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짜기에서 주인이 공짜로 준 쑥술을 마시며 이야기가 길어진다.
종필이가 나의 퇴직 전후를 고려해 광주 좋은 곳에 사무실을 마련하자고 한다.
책도 보고 그림도 그리고 바둑도 두며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을 하자는데,
조금 온도차는 있을지 몰라도 드러내 놓고 반대하는 이는 없다.
충호형은 남해바다와 지리산이 가까운 순천을이 좋다고도 하시지만
형수님은 광주로 옮기자고 하신댄다.
영대는 광주 아닌 서울이나 어쩌면 외국에서 지낼 수도 있다고 한다.
나도 4도 3촌을 말하며 고흥 어머니집에서 채마밭도 가꾸고 산나물도
캐면서 지내다 주말에 광주에 오겠다고 한다.
어찌보면 눈빛 친구들 사무실 마련에 대한 입장이 조금씩 다른데,
또 그간의 우정이 있어 그러자고 한다.
식당 주변에 감이 빨갛게 투명한 빛을 띤다.
영대가 감에 대한 추억이 있다며 장대를 들고 홍시를 딴다.
식사를 길게 하며 배가 부른데도 영대는 감을 먹는다.
축령산삼나무 숲을 걸을까, 남창계곡을 걸을까 하는데, 모두 안 가본 곳을 가자고 한다.
북일 신흥리 지나 장성호조정경기장 쪽으로 고개를 넘는다.
자전거를 타는 영대는 장성호 주변의 자전거길을 보고 오겠노라고 한다.
길 가에 차를 세우니 영대도 학생들과 전남대수련원에 와 본적이 있다고 한다.
나나 산에 대해 아는 체를 하며 등산로를 설명하고 잠깐만 걷자고 한다.
길 위엔 참나무 잎이 수북하다.
계곡의 물은 가난하지만 맑게 나뭇가지와 하늘을 비춰준다.
덕석같은 것이 깔려있는 길을 걷다가 자연관찰로로 들어간다.
나도 이 길은 처음이다. 무조건 몽계폭포 쪽이나 입암산성쪽으로 산만 오르곤 했다.
친구들과 사람없는 호젓한 길을 걷는 맛도 좋다.
그렇지만 또 사진 찍는다는 핑계로 앞서 간다.
종필 등의 걸음이 여유있는 탓도 있을 테지만, 난 왜 같이 걷지 못하는 것일까?
종필의 노랫소리에 맞춰 영대가 따라 부르니 깊은 산속에 남자들의 호방한 겨울노래가 좋다.
돌에 쌓인 하얀 눈 사이에 새빨간 색을 띤 나무가 서ㅓ 있다.
열매니 단풍잎이니 하며 지난다.
다리를 건너 삼나무 숲 입구에서 충호형과 숲길로 들어서는데 영대랑은 오지 않는다.
삼나무 숲을 지나 다리에서 낙엽계곡을 보고 돌아오니 둘이는
그 빨간 나무의 정체를 보고 왔노라 한다. 단풍잎이란다.
종필이 생일이라고 각시한테 선물로 현금을 받았다며 저녁을 사겠다고 한다.
첨단에서 차를 끌고 하남의 신사장네 어부가로 간다.
특별주문한 광어회는 크고 두껍다.
충호형은 생일을 축하해 주겠다고 하지만 종필이가 낸다.
논문을 정리해야하는 영대는 연구실로 가고, 어제 약속대로 못하고 모텔에서 주무신 충호형도
순천으로 가신다. 신사장과 제수씨까지 불러 술을 마시고,
또 종필이랑 맥주를 더 마시고 대리를 불러 빈집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