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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표 없는 편지 원문보기 글쓴이: 청풍명월
☪ 《감염병 인류》
책은 「창비」에서 2022년 초에 출간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자 자극받아 출판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한 번쯤 꼭 짚어보고 싶었던 전염병 혹은 감염병에 관한 이야기다 싶다. 〈감염병이 바꾼 세계사〉〈세계사를 바꾼 10가지 감염병〉이라는 책도 있지만, 둘은 외국 석학이 쓴 것인데 반해, 이 책은 우리나라 두 명의 학자가 공동으로 쓴 것이라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한때 중국인 입국을 막아야 한다며 논란이 커지더니 곧 유럽 각국에서 도매금으로 동양인의 입국을 금지시켰다. 그러다가 이탈리아와 스페인, 독일에서 창궐하자 미국은 유럽인 입국을 막았다. 그런데 이제는 미국의 환자가 가장 많은 지경으로 급기야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외국인 입국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냥 모두 출국을 금지하자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전 세계를 하나의 지구촌으로 만들겠다는 장밋빛 미래’비전을 말하는 사람은 이제는 없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2020년 태어난 아이는 평생토록 외국에 가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프롤로그에 저자가 한 말이다. 저자 박한선 교수는 서울대에서 인류학 박사학위 받았고, 구형찬 교수는 서울대에서 종교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둘은 같은 연구실 옆자리에서 연구하고 같은 강좌의 분반 수업을 나누어 하다 보니 농담처럼 공동작업을 해보자는 막연한 희망을 나누곤 했는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며 그럴 기회를 준 ‘창비’에 감사하다고 했다. 책의 모든 내용은 두 저자가 같이 읽고, 서로 고쳤으므로 책에 어떤 오류가 있다면 전적으로 공동 잘못이라고도 했다.
‘감염병과 우리 안의 원시인, 감염병 연대기’등 분류한 장만도 10장이나 되고 세부 제목도 ‘진화와 인간, 진화와 의학, 세균의 족보’등 아주 다양하고 많은데 그것들은 출판사가 서평에서 소개했으므로 여기에 중언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본다.
“오늘 다른 동물을 먹는 동물은 내일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의 엄중한 진리죠. 어떤 생물도 피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살기 위해 다른 생물의 생명을 빼앗고 언젠가는 자신도 다른 생물의 삶을 위한 재료가 될 것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는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Homo homin lupus)고 했습니다. 이 말은 오래전 라틴어 속담입니다. 고독하고, 가난하고, 추악하고, 야만스럽고, 짧은 것이 인간의 삶이라고 했습니다.”
프랑스혁명 당시 생존하고 있던 프랑스인 12%만이 1세기 후에 자손을 남길 수 있었고, 1881년 태어난 여성 중 절반이 자손을 남기지 못했다. 50년 후(1931년)에는 자손의 3분의 2가 프랑스혁명 당시에 살았던 여성 4분의 1에서 태어났다. 이것은 혁명보다도 치열한 생존경쟁이 인류사 내내 지속해 왔다는 말이다.
세계는 신의 섭리로 창조된 평화롭고 행복한 곳이라는 오래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악한 세상은 곧 심판받을 것이라는 주장과 양립한다. 모순이란 이런 것이다.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인 것은 죄악 때문일 뿐, 본질적으로 세상은 온전하고 조화롭다는 이상한 결론으로 이어지는데 뭔가 잘못된 것을 고치기만 하면, 죄악을 찾아 없애기만 하면, 원래의 아름다운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사자와 사슴이 다정하게 어울리는 에덴동산에 대한 믿음만이 아니라, 배고픔과 전쟁이 없는 요순시절이 올 것이라는 태곳적 이상향을 갖고 있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진화론은 이런 원시주의적 믿음을 산산 조각내 버렸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원시적 이상향은 단 한 곳,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다. 지구상에 생명이 탄생한 이후 ‘존재를 위한 투쟁’은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진화론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정서적 배격을 당하는 이유 중 하나는 ‘좋았던 과거’에 대한 깊은 환상을 무너뜨리기 때문인지 모른다. 인간은 밝은 미래를 꿈꾸는 본성이 있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을 기대하는 것이다. 비록 현실은 시궁창이더라도 미래에 대한 희망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개인에게 삶도 그렇지만 세상에 대한 믿음도 그렇다. 과학과 기술의 혁명적 발전을 통하여 인류는 자원의 기하급수적 증산이라는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과학기술은 늘 대재앙을 불러왔고 인류가 자랑하는 농업혁명이나 산업혁명은 모두 인류를 큰 어려움에 빠뜨렸다. 감염균은 새롭게 변화한 환경에 재빨리 적응했고, 수많은 사람과 가축들은 떼죽음을 당했다. 기술혁신은 역설적으로는 인류사적 퇴보에 가까웠다. 모든 사람이 충분히 먹을 수 있는데, 분배가 잘 안 돼 굶주리는 사람이 생기고 싸움이 벌어진다고 한다. 인간은 사회적 협력을 할 줄 아는 동물이며, 협력과 상생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하고 적절한 통제와 규제, 교육, 계몽을 통해 사회구조를 바꾸고 생각도 바꿀 수 있다고 한다. 전 지구적 혹은 세계적으로 협력을 통해서 영구히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사회혁신을 위한 노력은 도리어 인류를 어려움에 빠트렸으며, 신석기 이후 각종 혁명은 엄청난 불평등을 유발했다. 모든 것이 차별적으로 분배되고, 수렵채취사회의 인류보다 무려 10㎝나 신장이 작아지고 수명도 짧아졌다. 수많은 감염병에도 시달렸다. 지난 1만 년의 불평등은 지금도 그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전쟁이나 기아, 역병이 닥치면 불평등 문제는 생존의 문제가 된다. 코로나19 희생자는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지내는 저소득 노인층, 집단 수용된 정신장애인, 발달장애인, 열악한 환경에 처한 하층 노동자, 배회하는 노숙인, 슬럼가의 유색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들도 희망을 버리지는 않는다. 이제 기술적 혁신과 노력을 통해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보다 살기 좋은 곳일수록 인구는 더 가파르게 증가한다. 이상주의자의 희망과 달리 인류는 그 반대 방향으로 폭주해 왔다. 증가하는 인구는 필연적으로 굶주림과 갈등, 전쟁과 역병을 일으켰다. 잠시 잠깐의 낙토는 있을 수 있지만 영원한 낙토는 없다. 최소한 이승에서는 그렇다. 인간보다 병원체 숫자는 훨씬 더 많고 또 유연하다. 다윈이 말한 진화론은 우리 마음에서 태곳적 이상향과 언젠가 찾아올 파라다이스를 모두 앗아가 버렸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자원고갈과 과도한 경쟁, 기아, 전쟁으로 이어지는 벼랑 끝으로 가는 것일까? 정답은 모르지만, 해답은 과거와 진화적 인류사에서 찾아야 한다. 지난 500만 년 동안 인류는 ‘존재를 위한 투쟁’의 기록을 썼다. 마을 전체가 역병으로 떼죽음을 당한 일이 비일비재했다. 한때는 강성했으나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민족과 국가도 있다. 겨우 간신히 살아남았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이런 진화적 기억은 우리의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답은 과거에서 찾을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우리 조상들은 인류사 내내 감염병을 피하고 살아남으려고 분투했다. 병을 피하려던 마음가짐이 종교적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쳤다. 종교적 금기와 의례가 감염병을 회피하기 위한 행동 전략과 많이 닮아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감염병과 경쟁하면서 진화하는 과정에서 빚어지게 된 여러 가지 특징적인 정서, 인지, 행동패턴 등이 인간 심성 속에 종교의 탄생과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해진다. 진화한 인간의 마음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다양한 종교적 금기와 의례적 관습의 기원을 알아 볼 수 있게 한다. 오늘날 팬데믹 상황에서 다양한 종교적 반응으로 우리 사회와 우리 문화에 어떻게 나타나는지 분석하고 예측할 수도 있게 한다.
[코로나19]
질병의 이름에 특정 집단의 이름을 붙이는 전통은 역사가 아주 깊다. 그러나 그것은 국가나 민족 간 왜곡된 자존심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에문제가 없다고 할 수 없다. 대표적인 경우가 매독인데, 20세기 중반 페니실린이 개발되기 전까지만 해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이 병이다. 15세기 유럽 인구 15%가 이로 인해 죽었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탐헙가 에르난 코스테르,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악성 슈베르트,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 블라드미르 레닌, 무솔리니, 아돌프 히틀러 등도 이 병을 앓거나 그로 인해 죽었다.
프랑스의 샤를 8세는 나폴리를 침공해 여러 도시를 점령하고 승승장구했으나 몇 년 후에 군대를 퇴각할 수밖에 없었는데, 너무 많은 병사들이 매독에 걸려 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과 이탈리아, 영국은 이 병을 ‘프랑스 병’혹은 ‘나폴리 병’이라고 불렀다. 나중에는 유럽을 넘어 인도, 중국, 한국, 일본으로도 퍼졌다. 터키에서는 ‘기독교 병’이라고 하였고, 무슬림들은 힌두교인들이 원인이라고 하고, 힌두교인은 무슬림이 원인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코로나19의 정식명칭은 ‘코비드-19’로, CO는 코로나 VI는 바이러스, D는 질병, 19는 2019년이란 뜻이다. 무성의한 작명 같지만, 2020년2월12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이름이다. 처음에는 다른 명칭으로 불렸는데 중국 우한지역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라고도 하고 ‘우한 폐렴, 우한 괴질’이라고도 했다. 스페인 독감, 홍콩 독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지카 바이러스 등도 모두 지명을 딴 이름이다. 하지만 지명으로만 이름 붙이지는 않는다.
매독의 정체가 확실해지는 데 수백 년이 걸렸듯 코로나19가 속한 신종 바이러스들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명확하지 않다. 사스, 메르스 등과 같이 박쥐, 낙타, 천산갑, 사향고양이 등 다양한 야생동물이 용의선상에 오르지만, 확실히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간은 동물에서 진화했다’고 하는 진화론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이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주장이 맞는다. 하지만 이 주장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아마도 종교영역에서 그럴 것이다. 종교인들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르다고 한다. 매우 특별한 존재로 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되었다는 이야기도 그렇고, 인간만이 윤회의 사슬을 끊고 열반에 이를 수 있다고 하는 것도 그렇다. 종교를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연구의 대상으로 보는 ‘종교학’도 마찬가지다. 인간만이 특별한 존재라는 인식과 마음의 작동 방식과 행동의 진화 양식에 따른 방법으로 종교를 이해하는 ‘인지 종교학’이라는 학문 분야까지 생겼다. 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진화된 마음의 작동 방식에 의해 제약되며, 종교적인 생각과 행동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말은 현생인류의 별칭이면서 인간 본질이 이성적 사고 능력에 있다고 하는 철학적 의미를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감염병 연대기〕
인류의 역사는 감염병의 주기적 유행으로 점철되어 있다. 정착 생활을 시작한 신석기혁명이 일어나고 시작된 일로 이때 세계 인구는 400만 명 정도로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의 상황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5000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세계 인구는 겨우 500만 명, 100만명 느는 데 불과했다. 농경과 목축으로 정착 생활이 가능했으며, 이전보다 자주 아기를 낳을 수 있었고, 아기를 업고 멀리 떠날 필요도 없었음에도 인구증가는 더뎠다. 왜일까? 실제로 구석기시대보다 두 배 이상 자식을 낳았지만, 주기적으로 찾아온 감염병의 대유행으로 인구증가를 원점으로 돌려버린 것이다. 수천 년이 지난 뒤에 저항력을 가지게 되면서 인구가 늘어나 2022년 현재 세계 인구는 80억 명을 넘었다. 최근까지도 감염병 대유행은 인구증가를 막는 강력한 요인인 것은 분명하다.
단지 먹고 살기 위해 가축을 길들이고, 곡물을 개량하고 저장한 신석기인들은 수렵채집을 병행하면서 정착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자연스럽게 불청객이 나타났다. 쥐와 모기, 파리가 찾아오고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도 동거하자고 했다. 인간과 가축의 분변, 각종 쓰레기가 쌓이면서 수렵과 채집사회에서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일들이 생겼다. 한마디로 그것은 시궁창이었다. 문제는 동물이었다. 역사학자 ‘윌리엄 맥날’은 이렇게 말했다.
“인류의 조상이 겪어온 생물학적 진화는 체내의 기생충과 인간을 포식하는 육식동물, 인간이 포식하는 생물과 서로 균형을 이루며 진화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을 통해 유지된 생물계의 자연적 균형은 문화적 진화가 일어나면서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새롭게 터득한 기술에 의해 인류는 자연계의 균형을 바꾸는 능력을 얻었고, 따라서 인간이 걸리는 각종 질병에도 근본적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선악과를 따 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무렵에 아담은 쫓겨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너는 죽도록 고생해야 먹고 살리라. 들에서 나는 곡식을 먹어야 할 터인데,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리라. 너는 흙에서 난 몸이니 흙으로 돌아가기까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얻어먹으리라” 창세기에 쓰인 말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같이 살면서 음식도 나누고 감염균도 나눴다. 사람 간에도 전파되기도 했지만, 일차 감염원은 동물인 경우가 많았다. 이것을 ‘인수공통감염병’이라고 하는데, 그동안 우리가 겪은 수많은 질병들 중에서 홍역은 소의 우역에서, 천연두는 우두에서, 인푸루엔자는 돼지에서 건너왔듯이 콜레라, 천연두, 홍역, 볼거리, 수두 등등... 전통적인 감염병은 모두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인류를 괴롭힌 감염균의 종류는 약 1400종, 그중 538종이 박테리아나 리케차*, 317종은 진균, 57종은 원생동물, 287종은 연충, 2종이 프라이온, 바이러스는 208종인데, 이 중 800종이 人獸共通感染病이다.
*리케차(rickettsia), 일부는 곤충이나 진드기와 같은 절지동물의 세포 내에 산다. 사람에게 감염되어 발진티푸스 같은 질병을 일으킨다. 에너지원과 영양원은 숙주에 의존한다. 리케차가 일으키는 질병의 증상은 오한, 발열,두통 등이다.
기원전 430년 펠로폰네소스 전쟁 때에 아테네는 엄청난 역병이 유형해 10만 명이 죽었고, 몇 년 사이에 이런 유행병이 두 번 더 닥쳤다. 물론 그전에도 유행병이 있었겠지만, 기록은 이것이 최초다. 원인은 시민들이 스파르타군의 공격을 피해 아크로폴리스로 몰려든 때문이었다. 집단으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자 사람들은 평정심도, 신앙심도 모두 잃고는 향략에 빠지기 시작했다. 국력이 소모된 아테네는 결국 스파르타에게 패망했다. 이것을 기록한 투카디데스도 역병에 걸렸지만, 용케 살아남아 이 기록을 남겼다. 이외 기원전 387년부터 로마 시대에만 최소 열한 번의 전염병이 유행했는데, 의사였던 칼레노스는 환자를 버려둔 채, 역병을 피해 달아났다가 기록을 남겼으나, 그는 의사로서는 자격 미달이었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하고 비잔틴제국이 뒤를 이은 후인 서기 541년에는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이 제국을 덮쳤다. 역사상 가장 심각한 전염병으로 꼽히는 이것으로 콘스탄티노플에서만 매일 5000명이 죽어 나갔다. 최대 1억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것을 제1차 구세계 팬데믹이라 부른다. 역병의 원인은 페스트균이었다. 이후에 주기적으로 감염병이 덮쳐 14세기에도 흑사병, 즉 페스트로 유럽인 세 명 중 한 명이 죽어 제2차 펜데믹을 만들었다. 중국과 몽골에서는 기록조차 없이 숱한 사람들이 죽었다. 페스트는 잊을만하면 다시 나타났는데, 지금도 국지적으로 유행하는 감염병이다.
19세기 들어서는 3차 팬데믹이라고 불리는 아시아 콜레라가 유행해 1817년 인도 콜카타에서 시작해 중동, 동부 아프리카, 지중해 연안, 동남아시아로 무역로를 따라 확산을 거듭하다가 8년이 지난 1924년에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5년 후에 북미와 유럽에 콜레라 팬데믹은 재발되었으며, 이후 거의 100년 동안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조선 후기 한양에서만 13만 명의 희생자를 낳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20세기 초 유명한 스페인 독감으로 최대 2억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1961년 콜레라가 다시 창궐해 ‘제7차 콜레라 팬데믹’을 유발했다. 그리고 이것은 전 세계를 휩쓸며 14년이나 지속되었다.
2020년 코로나19로 전 세계 사망자는 170만 명에 이르다 2022년 12월 현재는 전 세계 사망자가 6백 67만 3천 명에 이르고, 우리나라에서도 3만 1천 명에 이른다. 그런데 해마다 결핵과 HIV(면역결핍바이러스)로 비슷한 숫자가 죽고 있다. 또한 말라리아로 매년 40만 명이 죽고 있다. 우리는 늘 팬데믹 지구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19라는 새로운 팬데믹이 시작된 것이 아니라, 수많은 팬데믹 중에 낯선 목록이 하나 더 추가되었을 뿐이다.
〔기나긴 전쟁〕
악어와 악어새를 공존 관계라고 하지만 둘의 관계는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둘은 오랫동안 같이 잘 살아왔다. ‘서로 살갑게 대한 숙주와 기생체는 살아남았고 그렇지 않았다면 숙주든 기생체든 몽땅 죽어버리고 자손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 학자들 이론이다. 인간은 미생물과 중생물이 공생관계를 맺고 만들어진 통 생명체다. 인간의 위장은 2㎏의 세균총을 포함해 혈액 내 작은 분자 30%는 미생물이 만든 대사물이다. 인간과 침팬지 미생물총은 약 530만 년 전에 갈라졌다. 우리 몸에는 무려 100조 마리의 미생물이 살고 있는데, 인체의 세포 수 37조 개로 이보다 훨씬 더 많다.
인간이 화식(火食)을 통해 보다쉽게 영양을 공급받았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 화식과 동급으로 훈장을 받아도 좋을 것이 발효다. 대표적인 것이 술로 알코올은 기분을 좋게 할 뿐 아니라, 자체가 양질의 영양소다. 술은 최소 9000년 전부터 인간과 함께해 왔다. 술집도, 술잔도 없던 시절에도 인간은 발효된 과일을 먹었고, 우리가 우리가 아닌 시절,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기 이전부터 그것을 먹었다. 발효는 세균이나 곰팡이, 효모 등에 의한 일종의 부패물이지만, 잘만 다루면 아주 많은 영양소를 얻을 수 있다. 술, 김치, 젓갈, 치즈 등 썩은 것을 먹다 보니 몸속에 들어오는 세균총도 아주 다양해졌다.
박테리아로 된 유익균(프로바이오틱스)은 인간의 장내에 미생물총으로 존재하는데, 그것의 균형이 깨지면 병이 생길 수 있다. 많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기생충 등은 인간과 아무런 상관 없이 자연 속에서 평화롭게 살아간다. 적지 않은 이 녀석들이 인간을 돕는데 상부상조 관계다. 하지만 몇몇 녀석들이 골칫거리로 인간의 건강을 해하고, 생명까지 앗아가는 병원체가 그것이다. 대부분 감염병은 집단생활을 시작한 신석기 이후에 발생했다. 이전부터 감염병은 있었다 하더라도 크게 유행한 것이 신석기 이후라는 것이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결핵과 발진티푸스는 신석기 이전에도 있었다. 지금도 결핵으로 전세계에서 매년 100만∼150만 명이 죽고, 발진티푸스로도 매년 2100만 명이 감염되어, 12∼16만 명이 죽는다. 이것들은 인간이 불과 옷을 발명했기 때문에 생겼다. 결핵과 발진티푸스는 인간이 가장 먼저 만난 신종 감염병이었다.
‘불의 발명과 결핵’의 관계는 그리스 신화에 티탄족은 신의 종족으로 올림포스 신들이 세상을 지배하기 전부터 있었다. 그중 프로메테우스는 ‘먼저 생각하는 자’라는 뜻으로 그에게는 동생 에피메테우스가 있었다. ‘나중에 깨닫는 자’다. 에피메테우스의 아내가 판도라로 온갖 고통과 악이 들어 있는 상자를 연 여자다. 하지만 실제로 판도라 상자를 연 것은 그녀가 아니라 아주버니인 프로메테우스다. 아폴로 몰래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바로 그분이다.
인간이 불을 사용한 것은 대략 100만 년 전, 주먹도끼밖에 없던 시절 불이라니? 호모 에릭투스가 불을 사용했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성냥 없이 캠핑을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불을 피우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산불이나 들불의 잔불을 사용하다가 어느 순간 불을 직접 만들어 썼을 것이다. 불의 사용은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이전의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들이 사용한 것으로 최소 40∼5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불로 요리하면 세균의 침입이 현저히 줄어들고, 미생물 감소로 처음에는 좋았다. 하지만 치명적인 병원균이 별로 없던 수렵채집사회와 달리 점점 취약해졌다. 감염이 늘고 숙주 간 전파에 의한 감염도, 연쇄 감염도 늘어났다.
결핵은 인간이 불을 사용한 약 7만 년 전에서 6000년 사이에 발생하기 시작한 것으로 소에서 왔다거나, 해양포유류에서 왔다고 하기도 하는데 최근 시뮬레이션 결과 불을 사용하는 조건에서 결핵이 창발하는 결과가 나왔으므로 불이 가장 큰 원인이다. 호모 에릭투스 이후 나무를 땔감으로 썼을 것이고, 사람들은 불 주변에 모이기 시작했다. 바이오메스가 타면서 유독성 연기는 호흡기 만성 염증을 유발하고 국소 면역 능력을 손상했다. 결핵균이 퍼지기 시작한 요인이었다는 것이다.
걸리면 열 명 중 4명이 죽은 발진티푸스의 중간숙주가 ‘이’라는 것이 처음 밝혀진 것은 1909년 프랑스 의사 샤를 니콜에 의해서다. 인간이 옷을 입으면서 생긴 병인데, 이때까지 원인을 몰랐다니 그 이전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니콜이 근무한 병원에는 많은 발진티푸스 환자가 입원해 있었는데, 자주 옷을 갈아입은 의사와 간호사는 좀처럼 감염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발병의 원인을 찾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1928년에 니콜은 노벨생리학상을 받았고 백신도 개발했다. 옷을 입음으로써 추위를 견딜 수는 있었으나 덕분에 발진티푸스를 얻었다. 발진티푸스보다 옷이 주는 이득이 크기 때문에 지금도 그것을 벗어던지지는 못하고 있다.
‘바이러스, 바이러스’하는데 그게 도대체 무엇일까?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쯤이라고 한다. 증식하려면 반드시 숙주가 있어야 하고, 그것의 진화 과정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구조가 단순하고 크기가 아주 작아서 현미경으로 겨우 보이는 일반 박테리아의 100분의 1정도다. 다른 생물에 기대서 사니 최초 생물은 아니다. 1930년대까지도 아무도 바이러스를 몰랐고, 1955년 로절린드 프랭클린 여사에 의해 DNA 구조를 밝힌 X선 사진이 찍혀 그 실체를 드러내고, 이 사진으로 인해 바이러스학은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하지만, 이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도 여전히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바이러스가 가장 좋아하는 숙주는 박테리아인데, 박테리아 수는 얼마나 될까? 아직은 잘 모르지만 한 연구에 따르면 노르웨이 지역에서 한 수저 흙, 즉 30g을 떠서 조사했더니 약 100만 종의 박테리아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전 세계에 얼마나 많은 박테리아가 존재하는지는 이 조사로 짐작할 뿐이다. 그러나 실체가 밝혀진 박테리아는 고작 3만 종으로, 미생물학자들은 최소 10억 종의 박테리아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각각의 이것들은 다른 종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해 무려 500억 종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는데 추정값이다. 500억 종을 줄여 1억 종이라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이름이 붙여진 바이러스는 3000종에 불과하다. 9999만 7000종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그들의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관심사는 병원성 바이러스고 신종 바이러스다. 신종 바이러스의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
2003년 1월 중국 광저우의 한 새우 상인에게서 처음 발병한 비전형폐렴이라고 한 이것은 130명의 의료인과 환자에게 급격히 퍼졌고, 의료진 중한 명이 결혼식 참석차 홍콩에 갔다가 거기도 급속도로 퍼졌다. 이렇게 시작된 사스 사태는 중국에서 5327명, 홍콩에서 1755명 감염자와 6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냈고, 전 세계로 전파되고 나서야 수그러들었다. 이로부터 1년이 지나서 사스 바이러스를 퍼뜨린 용의자로 사향고양이가 지목되어, 엄청난 숫자의 사향고양이가 살처분 당했다. 2년 뒤에는 한국은 발병사례가 없지만, 인간 코로나바이러스가 발생하는데 널리 유행하지는 않았다.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정체불명의 폐렴 환자가 발생해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짧고 강렬한 상흔을 남겼다. 중동호흡기증후군이라고 한 이것의 원인을 잘 몰라서 중동 사스라고 부르다가 메르스 코로나 바이러스, 줄여 메르스라고 불렀다. 범인이 낙타로 지목되면서 중동에서는 엄청난 수의 낙타가 살처분되었고 심지어 아무 상관도 없는 우리나라 동물원의 낙타도 한동안 격리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지구상에 살았던 사람의 수를 모두 합치면 500억 명 정도로 추산되고 그중 절반 이상이 감염병으로 죽었다. 그러나 밀리기만 한 방역 전선에서 인류는 희망을 찾고 있다. 인류사적으로 아주 최근의 일이다. 백신과 항생제, 영양과 위생개선 등으로 감염병을 하나둘 정복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복이 아니라 방어다운 방어를 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DDT는 생태계에 엄청난 영향을 남겼지만 어쨌든 모기를 잡았고, 내성균은 생겼지만, 항생제로 인해 2차 감염의 우려를 줄였으며, 매년 200만 명이 죽어 나가던 천연두는 1979년 이후에는 미국과 러시아의 질병연구소 안에서 잠자고 있다.
혹시 누가 천연두 바이러스를 탈취해 공격하면 어쩌나 하는 공상과학 영화 같은 우려가 없진 않지만, 우리들 대부분이 예방 접종한 상태이므로 크게 염려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매년 1∼2종씩 새로운 감염균으로 나타나는 신종 바이러스가 문제다. 1975년 이후 새롭게 알게 된 감염체 수가 50종이다. 심각한 영향을 미친 것만 그렇다. 인수공통감염병을 일으키는 병원체가 경계를 넘어 인간에게 감염되면 사실 숙주가 맞지 않아 산발적 감염이나 소강상태에 빠진다. 그러나 사스·메르스·코로나처럼 돌연변이가 문제다. 집중화된 가축사육, 집중화된 도시환경이 돌연변이 원흉이다. 바이러스 학자 앤드류 니키포룩은 이렇게 말했다.
“어느 시점이 되면 감염병은 다른 침입자와 조우하여 결합할 것이다. (…) 점점 더 빨리 진화하고 치명적인 돌연변이의 출현이 촉진될 것이다. 북미의 베이비붐(고령화사회)역시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것이다. 어떤 유행병이든 현장에서 손에 넣을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하기 마련이다.”
전 세계에서 2000만 명이 넘게 사는 거대도시는 20개다. 뉴욕을 빼면 모두 아시아에 있다. 도시만이 거대해지는 것이 아니다. 병원도 그렇다. 수많은 환자가 있는 병원에서는 변이균과 항생제 내성균이 서로 짝짓기를 하는 무도장 아니 모텔과 같다. 매년 수억 명이 해외여행을 즐긴다. 이런 상황에서 감염병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일지 모른다.
2019년 11월 17일 중국 후베이성에 사는 55세 남자가 병원을 찾아왔고 이어 아홉 명이 잇따라 왔다. 역사조사 결과 모두 최초 감염자는 아니었다. 그래서 1번 환자를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12월이 되자 후베이성에서 60명, 12월 말에는 우한 등에서 266명으로 늘어났다. 중국정부는 공식적으로 원인을 알 수 없는 폐렴이 유행한다고 공포했다. 사향고양이, 낙타, 박쥐 사례가 생각나 즉각 화난 어시장이 지목되었다. 그러나 어시장에서 수거한 동물과 생선에서는 바이러스가 발견되지 않았다. 최초 발생지도 알 수 없었다. 1월 20일 우한지역을 벗어나 의심 환자가 6000명에 이르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로 퍼졌다. 그리고 세계보건기구는 팬데믹을 선언했다. 역사적으로 인정받는 팬데믹은 세 번 있었다. 541년부터 200년 동안 유행한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이 제1차, 14세기 발생해 500년간 유행한 페스트가 제2차, 19세기 발생해 약 100년간 유행한 아시아 콜레라가 제3차 펜데믹으로 역사에 남았다. 수억 명이 죽은 스페인 독감은 3차에도 들지 못한다.
1948년에 창설된 WHO는 1968년 홍콩독감과 2009년 신종플루에 대해 팬데믹을 선언한 바 있다. 홍콩독감은 2년 동안 유행하면서 100만 명이 희생되었고, 신종플루는 약 1만 7000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코로나19는 세 번째 팬데믹 선언인데, 아마도 최악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높은 가족성을 보이는 알레르기는 환경에 의한 질병으로 어떤 항원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지 아닌지는 유전으로 결정된다. 일란성 쌍둥이는 알레르기를 가질 가능성이 70%, 이란성 쌍둥이는 40%다. 상당히 흔하고 가족성도 높고, 자칫 죽기도 하는 알레르기가 어떻게 이런 형질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진화한 것일까? 병원체만 방어해도 힘든 인체가 도대체 왜 땅콩이나 꽃가루에 면역을 낭비해야 하는 것일까? 이래서는 병원체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없고, 아군끼리 싸우거나 아군 진영에 폭격을 가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말이 나온다.
오랜 세월 동안 감염균과 면역계는 공진화해 왔다. 너무 약한 면역도 좋지 않지만, 너무 센 면역도 좋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균형을 잡기는 매우 어렵다. 공격팀과 수비팀은 늘 전쟁을 벌인다. 한때는 타협도 하고 가끔은 서로 돕기도 하지만, 최적 수준의 면역체계라는 것은 결과론적이다. 인간의 마음도 감염병과 공진화해 왔다. 어떨 때는 너무 과하고 어떨 때는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균형을 맞춰야만 할까?
[면역]
보통 면역은 선천면역→획득면역→행동면역으로 나눈다. 순서대로 정교해지지만, 뒤로 갈수록 고장이 잘 난다. 정밀한 전자제품일수록 애프트서비스 받을 일이 많은 법처럼… 면역에 고장이 생기면 알레르기가 생기거나 자기면역으로 방어한다. 잘못된 대상에 활성화되면 행동적 알레르기, 즉 혐오와 배제, 차별이 일어나기도 하고 자기 자신을 공격하면 우울과 불안, 강박 등이 나타난다. 중국과 일본에서 혐한을 외치는 것은 한국인에 대한 혐오다. 혐오는 역겨움과 다르다. 상대가 미워도 사랑할 수 있지만, 역겨움은 좀처럼 사랑하기 어렵다. 더러운 것을 보고 혹시 감염될까 두려워하는 정서가 역겨움이다.
역겨움의 대상은 점점 넓어져 왔는데 배설물, 해로운 곤충과 더러운 설치류, 감염된 사람이 보이는 기침·구토·설사·부자연스러운 행동, 피부발진 등등. 혐오에 있어서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우월’하다. 맹수는 두렵지만 역겹지 않고 똥은 역겹지만 무섭지는 않다. 맛있는 과자를 똥 모양으로 만들면 여간해서는 먹기 어렵다. 곤충은 양질의 에너지원이지만 좀처럼 식탁에는 오르지 못하는 것도 해충에 대한 본능적 역겨움이 한몫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감염병은 성관계를 통해 전파되었는데, 15세기 이후 매독이 유행하면서 유럽 사회는 소위 ‘처녀’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고, 일부일처제와 도덕적 강박이 높아졌다. 감염균이 득실거리는 상황에 올바르지 않은 성행위, 위험한 정사는 행동면역체계에 크게 한몫했다. 감염병이 유행하는 세상에 정절이 자유연애보다 높게 평가받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미추(美醜)에 관한 주관적 판단은 감염가능성과 관련이 있다. 매끈한 피부와 여드름 등으로 우둘투둘한 피부 중에서 어떤 피부가 더 많이 감염에 시달릴까를 생각해 보면 연애든 우정이든 일단 건강해야 가능하다는 등식이 생긴다. 피가래를 쏟는 사람을 매력 있다고 달려들어 입맞춤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상은 변하고, 우리나라도 변하고 있다. 앞으로도 신종 감염병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우리나라는 대표적 교역국이며 자유무역을 통해 부를 일구고 있다. 지하자원이 풍부한 것도 아니고, 농사지을 땅도 넓지 않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처럼 활발한 무역을 통해 큰 이득을 누리는 나라다. 그러니 신종 감염병 유행에는 행동면역체계를 통해 보수성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집단의 외향성과 개방성이 낮아지고 집단주의가 득세할 수도 있고, 위정척사운동이 다시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행동면역체계 과민반응은 역설적으로 사람들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두려움과 불안에 휩싸인 대중은 터무니없는 도시건설에 매달리거나 백신은 거부하지만, 공업용 알코올은 마신다. 의사의 말은 듣지 않으면서 홍삼매장 직원의 말은 듣는다. 음이온이 나온다는 천 원짜리 은색 스티커를 핸드폰에 붙이면서 ‘뭔가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고 든든해 한다.
‘나는 자연인이다’로는 알레르기와 면역체계가 해결되지 않는다. 행동면역체계의 과활성화에 의한 알레르기를 해결하기 위해 원시의 삶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모든 외부인을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하고 내부 구성원으로 엄격한 종교적, 도덕적 계율을 강조할 수도 없다. 수렵채집사회로 돌아간다면 감염병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80억이 사냥하고 채집할 공간은 이제 지구에는 없다. 인류의 과거는 늘 현대인에게 지혜로운 대답을 들려주었다.
“살려거든 어서 달아나거라. 뒤를 돌아다보아서는 안 된다. 이 분지 안에는 아무 데도 머물지 마라. 있는 힘을 다 내어 산으로 피해야 한다.”(「창세기」19장)
[전염병, 어떻게 추방하고 배제할 것인가]
기원전 6000년경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신화가 전하고 있다. 점토판에 설형문자로 쓰인 시 〈길가메시〉와 창세신화 〈에누마엘리시〉,〈아트라하시스〉라는 서사도 전하는데, 여기에는 가뭄, 전염병, 기근, 홍수 등 네 가지 대재앙의 이야기가 쓰였다. 신의 선택을 받은 어떤 사람이 큰 배를 만들어 가족, 동물들과 함께 대홍수에서 살아남는다는 이야기로 어디선가 들어본 이야기다.
결국 전염병은 신화보다 훨씬 까마득한 과거부터 있었다는 것이다. 전염병에 대한 역사는 유럽에서 시작된 것도 아니다. 원인을 몰랐던 동서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전염병이 심해지면 다들 신의 재앙을 의심했다. 괴력난신(怪力亂神)을 인정하지 않았던 성리학으로 무장한 조선도 별로 다르지 않았는데, 단종이 즉위한 1452년 단군과 동명왕의 고사까지 거론하며 초자연적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상소가 올라오기도 했다. 특히 조선은 제사를 받지 못하는 무사귀신과 비명횡사한 자가 전염병을 가져온다고 믿기도 했다. 국가가 나서서 불교식인 수륙제(水陸祭)나 유교적 여제(厲祭)와 별여제(別厲祭)를 시행하기도 했다. 집합금지를 내려도 시원찮을 마당에 대규모 행사를 치른 것이었다.
내가 어릴 때도 용호동과 일광에 따로 나병촌이 있었다. 나로도도 마찬가지였고. 한센병에 대한 혐오와 편견은 끈질기게 이어졌는데, 심지어 국가가 폭력을 가하는 일도 있었다. 최근 정부가 잘못을 인정하고 배상하기로 했다. 2017년 강제로 불임수술과 낙태수술을 당했던 한센병 환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내 승소했다는 것이다. 한센병은 유전되지 않으며 치료도 가능하다. 그러나 혐오와 편견 앞에는 과학적 지식은 힘을 잃고 만다. 아무튼 1978년까지도 한센병 환자를 격리하고 임신과 출산을 막는 정책은 계속되었다.
[금기의 역사]
전염병은 피하는 게 상책일까? 인도는 소를 숭배해 소고기를 먹지 않는다. 이것은 무척 오래된 전통이며 힌두교의 근본적인 특징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처음부터 생긴 전통이 아니다. 힌두교가 소를 보호하게 된 것은 불교·자이나교 등이 살생을 금하면서 생긴 신흥종교와 수 세기 동안 경쟁하면서 나타난 현상인 것이다.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문헌이자 고대 힌두교 경전인 『리그베다』는 기원전 1000년경 쓰진 것으로 여기에는 소를 잡아 신에게 바치는 의례와 축제가 성행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에게 바친 뒤 제물을 나누어 먹었다는 것이다. 한참 뒤 소의 노동력과 유제품에 의존하게 되자 힌두교 사제들은 소 도살에 거부감이 생겼다.
기원전 6세기경 불교와 자이나교가 등장해 이들이 힌두교 브라만 계급의 전횡과 살생을 비판하면서 세력을 확장해 가고, 특히 불교는 3세기 아소카왕 시대에 가장 융성한 시대를 맞았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는데 불교의 가르침이 대중이 이해하고 따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불교는 대중이 숭배하는 신을 인정하지 않았고 수행과 깨달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힌두교는 소를 신격화하는 대중의 신앙을 그대로 수용했다. 결국 힌두교가 승리했다. 하지만 소를 희생양으로 하는 일은 없었다. 소를 숭배한 힌두신앙을 내면화했기 때문이다. 인류학자 마빈 헤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부라만은 암소보호자가 되고 쇠고기를 멀리함으로써 대중적인 종교 교리를 갖추게 되었을 뿐 아니라, 더욱 생산적인 농경 체제와 공존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는 소고기를 먹었지만, 소를 먹지 않음으로써 얻는 유익이 더 커짐에 따라 금기의 대상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음식 금기의 많은 사례들은 대개 대상에 대한 거부감에 있다. 대소변, 피나 고름 같은 자연상태의 더러운 물질은 원시적 혐오를 유발한다. 그러나 이것만이 금기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즐겨 먹어도 괜찮을 음식을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금기도 있다. 유대인과 무슬림의 돼지고기 금기가 대표적인 예다.
돼지는 목축이나 방목에는 적합하지 않은 동물이다. 특히 중동의 열대지방에는 도축해도 보관이 어렵다. 그래서 금기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삽겹살에 소주 한잔이 아주 보편적 음식이 되었지만, 일부에서는 아직도 ‘돼지고기는 잘 먹어야 본전’이라는 말이 있다. 채소보다 고기에 대한 금기가 많은 이유는 음식을 쉽게 상하게 하고, 세균과 곰팡이가 동물의 사체에서 더 잘 번식하기 때문이다. 기생충도 많아서 날고기로는 곤란하다는 것이 이유다. 금기를 지키는 것은 음식 때문에 탈이 나거나 병에 걸려 죽을 확률을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얼마 전까지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 왔다. 이것은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가급적 물리적인 접촉을 피하자는 의미다. ‘생활 속 거리두기’라고도 했는데 사회적 거리두기보다 조금 완화된 조치로 기본적 방역수칙을 지키면서 일상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둘 다 사회적 관계를 소원하게 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회적이든 생활 속이든 거리두기를 하면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거리두기에 동참하는 것이 전염병 확산을 저지하는 데 유익하다고 하여 울며 겨자 먹기로 따랐던 것이다.
세종 14년(1432) 서울 도성에서 건물을 보수하는 공사가 한창일 때 전염병이 크게 유행했다. 세종은 급하지 않은 공사를 멈추게 하고, 부역자들은 집에 돌아가 쉬게 했다. 일종의 ‘거리두기’다. 하지만 전염병만이 아니었다. 흉년이 들어 기근에 따른 굶주림도 심각했다. 흉년으로 백성이 죽는 상황이 되면 진제장(賑濟場)이라는 배급소를 열어 곡식이나 죽을 무상으로 나눠 주는 제도가 있었다. 세종 19년 진제장이 운영되었다. 음식을 얻으려고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그런데 진제장을 운영하는데도 더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배급소에 왔다가 전염병을 얻어 죽은 것이다. 세종은 큼직하고 아픈 일을 오래 기억했다. 세종 26년 다시 기아가 찾아오자 이번에는 백성이 한곳에 머무는 일이 없도록 했다. 이는 국가정책으로 이뤄진 일이지만, 관습으로 행해지기도 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대문 앞에 새끼줄을 느슨하게 치는 전통 말이다. 새끼줄에는 드문드문 숯 조각과 빨간 고추 혹은 솥가지를 꽂아 아들인지 딸인지를 나타낸다. 이‘금줄’은 장을 담은 항아리에도 쳤는데, 항아리에 어떤 미생물이 작용하는지를 알았을 리 없지만 조상들은 오랜 경험으로 행동규칙을 적용한 것이다.
감염병이 유행하면 위생 행동의 중요성이 커진다. 오염과 감염의 가능성을 감지하는데 민감해지고 평소보다 강박적일 만큼 손을 자주 씻게 된다. 낯선 사람과는 대면하고 싶지 않게 되는데, 이는 감염병 확산 억제에 도움이 되는 반응이기는 하다. 다만 필요 이상으로 혐오감에 자신과 타인을 괴롭히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다. 몰론 건강한 위생 행동과 부적응적 혐오 사이에 명백한 구분 선을 그을 수는 없다. 천연두는 가장 오랫동안 인류를 위협한 감염병 중의 하나지만, 지금은 사라졌다. 백신 덕분이다. 그러나 처음엔 많은 사람들이 접종을 거부했다. 감염병 병원체를 몸에 주입해 넣는다는 것은 당장 혐오스러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지금 우리는 ‘과거의 백신과 현재의 백신이 충돌하는 시점에 서 있는지 모른다’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통제하고 감염병으로부터 건강을 지키려면, 직관의 제약을 슬기롭게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
[전쟁과 공생]
코로나19처럼 감염병이 유행하면 전쟁?이 시작된다. 의료진은 참전하고, 물자는 징발하고, 마스크는 배급된다. 지휘부가 생기고 본부를 차린 뒤 전투를 지휘한다. 곳곳에서 검문검색(검열)하고 출입을 금지하며, 통행금지령까지 내리고 불응하면 체포한다. 그런데 전쟁이란 인간사회와 일부 영장류간에만 관찰되는 종 내 경쟁의 한 종류로서 감염균과 인간은 서로 종이 다르다. ‘좋은 균’‘적당한 감염’이란 개념은 전쟁이라는 은유에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원래 전쟁이란 그런 것인지 모른다. 좋은 적군이 있을 수 없고, 적당한 침략을 허용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감염병과는 전쟁이 아니다. 승리해도 소득이 없고, 적은 무엇을 위해 전쟁을 일으켰는지도무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18세기 영국에서 널리 보급된 인두 접종은 아주 위험한 처치였다. 인두는 천연두 환자의 고름에서 나온 물질을 다른 사람 피부에 넣는 것을 말하는데, 지금이라면 의사 윤리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접종받은 사람 열 명 중 아홉 명이 발진을 앓은 후 평생 가는 면역력을 얻었다. 이로써 인두법이 전 세계로 퍼졌다. 우리나라에도 정약용이 중국에서 인두법 관련 책을 얻어 읽고 박제가와 같이 『마과회통(麻科會通)』이라는 책을 펴냈는데, 최초로 인두법을 소개한 책이다.
세계 최초로 우두법을 시행한 인물은 영국의 제너다. 1796년 영국 시골에서 작은 병원을 개업한 제너는 우유를 짜는 한 여인으로부터 “소가 한번 우두를 앓으면 나중에는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실험을 시도했다. 쿡 선장을 따라 세계 일주에 나서기도 했던 제너는 동물에 관한 해박한 지식으로 소에게 걸리는 우두와 인간이 걸리는 천연두의 공통점에 관해 연구를 시작해 우두 접종이라는 기상천외한 모험을 감행했다. 천연두를 앓는 사람의 고름을 다른 사람에게 접종하는 인두법은 이제 안전한 우두법으로 발전하고 새로운 치료법은 삽시간에 유럽대륙에 퍼져나갔다. 수천 명의 유럽인이 접종을 받았고,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정약용에게 전해졌다.
‘파스퇴르’라는 이름은 들어 봤지만 그가 왜 유명한지는 몰랐다. 1885년 프랑스 소년 조제프가 광견병에 걸린 개에게 14번쯤 물렸다. 조제프 아버지는 저명한 과학자 파스퇴르를 찾았다. 파스퇴르는 임상의사가 아니었으나, 광견병 백신을 개발해 동물실험을 마친 상태로 다른 의사를 통해 조제프에게 광견병 백신을 접종하게 했다. 무면허 진료라고 비난받을 소지가 다분했음에도 백신접종은 성공적이었고 조제프는 광견병에 걸리지 않았다. 세균설을 정립해 수많은 목숨을 구하고 우유와 맥주를 깔끔하게 저온살균 하는 법을 찾아내기도 한 파스퇴르였다. 한때 유럽 사회를 파멸 직전까지 몰고 갔던 페스트는 파스퇴르연구소의 알렉상드르 예르생에 의해 그 균의 실체가 밝혀져 페스트균은 이제 잡았다.
지금도 위염이나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위암의 위험성을 높이는 ‘헬리코박터’균은 잡을 수 있는 것인가, 못 잡는 것인가? 예전에는 이 균이 강한 산성인 위장에서 살 수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호주의 배리 마셜과 로빈 워런은 자신들이 헬리코박터 배양균을 마시는 실험으로 그 균이 위에서 거뜬히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밝혀내 2005년 노벨생리학상을 받았다. 인간들은 대대적인 항생제를 복합처방하여 소탕을 시작해 보았으나 아직 위염을 앓는 사람도 위암환자도 많다. 우리가 모르는 레지스탕스가 장내에 숨어 있는 것일까, 혹은 더 강력한 무기가 필요한 것일까?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에 감염된 사람의 15%만이 증상을 호소하고 1%만 위암으로 진행하고, 85%는 아무런 증상이 없다. 증상이 없는 사람도 치료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헬리코박터는 최소 5만 8000년 동안 인간과 같이 살아왔다. 인류 조상이 아프리카를 떠나기 전부터 감염되어 있었고, 공생해 왔다. 공생하려면 서로 이득을 주고 받아야 한다. 연구에 따르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는 염증성 장질환의 가능성을 감소시키고, 알레르기 위험을 줄인다고 한다. 무증상 집단 전체를 대상으로 한 항생제 융단폭격은 바람직하지 않다. 항생제를 써도 박멸하지 못할 확률이 25%, 게다가 작은 부작용까지 감안 하면 50%다. 내성균만 키울 가능성도 높다. 미생물은 인간과 같이 살고자 할 뿐 인간을 지배하겠다는 야심 같은 것은 없어 보인다. 어떨 때는 서로 돕고 어떨 때는 말썽을 일으킨다. 최후의 하나까지 찾아내 분쇄해야 하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하지만 이상하다. 전세계에는 매년 1600만 명이 전염병으로 죽고 있으며, 그중에 결핵으로 150만, 말라리아로 40만 명, HIV로 70만 명이나 된다. 5억 명이 바이러스 감염을 앓고 있으며, 우리나라 인구와 막 먹는 5000만 명이 새롭게 감염이 되고 있다. 1만 년 전 홀로세가 시작되면서 인류의 삶은 점점 팍팍해졌다. 농사짓는 법을 배웠지만, 사냥감이 널려있던 구식기 시대와는 상황이 바뀌었다. 가축을 키우고 농사를 지으면서 다양한 녀석들과 더부살이하기 시작했다. 소, 닭, 돼지, 염소, 낙타, 말이 쥐와 모기, 파리 등 반갑지 않은 녀석들을 몰고왔다. 이들과의 선전포고는 인간이 먼저 했다. 평화롭게 살던 동물과 식물, 그리고 균까지 모조리 잡아 포로로 삼았다. 하지만 고분고분 당하지 않았는데, 미생물의 가축화는 어려운 법, 인간의 몸 안으로 들어오면서 조화가 깨졌다. 소의 몸에서 잘살고 있던 미생물은 인간에게 홍역과 결핵, 천연두를 갖다주었고, 돼지와 공생하던 미생물은 백일해와 인플루엔자를 가져왔다. 이미 공생하고 있던 숙주가 따로 있었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치명적이라고 해도 자연선택에 의해 제거되지는 않았다. 미생물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웠을지 모른다. 환영은 고사하고 욕이나 먹다가 급기야 항생제라는 융단폭격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이래저래 귀찮으니 미생물을 아예 모두 다 없애버리면 될까? 핵폭탄급 항생제를 만들어 미생물을 모조리 제거한다 해도 결과는 ‘깔끔’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몸에 사는 미생물은 약 1만 종, 100조 마리다. 대부분 무해하거나 유익한 균이다. 해로운 병원균은 고작 100여 종에 불과하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울 수는 없다.
이 책의 표지에 있는 ‘새 부리 가면은 쓴 의사’는 17세기 독일에서 그려진 것으로, 당시 의사들은 향기 나는 약초로 감염병을 막으려고 했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자 드디어 유럽의 젊은 의사들은 전통을 무시하고 새로운 질병에는 새로운 약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기 시작했다. 코흐와 파르퇴르에 의해 세균설이 정립되고 백신이 속속 개발되었다. 백신 개발은 역시 시간이 필요했다. 20세기 초 살바르산이 개발되어 매독 치료에 쓰였지만,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페니실린이 합성된 것을 봐도 그렇다. 1942년 일이다. 1949년 항진균제가 개발되고 1961년 항바러스제가 개발되었다. 이제 감염병에 대한 승리를 거머질 것만 같았다.
선배 의사들이 감염병에 걸린 환자에게 맑은 공기가 있는 시골로 가서 요양하라고 하고 깨끗한 공기, 맑은 물을 충분히 마시면서 쉬고 몸을 다독이라고 했지만, 후배 의사들은 그런 구닥다리 처방을 하지 않고 백신으로 예방하고 항생제로 치료했다. 인류는 미생물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은 전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쁜 인간들 우리의 생태계를 파괴하다니, 가만두지 않겠어”라고 말하는 미생물은 없다. 그들은 지난 수십억 년 동안 진화적 적응을 어김없이 할 뿐이다. 급속한 도시화와 환경파괴, 공장식 사육 무분별한 세계화로 물자와 인원의 이동, 의료자원의 공급과 비축시스템 문제와 대형병원에 의존하는 의료시스템 등 현대사회는 신종 감염병을 배양하는 배지(培地)나 다름없다. 그들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 우리가 만든 괴물이다. 항생제나 백신은 거대 진화적 현상에 귀여운 장난감에 불과하다. 얼른 개발하고, 얼른 접종하고, 얼른 치료하면 되는 것일까?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코로나23이 나타날지 모른다. 감염병과의 전쟁이 아니라 미생물과의 공생이 필요하다.
[오래된 미래]
코로나19로 가족을 잃은 사람이 600만이 넘었다. 우리나라도 3만 명을 넘겼다. 이를 두고 ‘신의 당연한 징벌’이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무심하고 무지한 폭력이 아닐 수 없다. 이태원 참사도 마찬가지다. 팬데믹으로 세계 곳곳에서 재난의 피해 소식이 부고처럼 들려오고 있다. 제대로 된 빈소조차 마련하지 못한 채 슬퍼하는 많은 사람들의 고통이다. 죽음의 소식은 하루를 거르는 법이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나 말은 그리 많지는 않다. 다만 이런 재난 상황에서 가져야 할 예법과 태도는 유족의 심정을 헤아리는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부고를 접한 사람들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에티켓은 가장 근원적 ‘종교’다.
오늘날의 팬데믹 시기에는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민간비영리단체(NPO)와 비정부기구(NGO), 종교 역할도 중요해진다. 우리나라는 이런 점에서 다소 취약하다. 재난이 일어나면 정부에 대해서는 물론 백신에 대한 불신도 높아진다. 이럴 때는 시민사회나 종교기구 같은 비국가적인 정직한 중재와 기능이 꼭 필요하다. 예로 1918년 스페인 독감이 미국에 유행하면서 미국 사회는 공황에 빠졌다.
“부패한 시장과 무능한 보건 당국자가 이끌어가던 필라델피아는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 수많은 흑인 이웃을 나 몰라한 결과 경찰서 밖에 시신이 산처럼 쌓였다. 매일 수백 명의 사람이 죽어가는데 당국은 ‘두려워하거나 경계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공허한 공식발표만 남발했다. 반대로 지역사회 중심의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끔찍한 지진 사태를 딛고 일어난 경험이 있었던 샌프란시스코는 수많은 희생자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역경을 이겨낼 수 있었다. 학교가 폐쇄되자 교사는 자진해서 간호사, 무덤 파는 인부, 전화 교환수로 나섰다. 필라델피아와 그곳의 터무니없는 여론 조작과 달리 샌프란시스코의 당국자는 공황 상태를 무마하려고 애쓴 것이 아니라, 침입자를 저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모든 사람은 마스크를 쓰고 적극적으로 일에 달려 들었다.”바이러스 학자인 니키포록의 회고다.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끝없이 커지기만 하던 세계무역과 인력, 물자의 대이동의 기세는 꺾일 것이다. 지구 전체가 하나의 도시처럼 된 세계제국은 강력한 백신과 항생제, 보건의료의 향상과 개선에도 불구하고 팬데믹이 발생했다. 코로나19는 언제 종식될지 아무도 모른다. 설사 종식된다고 해도 안심할 수도 없다. 유스티나아누스 역병은 무려 200년을 끌었다. 니키 포록은 사람들이 여행을 덜 하고 무역을 줄이며 공공보건에 더 관심을 기울일 것라고 했다. 생태계 파괴, 세계화, 도시화 등을 통한 경제적 이득이 지속되어서 발생할 신종 팬데믹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 지구온난화에는 심드렁하던 사람들이 코로나19에는 아주 예민하게 반응한다. 분명 2019년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타인을 미워하고, 때리고, 죽일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본성이다. 체면 때문에, 법 때문에, 평판 때문에 잠들어 있던 본성이다. 그러나 팬데믹 상황에서는 강력하게 활성화될 수 있다. 감염병에 걸리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던 때가 불과 100년 전이다. 지난 1만 년 동안 지속되어온 역병, 앞으로 1만 년을 더 지속한다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감염병과 싸울 수 있는 답은 우리 인류의 과거에 있을 것이다. 기후변화를 억제하고 자연생태계를 보존하며 사회적 혐오를 줄여야 한다고 하는 것처럼, 의제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저절로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현재는 불확실하고 미래는 모른다. 그래도 과거를 알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할 일은 명백하다. 알베르 카뮈는 『페스트』에서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후, 다행히 페스트를 이겨낸 오랑시를 바라보고 주인공의 말을 빌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이 연대기가 결정적인 승리의 기록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 기록은 다만 공포와 그 공포가 지닌 악착같은 무기에 대항해 수행하여야 했던 것. 그리고 성자가 될 수 없고 재앙을 용납할 수 없기에 그 대신 의사가 되겠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이 그들의 개인적인 고통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수행하여야 할 것에 대한 증언일 뿐이다.
군중이 모르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를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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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표 없는 편지 원문보기 글쓴이: 청풍명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