대가 되려면 우리는 찢어져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이 자주 찢어지는 것이다.
성도는 신랑을 빼앗기는 날, 즉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날에 금식하는 자 곧 그 십자가에 동참하여 죽는 자로 지어져 가야 한다.
금식은 곧 육신의 죽음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는데 우리는 그 십자가를 붙들고 하는 짓이 무엇인가?
그저 건강 주세요, 돈 주세요, 내 명예 주세요, 하는 악당들 아닌가?
하지만 이런 악당들이 아니라 그 십자가 앞에서 주님의 은혜를 알고 주님과 함께 죽어야 한다.
주님이 나 때문에 죽으셨군요.
내가 바로 예수님을 죽였군요.
이것이 진짜 나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로 부요해지는 것이다.
35-37절은 자기의 가족들을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앞서는 것은 결코 합당치 않은 일이라고 일갈하신다.
이에 대하여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한다.
(마 19: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여기서 베드로가 말하기를 우리는 모든 것을 버렸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가 무슨 보상을 받을 수 있냐고 묻는다.
이 때 주님께서 되물으신다.
그것이 널 위하여 버린 거니, 아니면 내 이름을 위하여 버린 거니?
그래서 29절에 ‘내 이름을 위하여’가 붙어 있다.
(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이는 인간들이 자기 이름을 위해서는 버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 이름을 위해서는 절대 못 버린다는 뜻이다.
그런데 네가 진짜 내 이름 곧 예수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렸다고?
이 질문 앞에 그의 고백이 금세 탄로가 나버리고 만다.
그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누가 큰 자인지 싸우는 내용이다(마 20:21-26).
그런데 버리긴 뭘 버렸다는 거야?
더 큰 걸 얻어내기 위해서, 나의 인기와 평판, 자랑과 자아성취 그리고 자아실현이라는 그 진짜 큰 걸 얻어내기 위해서, 나의 만족과 나의 행복 그리고 나의 자유를 얻어내기 위해서 작은 것들을 버린 거니?
베드로가 원했던 것은 이 세상에서 반대급부로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물질적 축복이었을 수도 있고 자신의 명분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렸다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예수의 이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우상을 위한 것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찾아오신 우리의 삶속에서는 예수님이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내 자신을 버리게 만드신다.
그것이 ‘나’라고 하는 울타리 속에 내 존재의 확장으로 붙들고 있는 집 형제자매 부모 자식 전토(마 19:29)를 버리게 만든다는 말이다.
그런 후에 주님이 무엇을 준다고 하시는가?
그것은 여러 배 곧 백 배(막 10:30)를 주시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 나라의 관계와 하나님 나라의 풍요를 주신다.
그것이 바로 영생이다.
예수의 이름을 위해서 그걸 버리는 것이다.
내 새끼를 버리는 것이다.
그 정욕과 탐심의 관계를 끊고 그 소유에서 내 마음을 떠나게 하는 것이다.
누가 그 일을 하시는가?
바로 예수님이 하신다.
그런데 모두가 자식을 위해서 산다고 하지 않는가?
전부 부모를 위해서 산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은 결국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가족은 내 존재의 확장이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서 사는 것이 곧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바로 그것을 끊으시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주님이 검을 들고 오신다.
다름 아니라 끊어버리기 위해서다.
내가 검을 주러 왔다, 원수를 만들겠다는 말이 바로 그 뜻이다.
(본문 36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나는 복음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자였다.
가족은 하나님이 주신 사랑하는 이들이기에 그들을 위해서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자이다.
그것만큼 아름다운 헌신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오늘 말씀은 주님께서 자기 집안사람들까지 버리지 않으면 주님께 합당한 자가 되지 못한다고 하신다.
이는 가족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진짜 자식이 아플 때는 내 몸이 아픈 것보다 더 아프고 아리다.
그런데 정말 날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신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그 아픈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꼈는지 생각해 보면 아니올씨다, 이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바로 이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다.
말로는 무얼 못하겠는가?
내 모든 것이라도 드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내 삶에서는 조금만 과하다 싶으면 그것을 얼마나 많이 나누고 재단(裁斷)을 하는지...
나는 죄인 중에 괴수임이 분명하다.
내 것을 내 것이라 하며 아까워서 주님께 드리지 못하는 이런 모습은 추하다 못해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오늘도 이런 나의 모습을 주님의 십자가에 함께 못 박는다.
그렇게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어 주님의 뜻을 이루는 자로 살기 원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의 부도덕한 모습이 심히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주님 앞에서 부도덕이 아니라 복음의 거울 앞에 섰을 때 나의 모습이 어떠할지 심히 두렵고 떨릴 뿐입니다.
복음으로 검을 들고 오셨는데 그 검이 나를 찔러 쪼갤 터인데 내가 어떻게 설 수 있겠나이까?
나를 불쌍히 여기서 주의 은혜를 베푸소서.
오늘도 나는 죽습니다.
나의 의를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의 정욕과 탐심을 주님께서 떠나게 하옵소서.
그런 것들은 나로부터 끊어주소서.
그리하여 정말 하나님 나라의 관계 속에서 온전한 영생을 받아 누리는 자로 세워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