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밉상꾸더기 짓을 합니다.
저번 '한겨레 왜냐면'에 실린 글로 이번 대선에 대한 저의 의견 표명을 끝내고 선거날까지 조용히 기다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겨레', '오마이뉴스' 등의 날로 심해가는 노골적인 친노무현 선택 강요의 행태를 보면서, 또한 우리 카페에 실리는 글을 보면서 이래서는 안되겠다, 뭔가 균형 잡을 노력이 필요하다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저의 민노당 지지를 문제삼는 글을 접하고 미루던 글을 급하게 쓰게 되었습니다. 써놓고 올릴까 말까 며칠을 망설였습니다만 '한겨레'가 홍세화 선생이 민노당 당원이라는 것과 저번 100분 토론회에 나가서 민노당 권영길 지지한 것을 문제 삼아 직무정지를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저의 우유부단, 미적거림을 그만두어야겠다 마음먹고, 어제는 전교조 지부 홈페이지에, 오늘은우리 글쓰기 카페에 글 올립니다.
밉상꾸더기 짓이지요. 미련한 짓거리이기도 하고요. 천하의 대세가, 우리 카페의 큰 흐름이 하나로 모아지고 있는데 딴죽을 건다는 것은. 그러나 한번 읽어는 봐주십시오. 그리고 혼세화 선생의 직무정지건에 관해서는 '프레시안'이나, 민노당 홈페이지를 참고하시면 될 겁니다.
여러 회원님들의 시간을 헛되이할까 걱정하면서 글 마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나는 왜 민노당 권영길을 지지하는가
우연한 기회에 어느 지인이 쓴 <민주세력의 분열은 근시안적인 역사관에서 비롯된 천박한 감정일 뿐이다>라는 제목의 글을 읽었다. 독립 운동기, 해방 정국, 87년 대선 국면에서의 분열 등을 예로 들며 민노당 권영길 지지를 민주세력의 분열로 몰면서 비판하는 글이었다. 아래의 글은 이 글을 읽고 내가 평소 두 당과 후보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정치적 선택을 놓고 벌이는 논쟁은 쉽게 과열되어 얻는 것은 없이 서로의 골만 깊게 만들고 상처를 크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오죽 했으면 친한 사람끼리는 정치와 종교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을까. 그리고 정치는 생물이라고 말한 정치 고단자들의 말이 가르치는 바, 우리가 하는 정치적 선택에 있어 고려해야할 변수가 얼마나 많이 있을까. 제법 합리적이라 판단하여 제시하는 것보다 비합리적인 것 같이 보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워도 그러나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민중의 오랜 경험이 만들어 놓은 지혜와 정서에 바탕한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내 이야기에 나 자신 확신을 갖기에는 내가 모르는 일이 너무나 많다. 그렇다고 하여 고민과 선택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저 수수방관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의 조야한 생각을 적어본 것이다. 앞으로의 진전된 토론을 위한 바탕 글이 되었으면 한다.
(이 글을 이 난에 올리려고 하는데 홍세화 선생이 '한겨레'의 '왜냐면'의 편집자 직위를 직무 정지 당했다는 소식이 올라와 있다. 어떻게 해석할까? 홍 선생이 민노당 당원이고 며칠전 MBC '백분토론'에 민노당 권영길 지지자로 나갔기 때문이란다. 아, 이 일을 어떻게 해석할까?)
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몇 가지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제 생각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첫째, 선생님은 민주 세력의 분열에 대해 대단히 걱정하는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그러한 선생님의 우려에 대해 공감합니다. 그러나 저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민주당 노무현 후보측은 국민통합 21 정몽준 쪽과는 통합을 얘기하고 결국 후보 단일화를 이루어냈지만, 민노당, 전국연합 등 저가 평소 진정한 민주세력이라고 생각하는 쪽에 통합, 단일화를 제안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정책 연합이나 후보 단일화 해보았자 백해무익, 별무소득이라고 팔짱끼고 무시하고 있는데 어떻게, 누구 손을 잡으라는 겁니까? 함께 하자며 손잡으러 했다가는 좌파, 진보, 빨갱이로 몰려 표 떨어질까 두려워, 문둥이 피하듯 이쪽을 대하고 있는데 어떻게 통합하라는 거지요? 통합해 달라고, 제발 단일화 좀 해 달라고 읍소라도 할까요? 힘도 약하니 민노당이 무조건 백기 들어 포기하고 양보해야 할까요? 이런 상황에서 설령 지금의 국면을 선생님처럼 민주 세력의 분열로 보시는 게 일면 타당하다 하더라도 분열의 책임을 과연 누가 져야 합니까?
또 과거 민주세력의 분열을 얘기하시는데, 책임을 왜 우리 같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게 묻습니까? 책임을 물으려면 오직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분열한 상층에게 준엄하게 해야 하고, 꼭 우리에게도 책임을 물어야겠다면, 상층 분열의 속셈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우리 소신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 우리 목소리를 마지막까지 견지해 내지 못하고 비판적 지지니 민주 세력의 대동단결이니 하는 논리에 속아넘어간, 무지와 순진함에 대한 비판이고 반성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제는 우리 그러지 말자. 합리적이라든지 개혁적이라든지 하는 그런 겉치레 논리에 넘어가지 말고 우리 스스로의 힘을 키우자, 그것을 위해 우리 작은 힘이나마 모을 생각을 하고 행동하자."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둘째, 민주당은 과연 민주 정당입니까? 민주 세력을 대표하는 정당 맞습니까? 노무현 개인은, 또 다른 사람 몇몇은 민주적이라 하더라도 저는 민주당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물론 그 차이가 있고, 지금까지 우리는 그 민주당에게 많은 기대를 하고 앞으로도 할 것입니다만, 최장집 교수가 정리한 바, 당비를 내는 당원이 없는 소수 간부들만의 정당, 일상적으로는 정책 준비를 소홀히 하면서 선거 때나 가동되는 선거준비 정당, 표를 의식해 모든 국민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하는 포괄 정당, 한 마디로 말해 민주성에서 많이 모자란다는 점에서 두 당은 오십 보 백 보죠. 저번 토론회에서 노 후보도 솔직히 인정했고요.
저번 해운대 지역 보궐선거 유세장에서 노무현 후보가 '한민당'(해방후 결성된 반민족 친일 지주와 부르주아 세력의 정당) 뿌리를 이야기할 때 저는 고개를 갸우뚱했고, 노무현 후보가 노동운동을 시대착오라고 말할 때 저는 고개를 강하게 저었고, 단일화 이후 자신은 진보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저는 저의 판단을 굳히면서 제 생각이 옳다는 것을 강하게 확신했습니다. 물론 그의 얘기는 전후맥락을 따라가면서 엄밀하고 조심스럽게 이해하고 해석해야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다급하고 당선이 눈앞에 보이더라도 할 말이 있고 견지해야할 입장이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날이 갈수록 현실 정치인이라는 말로 얼버무리면서 더욱 우경화해가고 있는 그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기기 힘들다는 게 저의 솔직한 마음입니다. 그가 추구하는 '현실'과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현실'은 자꾸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그가 지금 극우들의 턱도 없는 이념 공세를 피하고 정몽준과의 연대를 통해 당선되기 위해서 자기의 진보적인 생각을 누르고 있지만 당선되고 나면 진보 정책을 활짝 펼칠 거라고 기대하기도 합디다만 저는 그건 과한 기대일뿐더러 그가 속한 정당은 결코 그걸 포용해서 실천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나라의 정치 문화와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이 갖고있는 거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알지만, 한 영웅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결코 민주주의와 친화하기 어렵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우리는 이미 김종필에게 발목 잡혔던 김대중을 경험하기도 했고요.
세째, 노무현의 리더십은 지금까지 우리가 만나지 못한 새로운 리더십임을 저는 인정합니다. 노무현의 지도력은 아래로부터 분출해 올라온 국민의 욕구를 수용하여 형성된 지도력임을 저도 인정합니다. 그가 보인 일관된 행동, 두려움 없는 용기를 저는 인정합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어서 벌일 청와대 비서관, 장관들과의 토론 장면을 생각하면 흐뭇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와 민주당이 비정규직 문제로 대표되는 노동 문제, 쌀 시장 개방으로 나타날 농업 문제, 소파 개정을 비롯한 주한 미군 문제 등과 같은 미국과의 문제 해결에 큰 기대를 가질 수 없습니다. 이회창보다는 많이 낫겠지요. 그것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제가 너무 마음이 급한가요? 현실 변화의 어려움을 모르는 관념적 급진성인가요? 그러나 저는 학원 네 다섯 군데를 예사로 다니는 아이들을 보면서, 또 노래방으로까지 내몰린 아줌마들을 보면서, 좀더 뿌리로부터 변화가 없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노무현에 대해 저도 많이 기대합니다. 그가 아무리 진보가 아니라고 부인해도 그가 대통령이 되어 펼쳐보일 개혁적인 정책에 제 마흔 끝 오십 초반을 맡길 가능성은 대단히 높습니다. 그러나 묻고 싶습니다. 노무현과 김대중의 차이는? 이미 김영삼과 김대중이 스승 노릇을 했으니까 친인척들의 비리는 많이 줄겠지요. 나는 그것 가지고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측근 정치, 가신 정치는 많이 줄어들겠지요. 저는 그것만으로는 이 타락할 대로 타락해 가는 자본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번 신영복 선생님이 강연회 뒤풀이 자리에서 말씀하시대요. 김대중은 IMF 요구를 150% 수용한 정권이라고요. 저는 그것이 우리가 겪고있는 문제의 상당한 뿌리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민주당 노무현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넷째, 저는 이 시대가 '공학의 과잉 시대, 철학의 부재 시대'라고 봅니다. 저는 새시대에 꼭 필요한 철학을 제시하는 사람을 선택하고자 합니다. 저는 성장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고 봅니다. 공자가 2500여 년전 말씀했던 '모자라는 게 문제가 아니라 고르지 않아 문제'라는 말씀을 다시 곱씹어 보면서 누가 분배 정의의 문제, 민족 자주의 문제, 생태 위기의 문제 등을 해결할 비전과 철학을 가지고 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세계에서 몇 위라는 한국의 경제력을 자랑하다가도 주 5일제 이야기가 나오면, 노동시간 단축 이야기가 나오면, 공무원 노동조합 이야기가 나오면, 교육과 의료 기회의 실질 평등의 이야기가 나오면, 몇 십년을 되풀이해서 틀어대는 현실론과 시기상조론이라는, 너무 오래되어 듣기 지긋지긋한 목소리에 저는 더 이상 그들을 쳐다보고 기다려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0만의 농민이 들일 작파하고 모여 농산물 개방 안 된다고 하는데, 비교우위와 세계화, 개방 대세론·현실론을 거론하며 팔짱끼고 있는 것을 보면서 더 이상 합리적이라고 하든 개혁적이라고 하든 보수 정권에 요구하고 구걸해서 얻을 일은 없다, 우리가 직접 만들어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철학과 정책을 가진 정치 세력이 필요하다고 마음을 굳혔습니다.
이제는 그 때가 되었습니다. 선거철만 되면 우리는 늘 우리의 목소리를 스스로 내지 못하고 기대반 의심반으로 좀더 나아보이는 보수정당을 선택하고, 얼마 안 있어 실망하고 그래서 이를 악다물며 다음에는 다시는 그렇게 안 한다고 다짐했다가, 또 '더러운 게 정'이라며,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며 그 짓을 반복해 왔습니다. 만약 이번 선거를 통해 진보 세력을 확실히 일으켜 세워 놓으면 우리는 그 지긋지긋한 반복된 시행착오를 끝낼 수 있을 것이고, 또다시 보수양당구조에 안주한다면 다음 5년 뒤 또 그 5년 뒤, 우리는 민주세력의 분열이니 뭐니 하면서 우리들끼리 소모적 논쟁을 다시 벌여야 할지 모른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제 그 때가 무르익었습니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텔레비전 초청 토론회에 초청되어 나가 우리의 얘기를, 우리가 그렇게 하고 싶었던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게 성장한 정당이 있습니다. 그런데 좀 민주적으로 보이는 한 인물에 대한 기대로, 또 이회창을 비롯한 수구 세력의 집권이 가져올 두려움 때문에 이번에도 우리의 마음을 거두어야 한다면 저는 감히 말씀드리건대, 이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철학과 정책으로 세상을 바꾸라고 지금까지 진보세력을 지키고 키워온 민주 세력에 대한 반역이고, 민중에 대한 배반이며, 선생님이 말씀하신 천박한 역사의식의 소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지금 새롭게 세상을 판짜기 위한 우렁찬 변화의 소리를 민노당과 권영길에게서 듣습니다. 아직은 그 힘이 작고 약하지만 무력감에 빠져있던 우리 민중들이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겠다며 털고 일어서는 힘찬 몸짓소리를 듣습니다. 하워드 진이 한 말인가요? 노동자가, 민중이 늘 옳지는 않지만 그 목소리를 무시해서는 진실로부터 멀어지게 된다고요. 저를 포함한 노동자들 타락할 대로 타락했지요. 제 욕심밖에 모르고, 텔레비전에 코 처박고 세상의 진실과는 담을 쌓고 있지요. 그러나 그들이 책이 아니라 몸으로,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터득하고 있는 진실, 그것을 깨칠 수 있는 철학과 비전을 가진 사람과 정당은 어디일까를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두 거대 정당의 후보들이 반미를 이야기하고, 다급했던지 누구는 군 단축을 이야기하고 또 정치 개혁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그러한 변화에 대한 진실성을 의심하기도 하고 그 공약이 공약( 空約)이 될 게 뻔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저는 일단 믿기로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러한 그들의 입장 선회가 어떻게 가능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물론 민노당의 선전 없이 둘이 이전투구로 싸우더라도 당선에 집착한 그들이 못할 짓, 안 할 말이 뭐 있을까, 저승에 간 사람이라도 살려내려고 하지 않을까 생각할 사람도 많겠지만, 저는 이러한 그들의 변화의 상당 부분은 민노당의 진보 정책이 있어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민노당이 노무현을 견인하고 노무현은 또 이회창을 견인하고. 저는 견인차로서의 민노당의 역할은 결코 과소 평가되거나 민주 세력의 분열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민노당으로 대표되는 진보세력의 더 큰 성장이 지금도 앞으로도 더 필요한 것입니다.
저번 토론회를 보면서 저는 무지개의 아름다움을 생각했습니다. 아, 만약 두 보수 정당의 후보자들끼리만 참석하여 토론했다면 어떤 장면일까를 상상해 보다가 문득 그 생각이 떠오른 거죠. 견인차로서의 민노당, 균형추로서의 민노당, 더 나아가 정권 담당자로서의 민노당을 상상하면서 민노당, 우리의 진보 세력이 아름답게 컸으면 좋겠다는 기대로 저는 가슴이 뜨겁습니다.
저는 지금 지식인의 사명에 관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태일은 대학생 친구를 기다렸지요. 맑스는 전체 노동자의 지식인화를 꿈꾸었구요. 저는 저번 각 후보의 지지층, 브레인들을 분석한 기사에서 권 후보 쪽에 상대적으로 386 세대가 약하다는 것을 듣고 작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변혁을 밥먹듯이 말하던 세대 아닙니까? 저는 세상의 뿌리로부터의 변화를 위해서 사자같이 싸우던 그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찾아보았습니다. 한나라 아니면 민주당이더군요. 저는 그러지 못하면서 지금도 그들에게 풍찬노숙하라고 요구하면 너무 가혹하겠지요. 그런데 아무도 없어요. 그건 너무 심하잖아요? 저가 과문한 탓인지도 모르고 또 학생운동 지도부에만 집착해서 관찰한 때문이겠죠. 아마 틀림없이 민노당 지지자의 가장 많은 부류는 386 당사자든지 저처럼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사람이겠지요. 그러나 과거 학생운동 지도부였던 사람들의 정치 행로를 보면서 김민석만이 변절자로 비난받을 일은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미래를 나름대로 예견하고 준비하는 지식인의 사명을 생각해 보는 것이죠.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생각과 글이 오직 현실론, 시기상조론에 뿌리박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현실론을 내세우며 민노당 권영길의 당선 가능성, 사표 등을 걱정하고, 그게 또 선생님의 글에처럼 민주세력의 분열에 대한 우려와 비난으로 나타난 것도 사실입니다. '권영길을 찍으면 이회창이 된다' '민노당은 대선 포기하고 권영길은 사퇴하라'는 사이버 시위가 있기도 했다고 하더군요. 현명한 현실적 선택을 강조한 것이지만, 저는 노무현이 권영길보다 이렇게 훌륭하니까 노무현을 찍으라고 해야지, 무조건 이회창은 안되니 노무현을 찍으라는 것은 곤란하다는 생각입니다. 그것을 진중권은 노예의 철학이라고 소개했더군요. 과도한 공포에 기인한 부정과 반대의 논리와 그에 기반한 선택은 이성적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얘기겠죠. 물론 이회창,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수구세력의 발호를 생각하면 저도 등골이 오싹하지만, 좀더 자신감을 같고 자기의 소신에 따른, 정치적 입장에 따른 선택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노무현 쪽의 그 사이버 시위에 대해 간단명료하게 대답한 것을 읽었습니다. '권영길을 찍으면 권영길이 되고 노무현을 찍으면 노무현이 된다.' 꼭 가수가 되려고 노래 부르지는 않죠. 그저 답답한 가슴이 뚫리고, 우울한 마음이 전환되고, 사랑의 마음이 전달되고, 그래서 노래를 부르죠. 나는 투표하는 일이 당선자를 꼭 내기 위해서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표는 없습니다. 다 의미 있는 표입니다. 만약 사표가 될 것을 걱정하면서 내가 던진 표가 꼭 당선자를 내야 한다면 두려워서 누가 마음놓고 투표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은 바뀌겠습니까? 선거를 가지고 이야기하더라도 숱한 시행착오의 역사를 통해서, 소위 사표의 축적을 통해서 세상의 진보는 이루어져 왔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저는 이 말을 기억합니다.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 68혁명의 젊은 사자들이 한 말이죠. 막스 베버도 말했던가요. '불가능한 것을 지향하지 않으면 가능한 것도 불가능해진다.'
저는 현실 타산에 매우 빠른 사람입니다. 1987년 비판적 지지인 조직의 지침을 어기고 김영삼을 선택했습니다. 1992년에는 백기완이 아닌 김대중, 1997년에는 권영길이 아닌 김대중을 찍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비정규직의 폭발적 증가를 보면서, 오직 시장과 경쟁으로 세상을 판짜는 것을 보면서, 단병호 위원장을 가두는 폭거를 보면서, 200일이 되어가도록 의료 노동자들을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내팽개치고 있는 자본의 오만을 보면서 지금까지 저가 가졌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거두려 합니다. '부자 되세요'가 부끄럼 없이 통용되는 이 천박한 사회를 보면서 이 세상을 뿌리로부터 바꾸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단히 힘들고 어렵겠지요. 시간도 많이 걸리겠지요. 그러나 불가능한 것을 꿈꾸는 듯한 저를 제발 몽상가라고 비난하지는 말아주십시오.
언젠가는 이번 대선에 대한 제 생각을 한번 정리해봐야지 했는데, 선생님께서 기회를 주셨습니다.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마 제가 논점을 일탈한 주장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투른 주장도 많을 것입니다. 널리 이해해서 읽어 주시고 서로간에 깊은 고민을 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