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나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루카 9,23-26
이제 우리 교회는 백색 순교자를 필요로 합니다!
젊은 시절, 유학 생활이 끝나갈 무렵이 기억납니다. 우여곡절 끝에 과정을 마무리 짓고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였습니다. 제 마음 속에는 깊은 감사의 정이 솟구쳤습니다.
한없이 부족한 내게 수도회에서 좋은 배움의 기회를 주셨으니, 어서 빨리 돌아가서 이 좋으신 주님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이 특별하고 대단한 성인 돈보스코의 사랑을 아이들에게 전해야겠다는 열정으로 마구 솟구쳤습니다.
그 어려웠던 시절, 마카오에서의 길고 긴 유학 생활을 끝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마음도 마찬가지였겠지요.
그러나 저와는 달리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기다리고 있던 고국 땅 조선의 상황은 암담하고 살벌했습니다. 박해가 한창이었기에, 입국 과정은 철저하게도 은밀했습니다. 입국 과정은 소설 몇 권을 써도 남을 정도로 처절하고 위험했습니다.
육로가 꽉 막혀있으니 바닷길을 선택하고, 조각배에 몸을 싣고 건너오다 폭풍우를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겨우 조선 땅을 밟았지만, 언제나 사람 눈을 피해 산길로, 밤길을 쉼 없이 걸어야 했습니다.
숙박을 청하는 것도 조심스러워 노숙을 밥 먹듯이 했습니다. 끼니를 자주 건너뛰니 건강 상태는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그 어떤 건강한 장정도 견뎌내지 못할 여행길에 온몸은 녹초가 되고 말았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피 흘리는 순교 이전에 이미 땀과 일의 순교자, 백색 순교자로서의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활활 한 세미나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적색 순교자들로 흘러 넘치고 있다. “이제 우리 교회는 백색 순교자를 필요로 합니다.” 자신의 구체적인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증거•증언하는 백색 순교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교회 역사 안에서 박해 시대가 지나가면서 순교에 대한 재해석 작업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순교의 의미, 순교의 개념이 점점 확장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피흘림 없는 순교 개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피흘림 없는 순교를 영적 순교, 백색 순교라고 불렀습니다.
박해가 사라진 시기,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자 하는 의지는 그리스도를 위해 죽고자 하는 의지만큼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결혼을 포기하고 깊은 사막 속으로 들어간 수도자들, 고행자들, 더 나아가서 적극적으로 하느님을 증거•증언하는 사람들까지 백색 순교자의 범주에 포함시켰습니다.
종교 자유 이후 많은 신자들이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거나. 순교자들의 무덤을 순례하기 시작했는데, 이 역시 또 다른 형태의 백색 순교로 여겼습니다.
오리게네스 교부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자기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가는 것, 그리스도인으로서 매일 자신의 양심을 지키는 것, 역시 순교입니다.”
백색 순교에 대해서 한 마디로 요약해보면 각자 삶의 처지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증언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상생활 안에서 비록 피를 흘리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기꺼이 희생하고, 적극적으로 헌신하며 이웃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증언하는 사람이 되며, 백색 순교자로 불릴 수 있는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