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민회관에서 행사가 있는 날, 초대받아 가는 길입니다.
10시 30분까지 도착해야 하므로 한 시간 전인 9시 30분에 집을 나섰습니다.
하루 전날 인터넷 검색 결과 구민회관 앞 정류장을 경유하는 버스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땐 언제나 일단 버스를 타고 수서역에 하차해서 지하철로 이동하곤 했습니다.
이처럼 버스와 지하철을 바꿔 타야 하는 불편함과 약속시간을 지킬 수 있는 예측 가능한 시간의 불투명으로 언제나 넉넉하게 일찍 집을 나서야 함은 기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인 구민회관 앞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는 사실이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남편에게 자랑스럽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버스는 빙빙 돌아가잖아. 지하철이 좋아."
더 들어볼 것도 없다는 듯 단박에 거절입니다.
"그래도 지하철 타기 위해 계단 오르락 내리락하지 않고 버스로 한 번에 가는 게 편하잖아요?"
"그 정도도 움직이지 않으려면 방안에 가만히 누버있지 말라꼬 나왔노?"
무릎이 아픈 나는 계단이 특히 내려가는 계단이 겁이 납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라고는 없는 남편의 쥐어박는 듯한 멘트에 할 말을 잃습니다.
그냥 듣고만 있기엔 심정이 상해서 한 마디 했습니다.
"어디 이쁜 말하기 대회가 있어 당신 나가면 대상은 따놓은 당상일걸요."
"....."
구민회관 경유하는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했는데도 남편은 요지부동 타지 않고 버팁니다.
'나 혼자 타고 가버릴까?' 혼자 속으로만 갈등을 하다 또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맙니다.
늘 이런 상황에 봉착할 때마다 남편의 고집에 무너지고 마는 자신의 나약함에 화가 납니다.
함께 가는 일행이 있다는 생각조차 없는 남편은 언제나 몇 걸음 앞서 걸어갑니다.
빠른 걸음을 쫓아가지 못해 늘 뒤처져 가다, 언젠가는 남편이 탄 지하철을 못 타고 놓친 일도 있습니다.
다음 역에 내려서 기다리던 남편은 미안하단 사과 대신
"뭐 한다꼬 꾸물거리다 제때 타지도 못하노?"
이러면서 면박을 줍니다.
남편의 의사대로 버스 타고 내려 다시 지하철로 이동해 출구를 찾는 중 또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분명히 구민회관은 오른쪽 출구라고 화살표가 그려진 걸 봤는데도 왼쪽이라고 우기며
"그쪽이 맞으면 당신은 그쪽으로 나가."
남편의 말을 거스르면 내 마음이 더 불편하게 되어버리는, 오랜 생활습관이 고착된 상황이라 그저 생각없는 사람처럼 따라갑니다.
지상에 나오니 내가 말한 오른쪽 출구가 구민회관에 더 가깝다는 게 한눈에 보입니다.
8차선 대로를 건너면서,
"이래도 왼쪽 출구가 맞아요?"
"사람이 잠깐 잘못 볼 수도 있지. 뭘 그카노."
자신의 잘못은 언제나 그럴 수도 있는 소소한 것이고 상대방의 작은 실수도 용납 못하는 남편이 야속할 때가 많습니다만 그러려니 하고 삽니다.
첫댓글 선배님 ! 저와는 너무 다르시니 무어라 말씀을 못 드리겠네요.
이제 선배님께서도 조금씩 목소리 내보세요.
현명하시니까 잘 하실수 있을거예요...
이젠 젊었을 때처럼 속이 많이 상하거나 댓구도 못하는 정도는 아닙니다.
욕하면서 배운다는 말처럼 남편의 나쁜 점을 어느새 배워 나도 남편에게 이것저것 지적질을 합니다.
옛날에는 일방적이었는데 요즘은 서로 주고받고 하지요.
유학 마치고 귀국하는 큰아들에게 공항에서 남편의 첫마디가
"내가 요새 너거 엄마한테 엄청 머러캐이고 산다."
두분의 정겨운 외출에 웃고 갑니다.
서로 다른 차이 ㅡ 그렇기에 스토리가 발생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젠 저도 웃습니다.
연륜만큼 여유가 생기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