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이라는 제목과 브래드 피트라는 주연배우 이름을 들었을 때, 트로이와 같은 거대한 서사극을 떠올렸다. 신에게 다가서려던 인간의 무지와 오만(?)을 상징하던 바벨탑, 그리고 그에 대한 신의 응징으로 인류가 얻어야했던 다양한 언어. 요즘의 영화기술이라면 분명 꽤나 그럴싸한 화면을 만들어낼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감독이 알레한드로라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아모레스 페로스, 21그램.나인 라이브즈... 그는 언제나 너무나도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어왔기 때문이다. 담보되어 있는 영화의 작품성, 그러나 그에 비해 부족하기만 한 흥행성.... 당연히 엄청난 스케일을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또 어떤 고민을 함께하도록 만들 것인가에 대한 기대만이 충만하다.
이번에 던져진 화두는 "언어"다. 너무나도 단순한 그러나 꼬이고 엮인(조금은 억지스러울 정도로), 세네가지 이야기는 모두 언어의 장벽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영어, 스페인어, 아랍어, 일본어, 그리고 수화까지... 문제의 본질이 과연 언어 때문이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 해결의 과정에서 툭툭 던져지는 소통의 장벽에 모두가 힘겨워한다. 신이 내린 징벌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인가. 그렇지만 그 대가의 결과적 희생양은 언제나 약자.... 인간들은 인간들의 세상 속에서 또 다시 서열을 매겨버렸다. 신에 가까이 가려하기를 포기한 대신, 스스로를 신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해야할까. 던져진 화두는 언어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던져진 화두, 이야기의 시작일 뿐이다.
익숙하지 않다면 조금은 부담스러운 알레한드로 감독의 화려한 교차편집은 역시나 이번에도 배우들의 연기력을 극한까지 이끌어내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물론 언론에서 호들갑을 떨 정도로 브래드 피트의 연기가 엄청난 것이었다고 동의하지는 않지만, 다소 작은 출연시간에 비해 나름의 임팩트를 뿜어내기에는 크게 부족함이 없었고... 오히려 멋드러진 연기를 선보인 이는 김미려를 빼다박은 키코치 린코다. 아니 어찌 네이버 영화소개에는 그를 단역으로 분류해버렸는지... 대략 어처구니가 없다고 해야할까. 아무튼 섬세한 감정선의 처리는 만약 비중이 조금만 더 컸더라도 유명 영화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를만 한 것이었다. 박수 짝짝짝...
영화에 대한 평은 역시나 극과 극을 달린다. 최고라는 평가와 최악이라는 평가 둘 중 하나다. 김기덕 감독에 대한 평가와 대략 비슷하다고 해야할까. 그런데 김기덕 감독과 다른 점이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문제를 던지기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해결의 가능성을 어떻게든 보여주고 있다는 거다. 어떤 해결책이 제시되었냐고???? 글쎄, 그건 관객 스스로가 찾아야할 부분이고... 또 내가 발견한 답이 정답이란 보장도 없으니 패스~ 그리고 또 하나의 차이라면 알레한드로 감독은 평단의 무한한 찬사와 호응을 언제나 이끌어 내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어떻게 로비를 했는지야 알 수 없지만, 가끔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언론의 극찬을 듣는 것이 알레한드로다. 당연히 그에 따라 담보받는 관객수도 무시할 수 없겠고... 은퇴를 번복했다는 이유로(물론 번복을 쌍수들어 환영한다) 네티즌의 뭇매를 맞을 것이 예상되는 김기덕 감독에게 개인적으로 바라는 부분이랄까. 이야기가 샜다. 결론적으로 두 극단의 평 중 어느 곳에 줄을 서겠냐고 한다면, 나는 최고의 영화쪽에 줄을 서련다. 그러나 진정 최고의 영화라고 묻는다면 답은 "글쎄요"다. 내재되어 있는 무의식적인 도덕주의가 별 한두개는 더 찍어줬음을 숨길 수가 없다. 좋은 영화지만 21그램의 포스까지는 무리다.
첫댓글 굳이 언어를 갈라놓을 필요 없었다는 님의 의견에 공감 ^^ 그러나 김기덕을 뜬금 없이 비교하는 건 억지스럽게 느껴져요. 저는 바벨이 좋은 영화이기는 하나 감독자신이 영화 '바벨'을 통해 뿜어내고자 하는 메시지가 부족했다는 느낌이 들어 약간 찝찝했다는.
축구보려고 일찍 일어났어요.. 굿모닝~ -0- 확실히 전작들에서 느꼈던 전율(?)에는 미치지 못했던 것 같긴 하죠. 그리고 김기덕 감독 이야기... 개인적으로 두 감독의 작품을 볼 때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되는 까닭에 문득 떠올려봤어요. 두 분 다 좋아라 하는 감독인데, 평가가 조금 엇갈리는 것이 아쉽기도 하고 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