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동행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라
한 자매가 눈물을 쏟으며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도 주 예수님과 친밀히 동행할 수 있습니까?”
그 자매의 답답함이 너무나 절절히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자매의 영혼이 참 복되다 여겨졌습니다.
울면서 자신의 영적 답답함을 고백하게 하시는 주님의 역사를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회 초창기에 결신자에게 세례를 주어야 할 때, 고민이 생겼습니다.
이 사람이 정말 구원받았는지 아닌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대상자에게 시험을 보기도 했습니다.
‘주기도문, 사도신경을 외울 수 있느냐?’ ‘성경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아느냐?’
세례 문답을 위한 예상문제를 만들어 시험 준비를 하게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국도 시험을 보고 들어가는가, 회의가 생겼습니다.
누가 천국 갈 사람인지 분별할 기준을 모르니 혼란스러웠던 것입니다.
그 때 성경 구절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고린도후서 13:5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구나! 예수님께서 마음에 계신 것을 확인하면 되는구나! 깨달아졌습니다.
성경은 성령이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였습니다. (롬 8:9)
그래서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시면 어떤 역사가 일어나는 지 성경을 찾아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크게 일곱가지 증거가 나오는 것입니다.
첫째 예수를 주라 시인하는 것입니다. (고전 12:3)
둘째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롬 8:15-16)
세째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고전 2:12)
네째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요일 4:12-13)
다섯째 성령의 근심을 느끼는 것입니다. (엡 4:30)
여섯째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소원이 있는 것입니다. (빌 2:13)
일곱째 전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행 1:8)
저는 이것을 세례받을 교인에게 적용해 보았습니다.
성령께서 그 사람 안에서 역사하시는지 확인해 본 것입니다.
그랬더니 저도 확실히 알 수 있었고 세례받는 사람 스스로도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분명히 성령께서 역사하시는데도 말씀으로 분별하지 못하여 영적으로 방황하는 그리스도인이 너무나 많은 것이 안타깝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지만 구원받은 자가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마 7:21)
불법을 행하면서도 입으로만 “주여”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도 많이 들어서 하나님을 “아버지” 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 주는 휴메니스트와 타 종교인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한 두가지만 보고 그가 구원받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전체 말씀을 적용해 보면, 자신이 구원받은 자라는 증거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자신 안에 거하시는 것을 항상 확인해야 합니다.
엄청난 일이 자신 안에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과 친밀히 동행하는 삶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