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흔적
갈라디아서 6: 14~18
1. 예수 믿고 잘되는 것, 손해보는 것
우리가 예수님을 왜 믿는가 했을 때 솔직한 대답이 무엇입니까? 너나 나나 예수를 믿지만 예수 믿고 덕 좀 보자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병도 고치고. 사업도 잘되는 축복을 받으려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아닙니까? 예수님을 믿어서 자녀들이 공부 잘하고 출세하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 마음속에 이런 마음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손해를 보기도 해야 합니다. 주일날 매상이 더 오르는데 주일에 문을 닫으면 사업에 지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장사를 하다보면 주일에 문을 닫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승진에 문제가 있고 주일 성수 때문에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으면 당장 대입에 문제가 생깁니다. 특별히 우리 모두는 돈이라면 다 쩔쩔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경제적으로 손해를 보면서도 예수님이 좋다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좋다. 돈을 손해 본다고 해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구약성경에 그와 같이 사람이 있기는 하나 있었습니다. 욥기의 욥은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습니다. 많은 돈을 가졌던 부유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그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열 명이나 되는 자식도 몰사했습니다. 한 사람이 죽는 것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열 명이 한꺼번에 죽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기1장에서 욥은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고 말합니다. 욥은 하나님이 주셨다가 다시 가져가신 것은 원래 처음처럼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덕을 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손해를 본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저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출세했다고 말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사도 바울은 예수님 때문에 손해를 보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2. 바울의 흔적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서 내 몸에 예수님의 흔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생긴 손해의 자국이 남았다는 것입니다. 흔적은 헬라어의 스티그마타라는 말인데 깊이 상처가 났다가 아물어서 남겨진 흉터를 말합니다. 내 몸에 예수님의 흔적이 있다는 말은 예수님 때문에 입었던 손해의 상처가 남아 있다는 말입니다. 그 흔적을 보면 바울이 예수님 때문에 고생을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바울의 흔적을 알아보고 저 사람이 예수님 때문에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의 흉터가 무엇입니까? 무슨 손해를 보았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자리를 다 버리고 초라하게 살았습니다. 집 한 칸 없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매를 맞기도 하고 굶기도 하고 배척을 당하기도 하고 힘들게 살았습니다. 사실 바울은 가문 좋지 학벌 좋지 출신성분 좋지 젊었을 때 대단하게 당당하게 떵떵거리고 살았을 텐데 예수님 때문에 입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초라하게 산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지닌 흔적이었습니다. 바울이 저렇게 살 사람이 아닌데 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릴 사람인데 예수님 때문에 저렇게 산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인정한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님 때문에 당한 흉터가 크니까 다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흉터가 희미하면 잘 모르는 것입니다.
바울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결혼을 못해서 혼자 사는 것은 독신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예수님 때문에 복음 때문에 독신으로 산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복음 때문에 결혼을 할 수도 있지만 혼자 외롭게 산 것입니다.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 그것이 예수님의 흔적이 될 수 있도록 살아야 합니다. 바울이 여러 번 매를 맞았습니다. 바울이 매를 맞을 때 저 사람 자신의 죄 값으로 매를 맞는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매를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갔을 때도 바울의 잘못으로 감옥에 갔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바울이 예수님 때문에 감옥에 갔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바울에게 있었던 예수님의 흔적입니다. 바울에게 이렇게 여기를 보아도 저기를 보아도 예수님의 흔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고대 히브리 사회에서는 몸에 인(印)친 흔적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군인들에게는 제왕과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칠 때 화인(火印)을 찍은 흔적이 있었습니다. 헌신자 즉 종교지도자들은 자기가 섬기는 신 앞에 자기 몸을 드리는 표로 몸에 흔적을 가졌습니다. 노예나 종들은 이마나 팔에 주인의 이름을 화인으로 찍어 흔적을 가졌습니다. 인을 받은 노예들은 평생 도망갈 수 없고, 그 주인을 위하여 죽을 때까지 종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3. 예수님의 흔적, 나의 흔적
예수님도 고난의 흔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두 손과 두 발에 박힌 못 자국, 옆구리에 창 자국, 머리에 쓰신 가시관 자국, 온몸에 맞은 채찍 자국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받으셔야 했던 고난의 상처들입니다. 바울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갈 6:17) 그의 손목과 발목에는 빌립보 감옥에서 “착고”에 채였던 흔적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바울의 어깨에는 루스드라에서 돌 맞아 죽을 뻔했던 때 입은 흉터를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의 허리에는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던(고후11:24)’ 채찍의 상처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것을 ‘예수의 흔적’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기 때문에 … 에수님을 전하기 때문에 생긴 흔적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흔적이 있습니까? 예수 믿기 때문에 힘들고, 미움받고, 손해 보고, 한숨 쉬고, 눈물 흘리고, 아팠던 흔적이 있느냐 말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상처와 흔적이 있으신가요?
일반적인 육체의 상처도 상처지만 예수 믿기 때문에, 직분을 감당하기 때문에 받고 지닌 상처가 있으신가요? 예수 믿으면서도 집사, 권사, 장로 직분을 가지고 있으면서 할 말 다하고, 자기 하고 싶은 것 다하고, 자기 싫으면 그만두는 사람은 상처받을 일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남에게 상처를 줬겠지요. 그 자신은 상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받은 상처에는 아랑곳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에게는 주님이 부르시고, 택하셨다는 성별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저마다 부르심의 흔적이 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부르심의 흔적을 간증했습니다.(행9:1~9)모세는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었습니다.(출3:4) 사무엘은 성전 안에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네 번이나 들었습니다. (삼상 3:1~10) 우리도 많은 사람 중에 나를 택하여 주신 흔적이 / 간증이 있습니다.(요15:16) 잘 기억 못하고 귀한 줄 몰라서 잊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부르심의 흔적을 주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쓰기 원하시고 우리를 통해 이루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또 어떤 이는 부르심의 흔적을 외면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이루시기 원하는 뜻이 있다는 것을 본인이 알고, 받은 은혜가 있음에도 외면하고 삽니다. 그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고, 부르셨으며, 일 맡겨 주셨으면 감사함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와 성령의 인도하심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 도망갈 때 돌 하나를 베개로 삼아 자야 했습니다. 큰 두려움 속에 잘 때 하나님은 꿈을 통해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창 28:15) 그러자 야곱은 잠에서 깨어 베개 삼았던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부으며 서원(약속)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 (창 28:20~22) 그렇게 야곱은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 속에서 큰 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감사했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려고 애썼습니다. 사 41장 9~10절 “내가 땅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 41:9~10)
4, 희생과 봉사의 흔적
여러분은 예수 이름으로 핍박받은, 어려움 당한 흔적이 얼마나 됩니까? 예수님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 5:10) 고 하셨습니다. 힘들더라도 내가 구원받은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구원받게 하려고 전도하다가 망신당하고 부끄러움을 당하고 모욕을 받은 흔적이 있습니까? 어디서나 복음을 전하며 믿음으로 산 흔적이 있느냐 말입니다. 자녀들이, 가족들이 지금 당장 신앙 생활하지 않더라도 나중에 여러분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겠습니까. 지금 예수 믿지 않더라도 ‘그래, 내 아버지는 신앙생활하는 분이셨지. 주일이면 교회가서 예배드리셨지. 그래, 내 어머니는 기도하는 분이었어. 어머니가 함께 천국 가자고 했지.’라는 기억이 나야 합니다. 가정뿐만 아니라 일터에서, 또한 세상 사람들과 관계에서도 영혼 구원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 친구들이 여러분을 어떤 사람으로 기억할 것 같습니까? 혹시 여러분은 누군가의 밥 친구입니까? 술친구입니까? 낚시 친구, 골프 친구, 여행 친구입니까? 그렇게 오랜 시간 자주 만나고 가까이 지내면서 놀러 가고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운동해도 ‘예수님 믿어라, 교회 다녀라 그래야 천국 간다’ 한 마디 말도 못해봤다면 여러분은 진정한 크리스챤이 아닐 것입니다. 생명 있는 동안 여러분도 전도의 흔적을 남겨야 합니다. 그래서 내게 ‘예수 믿으라’는 소리를 들어봤다는 자부심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봉사하고 섬기며 헌금한 흔적도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교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쳐 갔습니다. 어떤 이는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다가 이사가고 이민 갔습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떠나갔습니다. 어떤 이는 목회자에게 큰 상처를 남기고 갔습니다. 어떤 이는 같은 성도들에게도 큰 아픔을 남겼습니다. 반면에 어떤 이는 교회를 위해 수고하고 애쓰며 흘린 땀방울의 흔적을 남겼습니다. 어떤 이는 이름 없이 빛없이 헌금하고 교회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남기셨습니까? 어떻게 신앙생활 하셨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어떻게 기억할 것 같습니까? 교회가 지금에 이른 것은 그동안 수많은 성도들의 눈물과 기도, 헌금, 헌신과 희생, 섬김의 흔적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과 교회를 위해서 흔적이 없습니다. 뭘 제대로 섬긴 흔적도 없고 드린 흔적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했던 흔적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도록 찬송하며 기도했던 흔적 가슴 치며 통회하고 회개했던 흔적 외면과 조롱받으면서도 꾹 참고 전도했던 흔적 넉넉하지도 풍족하지도 않지만 하나님의 것은 철저하게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며 감사했던 흔적 알아주지 않아도,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봉사와 섬김의 자리는 지켰던 흔적도 없습니다. 그런 흔적을 남긴 사람들이 지금의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부족하지만, 연약하지만, 보잘것없지만 나를 부르시고 세우셔서 흔적을 남길 수 있게 하심 감사합니다.’하는 마음으로 감사를 해보세요. 하나님은 하늘에 쌓은 여러분의 흔적을 기억하시고 더 큰 복으로 충만케 하실 것입니다. 더 많은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더 많은 예수의 흔적을 남기는 복된 삶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찬송가에는 우리한국교회 초기에 사장 많이 흔적을 남기신 항일 독립운동가, 신사참배반대운동, 일사각오의 신앙인 인 순교자 "서족하늘 붉은 노을" 주기철 목사님이 지은 찬송가 158장과 , 사랑의 원자탄, 나환자의 아버지 손양원 목사님이 지은 찬송가 541장,꽃이 피는 봄날에 만"가 있습니다. 함께부르면서 마치겠습니다.